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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항쟁 28주년, 성소수자는 민주주의를 묻는다

나영정
나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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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성소수자들이 드디어 서울광장을 점유했다. 이날 퀴어문화축제 개막을 시작으로 6월 28일 다시 한번 서울광장에서 퍼레이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퀴어문화축제는 통상적인 축제의 의미를 넘어서 성소수자 대중이 자신을 드러내고, 거리를 점유하고, 시민들을 만나는 공간이다. 더구나 이 공간은 점점 더 현재 한국사회의 인권, 민주주의, 시민성을 시험하는 장이 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보수개신교회에서 성소수자들을 공격하는 활동을 더욱 강력하게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성소수자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러한 위협이 종교권력 편에 서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허가’ ‘선착순’ ‘양보’의 문제로 만들고 있는, 우리 민주주의 제도의 한계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87년 민주주의체제의 실패를 진단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한국사회의 양극화, 보수반동 집권체제의 지속,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가시화 양상을 보면서, 지금의 체제로는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 때문일 것이다.

 

성소수자들은 어떤 시민인가? 이들은 한국사회를, 그리고 세계를 구성하는 시민들이 성적으로 단일하지 않고 다양한 성격을 지닌다고 밝히면서, 시민의 성격을 재구성하려고 애써왔다. 정체성의 차원에서 성적인 차이들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이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며, 그에 따라 사회참여나 자원의 분배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성을 추한 것, 감추어야 할 것, 너무 자연스러워서 인간적이지 않은 것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남겨졌을 때 권력과 폭력의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성적인 것’은 지배세력의 도구가 될 뿐이다. 성폭력, 직장 내 성희롱, 전시강간, 성적착취를 비롯해 이성애 중심적 가치와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강제로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바꾸려는 시도 등이 그러하다.

 

성소수자 인권 공격에 사활을 건 보수개신교, 그에 굴복한 정치권

 

성소수자들은 20여년 이상 인권운동의 형식으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의 문제를 사회적인 의제로 만들어왔다. 사람들의 무지와 공포를 바꾸고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 노력했고, 최근에는 성소수자의 인권신장과 제도적 인정을 가로막으려 세력화하는 보수개신교계와 맞서고 있다. 개신교 연합체들인 한국교회연합,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등이 나서서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가로막으라고 국회와 경찰을 압박하고 있다. 이들의 존재는 2007년 차별금지법 논의과정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차별금지법이 ‘동성애허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현재까지도 제정을 저지하고 있다. 그리고 2013년 봄에는 김한길, 최원식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을 스스로 철회하게 만들었다. 또한 2014년 말에는 박원순 시장이 공약하고 시민들이 직접 만드는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과정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포함했다는 이유로 헌장 반대운동을 펼쳤고, 박시장은 결국 헌장을 폐기했다. 비슷한 시기에 성북구청장은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서 확정된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예산을 해당 구의 개신교회에서 반대한다는 이유로 불용 처리했다. 그리고 2015년 6월 현재, 이들 개신교계는 퀴어문화축제를 저지하겠다면서 서울광장, 대구 동성로 야외무대 사용과 집회신고를 방해하였다.

 

보수개신교계는 왜 성소수자 인권을 공격하는 데 사활을 거는가. 신도들은 점점 줄어들고 젊은 세대에도 도덕적 정당성을 점하지 못하며 사회적인 역할을 찾지 못한 보수개신교가 활로로 선택한 것이 성보수주의 설파다. 이러한 움직임은 세계적인 것으로서, 주로 미국에 근거지를 둔 보수개신교 세력이 제3세계에 선교와 복지 지원의 이름으로 성보수주의 프로파간다를 확산하려는 노력을 수십년동안 계속해왔다. 한국의 보수개신교는 해방 이후 미국의 보수적 교단으로부터 정신적·물적 지원을 아낌없이 받아왔던 한국 근대의 구조적인 조건에서 태동해, 그들과 지금까지 정치적 의제를 공유하며 한반도와 세계를 신정국가로 만들려는 목표를 함께 추구한다.

 

그렇다면 선거를 통해 선출된 공직자들, 특히 자신을 민주주의자라고 자처하던 정치세력들, 인권의 제도화를 추구하던 장본인들이 왜 이렇게 차별의 공모자이자 행위자가 되고 있는가. 간단히 말해서, 이들은 보수개신교계와 등을 돌리고는 집권할 수 없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또한 민주적 공공성을 확보하여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교육과 복지 제도를 종교집단에 위임하고, 국가는 그러한 종교집단에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구조가 굳어져왔다. 사학을 운영하던 종교계의 반대에 밀려 사학법 개정에 실패했던 참여정부 등 소위 민주세력과 현재 집권세력 모두 이런 한계 안에 있다. 대형교회들이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한다는 몇만명의 서명을 받아와 흔들 때 그것을 선거 때 자신이 획득할 표로 계산한다. 이런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누가 집권하더라도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갉아먹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일조할 뿐이다.

 

배제된 자들을 위한 민주주의 너머의 민주주의를 위해

 

성소수자라는 소수자집단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은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한계와 정치권력의 성격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시민과 노동자라는 말은 수사에만 그치고,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시민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으며, 노동권과 건강권 등의 기본적인 시민적 권리는 불평등의 극단에 놓여 있다. 성소수자들이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집회신고서를 제출하고자 할 때,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보수기독교계와 미리 “협의”해서 법으로 정한 신고기간인 720시간보다 훨씬 이전부터 밤낮으로 줄을 서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불허’였다. 6월 28일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는 이미 서울광장 허가를 받은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거리행진을 금지한 것이다.

 

87년 서울 도심을 가득 메웠던 넥타이부대를 떠올린다. 맨몸에 태극기를 메고 거리를 달리던 사람을 기억한다. 우리는 넥타이부대가 아니라 노동권을 실제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과 함께, 서울광장을 가득 메우고 거리를 행진할 것이다. 한손엔 ‘동성애/동성혼 아웃’ 피켓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에 맞서서 무지개 깃발을 흔들 것이다. 배제된 자들의 목소리와 몫이 광장과 거리를 통해 드러날 때 이는 기존의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모두의 문제가 된다. 87년체제의 한계 너머로 가기 위해서 올해 6월 서울광장은 또 한번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나영정 /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

2015.6.10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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