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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7회

중학생인 형민이 오디션에서 수십번 떨어지는 동안 어머니의 가게는 점점 장사가 잘되었다. 분식집을 차렸을 때만 해도 인근에는 여고 하나밖에 없었는데 운이 좋게도 바로 옆에 중학교가 신설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신혼 시절에 남편에게 음식 타박을 받았다. 신혼 초에 이렇게 맛없는 된장찌개는 처음이라는 말을 듣고 울기도 했다. 남편은 매콤하게 볶은 제육볶음을 좋아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세를 살던 집의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그 요리를 배웠다. 주인집 여자는 고향집을 가출해서 공사현장의 함바집에서 처음으로 일을 했고, 그때 어깨너머로 배운 음식 솜씨로 식당을 차려 큰돈을 벌었다. 형민의 아버지는 아내가 해준 제육볶음을 먹을 때마다 열여섯살에 처음으로 취직을 한 새시공장의 식당 이모가 생각난다고 했다. 아, 그 이모가 끓여주던 배춧국 먹고 싶다. 제육볶음을 먹을 때마다 그렇게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이 해준 음식을 먹으면서 다른 사람의 음식 이야기를 하는 남편이 꼴 보기 싫었다. 그래서 점점 음식에 공을 들이지 않게 되었다. 그랬는데 어쩌다보니 먹는장사를 하게 되었다며 아들에게 종종 신세 한탄을 하곤 했다. 손님이 늘고 돈 걱정을 덜 하게 되었는데도 그의 어머니는 짜증이 늘었다. 방이 지저분한 것만 보아도, 개수대에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어도, 혼을 냈다. 그 시절 그는 어머니에게 속 좁은 놈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그는 어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방이 더러우면 지저분한 놈이라고 혼을 내야 하는 게 아닌가. 옷을 더럽혀도, 성적이 떨어져도, 밥을 남겨도, 어머니는 그에게 속 좁은 놈이라며 화를 냈다. 아내와 연애를 할 적에 그는 술에 취해 그때의 상처를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사춘기 시절에 그런 말을 들었던 아이치고는 잘 자란 편이라며 아내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속도 넓어 보이고. 아내가 말했다. 하지만 몇년 후 아내도 그에게 그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으이고. 이 속 좁은 놈아. 어머니가 속 좁은 놈이라고 구박을 할 때마다 그는 이런 짐작을 해보았다. 아마도 사고로 죽은 아버지가 생각나서 그러는 것이라고. 내가 아버지와 닮아서 그런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했다. 그는 몇장 남지 않은 아버지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어디가 닮았는지를 찾아보았다. 하나도 안 닮은 것 같은데 눈 코 입 하나씩 뜯어보면 또 전부 닮은 것도 같았다.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는 날이면 어머니는 허공에 대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도 밥은 먹으러 온 거죠? 그의 어머니는 제삿날이면 음복주를 마신 다음 그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어머니가 해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아버지는 속 좁은 놈이 아니라 융통성이 없는 놈이었다. 그 시절, 그가 즐겨 본 드라마에는 어머니와 비슷한 여자들이 많이 나왔다. 일찍 과부가 된 여자들. 그 여자들은 대부분 부지런했고, 소리를 잘 질렀고, 죽은 남편과 닮은 자식을 다른 자식들보다 더 구박했다.

“제가 사춘기를 무난히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드라마 보는 걸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는 사회자에게 말했다. 진구를 잊고 오디션도 포기한 후, 그는 드라마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형구네 고물상>을 찍었던 기억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는 드라마를 보면서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기억을 마음대로 각색했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민들레 홀씨 날리듯>이란 드라마가 있었어요. 혹시 기억나세요?” 사회자는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땐 수험생이어서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남자친구가 검사가 되어 부잣집 딸과 결혼하고, 가난한 고시생 뒷바라지를 하던 여자는 미혼모가 되어 갖은 고생을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는 그 드라마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갈 아이가 불쌍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친구들과 놀다가도 드라마를 볼 시간이 되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친구들에게는 드라마를 봐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진구가 민지에게 호빵을 먹여주던 장면이 있었어요. 진구는 호빵의 겉만 먹고 민지에게 팥이 들어간 부분을 먹여주던 거요. 그런데 그 드라마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어요.” 여주인공은 퇴근길에 호빵을 하나씩 사서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아들이 호빵을 다 먹은 다음에야 종이에 붙어 있는 호빵 부스러기를 긁어 먹었다. 그 장면을 보고 난 며칠 후, 그는 민지 앞에서 호빵을 반으로 가르던 순간을 떠올렸다. 호호 불어서 호빵이야. 그런 대사도 생각났다. 그런데 그 말이 민지가 한 말인지, 어느 CF에서 한 말인지, 아이였을 때 그가 어머니에게 한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사회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때 민지가 이렇게 말했어요. 오빠, 호호 불어서 이름이 호빵이야? 호빵을 먹을 때면 민지의 대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 대사가 생각난 다음, 그는 호빵을 먹을 때면 늘 반으로 가른 다음 팥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걸 한참 바라본 다음에 먹곤 했다. <민들레 홀씨 날리듯>이라는 드라마를 보는 동안 그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라는 드라마 대사를 자주 중얼거렸다. 그건 주인공 여자의 어머니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남편과 같이 ‘중앙철물점’을 운영하던 여자였는데 손님들에게 그런 말을 자주 했다. 손님들이 깎아달라고 하면 꼭 그렇게 말했다. 이거 팔아서 남는 게 없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러다 딸이 아이를 낳겠다고 하자 그 말을 딸에게 하기 시작했다. 얘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는 지금도 그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딸의 장례식이 끝난 뒤 가게 바닥에 홀로 앉아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었다. 그래, 안 되는 거였어. 울음을 간신히 참는 목소리가 마치 노래하는 것처럼 들렸다. 주인공 여자가 죽고 난 뒤 그는 며칠 동안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 국어책에 실린 소설만 읽어도 눈물이 나려 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나봐요. 그래서 진구가 그렇게 슬프게 울었나봐요.” 사회자가 말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잘 우는 아이였다. 드라마 캐스팅이 결정된 뒤 드라마 작가는 아역들을 불러 밥을 사주었다. 그때 작가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형민이는 잘 우니? 그래서 그는 말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처음으로 걷는 상상을 하면 이상하게 눈물이 나온다고. 그랬더니 작가가 말했다. 진구도 그런 아이란다. 하지만 진구는 울지 않는단다. 슬픈 게 무엇인지 알아도 울지는 않는 아이란다. 그 말을 들은 후 형민은 드라마 촬영장에 도착해서 진구로 변신을 할 때면 꼭 그 말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