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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험이냐가 문제다

이향규
이향규

이향규

한국의 입시제도에 대해서 말하기란 조심스럽다. 일단 너무 복잡해서 어설프게 아는 척했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또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섣불리 이야기를 꺼냈다가 끝도 없는 논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 더욱이 나처럼 외국에 살면서 한국의 입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엄청 미움받을 일이다. 2022년 대입개편안에 대한 기사와 거기 달린 뜨거운 댓글을 읽고부터 계속 마음이 편치 않다. 답답하고 슬프다. 기사와 댓글에는 불평등, 사교육, 변별력, 수시, 정시, 비율, 상대평가, 절대평가, 내신, 학생부종합전형 같은 말이 가득한데, 정작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아이들은 잘 배우고 있는 걸까?”

 

 

영국에서 본 한국어시험

 

딸 애린이가 GCSE(The 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 중등교육 이수 일반자격증) 외국어과목으로 한국어를 선택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중학교 2학년까지 한국에서 살았는데 영국에서 보는 한국어시험이 대수일까 싶었다.

 

GCSE는 의무교육이 끝나는 11학년(만 16세. 우리 나이로 치면 고1이다)에 전국의 모든 학생이 보는 국가시험이다. 거의 한달이나 걸려 10과목 내외의 시험을 치른다. 영어, 수학, 과학 과목은 필수고 나머지는 선택한다. 모든 과목은 절대평가(9점 만점)이고 답은 간략한 설명이나 긴 에세이로 쓴다. 이 시험은 ‘입학시험’이 아니라 ‘졸업시험’이다. 즉 중등교육에서 배워야 할 것을 잘 배웠는지를 평가하는 것이고 이 시험 결과가 상급학교 입시와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상급학교인 칼리지 원서 접수 기간은 GCSE 공인성적 발표 전이다). 입시여부와 상관없이 GCSE 시험은 매우 중요하다. 선택과목과 성적이 그 사람의 관심과 학업능력을 보여주므로 취업 시 그 성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경우 자기가 원하는 과목을 들으려면 그 과목 GCSE 성적이 좋아야 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10학년이 되면 모든 학교에서 GCSE 시험준비를 시작한다.

 

애린이처럼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외국어를 시험과목으로 선택할 경우 학교는 개별 학생이 따로 시험 볼 수 있도록 조치해준다. 처음에는 GCSE 한국어가 중국어나 일본어처럼 ‘외국어’ 과목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어의 경우 외국어로 선택하는 학생이 적어서인지, 굳이 본다면 ‘제1언어’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출문제를 받고서야 알았다. 시험지에는 ‘2016년 캠브리지 국제 GCSE 제1언어 한국어’라고 쓰여 있었다. 한국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중등교육을 마치면 풀 수 있는 문제라는 뜻이겠다. 우린 기출문제를 보고 당황했다.

 

 

쓰기시험: 토론과 주장, 묘사와 서술

 

먼저 쓰기 시험. 50점 만점에 딸랑 두 문제다. 두 영역에서 각각 네 문제씩 주고 그중 하나씩 골라서 쓰게 되어 있다. 두시간 동안 풀어야 하는 문제는 이랬다.

 

1. 토론과 주장

다음 중에서 하나를 고르십시오.

(1) ‘인간은 마음이 평화로운 종족이다’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논하십시오.

(2) 한국에서 이중국적자의 경우 병역의무를 지지 않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개인적 결정이므로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찬반의 근거를 들어 논하십시오.

(3) ‘독재는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말에 동의합니까? 반대합니까? 논하십시오.

(4)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와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은 서로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는 표현입니다. 어떤 말에 동의하는지 근거를 들어 논하십시오.

 

2. 묘사와 서술

다음 중에서 하나를 고르십시오.

(1) 오늘은 내 생일입니다. 친구들이 장난으로 내 눈을 가리고 어떤 곳으로 나를 데려갑니다. 촉각, 후각, 미각, 청각 등을 통한 느낌을 사용해서 그곳이 어떤 장소인지 묘사해보십시오.

(2) 사악한 인물 또는 친절하고 신뢰가 가는 인물 (실제 또는 가상 인물) 중에서 하나를 골라 그 사람의 신체적 특징과 습관 등에 중점을 두어 묘사하십시오.

(3) ‘놓친 기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십시오.

(4) 지금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배경은 아주 오래된 건물입니다. 시간은 밤. 갑자기 불이 나가고 누군가 뛰어가는 발소리가 들립니다. 이 부분이 소설의 중요한 부분이 되게 이야기를 만들어보십시오.

 

 

읽기시험: 텍스트 분석과 비교

 

읽기시험은 다른 날 본다. 이것도 두시간, 크게 두 문제, 50점 만점이다. 텍스트 A와 B가 주어졌다. A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일부이고, 다른 하나는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의 일부였다. 첫번째 문제는 A를 분석하는 것이고, 두번째 문제는 A와 B를 비교하는 것이다. 세부 질문을 몇개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텍스트 A를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답안의 내용에 따라 20점까지 주어지며 언어구사력이나 정확성에 따라 5점이 더해집니다.

-엄마와 자녀의 관계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현을 세가지 이상 찾아 쓰십시오.(3점)

-마지막 단락에서 엄마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세가지 이상 쓰십시오.(3점)

 

2. 텍스트 B를 읽고 문제에 답하십시오. 총 25점까지 주어집니다. 답안의 내용에 따라 15점까지 주어지며, 답안의 언어구사력에 따라 추가로 10점이 주어집니다.(문체와 구성에 5점, 언어의 정확성에 5점)

-텍스트 A와 텍스트 B의 주된 사건과 그 원인을 비교하여 쓰십시오.(4점)

-텍스트 A와 텍스트 B를 비교해서 찾을 수 있는 여러가지(사건의 전개, 등장인물, 주제, 표현방식 등) 공통점과 차이점을 쓰십시오.(11점)

 

 

영어시간에 배운 것으로 한국어시험 보기

 

문제를 보니 이건 한국어로 말을 잘한다고 잘 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한국어를 잘 ‘구사’할 수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인데 한국에서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면서 그런 능력을 잘 키웠는지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뭘 급하게 준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애린이는 그냥 마음을 비우고 시험을 보겠다고 했다.

 

얼마 전에 결과가 나왔는데 생각보다 성적이 좋았다. 알고 보니 그건 여기서 영어 시험을 준비하면서 끊임없이 훈련했던 글쓰기 방법으로 한국어 답안을 썼기 때문이다. 애린이는 이곳에 온 후로 2년 동안 학교에서 줄곧 GCSE 시험 준비만 했다. 영어 과목의 경우에도 작품을 바꿔가면서 글의 논지 파악, 문학적 묘사, 시와 소설 분석, 텍스트 비교를 지겹게 했다. 그게 언어 역량으로 쌓인 걸까, 이 아이의 한국어 글쓰기와 비판적 읽기 능력은 영국에 온 후 훨씬 좋아졌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시험이라면 괜찮겠다. 시험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그게 어떤 시험이냐가 더 중요하구나,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르치지 말고 몇가지 핵심적인 역량을 훈련시키는 게 더 필요할 수 있겠구나, 잘 익히면 다른 영역에도 전이될 수 있는 지적능력이 있구나. 그런데 한국에서 이런 시험이 가능할까? 주관식 절대평가인데 채점자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신뢰할 수 있을까?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애린이 친구들은 국어를 어떻게 배우고 있을까?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고등학교 1학년쯤 되면 자기주장을 조리 있게 쓸 줄 알고, 문학적 묘사와 서술을 이해하고, 다양한 텍스트를 분석하고 서로 다른 글을 비교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갖추게 되면 좋겠다. 시험이 그것을 잘 평가하는 것이라면 2~3년 시험 준비를 한들 그 시간이 아깝지는 않을 것 같다.

 

이향규 /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글로벌다문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2018.10.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