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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접속면, 다섯번의 손잡기: 김금희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정홍수

경애의마음_120『경애의 마음』(창비 2018)은 반도미싱의 직장 동료(팀장과 팀원의 느슨한 상하관계)인 30대 중후반의 경애와 상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그밖에 경애의 전 연인인 산주, 조선생과 유일영 등 전현직 직장 동료들이 중요인물로 참여한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독자는 경애의 마음보다 상수의 마음을 더 들여다보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전체 분량에서 상수의 이야기가 좀더 많은 것 같다) 제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럴 때 ‘경애의 마음’은 그 자체로 독자적이기도 하지만, 상수가 얻고자 하는 마음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목적어로서의 경애의 마음이 있는 것인데, 그 얻고자 함을 딱히 이성으로서의 감정이라고 못박아두지 않은 데서 이 소설의 묘미가 생겨나는 것도 같다. 상수가 같은 영업부의 김유정 팀장을 짝사랑하는 게 회사 내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는 것은 소설 도입부의 맞선 에피소드에서 드러나지만, 이 둘의 관계는 소설에서 더이상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파업 이후 회사에서 계륵 같은 존재가 된 경애가 상수의 영업팀에 유일한 팀원으로 합류하면서부터 상수의 관심은 경애에게 기울고, 그 기울기는 점점 업무의 차원을 넘어서게 된다. 여기에는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아픈 과거의 기억을 상수가 먼저 알아차리게 된다는 사실도 가세하고는 있지만(경애가 상수가 운영하는 연애상담 페이스북 페이지 ‘언니는죄가없다’의 회원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도 포함해서), 문제는 계속 상수가 경애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거나 객관화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마 실제로 헷갈리기도 했을 테며, 그렇게 좌표를 꼭 찍어 자리를 지정해줄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경애의 마음에 들고 싶은 것이 단순히 팀장직을 유지한 채 베트남으로 발령받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더 원하는 게 있는지는 상수 자신도 헷갈렸다.(134면)

 

상사가 분명한데도 대체 어느 구도에서인지 을이 되어버린 상수는 어떻게 해서든 경애의 마음, 경애의 선택, 경애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일이 우선이었다.(135면)

 

몇번의 손잡기가 있다. 가벼운 악수를 포함해서 다섯번쯤 되는 것 같은데 『경애의 마음』은 손잡기를 통해 교환되는 미세한 감정의 진폭, 조금씩 변화하는 열도를 따라가며 상수는 물론 둘의 관계에서 거의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 경애의 마음까지 담아낸다. 언니는죄가없다(언죄다) 페이지가 해킹당하고 온라인에서 여성으로 위장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혼자만의 곤경에 처해 있을 무렵 상수는 업무차 앉아 있던 베트남의 한 까페에서 자기도 모르게 경애의 손을 잡고 만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보겠다.

 

물론 상수는 경애의 손을 잡은 정확한 뜻을 자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속여서 미안해요,일 수도 있고 나중에 많이 화내지 말아요,일 수도 있었고 구해줘,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수고했어요,쯤의 의미일 수도 있었다. 경애는 정말 수고가 많았으니까. 가끔 누군가의 인생을 생각하면 그 수고로움에 왈칵 감정이 올라오는 때가 있고 상수의 경우에는 주로 자신의 인생이었지만 적어도 오늘만은 달랐다. 상수는 경애 손을 잡고도 얼이 빠져 실감을 못하다가 경애가 손을 마주 잡았을 때에야 상황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상수가 경애의 손을 덮듯이 잡았지만 이번에는 경애가 손을 위로 올려 상수의 손을 눌러서 잡았다.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상수는 생각했다. 이렇게 손을 번갈아 올려가며 잡고 있는 지금은 머릿속이 완전히 비워져 아무 번뇌도 없지 않은가. 아니, 지금 아무 생각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절대적 없음은 아니고 무언가 아주 고요하게, 마치 우주에 퍼지는 단파음처럼 삐— 하면서 없다— 고만 인식되고 있지 않은가. 그럴 때 이것이 없다는 생각은 결국 단 하나 있는 것을 위해 봉사하는데 여기에 손이 있고 이것은 경애의 손이고 경애의 손은 따뜻하고 경애의 손에는 샌드위치 소스가 묻어 있고 경애의 손목에는 가죽으로 된 팔찌가 채워져 있고 다시 경애는 상수의 손을 잡으면서 손톱을 잠시 쓸어보고 약간 힘을 주어서 바닥 전체로 눌러보고 느껴보고 있었다. 거기에 상수가 있다는 것을.

‘울어요?’

‘안 웁니다.’

상수는 며칠 밤잠을 설쳐서 눈이 충혈되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둘은 손을 놓았지만 손만 그랬을 뿐 테이블의 공기는 그렇지 않았다. 여기에 사랑이 있었다.(259면)

 

여기서 손은 정확히 마음의 접속면이다. 정말, 여기에 사랑이 있다. 그렇다면 상수는 이제 스스로의 사랑을 자각하고, 경애의 마음을 (얼마간이라도) 얻었는가. 분명히 약간의 변화는 있는 것 같다. 상수는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은총의 죽음에 대해서든 ‘언죄다’ 운영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든 비밀을 밝히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정작은 그러지 못하고 그저 경애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기만을 바란다. 이 마음의 흐름은 미약하나마 자각적이다. 그러나 상수는 마음을 더 밀어붙이지 못하는데 ‘언죄다’를 둘러싼 상황이 악화되며 스스로 무너질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사실 경애의 마음에 일어난 변화야말로 고무적인 것이라 할 만하다. 우왕좌왕이나 약간의 붕 뜬 분위기 같은 게 상수 쪽에 있다면, 경애야말로 거의 마음의 바닥에서 아주 느리게 움직여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 은총의 죽음(화재 현장에 경애도 있었다), 이후 대학 선배와의 오랜 연애의 실패 등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혼자만의 시간 속으로 도망친 경험이 있는 경애는 반도상사 파업 농성 과정에서 다시 한번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는다. 파업 기간 일어난 성희롱을 경애가 노조 측에 항의하고 이 일을 기화로 파업 대열이 무너지면서 경애는 회사의 프락치로 공격받기까지 한다. 복직 과정에서 회사로부터 받은 모욕도 컸다.

 

(경애가 파업 과정에서 삭발했을 때 미장원을 하는 엄마가 찾아와 머리를 정리해주는 삽화는 노동 현장의 일이든 여타의 일상사든 소설의 생명이 디테일에 있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감동적인 예다.

 

그런 데서 사람들이 ‘바리깡’으로 밀면 듬성듬성하게 잘릴 수밖에 없으니까 다듬어주러 온 것이었다. 그때 경애는 공장 사람들이 다 있는 천막에 엄마를 데려가고 싶지 않았고 그 앞에서 머리 미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공장 안을 돌아다녔는데 엄마는 여기가 식당이야? 네 사무실은 2층이야? 하며 구경 온 사람처럼 신기해하다가 막상 머리를 정리할 공간이 공장 건물의 뒤편, 마름모꼴 방지석으로 마감한 언덕의 절개지 아래, 그늘이 져 사시장철 푸릇한 이끼가 깔린 축축한 곳밖에 없자 어쩔 수 없이 목이 메는 듯했다. 경애는 그래도 바닥보다는 약간 올라온 맨홀 뚜껑에 걸터앉았다. 경애 엄마가 집에서부터 챙겨온 신문지를 착착 접어서 가운데를 반원 모양으로 뜯어낸 다음, 경애의 머리가 쏙 나오게 씌웠다. 그러고는 이발기로 머리를 정리하다가 정수리 근처에 손을 올렸다.(267면)

 

이 회상 뒤에 빗질을 하며 자신의 머리와 이마 등을 만져보게 되면서 ‘견뎌낸다’는 느낌만이 아닌 “자기 자신을 꽉 차게 들어올리는 힘”(268면)을 감지하는 서사의 리듬도 훌륭하다.)

 

말하자면 상수와 한 팀을 이룰 무렵 경애는 스스로를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상태였다. “한번 도망가버리면 다시 방에 웅크리고 앉아 계절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했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 차라리 마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기를 선택했을 때 얼마나 망가지고 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26면) 그리고 유부남이 되어 다시 나타난 산주와의 만남이 어정쩡한 상태로 지속되다가 또 한번 견디기 힘든 모멸의 순간이 찾아온다. ‘언죄다’ 계정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언니’(상수)로부터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는 않았습니다”(176면)는 답신을 받았던 게 베트남 파견 직전의 상황이었다. 고개가 살짝 오른쪽으로 기운 채 늘 혼자 회사 한쪽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애의 모습은 정확히 그 마음의 정동이 출구를 찾아 헤매는 한 자세였던 것이며, 정작 팀장 상수보다 더 냉철하게 업무를 챙기는 모습 또한 일종의 버텨냄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람이 어떤 시기를 통과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했다. 그때도 ‘나아간다’라는 느낌이 가능했던가. ‘견뎌낸다’라는 느낌만 있지 않았나.”(268면) 그러나 이상한 방식으로 경애의 주변을 맴도는 상수가, 상수의 마음이 무슨 일인가를 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듯 기척을 내니까. 상수의 손을 잡았을 때 경애는 더 밀착하고 싶다는 충동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꽉 차게 들어올리는 힘을 느꼈다. 자기는 물론이고 맞은편의 상수도 한 팔로 안아들 수 있을 듯한 정도였는데 왜 상수를 떠올리면 그런 힘을 생각하게 될까. 힘이 있어야 한다고 다짐하게 될까.(268면)

 

“유사한 언어와 기억, 고통의 감각과 행복의 소망을 공유하는 집합체로서의 ‘마음’”(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문학동네 2009, 6면)에 대해 생각해본다. 김홍중은 “마음이란 결국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 사유하는 물건이 아니라 공유하는 매체가 아닐까”(같은 책 5면) 하고 물으면서 ‘집합체의 마음’으로 나아가는데, 여기에서 마음의 사회적·제도적·습속적 기반은 동시에 마음의 매체적 속성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우리는 그것을 마음의 접속면, 혹은 관계라고 불러도 되리라. 그러나 이같은 마음의 일반적 존재론이 마음의 구체적 발생과 개별적 움직임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이는 정동이론이 “몸의 정동적인 행함(doing)과 무화(undoing)”를 “아직 아님(not yet)”의 상태에 두고 그때그때의 “힘들의 만남과 강도들의 이행”을 해명하기 위해 애쓰는 지점을 떠올리게 한다.(멜리사 그레그 외 엮음 『정동이론』, 최정희 외 옮김, 2015 갈무리, 18면) “이러한 해명들은 독특하면서도 내밀하게 비인격적인—심지어 인격에 이르지 못하고(sub-personal) 전(前)인격적인—한 세계에 속함(혹은 속하지 않음)의 주름들을 벗겨 보이거나, 경우에 따라 그냥 드러나게 내버려둔다.”(같은 책 19면) 우리는 경애가 ‘아직 아님’의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힘들의 만남과 이행의 강도들을”을 그냥 드러나게 내버려둔 채 지켜보는 순간을 목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때 마음은 ‘나’(경애)의 것인 채 ‘너’(상수)를 만나고 어떤 이행의 순간에 잠시 집합체의 공간으로 뒤섞여 들어가는 것인가. 우선 그것은 “자기 자신을 꽉 차게 들어올”린다. 그것은 힘인데, 그 힘은 어디서 오는가. 그 힘은 잠정적인 것인가, 지속적인 것인가.

 

기실 경애도 상수도 이 손잡기를 두 사람의 관계 안에서 뚜렷하게 밀어붙이지는 못한다. 베트남 지점에서 다른 회사의 기계를 암암리에 판매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를 문제 삼은 경애는 본사로 전보되어 또다시 물류센터의 한직으로 내몰린다. 상수는 결국 ‘언죄다’ 운영진 앞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게 되고 이 사실은 선정적 언론의 먹잇감이 된다. 경애도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거나 경애는 부당전보에 항의하는 1인시위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그녀가 1인시위의 ‘파업일기’를 적던 개인 블로그는 은총의 죽음과 관련된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온라인상에서 만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해서 고통을 공유하는 일은 이토록 조용하고 느리게 퍼져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꼈다.”(319면) ‘조용하고 느리게’는 사실 경애와 상수의 손잡기와 마음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경애에 대한 상수의 기다림은 계절을 넘어 이어진다.

 

결국 어떤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기 어려운 채로 경애 쪽에서 좀더 ‘조용하고 느리게’ 진행되리라고 본 것은 『경애의 마음』의 성숙한 소설적 시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소설의 제목 역시 결국 ‘경애의 마음’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렇게 해서 가을날 밤(아마도 20여년 전 10월 은총이 떠난 날이었으리라) 혼자 잠든 상수의 집으로 경애가 찾아오고 두 사람이 나누는 오래된 이별과 상실, 애도의 이야기가 이제 어떤 마음의 국면을 개시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리라.

 

정홍수 / 문학평론가

2018.12.12.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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