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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역 시위,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가현
이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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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불법촬영 성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시위가 혜화역에서 열렸다. 시위인원은 1만 2천여명으로 우리나라에서 여성의제로 진행된 집회 중 사상 최대 규모였다. 시위현장에 모인 이들은 간단히 말하면 불법촬영 편파수사에 분노한 여성들이다.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을 통해 기획·준비·홍보된 이 시위에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여성들이 전국에서 참여했다. 시위운영진은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서 시위 참여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세버스를 준비해야 했다.

 

시위가 커진 배경에는 단연 불법촬영과 촬영물 유포에 대한 여성들의 일상적 공포가 있다. 집이건 화장실이건 공공장소건 숙박업소건 어느 곳 할 것 없이 카메라인지 알아볼 수 없는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심지어는 변기에 구멍을 뚫어서 설치한 몰카도 있다. 여성들이 화장실을 쓸 때마다 나사 구멍이 카메라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노심초사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숙박업소에 가면 이 좁은 공간 어딘가에 카메라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살핀다. 하지만 살핀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몰래카메라는 보조배터리나 물병, 나사못 등 카메라라고는 짐작도 가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이렇게 일상을 감시하는 불법촬영에 대한 공포감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 공포가 분노로 바뀐 이유는 경찰의 수사태만이었다. 이전까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이 범죄가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 피해를 경험한 여성들이 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여성들은 꾸준히 신고를 해왔지만, 심지어 범인이 전 남자친구여서 신상을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도 ‘이런 건 안 된다’며 피해여성을 되돌려보냈다. 자료를 몇백장씩 가져가도 ‘너무 많다’며 ‘형광펜으로 칠해오라’고 되돌려보냈다. 유포자는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불법촬영범죄의 경우 촬영물을 유포할 가능성이 있고 증거인멸 가능성 또한 있기 때문에 반드시 구속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남성가해자의 불법촬영범죄를 신고받은 경찰은 범인의 증거인멸 우려가 있으니 언론에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하면서 막상 범인을 구속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가해자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압수수색해서 원본을 지워달라는 피해자들의 요청은 거절되었다. 그동안 경찰이 구속수사를 진행한 가해자는 미미한 수에 그쳤다.

 

이런 경찰의 반응에 여성들은 원래 불법촬영 범죄가 성립 요건이 까다롭거나 수사하기 어려운 줄 알았다. 경찰이 수사를 대충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경찰이니 믿었다. 믿을 곳은 수사기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똑같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남성피해-여성가해 사건에서는 여성피해 사건과 완전히 상반된 태도로 대했다. 구속수사, 압수수색, 현장검증, 2차가해 증거자료 직접 수집,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 조사 등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착착 진행했다.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남성과 여성에 따른 수사속도에 차이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에 나선 이철성 경찰청장 또한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수사한다고 답했지만, 어떤 성별이 가해자이냐에 따라 확연한 태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불법촬영 범죄로 검거된 1만 6201명 중 남성 가해자는 1만 5662명(약 97%)에 이른다. 여성 가해자는 539명(약 3%)이다. 이 중 구속된 가해자는 단 493명에 불과한데, 남성이 490명, 여성이 3명이지만 처음으로 포토라인에 세워진 사람은 여성이었다. 가해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인 범죄에서 남성이 가해자인 사건보다 여성이 가해자인 사건에 더 적극성을 보였다. 이 점에 여성들은 박탈감과 허무함을 느끼고 분노했다.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사건 외에도 이 시위에는 페미니스트들이 상시적으로 온라인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연대하면서 전 지역적으로 결집해왔다는 배경이 있었다. 또한 메갈리아의 등장과 강남역 여성혐오살인사건을 기점으로 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이슈마다 시위와 행진이 이루어지면서 ‘운동권’이 아닌 여성들도 의사표현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여기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했던 촛불집회의 경험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혜화역 시위는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할 수 있고 운동권 단체와 연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만들었다. 먼저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가 가능하다는 원칙은 가부장제에서 살아오면서 생긴 남성에 대한 근본적 불신과 여성이 운동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목표에서 나왔다. 생물학적 여성으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트랜스젠더를 배제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여성의 몸을 가진 사람은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 여성의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공포와 불안이 이 운동을 추동한 원동력이었던 점을 고려했을 때 의미있는 결정이었다. 비여성의 참여를 허용했던 다른 시위는 ‘무엇을 말하느냐’가 중점이었다면, 혜화역 시위는 무엇을 말하느냐와 더불어 ‘누가’ 말하느냐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였다. ‘여성이 말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2016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임신중단 합법화 시위에도 이러한 규정이 존재한다. 운동권단체와 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남성 중심적으로 운영되어왔던 운동단체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원인이었다. 기존 사회운동을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서 만들어나갔다면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나 임신중단 합법화 시위는 시위의 필요성을 절감한 개개인이 직접 나서서 만들었다. 이러한 운동경향은 조직을 유지하고 운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긴급한 이슈에 대해서 집회를 빠르게 기획하고 소속이 없는 개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다음달 6월 9일에도 혜화역 2번출구에서 2차 시위가 진행될 예정이다. 앞으로 이 시위를 비롯해 여성들이 목표하는 것은 불법촬영과 촬영물 유포에 대한 구속수사, 증거물 압수수색, 2차가해 증거 직접수집, 현장검증과 단호한 처벌이다. 또한 경찰에 의해 그동안 수사가 반려되었던, 해외에 서버를 둔 포르노사이트(불법촬영물 유포사이트)에 대한 적극적 수사 및 처벌을 원한다. 내가 한명의 페미니스트로서 이후 기대하는 방향은 이번 혜화역 대규모 시위를 기점으로 낙태죄 폐지 등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국가에 맞서는 대규모 시위가 더욱 자주 열리는 것이다. 여성들이 이번 시위처럼 집단으로 나서서 한국사회 전반의 성폭력과 성차별을 타파할 때 한국사회는 촛불혁명 이후 진정한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시위운영진은 시위의 본질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운영진의 공식이메일로 요청이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 시위참여자의 개인인터뷰는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본 글은 불법촬영 성편파수사 규탄시위의 운영진과는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이가현 /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2018.5.3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