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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일본

남기정
남기정

남기정                              

동북아시아가 당면한 역사적 과제는 ‘두개의 전후(戰後)’를 극복하는 일이다. 하나는 2차대전 ‘전후’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 ‘전후’이다. 한국전쟁의 ‘전후’를 미완의 과제로 만든 한반도 휴전체제의 극복은 평화구축의 과제이며, 한국전쟁의 먼 원인이 되었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총체적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일본은 동북아시아 근현대사에서 벌어진 세차례의 전쟁에서 두번은 직접적 당사자로, 한번은 후방기지로 관여했다. 이로부터 한반도 휴전체제의 극복이 일본과 함께해야 할 과제임을 알 수 있다. 한편 2차대전의 ‘전후’를 아직 끝내지 못한 한일관계의 1965년 체제 극복은 역사화해의 과제이며, 이는 한반도 휴전체제에 온존 은폐된 식민지 지배의 유제를 극복하는 것이다.

 

두개의 전후를 극복하는 일이 동북아시아의 과제라는 사실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협력체제 구축에서 한일관계가 중심이 되는 역사적·지정학적 근거이다. 한국정부는 동북아시아 평화의 핵심삼각형(한국-북한-일본)과 이를 둘러싼 배경삼각형(미국-중국-러시아)에서 한일-북, 한일-미, 한일-중, 한일-러 등의 삼각형을 운영하는 소다자주의 외교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 북일 국교 정상화가 관건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문재인정부가 내건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 구상은 양호한 한일관계를 전제로 한다.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를 구체화하기 위한 세가지 구상, 즉 동북아 평화협력 플랫폼, 신북방정책 및 신남방정책은 한일관계를 중심축으로 설정할 때 한층 현실적이 될 수 있으며, 한일관계를 매개로 하여 이론상 밀접한 세가지 구상이 실질적으로 하나로 융합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남북한과 일본으로 구성되는 동북아 평화의 핵심 삼각형을 중심으로 위로 유라시아, 아래로 동남아시아를 연결하여 ‘종축 아시아 평화지대’를 창출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몰역사적·지정학적 고려에 몰입해 있다. 제2차 아베내각 이후 일본은 ‘지구본을 부감하는 외교’와 ‘적극적 평화주의’의 안보정책으로 미일동맹을 ‘세계 속의 미일동맹’으로 격상하여 강화하는 노선을 추구해왔다. 최근에 이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포장을 바꿔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행을 배경으로 전략 수정의 필요성에 직면했다. 북일 국교 정상화가 전략 수정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납치문제가 전략 수정의 폭을 제한하고 있다. 납치문제 해결 없이 북일 국교 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는 아베 총리의 대북정책이 북일 접근에 제약요인이 되면서, 일본은 중일관계 개선을 통해 부분적인 전략 수정에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도 북일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가운데, 시 진핑 주석을 통한 대북 접근의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한편 탈냉전 이후의 역사적 경위에서 볼 때, 북일 국교 정상화는 북한 비핵화 과정과 필연적으로 얽혀 있다. 1988년 7·7선언은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남북한에 대한 교차승인을 연계하는 방식으로 한반도 냉전을 해체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후 1992년까지 한반도 화해협력은 일정한 진전을 이루었고, 한국은 소련 및 중국과 국교 정상화를 이룬 데 반해 북한은 미국 및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데 실패했다. 북한의 입장에서 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북한에 있어 핵과 미사일은 한소 한중 국교 정상화로 만들어진 불리한 국제환경을 시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하려면 운동장의 기울기를 교정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북미 간 협상 개시와 동시에 북일 국교 정상화가 관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소 100억 달러라고 일컫는 일본의 대북 경제지원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한 마중물이 되어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경제지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신동방정책을 추진하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또한 북일 접근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북일 국교 정상화는 동북아시아 평화의 공공재이다.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의 비핵화로

 

일본이 이 지역의 평화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이 또 하나 있다. 남북한과 함께 일본이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화 조약의 당사자가 되는 길이다. 평화헌법하에서 비핵3원칙을 옹호하고 비핵평화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온 일본의 평화운동 세력이 2018년에 개시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호응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동북아 비핵무기지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자는 제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가령 1996년 일본에서 가장 처음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화 구상을 제기했던 우메바야시 히로미찌(梅林宏道)는 북미정상회담 이후의 평화프로세스를 지속하기 위한 노력에 일본이 적극 참가할 것을 주장하면서 『세까이』 2018년 9월호에서 다시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화 구상’을 전개했다. 즉 그는 ‘한반도 비핵지대화’만으로는 이 지역에서 평화가 완성될 수 없으며, ‘한반도 비핵지대’의 실현을 위해 일본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메바야시가 제안하는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화 구상은 일본의 비핵3원칙을 모델로 남북한과 일본의 3국이 비핵지대화 조약을 체결하고, 이들 역내 비핵 3개국에 대해,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의 핵보유 3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안전’을 보증하는 의정서에 서명하는 3+3의 방식으로 동북아시아에 비핵무기지대를 창설하자는 구상이다.

 

북일공동선언이라는 비핵화의 지렛대

 

그런데 사실 동북아시아 평화의 핵심삼각형을 이루는 한국·북한·일본 3자 사이에는 사실상 비핵평화의 원칙이 공유되고 있어서, 실질적인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의 기초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시초는 1998년에 발표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선언이다. 한일 역사 화해의 문서로 주목받아온 이 선언에서 한국과 일본은 이미 비핵평화의 원칙을 공유했다. 작년에는 남과 북이 판문점선언을 채택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천명했다. 이에 더해 북한과 일본이 국교 정상화의 원칙을 확인하면서 북한의 핵문제에서의 국제법 준수와 미사일 개발 중지를 약속했던 2002년 북일공동선언의 정신이 재확인되면 남북한과 일본을 구성원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화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북일 국교 정상화는 북일공동선언에 각인되어 있듯이 역사화해의 정신에 기초해서 평화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또한 그것은 남북을 포괄한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역사화해를 이루어내고, 이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연결하여 동북아시아의 평화구축을 완성하는 일이다. 나아가 그것은 서울과 평양, 토오꾜오 등 세 꼭지점을 잇는 세가지 양자주의의 복합으로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화 조약에 기초한 새로운 다자주의 안보질서를 창출하는 출발점이 된다. 그로부터 동북아시아의 ‘두개의 전후’를 끝내는 길이 열린다. 한일관계를 지렛대로 일본을 움직여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완성하는 길이다.

 

남기정 /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2019.1.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