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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34회

   “본인은 야근할 생각이 없다고 했대요.”
   이튿날 점심시간, 실장님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은희 선배가 말했다.
   “앞으로도 쭉 안 한다고요?”
   빛나 선배가 자기 귀를 의심하는 듯 되물었다.
   “연장근무 수당이 없는 회사에서 직원에게 야근을 강요할 수 없다고 했대요.”
   “우와. 진짜 그렇게 말했대요?”
   영인 선배가 미소 지었다.
   연장근무 수당. 내겐 그 말이 한번에 귀에 꽂히지 않았다. 그만큼 익숙지 않은 용어였다.
   “야근 수당이 웬 말이에요. 지금 저자들 인세도 못 나가고 있는데.”
   은희 선배가 착잡하게 말했다. 야근 수당이라는 말을 듣자 나는 비로소 상황을 이해했다. 그런 건 공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 아닌가?
   그날도 선욱씨는 6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니터 시계가 5:59에서 6:00으로 바뀌자마자 의자 바퀴 소리가 났는데, 그걸 안다는 건 물론 나도 시계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나 말고도 더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턱을 당긴 채 짧은 인사를 남기고 문을 나서는 선욱씨의 뒷모습을 보는데, 불현듯 이상한 감각에 휩싸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그를 결박해 책상에 앉히는 일도 없었고, 그 자리에서 해고되지도 않았다. 그는 서두르는 기색 없이 유유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난 그의 등을 향해 눈살을 찌푸려야 하는지 아니면 응원의 메시지를 읊조려야 하는지 헷갈렸다.
   그날 나와 선배들 세명은 모두 야근이었다. 우리는 회의실의 커다란 테이블에 각자 가기 몫의 식사를 앞에 두고 한줄로 앉아 침묵 속에서 뜨거운 그릇을 몇바퀴나 칭칭 감고 있는 랩을 뜯었다.
   부장님과 실장님도 퇴근 전이었다. 두분 다 저녁을 시키지 않았다. 실장님은 좀더 일을 하다 7시쯤 퇴근할 생각인 것 같았다. 부장님은 저녁을 먹지 않고 9시까지 일할 때도 있어서 가늠을 하기 어려웠다.
   지금껏 편집부에서 야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실장님은 선배들 중 한명이 칼퇴라도 하는 날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타박했다.
   ─눈 밝은 애들이 어딜 가려고!
   정말로 타박하는 건 아니었고, 선배들도 웃으면서 짐짓 송구한 표정을 짓곤 했다.
   ─우리 때는 마감 있으면 침낭 가져와서 옆에 놓고 일했어. 잠깐 눈 붙이고 또 일어나서 교정지 보고. 그렇게 일해도 그때는 힘든 줄도 몰랐는데 말이야.
   저녁을 먹고 책상으로 돌아왔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속을 터놓을 수 있는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선배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 정확히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줄도 모르면서 그랬다. 이럴 때 입사 동기가 있으면 속을 터놓을 수 있을 텐데.
   ─언니, 어떻게 지내?
   망설이다 내가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하나 언니였다.
   ─우리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 좀 할까.
   ─오늘?
   ─오늘은 나 야근. 내일 어때? 아니면 주말에 볼까?
   언니는 평일이 좋다고, 다음 날 저녁을 먹자고 했다. 언니가 금촌에 놀러 왔던 토요일 이후, 퇴근 후 단지에서 두어번 저녁을 먹긴 했지만 점점 연락을 주고받는 일이 뜸해지고 있었다. 전처럼 2200번 버스에서 만날 수가 없으니 만나려면 반드시 약속을 정해야 한다는 이유도 컸다.
   다음 날, 우리는 단지 안의 만두전골집에서 만났다.
   “언니, 나는 야근이 선택의 문제라고 여겨본 적이 없었어. 생각해보면 난 뭔가를 고민하고 선택하는 일을 배워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보글보글 끓는 전골 냄비를 가운데 두고 앉아,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네가 왜 선택한 적이 없어. 파주에서 살기로 선택했잖아. 난 그때 깜짝 놀랐는데.”
   언니가 말했다.
   “나?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건 선택이라고 할 수도 없어. 그냥 그전에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거지. 그리고 나 파주로 이사 온 거 후회해, 언니.”
   왜 갑자기 그 말이 튀어나왔는지, 말하면서 깜짝 놀랐다.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던 일이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순간 목이 메어왔다.
   언니는 안쓰럽다는 듯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언니야말로 중대한 선택을 해서 여기서 일하고 있잖아.”
   그러자 언니가 물을 마시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그렇지.”
   물컵을 내려놓고 언니가 한숨을 쉬었다.
   “그 선택의 무게가 무척 무겁구나.”
   나는 무슨 말인가 하고 언니를 쳐다봤다.
   “지향아, 나 주말 아르바이트해.”
   “아르바이트?”
   “응. 합정 까페에서 토일만 일해. 벌써 한달 넘었어. 같이 살던 친구가 방송국 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거든.”
   그렇게 말하는 언니의 얼굴이 몹시 고단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