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31회

   “엥? 그게 무슨 신선한 개소리죠?”
   은희 선배가 눈을 크게 떴다.
   “빛나씨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그러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순간 어이가 없어서 제대로 물어보지를 못했어요. 그래도 선배라고 불러야 한다는 말만 하고 넘어갔는데, 두고 봐야죠. 저 가만 안 있을 거예요.”
   “되게 소심하신 분 같던데. 수줍음 많고. 의외네요.”
   영인 선배도 호기심을 보였다.
   “저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어요. 전혀 아니에요. 제가 회사 시스템 가르쳐주면서 얘기를 좀 해봤잖아요. 포즈가 그럴 뿐이지 엄청 자의식 강한 스타일이에요.”
   “만약 계속 그러면 부장님이나 실장님한테 이야기해요. 그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잖아요. 호칭은 약속인데. 괜히 빛나씨가 감정 소모할 필요 없어요.”
   은희 선배가 덩달아 흥분하며 말했다.
   “이선욱씨 신입인 건 맞아요? 혹시 경력자 아니에요?”
   나는 빛나 선배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신입 맞아요. 완전 쌩신입이라던데? 뭐 하러 그렇게 나이 많은 남자를 뽑았나 몰라. SBI 수업을 들은 것도 아니고 대학원 다니다 그냥 이력서 한번 내본 거 아니에요?”
   “실장님께 들었는데, 선욱씨 기획서가 정말 좋았대요.”
   은희 선배가 말했다.
   “한두권이 아니라 1차분 여덟권짜리 시리즈 기획안을 냈다는데, 당장이라도 전부 출간하고 싶을 만큼 탐나는 주제들이었대요. 보통 지원자들이 제출하는 기획서는 현실성이 없잖아요. 회사 쪽에서도 그 기획으로 진짜 책을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관심사나 알아보려는 거고. 그런데 선욱씨 경우는 기획안 예상 필자들도 거의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라 정말 실현 가능성이 높나봐요. 대학원 다닐 때 젊은 연구자들이 모인 스터디 멤버였대요.”
   “그러면 뭐 해요. 태도가 저런데. 사회생활 하겠어요?”
   빛나 선배가 차갑게 내뱉었다. 하루, 그것도 반나절 만에 선배 중 한명을 완전히 적으로 만들어버렸으니 사회생활에 적합한 인물은 아니라는 게 분명했다.
   “실은 오전에 3층에서 마주쳤는데, 저한테도 지향씨라고 하더라고요.”
   “그랬어요? 하긴, 나한테 그러는데 지향씨한테는 당연히 그러겠죠.”
   빛나 선배는 다시 전의가 불타오르는지 입술에 힘을 주었다.
   “근데 전 연차도 얼마 안 되고, 나이도 어리고. 저한테 선배라고 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선배들한테는 당연히 선배라고 해야죠.”
   “그건 아니죠. 지향씨한테도 선배라고 하는 게 맞는 거예요.”
   은희 선배가 말했다.
   “지향씨는 화 안 나요?”
   갑자기 빛나 선배가 정색을 하고 내 눈을 들여다봤다.
   “가만 보면 지향씨는 화를 안 내더라. 화를 안 내는 거예요, 못 내는 거예요?”
   갑자기 화살이 방향을 돌려 나를 겨누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워서 웃기만 했다. 빛나 선배는 작정한 듯 말을 계속했다.
   “사회생활 하려면 화도 낼 줄 알아야 하는 거예요. 내가 뭐 하나 알려줄까요. 이선욱씨, 지향씨보다 연봉 더 높을걸요?”
   “그건 맞아요. 입사할 때 남자 직원 연봉이 더 높고, 또 석사 졸업했으면 더 많이 줘요.”
   영인 선배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것 보라는 듯 빛나 선배가 나를 다그쳤다.
   “그래도 화 안 나요? 지향씨는 인턴으로 들어와서 심지어 육개월이나 수습 월급 받았잖아요.”
   이선욱씨의 연봉이 나보다 높다는 건 꿈에도 몰랐던 정보였지만, 내게는 지금 이 상황이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는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대강 얼버무리는 것으로 상황을 모면했다.
   나중에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을 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화를 안 내는 것인가, 못 내는 것인가?
   둘 다 틀렸다. 왜냐하면 어느 쪽이든 화가 있다는 걸 전제하는 거니까. 일단 화가 났는데 안 내기로 선택하거나, 아니면 표현을 못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회의실에 이사님과 마주 앉았을 때를 난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삼개월간 수습 월급을 주겠다고 말했을 때 난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되는구나, 하는 느낌으로.
   돌이켜보니 나는 선배들이 화를 낸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불평’한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대표님에 대해서. 부장님, 실장님에 대해서. 저자들에 대해서. 그리고 불평하는 건 성숙한 태도가 아니라고 여기는 마음이 내 안에 있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간다는 말도 있지 않나. 싫으면 그만둬야지 불평해봤자 뭐 해? 이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어디서 온 걸까? 나는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