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전략국가 지위론’은 어디를 향하는가

이정철

이정철                          

북한이 ‘전략국가 지위’라는 개념을 다시 내세우기 시작했다. ‘전략국가’는 2017년 12월 21일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 개막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처음 언급한 뒤, “미국에 실제적인 핵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전략국가로 급부상한 우리 공화국의 실체를 이 세상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됐다”와 같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사용해왔다. ‘핵보유국가’라는 직접적 언급을 피하고 포괄적인 단어를 선택한 것이 특징이다. 이후 한동안 뜸했었으나 올해 들어 조선신보가 “시대는 달라지고 조선의 국제적 지위도 달라졌다. 그리고 로동당은 전략국가의 지위와 국력에 상응한 사업계획을 세우고 그 목표를 완강하게 점령해나가고 있다”(2022.2.2.)고 발표하는가 하면 “강대한 자위적 핵 억제력을 가진 전략국가의 지위에 올라서고 세계정치구도를 전면적으로 변화시켰다”(2022.2.23.)며 전략국가를 업적으로 내세우기도 하는 등 다시 사용 빈도가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당 규약에서 우리국가제일주의정치가 선군정치를 대체한 이유도 전략국가 지위로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었다는 해석도 등장했다. “우리 국가의 전략적 지위에 상응하게 자주적 대를 확고히 견지하면서 대외관계를 전면적으로 확대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우리 국가제일주의시대는 공화국의 존엄과 위상이 최상의 경지에 올라선 위대한 새시대이다.”(로동신문 2021.5.15.)

 

그럼에도 이같은 용례를 곱씹어보면 북한이 2019년 연말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이래 자신의 공세를 예고하기 위해 남북관계에서는 ‘고도의 격동태세’, 대외관계에서는 ‘전략국가 지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자가 2020년 6월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 등과 같은 조치로 이어졌다면 후자는 올해 1월 20일 정치국회의에서 모라토리엄 해제 검토 발언에 이은 1월 30일 IRBM(중거리 탄도미사일) 즉 화성 12호 발사로 나타났다.

 

정찰위성이라는 공세

 

지난 2월 27일 탄도미사일 고각 발사 시험을 단행한 다음날,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정찰위성에 장착할 촬영기로 지상특정지역에 대한 수직 및 경사촬영을 진행”했다며 “정찰위성 개발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시험”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탄도탄 발사가 정찰위성 시험이라면 다음 단계는 실제 정찰위성을 탑재한 로켓 발사가 될 터인바, 사실상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를 예고한 셈이다. 전략국가 지위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인공위성 시소게임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반면 유엔은 이번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할 여력이 없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긴장을 거듭하고 있는 만큼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규탄과 추가 제재를 위한 공세를 펴기에 유엔의 상황은 너무 복잡하다. 조선신보가 공언하듯이 “신냉전 구도가 심화”되고 “조선과 중국, 로씨야 사이의 공동전선이 더욱 다져지는 형세”(2022.2.2.)하에서 유엔 추가 제재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북한으로서는 전략국가 지위를 한층 더 견고히 다질 기회를 확보한 셈이다.

 

대미 주적론의 폐기?

 

사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11일 국방발전전람회에서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닙니다”라는 특이한 연설을 했다. 불과 열달 전 8차 당대회에서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한다며 70년간 유지해온 ‘주적=미국’ 개념을 재확인했던 것으로부터 매우 큰 변화였다. 당시는 김여정 부부장이 ‘종전선언이 흥미롭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이후였다.

 

그러나 올해 1월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에 미국이 제재로 대응하자 김정은은 1월 20일 정치국회의를 통해 모라토리엄 폐기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강경책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다. 조선신보가 “조선의 전진을 저애하는 기본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2022.1.22.)시킨다는 해설로 주적론을 다시 끄집어냈고, 곧이어 북한 당국은 IRBM 발사로 실력 행사에 나섰다. 며칠 뒤 북한 당국은 “조선의 주권행사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조선반도의 긴장이 유발되는 일은 없는 것”이라며 추가 제재가 없다면 긴장 조성 행위를 접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관망 자세로 물러섰다. “조선은 특정한 그 어느 국가, 세력이 아닌 전쟁 그 자체를 주적으로 삼고”(조선신보 2022.2.2.) 있다며 주적론 폐기를 다시 명시한 것은 물론이다.

 

북한의 알쏭달쏭한 셈법

 

그로부터 25일 뒤 북한은 느닷없이 정찰위성 공세를 시작했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새로운 셈법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가장 가능성 있는 해석은 신냉전 국면에서 북한이 자신의 전략국가 지위를 최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눈치를 볼 것 없이 로켓 발사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군사기술적 수요를 마음껏 테스트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기 때문이다.

 

또다른 해석은 지난해부터 종전선언을 둘러싸고 남·북·미가 협상을 진행했으나 결국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면서 북한이 일종의 보복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주장이다. 동아일보는 “남북 고위급 당국자가 최근 수차례 연락 채널을 가동해 남북 협상 재개를 위한 깊이 있는 대화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2022.1.22.)고 공개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7개 통신사 합동 서면인터뷰(2022.2.10.)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도 만나지 못하는 동안에도 필요한 소통을 해왔다”며 화상 정상회담 건을 거론하며 남북 간 비공개 접촉이 지속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상황에 따라 물밑 대화의 결과가 조만간 공개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4년 전 봄날’ 운운은 또다른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겠다.

 

정말 북한은 미국을 향한 벼랑 끝 외교인 ‘제압에 의한 굴복’ 전략에 돌입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국가제일주의시대의 ‘궤도가 다른 대외정책’ 즉 협상이 아닌 ‘무소의 뿔’ 전략을 따르고 있을 따름인가? 우리로서는 무슨 차이가 있는지 구분하기도 어려운 전략들이지만, 신호(signal)와 비용 간 셈법이 합리적이길 바라는 마음만은 간절하다.

 

 

이정철 /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2.3.2.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