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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분단체제, 어디로 가는가: 한반도 7월 위기의 뿌리와 미래

서재정
서재정

서재정                                    

갑작스런 소낙비인가? 길게 이어질 장맛비일까? 한반도를 뒤덮은 짙은 구름은 걷힐 수 있을까? 맑게 갠 날을 앞당기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7월 내내 한국은 총체적 난국을 겪었다. 일본이 선두에 섰다. 4일부터 사상초유의 경제보복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뒤를 이었다. 23일 조기경보통제기가 한국 영공을 무단 침범했다. 중국이 동조했다. 러시아 공군과 함께 연합 훈련비행을 펼치며 카디즈(KADIZ)를 넘나들었다. 미국도 뒤지지 않았다. 24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파견,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압박했다. 북이 7월의 대미를 장식했다. 23일 신형 잠수함을 공개한 데 이어 25일과 31일 연달아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말 그대로 동서남북에서 난리다. 경제와 안보가 모두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시작에 불과하다. 우선 8월 2일 일본이 각료회의에서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대상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수출규제 대상도 고순도 불화수소 등 3대 핵심품목에서 대폭 늘어날 수도 있다.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뀔 수 있는 품목이 1천1백여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수출을 모두 막지는 않더라도 그 경제적 파급효과는 예측하기조차 쉽지 않다. 게다가 한반도 안보상황도 남북이 강 대 강으로 충돌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한미가 예정대로 8월 초부터 한미연합군사연습을 강행하면 북은 강하게 반발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미 로동신문이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인용하여 군사연습을 중단하라는 ‘권언’을 ‘남조선 당국자’에게 전한 바 있기 때문이다. 25일의 미사일 2발 시험보다 더 강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이는 북미협상을 좌초시키는 암초가 될 수 있다. 8월 들어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에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두가 우려하는 상황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2017년 위기상황을 넘기고 나서 평화와 번영의 훈풍이 불던 한반도가 왜 지금 갑자기 안보와 경제 위기의 태풍을 맞게 된 것일까?

 

흔들리는 분단체제와 반동

 

일본이 경제보복의 칼을 뽑아든 이유는 표면상으로는 안보위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징용 문제로 불거진 식민지배 청산 문제이다. 즉 2018년 10월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피해자 손해배상 재상고심에서 원심을 확정한 것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배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도, 일본 법원의 판결로도, 청구권 소멸시효로도 소멸되지 않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조치는 이에 대한 반발이다. 모든 청구권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1965년 청구권협정을 한국이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때문에 이를 갈고 있던 일본이다. 청구권 협정 당시만 해도 그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는 1991년부터 일본의 식민지배 미청산을 상징하는 최대의 난제가 됐다. 고 김학순 할머니가 ‘커밍아웃’하면서 한국 시민사회가 이를 지속적으로 제기했고, 초국가적 성노예 이슈로 인식이 확장됐기 때문이다. 미봉책으로 일관하던 일본은 2015년 12월 당시 한일 외무장관회담에서 ‘최종적·불가역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합의에 따라 일본이 정부예산 10억엔을 출연하여 화해치유재단을 설립, 치유금까지 지급했으나 문재인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는 등 합의를 뒤집었다는 것이다. 이제 아베정부는 역사문제에서 본격적인 역공에 들어간 모습이다. ‘사죄하지 않는 일본’이 문제가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이 문제라고, 역사문제의 프레임 자체를 뒤집으려 시도하고 있다.

 

일본 보수우익의 총체적 역공이다. 식민지배 청산에서 배제됐던 한국 시민이, 민주화를 일궈내고 왜곡된 한일관계를 바로잡는 단계로 나선 것에 대한 반격이다. 온전히 피해자와 시민사회의 힘으로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세상의 공론장에 끄집어냈고, 한국 정치제도의 민주화와 함께 사법부도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가는 흐름을 뒤집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출범한 것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었고 ‘일본회의’였다. 일본의 정치학자 나까노 코오이찌(中野晃一)가 ‘백래시의 원년’이라고 부른 1997년부터 시작된 우익의 조직적 활동이 아베정부의 경제보복으로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 거센 흐름은 개헌을 이룰 때까지 계속 이어질 기세다.

 

이 거친 파도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 프로세스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2018년부터 남과 북, 북과 미국은 수차례 정상회담을 이어가며 한반도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며 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이러한 대화와 평화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일본에는 불편한 일이었다. ‘모기장 밖의 모기’ 신세가 되어 조건없는 대화를 구걸해도 호응을 얻지 못하는 처지였다. 끼어들지 못한다면 뒤집고 싶었을 것이다. 때마침 한국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흔들 수 있는 빌미를 찾아낸 것이다. 안보위해를 내세우며.

 

문재인정부의 어정쩡한 자세가 문제를 키웠다. 사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아 중국의 의심 서린 눈초리를 계속 받았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말하면서도 한미동맹의 ‘지역 글로벌 기여’를 강화하고 지난 6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간 조화로운 협력’을 약속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의혹의 눈초리를 보낼 발언이었다. 거기에 한미군사연습을 강행할 움직임을 보인 것이 북의 ‘권언’을 촉발한 것이다. 한반도 분단체제를 흔들어 평화체제로 이행하겠다고 하면서도 이를 위한 조치들은 남북관계에서도, 한반도에서도 진전되지 않고 있다. 분단체제를 잘못 흔들어 역풍을 초래한 것은 아닌가.

 

반동을 넘어 평화체제로

 

현재의 한일갈등은 표면적으로는 일본의 수출규제 때문에 촉발됐지만 심층적 이유는 해결되지 않은 역사문제에 있다. 흔들리고 있는 한반도의 분단체제와 탈바꿈하고 있는 냉전체제가 역사문제를 전면에 떠오르게 한 것이다. 7월의 총체적 위기는 한반도 분단과 한일분단, 해소되지 않은 냉전분단이라는 삼중분단이 모두 흔들리며 서로를 자극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가야 할 길은 역사의 흐름이다. 시민이 하늘이다. 시민을 배제한 채 왜곡된 한일관계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반일이냐 친일이냐의 선택이 아니다. 식민지배의 반인도성 및 불법성을 직시하며 미래를 열어가는 초국가적 시민연대를 구축할 것인가, 민족주의에 함몰된 민족국가 간의 무한경쟁에 순응할 것인가, 이 두가지 선택지이다.

 

그 선택은 평화의 길이기도 하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남과 북만으로 구축될 수 없다. 한국전쟁의 일방인 미국도 참여해야 하지만 유엔후방사령부가 있는 일본의 역할도 필요하다. 중국과 러시아도 평화체제 구축에 제도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추구하는 세력(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 중국, 러시아 모두에 있다)과 전쟁이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세력과의 경쟁 속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8월 초 한국과 미국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선택할지가 시금석이다. 2018년의 평화프로세스는 그해 초 한미군사훈련을 연기하기로 한 결정에서 시작됐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작금의 엄중한 상황은 한국 시민에게 묻고 있다. 삼중분단을 강화하는 전쟁의 과거를 선택할 것인가, 삼중분단을 해소하는 평화의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3·1운동 100주년에 삼중분단이 전면에 제기되는 것도 우연이 아닌 듯싶다. 독립선언문을 상기할 만하다. “이제 우리는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천만이 모두 마음속에 날카로운 칼을 품고 (…) 우리가 나아가 얻고자 하면 어떤 강적인들 물리치지 못할 것이며, 물러서서 계획을 세우면 어떤 뜻인들 펴지 못하겠는가.”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 

2019.7.31.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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