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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마의 여왕과 사이시옷의 가시덤불: 메리 노리스 『뉴욕은 교열 중』

염종선

뉴욕은_1201925년에 창간된 미국의 권위있는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의 교열책임자 메리 노리스(Mary Norris)가 쓴 이 책의 원제는 “Between You & Me”이다. 편집과 교정교열에 관한 책의 제목이 왜 ‘당신과 나 사이’일까. 문법과 독해 위주로 착실히 영어 공부를 한 우리 세대의 기대와는 다르게 미국에서는 입말로 “between you and I”라고 쓰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문법파괴적인 말을 들을 때마다 몹시 심기가 불편해지는 교열의 여왕 메리 노리스는 강력하게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할 겸 제목을 이렇게 지은 모양이다.

저자는 문장부호 하나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고 ‘콤마퀸’이라고 불리는데, 현대 비즈니스 용어를 빌려온다면 C.C.O.(Chief Copy-edit Officer)라고도 할 만하다. 35년 이상 『뉴요커』에서 교열작업을 했고 1993년 이후로는 오케이어(OK’er)를 맡고 있는 최고교열책임자인 셈이다. 이 업계에서 ‘오케이’는 이제 원고는 완벽하게 마무리됐으니 인쇄를 시작해도 된다는 최후의 승인이다. 야전사령관이 병사들에게 내리는 ‘돌격’ 명령이라고 봐도 된다. 그래서 오케이는 매우 중차대하고 최고의 긴장감을 요하는 일이다. 어떤 편집자가 지금 오케이 중이라고 하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누가 ‘모비딕’에 하이픈을 넣었을까?

 

『뉴욕은 교열 중: <뉴요커> 교열자 콤마퀸의 고백』(김영준 옮김)의 내용은 주로 영어 문장의 교정교열에 관한 것이다. 마침표나 쉼표처럼 한국어와 공통적인 것도 있지만 저자가 긴 지면을 할애해서 말하는 것은 콜론이나 세미콜론, 어포스트로피 같은 문장부호의 쓰임, 관계대명사의 제한적 용법, 오용되는 격(格)의 문제, 3인칭 대명사의 사회적 의미 같은 것들이다. 한국어 사용자인 우리가 액면 그대로 몰입할 만한 내용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의 서평을 쓰는 일은 저자가 말하는 영어 문장의 어법이나 문장부호의 용례를 점검하고 그것을 논평하는 일이라기보다 다른 언어에서 일어나는 곤경과 새로이 닥치는 문제는 어떤 것이고 그것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피는 일일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호기심을 끄는 장(章)은 단연 “누가 ‘모비딕’에 하이픈을 넣었을까?”이다. 미국판 『모비딕』에서 소설 본문에는 문제의 고래를 지칭할 때 하이픈이 (딱 한번의 예외만 제외하고) 들어 있지 않은데, 왜 책 제목에는 Moby-Dick이라고 하이픈을 넣었는지를 저자는 상세한 고증과 추론 끝에 밝혀낸다. 누가 ‘범인’이고 왜 그랬는지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한다. 다만 저자는 “하이픈과 교열자에 관한 지독한 진리가 있다. 있으면 빼고 싶고 없으면 넣고 싶다”(152면)라는 명언을 남기는데, 이보다 맞는 말이 있을까. 한국의 편집자들에게는 그런 일이 띄어쓰기에서 일어난다. 붙어 있으면 띄고 싶고 떨어져 있으면 붙이고 싶고.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라고 현행 규정대로 다 띄어 쓰면 허술해 보이고, ‘전지구적 자본주의체제’가 좋을지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좋을지 편집자는 고민한다. 물론 띄어쓰기에 따라 의미가 확 달라지는 경우라면 판단은 좀더 쉬워진다. ‘여성학자’와 ‘여성 학자’는 엄연히 다른 말이고, ‘한국 사학자’인지 ‘한국사 학자’인지 구별해주어야지 ‘한국사학자’라고 해놓으면 독자들이 헷갈려버린다.

 

보수적인 언어규범, ‘띄어쓰기’ ‘사이시옷’을 어찌할까?

 

띄어쓰기 얘기가 나오면 꼭 짚어볼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 공인 규범으로 통용되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사회^과학’이라는 표제어가 올라와 있다. 여기서 ^ 부호는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붙여 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회 과학’이 원칙인데 ‘사회과학’이라고 쓰는 것도 허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초중고 교과서에 이 어휘를 적을 때는 ‘사회 과학’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이 학문을 하는 사람은 ‘사회 과학자’로 적는 게 모범답안이 되고 ‘사회과학자’는 그저 용인될 수 있는 말 정도에 불과해진다. 똑같은 이유로 ‘시간 외 근무’가 맞고 ‘시간외근무’는 틀리지 않은 정도가 된다. 이런 원칙은 우리의 표기생활과 맞지 않는다. 1980년대 말에 제정된 표기법에 따라 띄어 쓰도록 되어 있던 ‘나일 강’을 ‘나일강’으로, ‘그리스 어’를 ‘그리스어’로 붙여 쓰도록 바꾼 것이 작년의 일이니 우리 언어규범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알 수 있다. ‘짜장면’과 ‘자장면’의 해프닝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내가 초짜였던 시절 사무실에서는 편집자들 간에 사이시옷에 대한 논쟁이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다. ‘순댓국’과 ‘등굣길’이 맞는다는 정통-관학파와 ‘순대국’과 ‘등교길’로 써도 된다는 이단-막가파가 있었다. 전자가 말하듯이 ‘소줏집’ ‘소주병’이 맞고 ‘소주집’ ‘소줏병’은 틀리다거나, ‘전셋집’ ‘전세방’으로 써야지 ‘전세집’ ‘전셋방’은 안 된다고 하는 주장이 공식적인 표기 규정에 근거한 것임을 안다. 하지만 남발되는 사이시옷의 걸리적거림과 사이시옷이 있는 게 맞는지 없는 게 맞는지 도무지 알기 어려운 복잡한 규정에는 질색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규정에 따르면 ‘大家’와 ‘代價’ 모두 ‘대가’라고 써야지 후자를 (발음에도 부합하고 이해하기도 편한) ‘댓가’로 적으면 맞춤법에 어긋난 게 된다. ‘湖水’와 ‘號數’도 마찬가지다. 모두 ‘호수’라고 써야지 후자를 ‘홋수’라고 쓰면 틀린다고 한다. 현행 맞춤법은 사이시옷을 넣어 의미를 알기 쉽게 해주어야 할 때는 쓰면 안 된다고 하고, 안 들어가도 될 때는 꼭 들어가야 맞는다고 한다. 사이시옷과 띄어쓰기에서 의미는 고려하지 않고, 단어의 결합 형태에 치중한 까닭이다. 콤마의 여왕이라면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할까.

 

이미 정해졌으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나는 현행 맞춤법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경향,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올라와 있지 않으면 굳어진 단어가 아니니 무조건 띄어쓰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을 것이다. 표준과 규정이 정해져 있으면 그대로 지켜야지 저마다 자기주장대로 쓰면 아수라장이 되지 않겠느냐는. 물론 군소리하지 않고 딱 정해진 대로만 쓰면 편한 점도 있다. 그런데 말과 글에 관한 규정은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언어생활을 반영하며 변해야 한다. 그것이 너무 지체되면 이반이 생기게 마련이다. 좀 거창한 얘기로 비약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한국(남조선)과 조선(북한)이 불완전한 두개의 나라인 채로 제각각 변화하고 굳어져왔듯이 한국어와 조선어도 그렇게 되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두음법칙, 사이시옷, 띄어쓰기, 외래어표기 등이 모두 그렇게 자명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우리말 표기는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을 위한 과정에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이미 정해진 바와 어긋나는 것은 일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엄격주의보다는 그 미완의 가능성이 가리키는 바를 주목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다.

 

콤마퀸 같은 사람들이 문법과 어휘, 문장부호에 집중하는 것을 좁은 직업적 영역에 한정할 일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말과 글에 관해서는 생각해볼 게 수없이 많다. 높임말도 낮춤말도 아닌 중간말 어미를 만들어 세대 간 격의 없이 쓸 수는 없을지, ‘동무’나 ‘인민’처럼 분명히 우리말이지만 거의 폐기되다시피 한 단어들은 어떻게 되살릴지, 문어체 외에는 잘 쓰이지 않는 3인칭 대명사 ‘그’ ‘그녀’의 쓰임을 입말에서 확장할 방법은 없을지, 아라비아숫자에서 세자리 단위로 붙이는 쉼표와 동아시아 언어로 읽을 때 생기는 불일치를 극복할 새 읽기법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을지, 사라진 순경음을 활용하여 외래어를 표기하는 일은 헛된 공상인지, 국립국어원은 격음과 경음이 모두 존재하는 아랍어 표기법은 왜 만들지 않는지 등등 엄청나게 많은 생각거리들이 있다. 이런 얘기들을 다 하기엔 지면이 모자란 것이 안타깝지만, 오케이를 해야 할 동료 편집자를 위해서는 여기서 글을 멈춰야 한다.

 

*이 글은 『창작과비평』 2018년 가을호에 수록되었습니다.

 

염종선 / 창비 편집이사 

2018.10.10.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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