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핵추진잠수함, 전략 없는 전략무기
문장렬
오랫동안 갖고 싶어하던 물건을 가지게 된다면 무조건 좋을까. 지난 10월 29일 경주 APEC을 계기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보유를 승인(approve)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처음 들었던 생각들 중 하나다. 대략 30년 된 한국군의 ‘숙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승인’이라는 말이 풍기는 ‘비자주성’의 냄새는 한국의 군대와 정부의 후각에 감지조차 되지 않는다. 핵추진 엔진의 연료인 우라늄은 (고농축이든 저농축이든) 핵연료 공급·통제 구조에서 대미의존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재명 대통령은 12월 3일 기자회견에서 한미정상회담 결과 중 “핵추진잠수함을 확보하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자평했다.
핵추진잠수함은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열)를 추진력으로 변환하는 엔진을 사용한다. 핵탄두를 장착한 공격무기(탄도 및 순항 미사일)로 무장하지 않으면 ‘핵무기(전력)’로 간주하지 않는다. 영어 약자로 핵추진잠수함을 SSN, 그중 핵무장을 한 잠수함을 SSBN으로 표기한다. SSBN이 운반하는 핵무기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라 칭한다.
왜 핵추진잠수함인가?
잠수함은 군사작전에서 여러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수중에서 기동하므로 적에게 탐지되지 않은 채 은밀하고 기습적인 공격이 용이하다. 단점은 수중에서 전파를 사용한 통신이 거의 불가능하고 기동속도가 느려 일단 적에게 발각되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재래식잠수함은 주로 디젤엔진을 사용하기 때문에 공기의 흡입과 배출을 위해 자주 수면으로 올라와야 하고 충전하는 배터리의 수명도 길어야 2주 정도다. 이런 단점을 극복한 것이 핵추진잠수함이다.
핵엔진은 공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핵반응로(원자로)를 사용하므로 수개월 이상의 잠항이 가능하며 따라서 작전 반경도 수천 킬로미터에 달한다. 보통 ‘전략무기’라 함은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적국의 군사 및 민간 핵심자산(인구·산업)을 무력화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말한다. 주로 핵무기와 그 운반수단을 의미한다. SSBN은 명백히 전략무기이지만 재래식 무장을 한 SSN은 확실히 분류하기 어렵다. 다만 작전반경이 크고 SSBN과 함께 운용하기 때문에 전략무기로 간주될 수 있다.
한국은 핵추진잠수함을 보유하기까지 많은 법적 기술적 ‘장애물’을 헤쳐나가야 한다. 국제 비확산체제라는 큰 배경 안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소위 한미 ‘123협정’을 개정하고 미국의 핵물질 통제에 관한 법과 제도에 있어 한국에 대한 적용을 완화해야 한다. 핵엔진을 독자적으로 설계하는 일도 아직 개념적 단계에 있고 시험과 검증을 거쳐 가동에 성공할지 미지수다. 하나같이 많은 돈과 시간을 요하는 사안이고 다수 전문가들의 예상에 따르면 모든 것이 잘될 경우라 하더라도 향후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야 실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근본적인 ‘전략’에 있다. 과연 한국의 군사전략상 잠수함의 원해작전이 필요한가. 저 수천 킬로미터 밖 바다에 어떤 ‘위협’과 전쟁위험성이 존재하는가. 전쟁억제가 잠수함의 원해작전으로 가능하며 효과적인가. 북한이 ‘핵공격잠수함’을 개발한다고 우리도 따라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핵무장에 대해서는 북한을 따라 하지 않겠다는 공언만 반복하는 비일관성은 무엇인가.
순수하게 군사적 측면에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이 ‘존재의미’를 가지려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 잠수함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연안작전을 위해서는 능력이 향상된 재래식 잠수함으로 충분하고 신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탐지체계와 무인잠수정(수중 드론)을 활용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아마 한국의 핵추진잠수함은 미국의 핵잠수함들과의 연합작전에 참여하여 한반도에서 오끼나와-대만-필리핀-말라카해협을 연결하는 ‘제1도련선’ 방어에 투입될 공산이 크다. SSN은 SSBN의 방어 역할을 하는 전단을 구성할 수 있고 결국 미국의 핵작전과 핵전쟁에 동원된다는 의미다. 이는 202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재래식-핵통합(CNI)’의 해양 버전이다. 이러한 그림은 상상이 아니라 상식에 가깝다.
안보딜레마가 심화될 위험성
군사와 국방보다 상위개념인 안보 차원에서도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러가지 딜레마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군비경쟁이라는 ‘안보딜레마’를 초래한다. 중국은 잠수함 전력을 확대하고 북한은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일본도 결국 핵잠수함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연안과 동아시아 해역에서 핵잠수함 밀도가 증가한다. 결국 안보를 증진하기 위한 조치가 안보를 저해하게 된다.
동맹과 관련한 딜레마도 심화된다. 강대국과 (상대적) 약소국 사이의 비대칭 동맹에서는 기본적으로 ‘안보-자율성 교환’이 불가피하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기 때문에 한국의 안보정책은 자율성을 제한받게 된다. 핵추진잠수함은 개발과 건조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운용에서도 미국에 대한 의존을 불식하기 어렵다. 자주국방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의존국방’이 무기체계 수준까지 강화된다. 또 한가지 파생적 동맹딜레마는 ‘방기-연루’ 문제다. 약소국은 강대국에게 방기당하지 않으려고 원치 않는 분쟁에 연루된다는 것이다. 흔히 거론되는 대만 관련 미중 간의 군사갈등에 연루될 가능성이 물속에서 더 커질 것이다.
국방비 관련한 딜레마도 생길 수 있다. 국방비에 너무 많은 돈을 쓰면 국가경제가 타격을 받아 결국 국방비 지출 여력과 국방능력 자체가 저하된다는 딜레마다. 아마 핵추진잠수함에 수십조원이 지출되어도 그로 인해 한국경제가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돈을 더 합리적으로 사용할 곳은 수없이 많고 군사적으로도 미래전쟁에 대비한 연구개발 투자는 중대하고 시급한 현실이다. 그 막대한 ‘기회비용’의 손실이 가시화하여 책임 소재를 논할 때쯤이면 이 ‘전략 없는 전략무기’의 도입을 결정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문장렬 / 전 국방대 교수
2025.12.9.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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