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작가 되기

정지돈
정지돈

정지돈                                  

건강보험료가 18만원이 나왔다. 한달에 18만원. 어머니는 건강보험료 때문에 거의 기절할 지경이시고 나 역시 그렇다. 내가 무슨 짓을 했길래 건보료를 한달에 18만원씩이나 낸단 말인가. 연봉이 1억쯤 되나? 듣기로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고 한다. 프리랜서는 건마다 해촉증명서를 받아 해당 일이 종료되었다는 사실을 건강보험공단에 알려야 한다. 그래야 건보료를 내릴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칼럼도—나는 원고지 12매에서 15매를 쓰고 15만원을 받는다—해촉증명서를 받아야 한다.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원고지 매당 1만원, 부양 식구가 있는 2인 가족이 서울에서 생활하는 데 한달 비용이 얼마나 들까. 서울시에서 조사한 2인 가구 평균 생활비는 230만원이다. 원고료가 대략 1매당 1만원 정도라고 하면 한달에 원고지 230매, 그럼 15매 원고 16개를 써야 한다. 아마 16개 업체에? 그러면 해촉증명서 역시 16개가 된다. 1년 12달이니까 해촉증명서만 192개……

 

물론 조금 과장된 수치긴 하지만 실감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건보료를 조정하기 위해 내가 내야 하는 최소한의 해촉증명서는 30개가량이다. 해당 업체에 연락해서 일일이 받아야 하며 해촉증명서가 뭔지 모르는 곳도 있다. 제때 처리해주지 않는 곳? 당연히 있다. 소모적이고 부당한 일이라고 따져봐야 소용없다. 법이 그러니까.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프리랜서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데 있다. 아쉬우면 취직해라. 너는 프리랜서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출퇴근도 없는 자유를 누리지 않냐. 그러니 감당해라. 정말… 이러기야?

 

나는 이 모든 게 귀찮고 법조항을 구체적으로 따져보기도 귀찮고 현실적인 문제를 저울질하기도 귀찮다. 왜냐하면 일년에 3,000매의 원고를 써야 인간답게 살 수 있으며 일년에 3,000매의 원고를 쓰기 위해선 밥을 먹을 때도 원고 생각, 양치를 하면서도 원고 생각, 꿈에서도 원고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대부분의 프리랜서들은 하라는 대로 한다. 소수의 매우 잘나가는 프리랜서들은 누군가 대행해서 이런 문제를 처리해준다. 그러므로 진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가난이란 뭘까. 돈은 뭘까. 최근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옥인콜렉티브의 멤버이자 부부인 이정민, 진시우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친분은 없으나 그들이 참여한 전시와 작품은 종종 봤다. 그들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최종후보에 올랐을 때는 기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게 작년의 일이다. 그런데 올해 8월 두 사람이 동반자살 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들의 죽음을 두고 여러 말이 오갔다. 전후 사정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지인에게 보낸 예약메일 내용으로 추측하건대 경제적인 곤경에 따른 여러 문제가 겹친 것이 큰 요인이 되었던 듯하다.

 

이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없음에도 나와 친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옥인콜렉티브는 주목받는 작업을 하는 작가 그룹이지만 미술시장에서 팔리기 힘든 종류의 작업을 해왔다. 참여적인 퍼포먼스와 영상, 설치 작업을 주로 하는 그들은 여러 전시에 초청받지만 댓가로 주어지는 것은 거의 없다. 아티스트 피(artist fee)는 작품 제작비로 대부분 쓰였을 것이고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을 것이다. 예술계는 이런 유형의 작가들을 곤경에 밀어 넣고 요구만 한다. 그들은 상업적인 작업을 해서는 안 되며 원래의 작업은 더 쇄신하고 지속해야 한다. 작업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삶은 피폐해진다.

 

어느 해인가 문학상 시상식에서 축사를 한다며 연단에 올라온 모 대학의 교수인 문학평론가는 상업성에 물든 작가와 출판사에 준엄한 일갈을 날렸다. 돈에서 자유로운 문학 그 자체의 본령을 지켜야 한다고. 다 좋다. 다 좋은 말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문학 또는 예술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러니 한정된 목적에 연연하지 말라. 그런데, 그건 그거고 돈은? 월세와 건보료는? 어머니 임플란트를 해드려야 하는데, 그게 아니면 틀니라도 해드려야 하는데 그건 어쩌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고 예술은 역사상 단 한번도 돈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돈과 직결된 일이다. 문제는 예술가들이 겪는 경제적 곤궁을 어떤 사람들은 이미지로 이용하고 심지어 그런 환경에 예술가들을 몰아넣기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대학교수님인 그 문학평론가는 월급 안 받고 일하나? 이런 말도 흔히 있다. 교수가 되면 작품이 무뎌진다고. 진정한 작가라면 교수는 안 해야지. 진정한 작가라면 독자들에게 아부하는 작품은 안 써야지. ……. 세상에 진정한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몇이나 될까. 그런 작가가 있기나 할까(최소한 나는 본 적 없다).

 

2019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예술인 경력단절 이유 1위는 ‘수입 부족’이다. 27.5%는 1년간 수입이 0원이며 평균 연봉은 1,451만원이다. 예술가는 가난하다. 그러나 예술가의 곤궁이 단지 그들의 능력 부족 탓일까. 예술을 다루는 여러 업체와 기관들은 제대로 된 댓가를 지불하고 있나. 복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신인 작가들과 선인세 100만원 남짓으로 단행본 계약을 처리하는 출판사들(거의 모든 출판사)도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재테크에 눈을 뜨고 부동산 이야기, 자동차 이야기, 집값 이야기만 하는 게 싫었다.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작가가 되고 난 뒤 다른 작가들을 만나보니 대부분 사석에서 재테크 이야기만 한다. 물론 안 그런 작가들도 있지만 그런 이들은 청탁도 없고 가난에 허덕인다. 재테크를 즐겨 이야기하는 작가들은 그러나 물론, 작품이나 에세이, 인터뷰 등 공적인 영역에서는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가난한 서민의 편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이중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이중성은 예술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사회와 예술계는 우리에게 살아남기 위해 이중적이 되라고 이중적으로 요구한다. 왜냐하면 앞에서는 늘 진정성을 요구하니까. 그러니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이중적으로 살아남거나 진정하게 죽거나.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다른 길이다. 예술과 경제를 둘러싼 폐쇄회로에서 탈출하는 것. 모두가 잘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말이다.

 

정지돈 / 소설가

2019.9.4.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