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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32회

이 연립에는 원래 할머니의 막내아들네가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소읍의 어느 중학교 앞에서 ‘소문난 김밥집’이라는 가게를 사십년 넘게 운영해왔는데, 형편이 좋은 두 형들과 달리 살림살이가 팍팍했던 막내아들네 때문에 무릎이 아파도 쉴 수가 없었다. 전세를 살고 있는 막내아들에게 집을 한채 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에 오줌을 누러 화장실에 가다 할머니는 가게 바닥에 버려진 나무젓가락을 밟고 미끄러졌다. 전화기가 있는 곳까지 간신히 기어갔다. 전화기를 든 할머니는 잠시 고민을 했다. 어느 아들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하고. “큰아들한테 하면 당장 가게를 그만두라고 화를 낼 것 같고, 큰며느리는 이상하게 어렵고.” 할머니가 말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할머니가 말했다. “응. 며느리는 어렵지.” 암튼, 할머니는 그래서 막내아들의 전화번호를 눌렀다가 벨이 울리기 전에 끊었다. 그리고 119로 전화를 걸었다. “막내아들이 새벽에 일을 하거든. 그 시간이면 운전을 하고 있을 것 같아서.” 할머니는 오른쪽 다리와 오른쪽 팔이 부러졌다. 깁스를 하고, 할머니는 할 수 없이 자식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그래서 오게 되었어. 여기 아들네로.” 막내아들은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그 아들이 공부를 잘해서 기숙사가 있는 과학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 방이 할머니의 방이 되었다. 손자는 주말이면 집에 왔는데 그때마다 싫은 내색 없이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잤다. “착하네요.” 형민이 이야기를 듣다 말했다. “응, 착하지. 내 손자라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착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드시라고 집에 올 때면 꼭 단팥빵을 사 오는 아이라고. 깁스를 풀던 날, 아들네와 외식을 했다. 갈비집에 가자는 걸 할머니가 횟집에 가자고 우겼다. 누워 있는 동안 어찌나 설렁탕을 많이 먹었는지 소고기는 싫다면서. 횟집에서 할머니는 비단멍게라는 걸 처음 먹어보았다. 그렇게 이름이 예쁜 음식은 처음이라 할머니는 눈물이 났다. 할머니가 우는 걸 보고 막내아들이 말했다. 이제 장사 그만두고 같이 살자고. 할머니는 팔년 전에 가족사진이라는 것을 처음 찍어보았다. 둘째 아들네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 가족사진을 가게에 딸린 방에 걸면서 할머니는 결심했다. 절대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고. 거동을 못하게 되면 죽어버리겠다고. 그랬는데 아들이 같이 살자고 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끄떡였다. 비단멍게 때문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그게 맛있어서. 너무 향긋해서. 그 맛있는 걸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자와 같이 먹어서. 너네 집도 못 사주고. 대신 내 생활비는 내마.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는 김밥집을 월 삼십오만원에 내놓았다. 상권이 죽어가는 동네여서 세달 만에 겨우 임자가 나타났다. 그중 이십오만원을 며느리에게 주었다. “잘했네. 잘했어. 그런데 그건 그거고. 잠은 왜 안 오는 건데.” 옆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갑자기 말을 빨리 하기 시작했다. 그 아들네가 둘째 형이 있는 캐나다로 가게 되었다는 것. 둘째는 캐나다에서 식당을 했는데 장사가 잘되어 분점을 내게 되었다는 것. 분점의 매니저가 돈을 몰래 빼돌리는 걸 보고 나서야 피붙이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민을 망설이는 부부에게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 가라고, 너네한테는 공부 잘하는 아들이 있지 않느냐고. 할머니는 그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했고 형민은 고개를 끄떡이며 들었다. “그래서 혼자 살게 된 지 일년이 안 되었지. 하루는 아들네가 쓰던 안방 침대에서 잠을 자고, 하루는 손자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 하루는 소파에서 잠을 자고.” 할머니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고 해서 외롭거나 쓸쓸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런 감정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네가 떠나고 난 뒤, 집안 물건들이 하나씩 고장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일러. 다음에는 세탁기. 그리고 냉장고의 소음이 심해졌다. 밤이 되면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렸고, 할머니는 뒤척이는 시간이 길어졌다. 눈만 감으면 잠을 잔다고 해서 손자들이 ‘삼초후에’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었는데. 냉장고의 모터 소리를 듣고 있으니 잊었던 기억들이 튀어나왔다. 곗돈을 가지고 도망간 여자를 찾으러 다니던 일, 둘째 아들이 딱지를 다 잃었다며 울며 집에 돌아온 일. 대학에 입학한 큰아들이 제사상에 합격증을 올려놓았던 일. 그런 기억들. 그러다 어느날 밤 불쑥 한 이름이 떠올랐다. 황정기. 할머니가 화장실에 간 틈에 돈을 훔쳐 도망간 아이. 화장실에 돌아와 보니 아이는 사라지고 테이블에는 먹다 만 김밥만 있었다. 얼른 앞치마를 찾아 주머니를 뒤져보니 돈이 없었다. 할머니가 그 아이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이름 때문이었다. 교복에 새겨진 이름. 그 이름은 할머니가 결혼 전에 선을 봤던 남자의 이름하고 똑같았다. 생긴 것도 비슷해서 할머니는 김밥을 말면서 피식 하고 웃기도 했다. 할머니는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를 했다. 그 일로 아이는 정학을 당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다가 가출을 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평소에도 술만 마시면 손찌검을 자주하던 남자라는 거였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군. 할머니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잊었다. 그런데 왜 이제서야 그 이름이 자꾸 떠오르는 것일까? 할머니는 생일날 큰아들네와 저녁을 먹다 황정기라는 아이의 소식을 물어보았다. 얼추 계산해보니 큰아들보다 한살이나 두살 어렸던 것 같았다. 큰아들이 황정기란 이름을 서너번 중얼거렸다. 아! 나보다 한 학년 후배였어. 아들이 말했다. 그 애, 죽었어. 큰아들이 말했다. 할머니는 갑자기 가슴이 벌렁거렸다. 왜? 할머니가 물었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자살했다고만 들었어. 작은 동네여서 누군가 자살했다면 그 소문을 들었을 텐데 할머니는 그런 기억이 없었다. 정말이야? 할머니가 다시 묻자 아들이 그렇다고 했다. 그 아이의 사촌형이랑 같은 반이었다고. 그 사촌형이 수업시간에 갑자기 창밖을 보고 오열을 했다고. “아들한테 그 아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났더니 어떤 기억이 하나 생각나더라고. 어느날, 새벽에 누군가 가게를 향해 돌을 던졌거든. 놀라 나가보니 창문이 깨져 있고 가게 안에 주먹만한 돌덩이가 굴러다니고 있었지. 그땐 누가 그랬는지 짐작도 못했는데 아마 그 아이 엄마가 그러지 않았을까 싶네.”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며칠 뒤, 아이 엄마가 가게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왜 경찰서에 갔냐고. 자기에게 찾아왔으면 돈을 돌려주었을 거라고. 그러면서 할머니에게 욕을 했다. 매정한 년이라고. 욕을 먹은 할머니는 가만있지 않고 아이의 엄마에게 욕을 했다. 자식이나 똑바로 키우라고. 냉장고 모터소리를 들으면서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던 일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 말이 후회되어서 잠이 안 오더라고. 그날부터였어. 밤이면 동네를 몇바퀴씩 돌아도, 그렇게 무릎이 아프도록 걸어도, 잠이 안 오더라고. 내가 신고를 안 했으면 그 아이는 죽지 않았을까 싶어서.”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오른손을 들어 친구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토닥토닥. 손바닥으로 친구의 무릎을 두드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