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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나아간 작가: 어슐러 르귄과 그의 문학

이수현

2017년 12월, 어슐러 K. 르귄(Ursula K. Le Guin)의 신작 No Time to Spare가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작가가 여든을 몇해 넘기고부터 시작한 블로그 에세이를 묶어 펴낸 책이다.

 


180207_4은퇴한 사람들에게 “남는 시간(spare time)”밖에 더 있을까? 나야 은퇴가 있는 직업이 아니니 은퇴한 적도 없다. 예전만큼 열심히는 아니지만, 여전히 일을 한다. 나는 언제나 일하는 여자였고 그런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하버드의 설문조사자에게 내 평생 직업은 “창조적 활동”이라는 취미, 남는 시간에 하는 일이었다. 혹시 내가 그걸로 생계를 꾸려왔다는 점을 알면 좀더 어엿한 분류 항목으로 옮겨줄지 모르지만, 과연 그럴까 모르겠다.

(No Time to Spare에서 발췌 번역)

 

그 자부심대로였다. 1929년 10월, 저명한 인류학자 아버지와 인류학자이자 작가인 어머니 아래 막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글과 학문과 다양한 사람들을 접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 글을 썼고, 20대에는 시를 발표했으며, 1962년에 단편소설 「빠리의 사월」(April in Paris)을 SF&F 잡지에 발표한 이후 50년 넘게 꾸준히 장편, 단편 소설을 펴냈다. 상패가 곧 문학의 가치는 아니겠으나 그는 일찍부터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세계환상문학상, 뉴베리상, 주피터상, 간달프상, 루이스 캐롤 서가상,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상, 시어도어 스터전상, 아시모프 독자상 등 SF와 판타지 분야에서 가능한 상을 다 휩쓸었고, 이후에는 주류 문학계에서도 인정받아 1997년에는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2014년에는 전미도서상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부모의 직업이 꼭 자식의 세계관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르귄의 경우에는 인류학의 영향이 완연했다. 인류학의 특징은 타자를 바라볼 때 그 속에 녹아 들어가서 관찰하는 방법론에 있다. 르귄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고 철저히 그 세계 특유의 문화와 사회적 맥락 안에서 내재할 수밖에 없는 편견과 한계를 풀어내거나, 완전히 다른 문화가 처음 만날 때 일어나는 충격과 갈등을 그리는 데 특히 뛰어났다.

 

그의 대표작인 『어둠의 왼손』(The Left Hand of Darkness, 1969)은 일반적인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방문한 지구인을 통해 성과 젠더 고정관념을 묻고, 『빼앗긴 자들』(The Dispossessed, 1974)은 소유주의와 공동체주의를 표방하는 쌍둥이 행성 양쪽의 명암을 통해 아나키즘의 실현과 혁명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또다른 대표작 『어스시의 마법사』(A Wizard of Earthsea, 1968)는 도가 사상에 기반한 마법을 통해 균형과 조화를 이야기하는 판타지 작품으로, 주인공의 피부색과 외모 묘사에서 독자들의 마음속 편견을 찌른다.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 1973)에서 그가 던진, 단 한 사람만 희생해서 다른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질문은 지금도 변함없이 독자들의 공명을 일으킨다.

 

그러나 작가는 이미 이룬 바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의 한계와 편견에도 계속 도전했다. 많은 거장들이 만년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대표작 시리즈를 통합하고 정리하고 싶어하는데, 르귄은 오히려 1990년대 이후 쓴 어스시 시리즈 후기작에서 자신이 이전에 단단히 구축해놓은 세계를 뒤집는 데까지 나아간 것이 좋은 예다. 그후에는 아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서부해안 연대기’(Annals of the Western Shore, 2004~2007)를 썼고, 마지막 장편 소설인 『라비니아』(Lavinia, 2008)는 또 새로운 분야에 도전, 서사시 ‘아이네이스’에서 잠시 언급되고 마는 여성 라비니아의 시선에서 역사를 다시 써 보였다. 그리고 더욱 만년에 이르러 장편소설을 쓰기 힘들어지자 단편과 시와 에세이를 계속 썼다.

 

과거를 회고하기보다는 지금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나는 여러번 웃었고, 안도했다. 그러고 나서 한달 만에 그의 부고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책 속의 다른 에세이에서 ‘사람은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늙는다’는 말이야말로 결국은 늙음을 부정하고 젊음이 최고라고 여기는 문화라 신랄하게 비판하고, 늙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사람들은 전적으로 좋은 의도를 품고서 나에게 말한다. ‘세상에, 하나도 안 늙으셨어요!’
차라리 교황이 가톨릭이 아니라고 하지.

(the Diminished Thing 중에서 발췌 번역)

 

정작 나는 ‘난 늙었다고!’ 외치는 그의 글에서 늙지 않는 정신을 보았다. 정확하게는, 늙는다는 것이 낡는다는 뜻은 아니라는 증명을 보았다.

 

젊었을 때 걸작을 쓰는 작가는 많지 않지만, 만년이 되어서도 광채를 잃지 않는 작가는 더 적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사실 언제나 시대와 함께 이동했다는 뜻이다. 정말로 변화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면 낡고 도태한 작가로 보였을 것이다. 그의 글은 마지막까지 낡지 않았고, 온화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날카롭고 재치있었다. 그의 눈은 나이 들어서도 둔해지거나 흐려지지 않고 깊어지기만 했다. 독자의 세계와 시야를 넓혀준 작가가 마지막까지도 쪼그라들지 않고 나아갔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독자들에게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른다.

 

이수현 / 소설가, 번역가

2018.2.7.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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