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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31회

형민은 담배연기가 공중으로 흩어지는 걸 보다가 허공을 향해 입바람을 불었다. 형민은 담배 냄새를 싫어했지만 연기가 허공으로 퍼져나가는 광경을 바라보는 것은 좋아했다. 가끔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옆에 서서 그들이 연기를 뱉을 때마다 따라서 한숨을 쉬어보기도 했다. 담배를 도로 달라던 할머니가 형민에게 언제부터 여기에 살았는지 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라며. 형민은 이사를 온 지 이년이 다 되어 간다고 말했다. “나는 말이야. 이 연립이 처음 지어졌을 때부터 여기에서 살았어.” 할머니가 말했다. 사십팔년 전, 할머니는 이 연립이 지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때 할머니는 단칸방에서 딸 둘과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었는데, 백일이 된 아들은 새벽이면 울기 시작해서 멈추지를 않았다. 버스운전을 하던 남편은 밤에 잠을 자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화를 냈다. 그래서 할머니는 새벽이면 아들을 업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동네를 돌아다니다 할머니는 어느 공사 현장을 발견했다. 다섯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연립이었는데, 오층짜리 건물이었다. 할머니는 태어나서 한번도 2층 이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 건물 오층에서 살아보는 상상을 하곤 했다. 베란다에 서서 저 멀리에서 아이들이 집으로 걸어오는 걸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자신의 모습을. 그런 상상을 하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무리를 해서 여기로 이사를 했지. 이 집을 사고 빚을 다 갚는 데 십년이 넘게 걸렸어. 그래도 빨리 갚은 거야. 내가 도배를 배웠거든. 딸 둘은 집에 두고 막내아들은 데리고 다니면서 도배를 했지.” 형민은 엄마가 도배를 할 때 그 옆에서 벽지를 가지고 노는 어린 아들을 상상해보았다. 꽃무늬 벽지로 딱지를 만들었을까? 비행기를 만들어 날렸을까? 친구 중에 그런 놈이 있었다. 세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둘이 살았는데, 살림이 넉넉하지 않던 아버지는 공사 현장으로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공구에 다칠까봐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커다란 종이 박스 안에 넣고는 나오지를 못하게 했다. 아이는 그 안에서 나무 조각들을 가지고 놀았다. 훗날, 보드게임이 유행했을 때 친구는 젠가라는 게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다섯살 때, 종이 박스 안에서 혼자 하던 놀이가 바로 그거라는 거였다. 친구는 아들에게 젠가를 사주면서 말했다. 사실은 아빠가 어렸을 때 개발한 게임이라고. “그래서 그 친구의 아들은 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아 게임 개발자가 되겠다며 매일 게임만 한대요. 근데 자길 닮았다면 분명 성공할거라면 혼도 안 낸대요.” 형민은 할머니들에게 말했다. 친구는 술을 마시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정작 종일 게임만 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라고. 일주일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사발면만 먹어가면서 게임만 하고 싶다고. 친구는 자동차 영업사원이었는데, 그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몇달 전에 중고차 판매 사원으로 이직을 했다. 거기서도 실적이 그저 그런 듯했다. “여기서 사십여년을 넘게 사는 동안 별일을 다 봤지. 남편이 여기 사는 여자랑 바람이 났다며 그 부인이 찾아와 불을 지른 적도 있고, 술 취한 남자가 창밖으로 술병을 던져 지나가던 여학생이 크게 다친 적도 있고, 동생이 형을 칼로 찔러 죽인 일도 있었어. 참, 로또에 당첨되어 이사를 간 사람도 있었고.” 할머니는 그렇지만 옥상에서 떨어진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주민들이 옥상에서 고추도 말리고 빨래도 널었는데 학생들이 몰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는 민원이 제기된 뒤로 폐쇄되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어떻게 그 문을 열었을까. 여기 사는 아이도 아니라는데.” 그렇게 말을 하고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코를 풀었다. 자식들이 결혼을 할 때까지 할머니는 늘 거실에서 잠을 잤다. 방 하나는 딸 둘이. 또다른 방은 아들이. 그래서 부부는 거실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소파 위에서. 할아버지는 소파 아래에서. 딸 둘이 결혼을 한 뒤에 할아버지는 그 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할머니는 계속 소파에서 잠을 잤다. 그러면서 아들이 결혼을 하기만을 기다렸다. 아들의 방을 혼자 쓰기 위해. 아들은 마흔살이 넘어서 결혼을 했고, 아들이 결혼을 하자마자 둘째 딸이 이혼을 했다며 손녀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아들의 방에서 겨우 일주일을 자보고 다시 소파에서 잠을 잤다. “그래서 불면증에 걸렸어.” 할머니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산 이 집에서 혼자 조용히 늙고 싶었다. 하지만 거실 한구석이 다시 아이의 장난감으로 채워졌고, 텔레비전 볼륨이 높아졌고, 장조림이나 소시지볶음 같은 음식을 다시 해야 했다. 그리고 새벽이면 연립 주변을 걷고 또 걸었다. 걷다 다리가 아프면 벤치에 앉아 달을 구경하고 담배를 한대씩 피웠다. “그러다가 이 할머니를 만났어. 이 할머니도 새벽이면 여길 나와 담배를 피우더라고.” 할머니가 말하자 그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던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잠을 통 못 자.” 형민은 두 할머니가 자매처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손녀가 있어 좋지 않으세요? 덜 외롭고.” 형민이 말하자 할머니 둘이 동시에 말했다. “그건 그거고.” 한 남자가 슬리퍼를 신고 벤치 쪽으로 다가오다가 형민과 할머니 둘을 보고는 다른 쪽으로 갔다. 이혼한 딸 때문에 아직도 소파에서 잠을 자야 하는 할머니가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난 저이가 중학생일 때부터 봤어. 아무데나 침을 뱉는 못된 버릇이 있지.”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형민을 바라보았다. “손녀가 예쁜 건 예쁜 거고. 잠이 안 오는 건 안 오는 거고.” 할머니는 처음에는 딸이 이혼한 게 속상해서 잠을 못 자는 줄 알았다. 세 자식 중 가장 똑 부러진 딸이었다. 키울 때 가장 손이 덜 가던 자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파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할머니는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남편이 사라졌으면…… 할머니가 원한 것은 그거였다. 할머니는 겨우 방 하나 때문에 남편이 죽길 바란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남편을 미워한 적도 없었다. 그랬는데도 새벽이면 할머니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남편의 자는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본 적도 있었다. 유독 남편만 늙지 않는 것 같았고 그게 징그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집 밖을 돌아다니는 거야. 내가 남편 목이라도 조를까봐.”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흐흐흐 하고 웃었다. “내가 미친 것 같아.” 할머니가 말했다. 형민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까지는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나도 그래. 내 마음을 몰라. 그래서 잠이 안 와.” 그러자 그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왼손을 들어 가만히 옆 할머니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토닥토닥. 할머니가 손바닥으로 친구의 무릎을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왜 불면증이 생겼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