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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역사쿠데타가 아니라 신종 쿠데타 국면이다

 

 

설마설마하던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폭탄이 떨어졌다. 교육부가 지난 1012일 중고교 역사교과서를 20173월부터 국정화하겠다는 안을 행정예고하고, 113일 이를 확정고시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본격적인 추진단계로 접어들었다. 불통과 독선으로 점철된 박근혜정부의 행태를 보면 올 것이 온 것이다. 그렇더라도 엄청난 여론의 반발과 온갖 국정현안이 좌초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정부·여당이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정부가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만만치 않은 반발을 초래하리라는 점은 사전에 예상된 일이다. 그렇다면 단기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국정화를 밀어붙이겠다고 판단했다고 보아야 한다. 친일의 합리화와 유신의 정당화 등이 이에 대한 유력한 설명으로 제시되곤 한다. 역사쿠데타라는 비판도 여기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권력정치에 누구보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현 정부가 단지 자신들에게 유리한 역사적 해석을 교과서에 담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을까. 만약 정권교체가 되면 ‘1년짜리’로 끝나리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의문은 더 커진다.

언제나 이들에게 진짜 문제는 역사가 아니라 정치다. 국민여론과 전문가 견해, 행정절차를 무시하고, 나아가 투명성을 보장하겠다는 자신들의 약속까지 뒤집은 국정화 추진과정을 보면 ‘역사쿠데타’라는 규정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에 한정되지 않는, 민주화의 성과를 아예 무화시키려는 ‘정변’의 일환이라면 우리의 경각심은 더 높아져야 한다. 국정화 국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뚜렷한 역사관이 없으면 통일이 되기도 어렵고 통일이 되더라도 결국 사상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일갈했다. 통일을 위한 사상적 준비와 비정상적인 혼의 정상화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인가? 이런 식의 논리가 정치적으로 어디로 귀결될지는 10월유신 등을 경험한 우리에게 너무도 명확하다. 김무성 대표 등 국정화에 적극 앞장서고 있는 인사들이 현행 검정 역사교과서를 모두 ‘반()대한민국 사관’에 의해 씌어졌다는 사실을 국정화의 이유로, ‘국론분열 방지와 국민통합’을 국정화의 최종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데에서 이들의 진정한 의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대한민국과 반대한민국이라는 대립구도로 우리 사회를 구분하고 유신시대의 ‘국민총화’를 복원하자는 것이다. 이로써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민주-반민주’ 혹은 ‘진보-보수(혹은 수구)’ 같은 대결구도를 대체하는 데 성공하면 이를 통해 비판세력을 반국가적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정치적 생존권까지 박탈할 수 있게 된다.

19876월항쟁 이후 만들어진 민주적 질서에 대한 불편함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지지세력이 오랫동안 공유해온 것이다. 이를 변형시키려는 시도도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이미 민주적 질서의 정면 부정이며 당시에도 총칼 없는 쿠데타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흔히 이것은 이명박정부가 한 일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그 수혜자로서 저들을 ‘엄호’해주는 정도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박근혜정부의 출범 이후에 삼권분립 무시, 국정원의 정치개입 등의 사태가 반복된 것을 보면 대통령의 본심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다. 이제 국정화 추진의 전제가 되고 있는 발상들이 한국사회 전반을 관통하게 된다면, 그 과정은 스멀스멀 진행되는 일종의 저강도 쿠데타(creeping coup détat), 곧 민주적 체제의 점진적 폐기로 완성될 것이다. 이는 신종 쿠데타 국면으로, 6월항쟁의 승리를 경험한 국민을 속이고 달래고 을러대면서 수구세력의 영구집권체제를 복원하려는 21세기 한국의 맞춤형 변종 쿠데타라 할 수 있다. 과거처럼 군인이 총칼을 앞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단번에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겠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그 과정이 진행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신종 쿠데타 국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중고등학생, 교수, 교사 등이 앞장서 국정화 반대를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여론이 국정화에 매우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사태는 박근혜정부로서 다소 예상 밖의 일일 것이다. 시민사회는 국정화 문제를 당장 정치화하기보다는 상식과 원칙에 관련된 문제로 만들고 민주적 체제와의 부조화를 부각시키면서 국정화에 비판적인 여론을 확산해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적 역랑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사태의 핵심이 신종 쿠데타라는 날카로운 인식이 시민사회에서조차 아직 뚜렷하지 않으며, 특히 야당들의 지지도가 정체되거나 하락해 있는 상황은 박근혜정부가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사태를 자신의 의도대로 진전시킬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정부·여당이 선거로 궁지에서 벗어나 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한 사례는 이미 여러차례 있다. 벌써 박근혜 대통령이 앞장서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아야 한다”며 사실상의 총선심판론을 들고 나왔다.

야당들, 특히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러한 추세를 되돌리려면 단순히 국정화 비판으로 여당의 약점을 부각시켜 반사이익을 노리는 대신 신종 쿠데타 국면에 걸맞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 이후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이고 야당이 결과적으로 쿠데타 국면의 진전을 방조했다는 비판도 면하기 어렵다. 아니, 야당의 총선패배라는 방조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무리한 쿠데타의 요긴한 도우미가 되기 쉽다.

물론 내년 총선 결과를 미리 비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야권이 지리멸렬하고 갈팡질팡하는 상태가 이어지면 총선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변화시키려면 야당의 승리가 특정 정파의 기득권 강화가 아니라 국민의 승리가 되는 비전을 제시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최근 몇년간 야당의 주요 지도자들은 기득권 내려놓기를 강조했으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최근 야당이 주요 선거에서 연속해서 패배한 이유이고 서로 열심히 다투는 인사들도 모두 큰 틀에서는 무기력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당연히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기득권을 어떻게 내려놓을지를 둘러싼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지도자의 책무이며, 현재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지도자와 세력이 남에게 떠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결단하여 가장 많이 내려놓는 행동을 보여줄 때 국민이 감동하고 신종 쿠데타 국면을 역전시키는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국민들은 이를 간절히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다. 이제 모두가 자세를 가다듬고 21세기 한국의 새로운 국면에 부합하는 새로운 범국민운동을 준비할 때이다.

 

이번호 특집은 ‘한국의 문학, 이제 어디로’라는 주제로, 올여름부터 문단을 넘어 사회적 관심이 되었던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을 정리하고 한국문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대화와 글로 꾸렸다. 자신과 문학에 대한 성찰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별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는 본지의 일관된 관심사와 직결된 작업이다. 그간 제기된 주요 쟁점에 대해 이제는 차분하고 깊이있게 논의해야만 그 열기가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한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대화에서는 본지 편집위원 강경석의 사회로 김경연 김남일 소영현 윤지관이 참여해 표절과 문학권력 논쟁 과정에서 제기된 쟁점들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 활발하게 거론된 논점들 이면에 작용하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들을 드러내주고, 이후의 발전적 논의를 위한 실마리들을 제시한다. 염종선은 내부인의 시각에서 창비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을 차분히 점검한다. 표절과 문학권력 논쟁 과정에서 창비의 분명한 잘못과 오해·오도된 사실관계를 상세히 구분해서 설명함으로써 이번 사태의 실제와 쟁점, 관련 논의들의 성격과 허실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기초자료를 제공한다.

백지연은 신경숙 소설에 대한 과거 비평들을 문학사적 담론과 작품논의를 통해 재검토함으로써 그간 창비 문학에 제기된 물음들에 비평적으로 답한다. 1990년대 창비 비평담론의 변화를 리얼리즘의 쇄신이라는 흐름 속에서 해석하는 한편 이를 학술적으로 체계화하지 못한 한계를 짚는다. 백낙청은 이번 사태를 직접 거론하는 대신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의 시각에서 리얼리즘의 역할, 문학과 정치 문제 등을 점검한다. 일체의 형이상학적 개념을 넘어서는 문학과 예술의 거처를 밝히기 위해 ‘도’와 그 힘으로서의 ‘덕’ 그리고 연관된 ‘율’의 문제를 최근 한국문학의 문제작들과 연관지어 논함으로써 ‘한국문학이 나아갈 길’의 모색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문학초점에서는 문학평론가 최원식과 대화를 진행했다. 이 계절에 주목할 만한 시·소설 신간을 중심으로 나누는 세 좌담자의 문학 이야기가 흥미롭고 유익하다. 1년간 이 지면을 알차게 꾸려주신 정홍수·신용목 두분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작가조명에서는 최근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를 발간한 백무산 시인을 조명한다. 중견시인 정우영과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시인의 육성이 마냥 뜨겁게 들린다.

염무웅의 문학평론은 우리 문학사의 한 시기를 풍미한 임화가 일제시대부터 카프의 과도한 정치주의와 문학적 순수주의라는 양 극단을 극복하며 민족문학 이념을 형성해간 과정을, 그리고 그 모색이 남북분단과 전쟁이라는 현실적 조건에서 좌절되는 안타까운 과정을 깊이있게 추적한다.

창작란에서는 전성태의 장편연재가 작가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중단되어 독자들께 사과의 말씀 드린다. 다행히도 성석제 은희경 최진영 등 저마다 다른 색깔을 지닌 우리 시대 대표적인 이야기꾼들의 단편소설이 그 자리를 채우며 이번호 창작란을 빛낸다. 김정환 박형준 등 열한분 시인의 신작을 담은 시란도 여느 때와 같이 다채롭게 구성되었다.

‘논단과 현장’도 다양하게 꾸려졌다. 유창복과 임경수의 글은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여러 지자체가 추진하고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조명한다. 각각 서울과 전북 완주의 사례로 그동안의 성과와 문제점을 검토하면서, 이 사업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어떤 시사점을 던져주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의 외교정책 전문가 존 페퍼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화성을 탐사하고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찾으려는 노력이 실은 식민주의의 변종에 지나지 않음을 신랄하게 꼬집으면서, 지구를 보전하기 위해 전통적인 지성의 극복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흥미로운 논지를 전개한다. 미국에서 활약하는 칠레 출신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흥미롭게 읽어냄으로써 변혁운동의 희망을 다잡는다. 과거 ‘왼쪽 나라’의 근엄하고 무거운 언어와 태도가 과오였다면, 현재는 이 명작동화의 카니발적 에너지와 선동성이 더 소중해졌음을 역설한다. 제5회 사회인문학평론상 수상작인 정현의 「세월호 이후 정치적인 것의 ‘세속화’」는 세월호 사태 이후 죽음을 대하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매개로 근대적 정치공동체 몰락의 징후를 파헤치고, 이런 사태를 초래한 ‘동물적 속물성’을 중단시킬 새로운 이념적 방향감각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사회인문학평론상은 더 많은 젊은 논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의 계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

본지에서 감초의 역할을 하는 촌평, 문화평, 교육시평 역시 짧은 분량이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아울러 제17회 백석문학상이 발표되었다. 수상작은 백무산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이다. 치열한 현실변혁 의지와 내면 탐구를 함께하는 작가의 시적 도정에 이 상이 작은 응원이 되기를 바란다.

어느덧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해를 바꾸면서 더 심각해질 조짐이다. 그 어느때보다 지난 시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하겠다. 마침 새해에 본지는 창간 50주년을 맞이한다. 독자 여러분께 혁신된 구성과 자세로 다가갈 것임을 약속드린다. 

李南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