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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7회

“앞으로는 적금도 들고 돈 아껴야지. 토요일도 파주까지 택시를 타고 오고 말이야.”

다들 무슨 소리인가 하고 부장님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부장님이 집 보러 같이 다녀주셨어요.”

그렇게 말하자 선배들은 놀란 표정이었다.

“어머, 부장님. 진짜 자상하세요.”

현미 선배가 두 손을 맞잡고 말했다. 선배의 두 눈이 반달 모양이 되었다. 그녀는 부장님이 자기 이상형이라고 말하곤 했다. 부장님처럼 다정하고 가정적인 남자를 만나는 게 꿈이라면서. 그녀가 그런 말을 하면 분위기가 조금 껄끄러워질 때도 있었지만 아부처럼 들리진 않았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인 듯했다.

“둘이서 방을 보러 다녔다고?”

실장님이 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사모님이 같이 나오셨어요.”

“그렇지?”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는 듯 실장님의 얼굴에 온화함이 돌아왔다.

“그래야지. 그림이 너무 이상하잖아.”

멈칫했다. 그림이 이상하다니, 무슨 뜻일까. 나는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고 당황한 채로 웃음 짓고 있는 사이 선배들 중 한명이 주말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해서 화제는 그쪽으로 옮겨갔다.

점심을 먹은 뒤 2층 출입문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계단을 내려갔다. 싸늘한 건물 내부와 달리 바깥은 햇살이 넘쳐흐르는, 일년에 며칠 되지 않는 눈부신 가을날이었다.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낮은 건물들의 윤곽선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유독 선명해서 가만히 보고 있자니 눈이 시릴 정도였다.

“오늘 날씨 정말 좋네요.”

“그러게요. 김밥 싸서 소풍 가고 싶다.”

선배들은 그런 말을 하며 걸었다. 다산교를 건너 편의점에 들렀다가 멀리 한바퀴 돌아 뒤쪽 길로 들어오는 것이 점심 산책 코스였다.

“오늘이 개천절이었어야 했는데.”

은희 선배가 투덜거렸다.

“아, 맞아. 어제가 개천절이었죠.”

선배들이 맞장구를 쳤다. 존재감 없이 여느 일요일로 흘러가버린 개천절에 대해 한마디씩 깊은 유감을 표했다. 그때 앞서 걷던 현미 선배가 문득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려 염려 섞인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지향씨, 보고서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 받으시는 거 아니에요?”

현미 선배가 물어봐주어 반가웠다. 실은 선배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던 참이었다.

“네, 저 사실 시작도 못했어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선배들을 쳐다봤다.

“선배들, 보고서 정말 어떻게 쓰는 거예요? 저 감을 못 잡겠어요.”

선배들은 동정을 드러냈지만, 난감해하는 기색이었다. 잠시 기다렸지만 누구도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아니, 수습 끝날 때 내는 보고서를 쓰라고 시키면서, 왜 월급은 또 수습 월급을 줘요?”

은희 선배가 말했다. 선배는 입사 오년 차로,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다. 정확히 말하면 팀장급 이상 ‘윗분들’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고 그것들을 연결해서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러게. 그거 항의해야 되는 거 아닌가.”

빛나 선배가 재킷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걸으며 심상한 투로 말했다. 빛나 선배는 현미 선배와 입사 동기였다.

“지향씨가 어떻게 항의를 해요. 그런 건 부장님 실장님 선에서 막아줘야죠.”

은희 선배의 말이었다.

“두분이 아실까요?”

현미 선배가 조심스레 물었다.

“당연히 알죠, 팀장급 회의를 따로 하는데. 다 알면서 아무 말 안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입맛이 쓰긴 했다. 그렇다고 기분이 상한 건 아니었다. 부장님과 실장님이 알고 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그들이 나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인턴은 말 그대로 인턴일 뿐이니까. 이제야 정식 직원이 된 게 사실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치면 보고서를 쓰라는 지시가 말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보고서, 내겐 보고서가 문제였다. 그걸 쓰는 데는 불만이 없었다. 어차피 언제고 써야 할 글이었다. 내가 애타게 원하는 건 보고서─보고서든 대표님 전 상서든 간에─작성 요령이었지만, 선배들은 그 점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부장님이 지향씨 진짜 예뻐하시는 거 같아요. 토요일에 집 보러도 같이 다녀주시고. 완전 챙겨주시는데요?”

현미 선배가 내게 기운을 북돋아주려는 듯 밝은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나와 한살 차이인데,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존대를 하곤 했다. 내게만 그러는 게 아니라 그녀의 언어사용 습관이었다.

“그거 다 지향씨가 일 잘하고 열심히 하니까 부려먹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은희 선배가 말했다. 선배는 울적한 표정으로 한 손을 들어 내 어깨를 짚었다.

“조심해요, 지향씨. 싹이 보여요. 일 너무 많이 하지 마요.”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화장실에서 이를 닦았다. 한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켜고 목을 한껏 뒤로 젖혀 좌우로 꺾었다. 한창 목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 누가 내 옆에 와서 섰다. 현미 선배였다. 상쾌한 향수 냄새가 코끝에 와닿았다.

“지향씨, 힘드시죠. 제가 썼던 보고서 보내드릴까요?”

선배가 몸을 낮추고 작게 말했다.

“선배, 정말요? 너무 감사해요.”

“지금 바로 메일로 보낼게요. 참고해서 쓰세요.”

현미 선배가 행운을 빈다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자리를 떴다.

조금 전까지 마음 한구석에 드리워져 있던 그늘이 싹 걷힌 기분이었다. 선배가 나를 좋게 보고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파주로 이사하면 현미 선배와 친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주말 오전에 한적한 식당에서 만나 깔깔 웃으며 브런치를 먹는 장면을 상상했다. 밥을 먹은 뒤에는 까페에 가서 각자 책을 꺼내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파주에 살기로 결정한 데는 일년째 교하에서 살고 있는 현미 선배의 추천도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방에 일부러 텔레비전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퇴근한 뒤 저녁시간에는 바깥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조용한 방에서 스탠드를 켜놓고 혼자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전 정말 만족해요. 조용한 생활을 좋아하시면 지향씨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

그렇게 말하던 현미 선배의 환한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메일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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