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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관계 개선의 암초들과 ‘촛불’ 사이에서

서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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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을 두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널뛰기가 있었다. 맥스선더 군사훈련에 반발한 북이 ‘재고려’를 위협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취소’ 서한으로 강하게 대응하여 북미정상회담이 좌초되는 듯했다. 하지만 남북 긴급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극적으로 되살아났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와중에 중요한 진전도 있었다. 북은 핵시험장을 폭파·폐기하며 비핵화 행동에 들어갔고, 미국도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안전보장책” 제공을 공언했다. 이 소낙비 온 뒤에 땅은 굳는 것일까? 아니면 이번에 내린 비는 앞으로 올 장마의 전조일까?

 

지난 며칠간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던 가장 큰 이유는 북·미 상호간에 최소한의 믿음조차 갖지 못하는 뿌리 깊은 불신에 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북한은 미국의 안전보장 의지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북·미는 상대가 과연 만날 의지라도 있는지, 만나더라도 성과가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불신의 주체와 대상은 모두 김정은과 트럼프겠지만, 불신의 뿌리는 개인을 초월하는 것이다. 38선 이북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될 때부터 공식화된 적대관계, 한국전쟁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확장된 적대인식, 지난 70여년간 쌓인 적대장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널뛰기’를 계기로 북·미 적대관계의 깊고도 넓은 뿌리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낙비가 내려도 개의하지 않고 비가 갠다고 희희낙락하지도 않아야 한반도 평화를 향한 험로를 갈 수 있을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을 둘러싼 난제들

 

다음달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핵심의제는 안보다. 미국은 북이 보유했다고 하는 핵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자국을 겨누는 안보위협을 제거하려는 것이고, 북은 미국이 핵무기 등으로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을 타개하려는 것이다. 즉 안보와 안보를 교환하는 거래가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핵심이다. 이를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의 형태로 구하고 북은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와 평화체제로 구하고 있다.

 

문제는 비핵화도, 평화체제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으로 달성하는 것이 쉽지도 않을뿐더러 이 두 과제의 상호성을 확보하여 양자를 만족시키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점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비핵화는 해야 할 작업이 구체적이고 제한적이다. 기존 핵무기를 해체하여 재생이 불가능하도록 만들고 핵무기 생산시설을 해체하면 된다. 비가역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담지한 ‘잠재적 지식’(latent knowledge)을 해체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이행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단기적이고 가시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들도 있지만 완전하게 집행하는 데는 시간도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든다. 예를 들어 미국 핸포드 핵시설을 보자. 냉전 종식 후 가동이 중단됐지만 아직도 해체 중이고 환경오염 정화에만도 최소한 천억 달러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국제관계에서 구두 약속은 믿을 수 없고, 협약도 안심하기 쉽지 않다. 의회가 비준한 조약도 파기하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있을 수 없다. 더구나 미국은 70년 가까이 적대시 정책으로 겹겹이 북을 둘러싸고 있다. 한국전쟁 발발 후 3일 만에 발동된 대북 봉쇄조치는 아직도 유효하며, 외국인 자산통제규정, 적성국교역금지법, 국제비상경제권한법, 무역협정연장법 등도 북과의 교역·교류를 제한하며 북을 적대시하는 제도들이다.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지배를 받는다는 이유로 원조 및 수출입은행 보증과 신용장 발급이 금지되고 있다. 또 IMF 같은 국제금융기구의 신용대부도 거부하고 있다. 북 유엔대표부 직원들의 행동반경을 유엔본부에서 25마일 이내로 묶어놓고 있기도 하다.

 

이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대북 적대시 정책은 전쟁상태의 지속이다. 특히 북과 전쟁을 할 주체로 만들어진 유엔사령부는 그 존재 자체가 적대정책이다. 맥아더 사령관이 지휘하는 유엔군이 38선 이북에까지 전쟁을 확대하여 무력통일을 시도한 전력도 있기 때문이다. 유엔총회 결의안 376이 유엔군에 한반도의 ‘통일된 독립적 민주정부’ 수립 임무를 맡겨두고 있어 잘못 확대해석될 여지도 있다.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현상을 뒤집어서 보면 적대정책이 광범위하다는 것은 적대관계를 해소하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이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도 된다. 북의 군사훈련이나 한미군사훈련 중단도 그러한 조치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미국과 북 정부가 독자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중 제도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핵심은 역시 전쟁상태를 끝내는 것이다.

 

핵심이 ‘전쟁상태의 종식’이라고 본다면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같은 형식적 틀뿐 아니라 그 내용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앞서고 뒤따라야 할 것이다. 긴장완화, 신뢰구축, 군비통제, 심지어 군비감축까지도 논의하고,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은 이행해야 할 것이다. 또 ‘종전상태’를 위한 준비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종전이 되면 현재의 군사분계선은 ‘남북경계선’이 된다. 이 경계선을 누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논의해야 한다. 당장은 유엔사를 대신하여 한국군이 맡아야 할 책임이 크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통일부가 주무부처가 되고 행정안전부가 분계선 안전을 지원하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북과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거대한 전환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미국만 봐도 국방부와 안보부처의 조직이해가 걸려 있고 방위산업체의 기업이익이 걸려 있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 일본의 전략도 연결되어 있다. 앤드류 베이세비치가 『워싱턴 룰』에서 적시한 것과 같이 미국이 전쟁을 멈추지 못하도록 하는 ‘워싱턴의 규칙’이 있다. 북을 위험한 타자로 보는 강고한 담론구조도 건실하게 남아 있다.

 

다시 촛불

 

눈 깜빡할 사이에 남북정상이 판문점에서 ‘번개’를 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정부의 발은 아직 한참 뒤처져 있다. 20대 국회는 본회의에서 판문점선언에 대한 지지결의안 표결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문재인 행정부에서도 국방개혁2.0의 원래 내용은 ‘공세적 작전개념 수립’을 비롯한 ‘3축 체계’였다.

 

그래서 다시 촛불이다. 촛불이 먼저 비핵화와 평화의 깃발을 들자. 미국도 촛불을 믿으라 하고, 북도 촛불을 믿어보라 하자. 양자 사이의 깊은 불신을 해소할 가강 강력한 힘은 한국 시민사회다. ‘영원하며 검증가능하고 비가역적인 촛불’로 비핵화와 평화를 만들어가자.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2018.5.30.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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