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온라인 연재

6회

그는 사회자에게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중학생이 되자 자연스럽게 진구를 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너무 어린 나이였어요. 연기를 하며 산다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르는 나이였으니 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 그는 배우 김필기가 자신과 중학교 동창인 걸 작가가 알아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지를 인터뷰한 것처럼 김필기를 인터뷰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슬리퍼의 끈이 다섯번이나 끊어진 적이 있었어요.” 그가 대본에도 없는 말을 하자 사회자가 네? 하고 되물었다. “일년에 실내화 끈이 다섯번이나 끊어지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실내화가 다섯번째 끊어졌을 때 그는 울었다. 오디션에서 떨어졌을 때도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끈이 끊어진 실내화를 보고 전 생각했어요. 어쩌면 이게 내 운명일지도 모르겠구나 하고요. 그 전까지 저는 공부에는 관심도 없던 아이였어요. 그런데 망가진 실내화를 보자 공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완전히 진구를 잊게 되었어요.” 그는 방청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어요. 아이큐는 진구를 닮지 않았나봐요.” 그는 그 말을 덧붙이면서 웃었다. 작가가 ‘좀 웃으면서 해주세요’라고 적은 종이를 펼쳐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년 동안 실내화 끈이 다섯번이나 끊어진 이야기를 듣자 사회자는 자신에게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사회자의 경우는 자전거였다. 사회자는 형민에게 자신도 일 년 동안 자전거 브레이크가 일곱번인가 여덟번 고장났던 적이 있다고 말을 했다. 사회자는 자전거로 통학을 했다. 집과 학교의 거리가 버스로 다섯 정거장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더 먼 곳에서 온 아이들로 이미 만원 버스가 되어서 문에 간신히 매달려 갔던 일이 여러번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번은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나 쌀가게 앞에 쌓인 쌀포대를 박고 간신히 멈춘 적도 있었다. “저도 그게 무슨 신호처럼 느껴졌어요. 내 인생도 이렇게 브레이크가 고장 나겠구나 하고요. 그런데 저는 박형민 씨와는 반대로 그때부터 공부하는 걸 그만두었어요.” 거기까지 말을 하고 사회자가 그를 쳐다보았다. 사회자는 이야기를 더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그래서 그후에 어떻게 됐어요?” 그가 물었다. “저에게는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는 형과 동생이 있어요. 그 사이에서 저만 모자란 아이였죠.” 사회자는 진구를 싫어했다. 착해서 싫었다. 드라마가 빨리 끝났으면. 진구가 죽었으면.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회자의 바람과 달리 동생들을 돌보지 않는 삐뚤어진 형의 캐릭터 덕분에 의젓한 진구가 더더욱 사랑을 받게 되었다. 어른들이 진구를 칭찬하면 할수록 그는 형구가 더 좋아졌다. 사회자의 기억에 의하면 형구 역을 했던 배우는 그후로도 몇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첫인상 때문인지 늘 속 썩이는 아들 역이었다. 사회자는 형구를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드라마의 어느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형구가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늘을 보던 모습이었다. 누군가에게 맞아서 입술이 찢어져 있었다. 햇살이 조명처럼 담벼락을 비추었고 눈이 부신지 형구가 얼굴을 찡그렸다. 사회자는 십대 시절 두세번 가출을 했는데, 그때마다 낯선 골목길에서 형구처럼 담벼락에 쪼그려 앉아 해바라기를 해보곤 했다. 사회자는 형구가 뒷주머니에 손을 넣고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던 모습도 좋아했다. 지긋지긋해. 운동장을 달리다 그렇게 소리친 적도 있었는데, 사회자는 그 장면을 본 뒤로 운동장에 큰대자로 누워 지긋지긋해, 하고 소리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다. 무엇이 지긋지긋한지 곰곰 생각해보면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냥 지긋지긋하다는 감정만이 자신을 사로잡았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전거 때문에 교통사고가 날 뻔한 어느 날, 사회자는 저녁밥을 먹다가 가족들에게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지긋지긋해서 못 살겠어!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죠? 엄청 맞았어요, 뭐. 그다음부터 작정하고 삐뚤어졌어요. 정학도 세번이나 당했고요.”

자전거 브레이크는 누군가 일부러 고장 낸 것이었다. 사회자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였다. 말을 더듬던 아이였는데, 말더듬이라고 몇번 놀렸던 적이 있었다. 그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면서 그에게 편지를 남겼다. 편지에는 자신이 받은 상처는 평생 치유되지 않을 거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너도 다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죽길 바란 적은 없다고. 그냥 이마나 무릎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기고 싶었다고. 그렇게 적혀 있었다. 사회자는 조금 억울했다. 반 아이들 대부분이 그 아이를 말더듬이라고 놀렸다. 자신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회자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그에게 이마를 보여주었다. “흉터가 보이나요? 그 아이의 소원대로 되었어요. 자전거로 전봇대를 박았거든요.” 꿰맬 정도의 상처도 아니었는데 쉽게 아물지 않았다. 사고가 나고 며칠 뒤 장마가 시작되었는데 비가 멈출 때까지 상처는 계속 곪아 있었다. 불미스러운 일로 공중파 방송국에서 퇴출당했을 때 사회자는 아침마다 면도를 했다. 면도를 하고, 얼굴에 로션을 바른 다음 이마에 난 흉터를 확인해보곤 했다. 거울에 비친 이마를 보면서 사회자는 쌤통이다, 하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지난날의 잘못들을 용서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사회자에게 자신의 이마를 보여주었다. “나한테도 똑같은 흉터가 있어요.” 사회자가 웃었다. 그도 웃었다. 그는 웃으면서 사회자의 가지런한 이를 보았다. 보기만 해도 기분 환해지는 이였다. 대학생 때 술만 마시면 그에게 이마 흉터를 만지게 해달라고 조르던 여자 후배가 있었다. 그가 이마를 내어주면 후배는 흉터를 만지며 웃었다. 그는 그 후배에게 총알이 스쳐 지나간 자국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이니 안심하고 나랑 사귀자. 그가 고백을 했고 후배는 싫다고 했다. 그후에도 후배는 술 취하면 그의 이마를 종종 만지곤 했다. 그는 방송만 아니라면 사회자의 흉터도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