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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15회

진구로 살던 시절에 그의 진짜 이름을 불러준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 반면, 그의 이모는 드라마가 끝나고도 오랫동안 그를 진구라고 불렀다. 어머니보다 두살이 많은 이모는 스물세살에 갈빗집의 외아들에게 시집을 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했다. 그가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모는 비싼 책가방과 운동화를 사주기도 했다. 사촌 형과 사촌 누나도 이모를 따라 그를 진구라고 불렀다. 사촌들이 그보다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자신보다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었는지,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사촌들이 진구라고 부를 때마다 그 말이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도 한 때 유명한 적이 있었지.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자격지심을 키운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오랫동안 그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모네 집에 갈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고, 쉽게 삭여지지가 않았다. 그는 <형구네 고물상>을 촬영하는 동안 이모네 갈빗집에 가서 사돈어르신들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갈비를 공짜로 먹었다. 돌아가시기 사흘 전까지도 카운터를 며느리에게 내주지 않던 시어머니는, 손자를 낳을 때말고는 며느리에게 평생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친정 식구 중 유일하게 그를 예뻐했다. 그는 이모를 위해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사서 갈빗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카운터에서 주산으로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던 어르신의 가슴에 꽂을 달아드렸다. 이미 두 손주들이 준 꽂이 달려 있었다. 사돈어르신은 가슴에 달린 꽃 세개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손주가 한명 더 생겼구나, 고맙다. 그의 이모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 모른 척 했다. 아들 둘에 딸 하나. 그게 시어머니의 소원이었다. 이모네 갈빗집 카운터에는 그의 사진이 이십년 동안 걸려 있었다. 그러다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사인들이 그의 사진을 덮어버렸다.

이모는 몇년 전부터 치매를 앓았다. 급격히 나빠진 것은 이년 전부터였는데, 일년 정도 사촌 형이 모시다가 요양원으로 옮겼다. 그는 사촌 형과 통화를 하다 이모가 몇달 못 버틸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작년 크리스마스에 요양원을 찾아갔다. 그를 보자마자 이모는 두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니 엄마가 보고 싶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이모는 어렸을 때 동생보다 키도 작고 발도 작아서 운동화를 물려 신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집은 언니가 새 옷과 새 신발을 신는데 우리 집은 반대였어. 그게 싫어서 니 엄마를 구박했지. 이모는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말을 또박또박 잘해서 그는 사촌 형이 아프지도 않은 이모를 요양원에 모신 게 아닐까 하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이모는 그가 결혼을 해서 딸을 하나 낳은 것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모, 제 딸 이름이 뭐예요? 우리 엄마 이름은요? 그는 이모의 정신이 온전한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똑같은 질문을 여러번 했다. 그때마다 이모는 귀찮아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진구야, 이모는 괜찮아. 그는 놀란 표정을 감추고 다시 한번 이모에게 물었다. 이모, 제 이름이 뭐라고요? 그러자 이모가 대답했다. 진구. 내 동생의 외아들. 진구. 그는 이모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모 눈이 이렇게 예뻤다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맞아요. 제가 진구예요. 그는 이모에게 말했다. “그 순간이었어요. 그렇게 말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어요. 진구면 어떻고 또 형민이면 어때요. 그게 뭐라고요.” 그의 말에 사회자도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사람들에게 제 자랑을 했어요. 내 손주는 아나운서예요, 하고. 제가 안 좋은 일로 방송국에서 나왔잖아요. 그리고 오랫동안 복귀를 못했죠.” 사회자는 십년도 넘게 방송을 쉬었다. 케이블방송이나 종합편성채널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다시 복귀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회자는 쉬는 동안 형이 운영하는 골프연습장의 1층에 까페를 차려 생계를 유지했다. 거기서 사회자는 같은 방송국에서 일했던 후배를 만났다. 후배의 부인이 골프연습장의 단골손님이었다. 후배는 이직한 회사의 명함을 그에게 주었고, 그후 후배와 인연이 다시 이어져 지금의 방송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제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왜 요즘은 텔레비전에 안 나오느냐는 말만 하셨죠.” 그래서 사회자는 할머니에게 국장이 되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높은 사람이 되면 아랫사람을 관리해야 해서 방송에 나올 시간이 없다며. 몇주 전 사회자는 암으로 동생을 먼저 보낸 배우를 인터뷰했다. 그 배우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동생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동생이 유학을 갔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거짓말을 한 것이 옳았는지 회의가 든다고 배우는 말했다.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을 말했더라면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 이제 하늘에서 내 딸을 만나는구나, 하고 생각할 텐데. 하늘에서 죽은 딸을 만나면 어머니는 얼마나 놀랄까. 그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배우는 말했다. 사회자는 배우와 인터뷰를 끝내고 분장실에 멍하니 앉아 거울을 보며 할머니 생각을 했다. 사람들에게 손주 자랑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뒤돌아서 비웃었을 것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신이 저질렀던 일 중 가장 부끄러운 일은, 그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할머니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회자의 말을 듣자 그는 시청률이 1%를 겨우 넘는 이 프로그램에 나온 것이 자신의 현재와 잘 어울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지상파 방송국에서 메인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보지 않는 심야 방송의 프로그램 하나를 겨우 맡은, 그런 사회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