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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단어 ‘한센병’

김재형
김재형

김재형                               

매년 5월 16일은 전국의 한센인이 소록도에 모이는 잔칫날인 ‘한센인의 날’이다. 올해도 소록도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향하던 한센인들은 귀를 의심했다.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이 “한센병은 상처가 났는데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해 방치해 그것이 더 커지는 것이다. 대통령께서 본인과 생각이 다른 국민의 고통을 못 느낀다고 하면 저는 그러한 의학적 용어들을 쓸 수 있다”고 방송에서 말한 것이다. 이 발언에 전국의 한센인들은 오랜 시간 겪어온 사회적 고통이 다시 떠올라 몸서리쳤고 분개했다. 지난 17일 필자가 방문한 한센인 단체 사무실은 분노한 전국의 한센인들에게서 빗발치는 전화로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한센인 인권 회복을 위한 노력의 결과, 2019년 한국사회는 이 발언에 대해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발언의 부적절함에 대한 전사회적 질타 끝에 김의원은 바로 다음날 ‘한센병 환우들과 가족’에게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했다.

 

최근 정치인들의 막말이 넘쳐나는 상황에 위기의식을 가진 필자는 김현아 의원의 발언이 단순한 실수나 해프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해치는 사건이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한센병이라는 말이 어떠한 의미인가를 역사적으로 추적해보겠다. 17세기 조선에서 한센병의 공식적 이름은 ‘대풍창’ 또는 ‘나창’이었다. ‘대풍’이라는 병명은 이 질병의 병인에서 유래했다. 동양의학에서 한센병은 외부의 사악한 기운인 대풍이 몸 안에 있는 충이라고 하는 것과 만났을 때 발병한다고 생각되었다. 이후 원시적 형태의 전염관이 생겼지만 아직은 미신과 구분하기 힘들었고 대풍의 세계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처럼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한센병은 전염된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낙인과 차별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았다.

 

1910년 한일병합과 함께 이 질병의 공식적 명칭은 일본식 이름인 ‘나병’이 됐다. 국권과 함께 병명 역시 빼앗긴 것이다. 근대 서양의학이 한의학을 압도하면서 이 질병의 영어 이름인 leprosy에 대응하는 일본식 이름인 ‘나병’은 근대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고, 반면 ‘대풍창’은 구시대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사라져갔다. 나병이라는 명명에는 이 질병이 균에 의하여 전염된다는 의학지식이 담겨 있었고, 이 지식에 근거해 환자를 강제 격리하는 정책이 정당화됐다. 하지만 전염 가능성은 지나치게 강조됐고, 강제격리는 충분한 과학적 논의 없이 성급히 결정됐으며 식민지에서는 인종주의적·제국주의적 방식으로 더욱 가혹하게 시행됐다. 나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강화됐고, 그 결과 한센인의 고통의 역사가 시작됐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문동(문둥)이라는 병명도 곧 낙인과 차별에 오염되었다. 나병이라는 단어는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의학적 용어인 동시에 차별의 단어로 사용됐다.

 

한편 서양에서도 이 병명은 의학적 용어이자 차별적 용어로 사용됐다. leprosy, 그리고 그 환자를 가리키는 leper라는 단어는 지극히 모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미국의 루이지애나주 카빌에 있는 시설에 수용됐던 스텐리 스타인이라는 환자는 한센인 인권운동의 일환으로 1941년 『별』(Star)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그는 이 잡지에서 오염되지 않은 병명으로 이 질병을 일으키는 균을 발견한 한센(Gerhard Armauer Hansen)의 이름을 딴 한센병(Hansen’s disease)을 사용할 것을 주창했다. 이후 전세계적으로 한센병이라는 병명은 한센인 인권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한센인들은 완치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 차별 때문에 여전히 ‘환자’라 불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안된 한센인(people affected by Hansen’s disease)이라는 말은 더는 환자가 아니지만 질병에 의하여 사회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지칭하는 말이다.

 

한국사회에서 한센병이라는 단어는 1990년대 와서야 민주화 과정에서 인권담론이 확산하면서 점차 사용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는 일본 입소자(한센인) 인권운동에 있어 중요한 시기다. 1996년에야 한센인 강제격리법이 폐지되었고, 일본의 한센인은 소송을 통하여 국가에 사과와 배상금을 받아냈다. 동시에 ‘한센병’이라는 단어도 쟁취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한국정부도 2000년 1월 12일 개정된 ‘전염병예방법’에서 나병을 한센병으로 대체했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는 이보다 늦었다. 2005년경 국가인권위원회의 한센인 인권 실태조사 그리고 식민지 시기 소록도에 격리됐던 한센인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과 한센인 인권 회복운동이 사회적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언론에서 한센병·한센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후 한센병, 한센인이라는 단어가 한국사회에 차츰 뿌리내렸다.

 

이렇듯 이 단어는 수백년에 걸친 한센인의 고통을 극복하고 인권회복을 위한 투쟁의 결과물이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의료지식, 그리고 질병명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낙인과 차별을 뽑아내기 위한 싸움 끝에 한센인과 우리 사회가 합의해서 만들어낸 소중한 인권의 이름인 것이다. 한센병이라는 단어에는 다시는 질병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국가와 사회의 의지가 담겨 있다. 김현아 의원은 과거와 같이 ‘한센병’이라는 단어를 비난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질병의 특정한 부분을 부각함으로써 이 단어를 오염시키려 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한센병 환우”라는 단어이다. 한센인은 이미 완치됐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라 불리면서 낙인과 차별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의원은 이미 완치된 지 오래된 한센인을 “한센병 환우”라고 부름으로써 이들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주었다. 김현아 의원은 제대로 된 사과를 해주길 바란다.

 

김재형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2019.5.22.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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