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한계론’ 어디까지 사실인가

장덕진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번 4․11 총선에서 SNS(social network service, 사회관계망서비스)의 영향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 2년간 트위터와 선거의 관계를 분석해온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평가에는 사실인 것과 사실이 아닌 것이 섞여 있고 객관적 분석과 의도적 찬물 끼얹기도 함께 있는 것 같다. 몇가지 쟁점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자.

 

첫째로, 투표율이 54.3%밖에 안됐기 때문에 효과가 미미하다는 주장이다. 투표율 54.3%는 결코 낮지 않다. SNS를 매개로 한 이른바 ‘소셜 선거’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6․2 지방선거부터다. 87년체제의 등장 이후 한국의 투표율은 지속적이고 가속적으로 낮아져왔고, 총선의 경우 2008년 46.1%로 바닥을 찍었다. 그러던 것이 소셜 선거의 등장 이후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고, 하락 추세를 25년 만에 뒤집었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더구나 이런 추세는 6․2 지방선거, 4․27 재보선, 10․26 재보선에 이어 이번 총선까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소셜 선거’ 등장과 함께 높아져온 투표율

 

그뿐만 아니다. OECD 국가들 중에서 한국의 투표율은 가장 낮은데, 이들 국가의 평균 투표율이 70%이다. 46.1%로 꼴찌였던 한국의 투표율이 트위터 덕분에 단번에 23.9%나 올라서 OECD 평균이 되리라는 기대 자체가 무리한 것 아니었을까? 54.3%도 지난 총선에 비해 한꺼번에 8.2%나 상승한 것이다. 증거는 또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수도권 20대의 투표율은 무려 64%였다고 한다. 트위터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살고, 평균 연령은 27.9세이다. 과연 이 둘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을까?

 

둘째로, 트위터 이용자들의 ‘선별적 자기강화’ 주장이다. 트위터에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 팔로우(follow, 어떤 사용자의 글을 구독하기)하고 비슷한 정보만 주고받다보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어서 큰그림을 놓쳤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소위 ‘막말 파문’의 당사자였던 김용민씨와 그가 출연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사례가 증거처럼 붙어다닌다. 이것은 미디어로서의 트위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우선 트위터에서 비슷한 성향 팔로우는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어서 최근에는 6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성향이 같거나 혹은 다르거나로 구분할 때 무작위로 팔로우해도 50%는 같은 성향이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유유상종’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종이신문 시장에서 같은 신문을 보는 사람들끼리 성향의 유사성이 얼마나 높을지를 생각해보면 60% 조금 넘는 정도를 가지고 유유상종이라는 것은 침소봉대다. 또한 트위터 이용자와 비이용자의 매체소비를 분석해보면 트위터 이용자가 모든 매체를 더 많이 보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당연히 보수매체도 포함된다. 정보량이 부족한 것은 트위터 이용자가 아니라 일부 종이신문 열독자들이다. 트위터의 한계를 말하기 위해 팟캐스트를 들이대는 것도 적절치 않다. 트위터는 이용자들이 수평적으로 네트워킹 되는 ‘소셜’ 미디어이지만, 팟캐스트는 ‘소셜’하지 않다. 이용자들 간의 네트워킹이 없기 때문이다. 둘 다 뉴미디어인 것은 맞지만, 트위터는 소셜 미디어고 팟캐스트는 소셜하지 않은 미디어다.

 

SNS에 흐르는 정치적 에너지를 모아내려면

 

셋째로, 오프라인 영향력 한계론이다. 트위터 이용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영향력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영향력이 없었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4․27 재보선 때 강원도에서 최문순 지사가 25%의 사전 지지율 열세를 뒤집고 당선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트위터에 쌓여 있는 정치적 에너지가 정치현실이 되려면 오프라인의 정치세력이 이에 부응해야 한다. 민주당의 개혁공천 실패 이후 트위터에는 이제 민주당을 버린다는 트윗이 넘쳐났고, 총선 승리를 향한 열정은 싸늘하게 식었다. 민간인 사찰파문으로 정권과 여당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결과는 더 나빴을 가능성이 높다.

 

4․27 재보선 때는 제1야당 대표가 한나라당의 아성인 ‘천당 아래 분당’에 뛰어든다는 대의가 있었고, 트위터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최문순 의원이 강원도지사에 출마함으로써 트위터의 열기를 오프라인이 받아안았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이것에 실패했다. 트위터로 인한 효과를 원한다면 정당이 그에 상응하는 일을 했어야 하는데, 할 일은 하지 않고 트위터가 무조건 마법을 부려주기를 바라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지역구에서는 효과가 있었고, 일부 지역구에서는 효과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트위터 이용자의 많고 적음보다도 트위터 공간의 정치적 열망에 부응한 후보와 그렇지 않은 후보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끝으로, 다가오는 대선과 관련한 전망이다. 두명의 후보와 몇개의 의제로 압축되는 대선은 총선에 비해 트위터가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훨씬 좋은 조건이다. 그러나 그 효과가 얼마나 될 것인지는 온라인의 트위터에 물을 일이 아니라 오프라인의 정당에 물어야 한다. 특히 민주통합당에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집권 가능성이 있는 정당 중에서 새누리당은 트위터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방지하는 데 총력을 쏟을 뿐,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열쇠는 민주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트위터의 열기를 받아안을 수 있는 후보와 정책, 그리고 당 차원의 SNS 전략이 결과를 좌우할 것이다.

 

2012.4.2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