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시창(時昌). 평양고보 재학 중 일본군 배속장교 배척운동을 벌여 퇴학당했고, 일본 토오쿄오(東京)제국대학 독문과를 졸업했다. 1936년 일본어로 쓴 「토성랑」을 『제방』에 발표한 뒤,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의 체념과 이에 굽히지 않는 민족의식을 보여준 「빛 속으로」를 1939년 『분게이슈토(文藝首都)』에 발표해 아쿠타가와상(芥川賞) 후보에 올랐다. 학도병 위문단원으로 파견되던 중 탈출해 조선의용군에 가담한 후로는 우리말로 작품을 썼다. 해방 뒤 북한 문화계에서 주도적 인물로 활동했다. 1950년 종군작가로 참여했다가 심장병이 발작해 낙오된 뒤로 행적을 알 수 없다. 「지기미」 「천마」 등의 작품과 수기 『노마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