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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사법부부터 개혁을

전성인
전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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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6일 아침, 필자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 갔다. 그 전날 폭탄처럼 떨어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심 판결을 성토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긴급토론회의 수위는 그나마 점잖은 편이었다. 재판부였던 서울고법 형사13부의 정체성에 대한 의혹과 재판장에 대한 여러가지 인신공격성 비판이 사이버 세상을 도배했기 때문이다. 국민은 판사의 신상을 털고, 판사는 판결로만 말하지 않고 특정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막장 속에서 사법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권위를 잃은 사법부가 어떻게 사회적 처벌권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는 정치가, 학자, 언론인이 권위를 잃은 데 이어 사법부마저 붕괴하고 있다.

 

자업자득이다. 정치가가 거짓말하고, 학자가 돈 먹고 불러주는 대로 쓰고, 언론인이 광고주 앞에서 설설 기는 것을 국민들이 어찌 모르겠는가. 판사의 판결이 이런 유혹과 부정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재판부에 대한 도를 넘은 비난과 판사 신상털이가 사이버 세상을 도배하는 것은 비록 잘못된 일이지만 이런 광풍 속에 나타난 국민의 분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무엇인지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비뚤어진 시각’을 통해 본 이재용 사건 1심과 2심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그럴듯한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엄정한 처벌의 모양새를 갖추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결국 이재용 부회장을 풀어줄 것인가가 아마도 사법부의 고민이었던 듯하다.

 

‘기적’의 판결

 

1심 재판부가 ‘꽃길’을 깔았던 방법은 두가지다. 우선 형량이 가장 큰 재산국외도피죄의 이빨과 발톱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된 재산국외도피죄가 인정될 경우 그 액수가 50억원을 넘으면 형량이 최소 10년이다. 재판부가 작량감경(판사가 무조건 형량을 깎아 봐주는 것)을 하더라도 최소 5년이다. 3년이 넘어가면 집행유예가 안 되니까 이재용 부회장은 “빼박캔트” 실형이다. 그래서 1심 재판부는 특검이 문제 삼은 약 79억원의 재산국외도피액중 코어스포츠 용역대금조로 송금한 37억원만을 인정하고, 말 구입 비용 등으로 보낸 42억 6천만원은 ‘적어도 처음에는 그 의도가 진실했다’며 이를 부인했다. 이빨과 발톱 중 하나만 인정하고 다른 하나는 뽑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형량을 5년으로 낮추었다.

 

그다음, 또다른 5년짜리 범죄인 횡령을 슬그머니 그 옆에 가져다 놓고는 횡령을 더 주된 범죄라고 보았다. 흐음. 횡령은 나중에 돈을 갚으면 정상참작이 될 수 있다. 재산국외도피는 이런 식의 사후 보정이 대단히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이재용은 2심 판결을 앞두고 급하게 삼성전자에 80억원을 변제했다. 무죄를 주장하면서 돈은 왜 냈을까?) 어쨌든 이런 서커스를 통해 1심은 ‘작량감경 없이’ 5년으로 형량을 낮추었다. 이것은 한때 1심 법원이 정도(正道)를 걸은 증거처럼 인용되기도 했지만, 잘못된 진단이다. 실상은 ‘나중에 2심이 작량감경해 풀어줄 수 있으니 알아서 잘해보라’는 암시다.

 

지난 5일, 2심 재판부는 꽃길 위에 꽃가마를 올렸다. 필자는 재판부가 대충 “이 부회장이 80억원을 갚았고, 초범이니 국가에 공헌할 기회를 주자. 죄는 미워하지만 죄인은 미워하지 말자” 운운하면서, 작량감경으로 애초의 5년을 절반으로 줄여서 집행유예로 판결할 줄 알았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이 정도가 아니라 진실로 경천동지할 억지와 궤변을 통해 이 부회장을 풀어주었다.

 

2심 재판부가 활용한 도구는 두가지다. 하나는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정한 것이다. 이를 통해 ‘승계작업’ ‘명시적·묵시적 청탁’ 등의 개념을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그래서 영재스포츠센터 지원과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지원 등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된 혐의에 대해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면서 이를 피해갔다. 두번째는 재산국외도피의 남은 한 부분마저 뽑아버린 것이다. 재산을 부당하게 국외로 옮겼지만 그것은 도피를 위해서가 아니라 뇌물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도피시킨 재산으로 뇌물을 준 것이 아니라, 뇌물을 주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재산을 국외로 옮긴 것뿐인데, 이것을 어찌 나쁘다고 하겠느냐’는 식이다. 그래서 약화된 재산국외도피죄의 5년형마저 지워버렸다. 결국 재판부는 작량감경 없이도 2년 6개월의 형량을 도출하는 기적을 만든 것이다. 숙제 끝.

 

‘알 카포네’를 잡고 싶다면

 

이것이 ‘비뚤어진 시선’으로 재해석한 이재용 재판이다. 이것이 진실인지 픽션인지 필자는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필자처럼 생각하는 국민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법부는 이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음식점 메뉴 중에 ‘오삼불고기’가 있다. 오징어와 삼겹살을 섞어서 한데 버무려 볶은 것이다. 두 음식을 하나로 합해서 내놓은 또다른 예로는 짬짜면도 있다. 흐음. 사법부와 삼성이 유착하면 뭐라 할까? ‘사삼불고기’? ‘삼사면’?

 

많은 사람들은 재벌개혁을 거창한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제24조를 위반하고 있는 삼성생명을 개혁하는 것, 회사의 인적 분할 시에 자사주에 분할 신주를 배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무슨 외계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재벌개혁은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다. 재벌체제는 총수가 뒤에서 꼼수 부리니 투명하지 않고, 반칙하고도 무사통과니 공정하지도 않은 것이다. 이를 막는 궁극의 보루가 사법부다. 그래서 재벌개혁의 궁극은 사법부 개혁과 닿아 있는 것이다.

 

유명한 시카고 갱이었던 알 카포네의 재판을 다룬 영화 「언터처블」(1987)의 마지막에 알 카포네의 재판이 나온다. 온갖 증거에도 불구하고 히죽히죽 웃는 카포네를 보고 담당수사관 엘리엇 네스는 불안했다. 결국 휴정을 요청하는데 휴정 후에 판사는 현재 법정의 배심원단과 그 옆 법정의 배심원단을 교체하는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카포네는 유죄가 확정된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애초 배심원들이 다 카포네에게 매수되어 있었던 것이다. 판사는 그럼 왜 이런 요구에 응했는가. 엘리엇 네스가 “카포네의 뇌물 리스트에 당신의 이름도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덜덜 떨면서 배심원을 교체하라고 말하는 판사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카포네를 잡아넣고 싶은가? 그럼 사법부부터 개혁하라.

 

전성인 /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2018.2.1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