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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6회

4주차에 각자 원하는 회사에 인턴 지원서를 제출했다. 이후로 면접이 이어졌고, 분위기도 뒤숭숭해졌다.

면접을 다녀온 하나 언니는 고민에 빠졌다.

“편집부에는 지금 자리가 없다고 마케터를 하래. 지향아, 나 어떻게 할까?”

삼개월간 마케팅 부서에 있으면서 편집도 조금씩 배워보라는 애매한 조건이었다. 그러고 나서 인턴이 끝날 무렵 다시 얘기해보자고 했다는 것이었다.

“언니, 편집자 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그렇지.”

“왜 편집부로 지원했는데 마케팅 팀에 가라는 거지. 전혀 다른 일이잖아. 자리가 없으면 부르지를 말아야 하는 거 아냐?”

“일단 인턴 시키면서 어떤 애인지 보자, 이런 생각인 것 같아. 예전 회사에서 어떤 일 했는지, 마케팅 쪽 아닌지 물어보더라고.”

언니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상황을 자신에게 낙관적인 방향으로 재조정하고 있었다.

“입장 바꿔서 내가 관리자라고 해도 지방대 출신에 경력도 없는 애한테 덜컥 일을 맡길 것 같진 않아. 내가 잘하면 편집부로 갈 수 있지 않을까? 나 시켜만 주면 진짜 열심히 할 자신 있는데.”

“삼개월 뒤에 편집부로 간다는 보장이 없잖아.”

나는 따지고 들었다. 말을 하는 순간 상대방이 그걸 모르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는 말이었다. 나는 가만히 언니를 응시했다. 언니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손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사실 출판사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꿈 같긴 해.”

언니가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바로 일 못 구하면 대구 내려가야 돼.”

언니의 말투에는 나에 대한 갑작스러운 배척과 함께 자신을 지지해주기를 바라는 호소가 담겨 있었다.

“언니는 당연히 잘하겠지. 잘할 거야.”

나는 결국 그렇게 대답했다.

스테이북스에 들어가고 얼마 뒤 하나 언니는 고향 친구와 합정역 8번 출구 쪽에 원룸을 구했다. 출구에서 빠른 걸음으로 십분가량 걸어야 했지만 지상에 있는 방이었고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까지 딸려 있었다. 보증금은 친구의 부모님이 빌려주었고, 언니가 월세를 더 많이 부담한다고 했다. 교육이 끝나던 날, 언니의 방에서 치킨에 맥주를 마셨다. 그날 우리는 둘 다 기분이 좋았다.

“만약에 말이야.”

두번째 캔을 따서 부딪친 다음, 언니가 불쑥 말을 꺼냈다.

“베스트셀러 저자가 다음 책 줄 테니까 자기랑 모텔 가자고 하면 어떡할래?”

“그게 뭔 소리야.”

“어떻게 할 거 같애, 응?”

언니가 싱글싱글 웃으며 질문을 되풀이했다.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둘이 모텔 가서 한잔 더 하자. 다음 작품 무조건 너 준다, 이러면? 오년 만의 신작이고 나왔다 하면 최소 십만부는 그냥 팔릴 책이면?”

“언니는 어쩔 건데?”

언니가 싱글거리고 있어서인지 나도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그러니까. 어떡할까. 너무 고민돼.”

하나 언니는 두 무릎을 세워 끌어안으면서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언니 진짜 웃긴다.”

나는 그런 언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깔깔 웃었다.

“무슨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 누가 언니한테 그런대?”

그러자 언니는 갑자기 정색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어린 여자들한테 성희롱이 얼마나 심한데. 심지어 우리는 인턴이잖아.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너도 항상 조심해.”

그때만 해도 언니의 말이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아홉시쯤 언니의 룸메이트도 돌아와 함께 맥주를 마셨다. 언니의 친구는 까만 단발머리에 써클렌즈를 꼈고 몹시 활기찬 성격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막내 작가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연예인 E와 가수 P가 사귀는데, 둘이 대마초 하고 섹스하는 걸 그렇게 즐긴다더라는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술에 취한 내가 화들짝 놀라서 정말이냐고 묻자 하나 언니는 “우리 지향이 이런 얘기 좋아하는구나” 하고 놀려댔다.

 

*

 

모니터 시계가 11:59에서 12:00로 바뀌자 사무실 여기저기서 의자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선배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의 원형 테이블로 모였다. 편집부원들 모두─부장님과 실장님, 선배들 전부─가 외근으로 누가 빠진 날을 제외하고는 함께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의자가 부족해 가장 가까이 있는 책상에서 의자 두개를 끌어와야 했다.

“지향씨, 보고서는 잘 돼가?”

실장님이 나를 건너다보며 유쾌하게 물었다.

“주말 동안 시작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돼요.”

나는 우는소리를 했다.

“저 어떡하죠, 실장님?”

엄살을 섞긴 했지만 막막한 건 사실이었다. 보고서란 수습기간을 마친 신입사원이 대표님에게 올리는 글이었다. 이사님은 그것이 푸른서재의 오랜 전통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라고 하면 딱딱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런 건 아니고 ‘대표님 전 상서’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나중에 부장님에게 따로 들은 바로는 삼개월간 편집자로 일한 감상을 정리하면 된다고 했다. 왜 푸른서재에 지원했는지, 삼개월 동안 어떤 책 작업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편집자가 되고 싶은지 등을 에이포 서너장 분량으로 꾸밈없이 쓰면 된다고 했는데, 막상 쓰려고 앉으니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샘플이 없는 탓이 컸다. 참고할 글이 없으니 어떤 톤으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얼마만큼 내 느낌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할지 깜깜했다. 원고 검토서나 단행본 기획안처럼 입사한 뒤로 어떤 문서를 작성할 때면 언제나 선배들이 작성한 샘플부터 숙지했는데, 이것만은 샘플이 없었다. 게다가 마케팅 부서 선배가 말하길, 이번부터─당황스럽게도 바로 나부터─는 보고서를 회사 블로그에 올릴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그거 언제까지예요?”

현미 선배가 내게 물었다.

“이번 주까지요.”

“토요일에는 집 보러 다닌다고 시간도 없었을 것 아니야.”

부장님이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으며 말했다.

“지향씨, 집 보러 다녔어요?”

현미 선배가 반색했다. 그녀는 입사 이년 차로, 파주 교하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네, 선배. 토요일 낮에 와서 둘러봤어요.”

어디까지 말을 해도 좋은지 몰라 일단 짧게 줄였다. 그러자 부장님이 먼저 말을 꺼냈는데, 내게는 조금 뜻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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