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K

편혜영 장편소설 『재와 빨강』

 

 

복도훈 卜道勳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포스트모던 문명의 불만, 괴물들의 이상한 가역반응」 「축생, 시체, 자동인형」 「연대의 환상, 적대의 현실」 등이 있음. nomadman@hanmail.net

 

 

결국 모든 일은 한마리 “쥐 때문”에 일어났던 것이라 해도 좋을까. 자격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다만 “쥐를 잘 잡는”다는(28면) 이유로 주인공 ‘그’가 C국으로 파견근무를 가기로 결정된 것도, 동료들의 질시 때문에 C국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도리어 간절해진 것도. 모국에서 약품개발원이던 그는 트렁크로 쥐를 잡은 적이 있었고, C국으로의 파견근무 역시 그 사건으로 인해 결정되었던 것이다. C국에 도착하는 비행기 안에서 불쾌한 검진을 받은 것도, 임시숙소에서 몰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온 세상”(19면)에 진배없는 트렁크를 잃어버린 것도, 대기발령상태에서 아내를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로 몰려 쓰레기더미로 뛰어내리게 된 것도. “열심히 노력해서 수고하는 것”(15면)으로 부풀었던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는 보기좋게 무너진다. 그가 쓰레기를 뒤지며 사는 쥐와 다를 바 없는 부랑자 처지가 된 것도, 부랑자에서 쥐를 잡는 임시방역직원이 된 것도. 그리하여 마침내 이방(異邦)에 숨어살게 된 것도.

편혜영(片惠英)이 선보이는 첫 장편 『재와 빨강』(창비 2010)의 줄거리다. 『재와 빨강』은 얼핏 보면 그간 작가가 단편에서 보여줬던 인물과 주제, 구성 등이 길게 연장된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추리소설, 묵시록, 괴담 등을 활용하는 장르적 시도, 일상에 잠재하는 모더니티의 만성적 폭력에 대한 여러 각도의 숙고, 한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운명으로 전락해가는 인물에 대한 탐구 등은 장편소설의 구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씨앗들로 이미 편혜영의 여러 단편에서 움트고 있던 것들이다. 그런데 단편을 쓰던 작가가 장편형식에 부합하는 소설을 처음 쓸 때, 초점은 세계보다는 세계를 등지고 서 있는 주인공에게 맞춰진다. 『재와 빨강』도 다양한 인물의 교차나 복잡다단한 세계의 지층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주인공의 내적·외적 변화에 서사가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며, 세계는 오로지 그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양상을 띤다. 그 세계는 주인공에게 늘 예측불가능하며 위협적이다. 어둠속에서 눈만 반짝이는 쥐처럼, 세계는 끝없이 쫓기고 도망가는 주인공을 도처에서 응시한다.

그럼 주인공 ‘그’가 파견근무를 나가게 된 C국은 어떤 곳인가. 그곳은 공항 검역원, 아파트 관리인, 경찰, 재해관리본부 직원, 공중위생위 등 똑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세계다. 또 그곳은 지진, 연기, 냄새, 감기,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 실체와 소문으로 둘러싸인 세계이며, 부패된 사물의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살충제, 쥐약, 쓰레기더미로 가득 찬 세계다. 이러한 세계에서 C국으로의 파견이라는 호명에 부응하려는 주인공은 그 부름에 필사적으로 응답하려고 한다. 그 과정은 비극적이기보다는 희극적으로 전개된다. “우리의 운명이 전혀 무의미한 그 어떤 것에서 기인될 수 있다는 생각은 사람을 맥 빠지게 한다. 하지만 이 뜻밖의 무의미함의 폭로는 동시에 희극의 원천이기도 하다.” 밀란 쿤데라는 카프카에 관한 에쎄이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쥐를 잘 잡았기 때문에 주인공을 C국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는 본국 지부장의 말은 다소간 우스꽝스럽고 부조리하게 들린다. 그러나 독자들은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지부장의 말이 뜻하지 않은 아이러니로 실현되는 과정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모국에서 쥐를 잘 잡았기 때문에 파견 근무자로 임명받았듯이, 그는 C국에서 결국 쥐를 잡는 임시 방역원이 되기 때문이다.

C국의 언어체계인 ‘사역수동’에 대한 언급은 이 책에서 핵심적이다. “강제로 못마땅한 일에 연루되었다는 의미가 내포”(34면)된 문장형태인 사역수동형은 주체가 불가해한 타자의 요구에 응답하면서도 여전히 그것에 갸우뚱해하는 발화형태라 할 수 있다. 사역수동의 세계에서 타자의 정체는 알 수 없으며, 주체는 타자의 부름에 제대로 반응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기에 주체는 타자의 요구에 부응하려고 필사적이 된다. C국의 유일한 연락책인 ‘몰’이 그런 타자에 가깝다. 몰은 단 한번 연락될 뿐이고, 몰을 만나기 위한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처음에 몰은 고유명사였다가 곧 C국의 흔한 이름처럼 일반명사로 변하며, 나중에는 그 누구도 지칭하지 않는 비인칭이 된다〔몰은 몰(沒)이다!〕. 누구도 아니면서 모두의 이름인 몰. 주인공은 틈만 나면 몰에게 연락하려 하고, 또 그를 만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몰을 만나기 위해 작성하는 면담신청서는 다른 서류들과 함께 끝없이 쌓아올려질 뿐, 상급자인 몰에게 결코 전달되지 않는다. 나중에는 몰조차 담당부서에서 방출된 것으로 확인된다(이쯤이면 어떤 독자들은 작가가 아마도 염두에 두었을 카프카와 그의 주인공 K를 연상할지 모른다). 소설의 대미에서 몰이 주인공의 명함에 찍힌 이름이 될 때, 아이러니는 최고조에 이른다.

『재와 빨강』에는 두개의 이야기가 맞물린다. 한편에는 몰락을 향해가는 주인공의 인생유전이 빠르게 진행되며, 다른 한편에는 죽은 아내와 관련된 추억의 서사가 완만하게 흐른다. 이 둘은 긴장을 유지하면서 병렬된다. 그런데 전자가 그동안의 편혜영 소설에서 다소 익숙하게 본 것이라면, 후자는 새로이 도드라지는 면이 아닐까 싶다. 바로 “사소하고도 사소한 일로 채워진 현실의 시간” 또는 “사소하고도 미세한 생활의 결”(168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면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하는 사건의 다발에서 비켜서서 플롯과 무관하게 떠도는 에피쏘드들. 가령 죽은 아내와의 소소한 추억을 떠올리는 아름다운 문장들 중 다음을 읽어보자. “그 일들로부터 수년이 흐른 지금, 그는 덥고도 더웠지만 계속해서 아내를 안고 싶게 한 파란 날개 선풍기 때문에 울 것 같았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음이 떨려 좋은 줄도 모르고 들은 쏘나타 때문에, 지붕에 던져올린, 새가 물어갔는지 쥐가 물어갔는지 알 수 없는 부러진 앞니 때문에, 빨간색 매니큐어가 발라진 발톱 때문에 울 것만 같았다.”(168면) 이 시적인 순간이야말로 이번 작품에 와서 만나게 된 새로움이 아닐까. 전염병이 창궐하는 비상사태 속에서 고독하게 쫓기는 주인공에게 한모금의 생수 같은 이 대목은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인 유령의 세계에서 현실과 접촉하려는 주인공의 목마름이 얼마나 간절한지 절감하게 한다. 그러나 그는 이내 무(無)의 사막으로 휩쓸리고 만다. 쥐를 잡으러 간 집에서 처음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주고받은 여자를 살해함으로써 망각의 무저갱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과거와 연결된 아내와의 추억이라는 마지막 실타래는 완전히 끊어지고 만다. “닿을 수 없는 먼 과거”(236면)를 등지고,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방대”한 현재 속에서 “아직 오지 않은 시간”(167면)인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남자가 이제 이국의 공중전화부스 안에 있다. 『재와 빨강』의 마지막 부분이다. 수신자 없는 공중전화를 붙들고 오래 서 있는 한 남자의 초상. 이 작품을 통해 지금 한국소설은 카프카의 K만큼이나 고독한 주인공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