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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박정요

1956년 전남 해남 출생. 198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당선. 장편소설 『어른도 길을 잃는다』가 있음.

 

 

 

사루비아 사루비아

 

 

1

 

쉬지 않고 물총새가 운다. 바다에서는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하늘에서는 바람이 오고 가지만 문수는 그 사이에서 찌이쯧거리는 물총새 소리를 생생하게 찾아내곤 한다. 염전 건너편 간척지의 농수로가 온통 갈대밭인 것이다. 짝짓기철이면 물총새는 갈대밭 사이로 부산하게 돌아다니며 더욱 찢어지게 울어대곤 했다.

사람들은 코발트색 물총새를 파랑새라고 불렀다. 어릴 적엔 늘 파랑새를 잡으러 다녔다. 소녀 때문이다. 소녀한테는 고추잠자리건 각시붕어건 예쁜 건 무엇이나 잡아주고 싶었다. 연희야!

문수는 속으로 발음하며 가래질을 멈추고 천천히 허리를 편다. 그 이름만 부르면 알코올이 그러는 것처럼 가슴 복판에서 훈훈한 것이 싸하고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약물이나 알코올처럼 중독되어 더이상 의미조차 잃어버린 이름이었는데 이곳 산천으로 돌아오자 약발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하늘이 맑다. 열광하듯 쏟아지는 햇빛으로 아주 먼곳까지 천지는 투명해 보인다. 새삼스레 사방을 휘둘러보던 문수는 문득 몸을 떨며 전율한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이다. 그동안 개발이니 뭐니 하며 세상이 온통 바뀌었지만 이곳만은 그 바람이 비켜간 모양이다.

정말로 모든 것이 그대로다. 푸른 곡식이 넘실거리는 낮은 구릉들이 끝간데없이 펼쳐지고, 여름 곡식을 심으려고 갈아엎은 맨땅도 발가벗은 알몸처럼 드문드문 섞여 있다. 둔덕 하나를 다 벗겨놓은 것 같은 황토밭은 비 그친 날 저녁답의 노을처럼 현란한 홍조를 띤다. 물기가 덜 빠진 비탈밭 아래쪽은 그야말로 새빨간 선홍색인데, 등성이 쪽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옅어지는 파스텔조의 분홍을 띤다.

그림 같은 집을 짓는다더니, 먼 산그늘에 묻힌 빨갛고 파란 농가 지붕들도 아이들 그림처럼 예쁘다.

태양빛에 열광하며 끝없이 반짝이는 바다 역시 옛 모습 그대로다. 때론 너무나 신비하고 때론 너무나 애잔해서 가슴 시린 저 바다가 보고 싶어 미칠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소를 묶어놓기 좋은 조그만 동산 아래의 조용한 마을이었다. 감나뭇집 담을 돌아 고샅을 내려가면 아이들이 세수도 하고 빨래도 하는 맑은 시내가 나오고, 시냇물을 따라가면 버드나무숲이 나오고, 숲을 지나 언덕을 내려가면 들판이 펼쳐졌다.

하지만 간척지 너머 담수호 너머, 먼 신방들은 가물가물한 아지랑이뿐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언덕 뒤 버드나무숲에 숨은 마을은 더욱 보일 리 만무하다. 그러나 문수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환히 보이는 것들을 멍청히 바라본다.

“김씨!”

철로로 일륜차를 밀고 가던 이씨가 갑자기 삿대질하듯 번쩍 팔을 쳐든다. 문수는 감전된 사람처럼 이유없이 부르르 진저리를 치며 쳐다본다. 꼬막살처럼 뻘겋게 충혈된 이씨의 눈이 먼데서도 구저분해 보인다.

“그건 당기면 당그래 밀면 밀래, 멋대로지만 지팡이는 아니란 말여!”

문수가 가래를 지팡이처럼 짚고 서 있다고 하는 소리인가보다. 일은 않고 먼산바라기나 한다고 나무라는 것이다. 이씨는 알코올중독자로 술의 볼모가 되어 염전에 붙잡혀 있는 자다. 고참티를 내고 싶어서 마주칠 때마다 시비조다. 문수는 슬그머니 가래 밀어내는 시늉을 한다.

“젊은 사람이 밤낮 먼산이나 쳐다보고, 쯧. 들 건너 삼거리에 뒤꽁무니 쫓아온 여자라도 맡겨뒀는가?”

“예. 나 아님 죽는다고 해서 데려다놨습니다.”

문수는 되는 대로 대답한다. 그러나 진담으로 알아들었는지 이씨가 어깨를 움츠리며 눈을 빛낸다.

“그럼 아예 일루 데려와서 밥짓고 빨래해달라지 하필이믄 그 먼데다 두나. 빤히 바라보여서 그렇지 꼬불꼬불 논둑길이 근 삼십린데.”

맨발인 이씨는 종아리가 부지깽이처럼 가늘어서 밤낮 끌고 다니는 조그만 일륜차도 부담스러워 보인다. 그래도 강단 하나는 알아줄 만하다. 문수가 이곳에 온 지 오늘로 사흘째, 이씨는 밥은 한끼도 먹지 않고 막소주만 사발로 따라 마시면서 저 중노동을 하고 있다.

“김씨는 그래 어쩌다 이런 데까지 팔려왔소? 얼마에 왔는데?”

이씨가 아예 리어카 손잡이를 내려놓고 철로에 쪼그려 앉으며 묻는다. 문수는 남의 일처럼 말한다.

“백오십만원이랍디다.”

물 잡아놓은 소금밭엔 하늘이 다 들어와 있고, 거꾸로 빠진 이씨가 그 하늘을 이고 있다.

“백오십만원짜리라. 어디서 굴러먹었길래 정육값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여자가 따라왔다니 대단하구먼. 굼벵이도 뒹구는 재주가 있더라고 대단해.”

여자가 따라오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지 이씨는 노골적으로 감탄한다. 되는 대로 대답한 게 정말 여자를 데리고 온 것처럼 되어버린 문수는 그러나 머리가 핑 도는 바람에 할말을 잃는다. 어디를 가도 이씨 같은 종류의 인간은 하나쯤 꼭 끼여 있기 마련이다. 되는 대로 지껄이며 사람을 건드려서 곧 근본을 들춰내는 것이다. 상종을 않는 것만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면서 문수는 얼굴을 떨어뜨려버린다. 그러나 문수는 발밑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금방 외면해버린다. 파랑새를 잡으러 다니던 소년은 간데없고 말라비틀어진 중년 사내가 엉거주춤 구부정하게 서 있는 것이다. 퀭한 얼굴에 시커먼 숯검댕이 눈썹을 달고 늙은 노새처럼.

“비오실 때 득달같이 달려가믄 될 텐데 그걸 못 참고 쯧, 말하는 거 보이 정신은 멀쩡한 사람인데.”

이씨가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리어카를 굴려가자 문수는 헛, 하며 다시 하늘을 쳐다본다. 그러니까 이씨는 밤낮 먼산바라기나 하는 문수를 어딘가 좀 모자란 사람으로 본 모양이다. 하긴 이씨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금 따는 밭이나 다름없던 염전은 세월을 따라 사양산업이 된 지 오래다. 요즘엔 소금도 중국 어느 광산에서 캔 것을 수입해다가 제조해서 먹는다는 것이다. 재래식으로 채염하는 천일염은 우선 인건비 때문에 경쟁력이 없었다. 그래서 염전 주인들은 먹고 재워주기만 하면 무임금도 마다하지 않는 알코올중독자나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을 도시의 직업소개소에서 사다가 쓴단다.

이씨의 말대로 당기면 당그래 밀면 밀래, 하면서 바닥에 가라앉은 소금덩이를 열심히 긁어대던 문수는 얼마 못 가 다시 허리를 펴고 만다. 도대체 손에 익지 않은 일이라서 허리가 금방 비틀려버린다. 손바닥엔 벌써 물집이 잡히고 발바닥도 벌겋게 벗겨져버렸다. 사방팔방 천지가 환히 열린 소금밭에 선 채로 문수는 또 보이지 않는 곳을 바라본다. 이씨의 말대로 비오는 날 한번 건너가보리라 생각을 굳힌다.

옛날에도 장마철이면 염전의 염부들이 삼거리 차붓집으로 몰려와 진을 치곤 했다. 차붓집이 술집으로 바뀌고 꽃처럼 예쁜 각시들이 젓가락 장단을 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때만 해도 염전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었다.

신방들 한가운데를 가르는 삼거리는 원래 물방앗간터였다. 그러다 전쟁 이후에 발전기로 벼를 찧는 정미소가 들어서게 되었다. 신방들의 벼가 전부 삼거리 정미소로 모여들자 차표를 파는 가겟집이 생겨나고 기름집이 생겨나고 이발소가 생겨났다. 세월을 따라 기름집이 슈퍼로 변하고 차붓집은 술집으로 바뀌었다. 풍으로 고개를 흔들던 ‘흔들이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놈팽이 아들이 점포를 술청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눈깔사탕과 센베이과자와 차표를 팔면서 어린아이들과 먼곳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없는 선망을 심던 차붓집은 그래서 모두에게 원망을 심는 술집으로 바뀌고 말았다. 세상천지에 농사일밖에 모르던 건실한 남자들이 술집여자한테 반해서 아내를 때리고 급한 김에 풋나락을 베어 외상빚을 갚는 등 패가망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장마철이 돌아오자 멀리 염전의 염부들까지 꾀어들게 되었다. 인근 마을의 젊은이들과 염부들의 패싸움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대학 3학년을 다니다 군대에 갔던 문수도 첫 휴가 때 군화발로 술상을 차며 객기를 부렸었다. 어떤 것도 용납되고 온세상이 자기 편인 것 같은 두려움 모르는 영혼일 때였다. 그때만 해도 문수는 금방 손에 잡힐 것 같은 푸른 꿈으로 늘 기운생동했다.

그리고 이십년 세월이 흘렀다. 그래도 그때의 염부들과 패가망신한 남자들과 술을 따르던 여자들이 아직도 세월의 저편에 서 있는 것만 같다. 문수는 선 채로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물총새 소리를 다시 찾아보려는 것이다. 물총새 소리는 꿈속처럼 먼데서 희미하게 들려온다.

 

 

2

 

미루나무만큼이나 큰 붓으로 칠한 것처럼 노을이 크고 붉다. 저렇게 노을이 붉으면 들판은 더욱 납작하게 가라앉는다. 동현은 사실 들일을 마친 이런 시간이 정말 좋다. 더구나 연희와 함께 저 큰 노을을 등에 지고 돌아올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이렇게 한 생을 함께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모든 것이 괜찮게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이십여년 전 어느날의 생생한 장면이 눈앞으로 확확 지나가는 바람에 그야말로 심란한 하루였다. 동현은 그때 손을 뒤로 묶인 채 트럭에 실려가고 있었다. 자신들을 향해 총을 쏜 적들이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정렬해 있는 게 보였다. 동현은 그곳에서 벼락치듯 어떤 눈길과 부딪치게 되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눈길이었다. 그때의 충격은 너무 세게 때린 못처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박혀버렸다.

그날에 대한 기억은 그날의 충격을 그대로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동현은 마중 나온 연희의 트럭 짐칸에 이앙기를 싣고 조수석으로 오르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수세미가 되어 있다.

동현은 자리에 오르자마자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는다. 동현은 요즘 눈붙이는 서너 시간말고는 온종일을 신방들에서 지고 샌다. 노인들밖에 없는 마을에서 사십대 젊음에다 트렉터며 콤바인, 이앙기 등 대형 농기계를 가지고 있는 죄 때문이다. 노인들이 와서 통사정을 하면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 온 마을의 모내기를 도맡게 된 것이다.

털털거리며 한참이나 농로를 달리던 차가 포장로로 올라 속도를 내는가 싶다가 한켠으로 사정없이 기운다. 삼거리 커브길이다. 유리창에 머리를 마구 찧어가며 졸던 동현이 번쩍 눈을 뜬다.

 “멈춰! 아 멈춰!”

엉겁결에 브레이크를 밟은 연희가 덜퍽 핸들 위로 엎어진다. 갑작스런 외침에 너무 놀란 모양이다. 길 가는 새끼오리를 부침개처럼 납작하게 깔아버린 이후 생긴 과민증이다.

“나 좀 내려달라고.”

동현이 멋쩍게 설명하고 나서야 연희는 고개를 들고 사태를 파악한다.

“그래서 내가 뭐래디. 일을 하더라도 욕심부리지 말고 자기 힘 알아서 적당히 하라고 그랬지? 근데 뭐 잠도 모자라는 사람이 술까지 마시겠다고? 자기가 무슨 슈퍼맨이야? 슈퍼맨이냐구!”

동현의 과로는 그대로 연희의 과로가 된다. 동현은 기계 앞세우고 들판으로 나가버리면 그뿐 나머지 온갖 일을 연희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삼거리에서 내린다고 무조건 차붓집 술 생각으로 오해하는 연희한테 동현도 질세라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 글쎄 멈춰!”

차붓집 여자한테 물어볼 말이 있어서 그런다고 조금은 자상하게 말해도 좋으련만 동현은 지금 그럴 여유가 없다. 제 생각에만 급급한 나머지 차문을 열자마자 도망치듯 뛰어내린다.

정미소와 논 하나를 사이에 둔 차붓집은 함석지붕의 처마를 길게 빼서 새시를 단 뒤로는 안이 깊어진 만큼 더 어두워 보인다. 농번기인데도 사람들이 서넛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다. 아랫마을 신남리 사람들이다. 조용할 때 다시 들를까 하다가 동현은 주인여자를 잠깐 불러내기로 한다.

“잠깐만, 나 좀 봅시다.”

말하는 시늉만 하며 손을 까닥거리는데 눈치없는 여자가 그만 반색하며 호들갑을 떤다.

“어머나 신방들에서 젤 바쁜 사람 오셨네.”

어제와 똑같은 소리다. 종일 비가 내린 어제도 동현은 들판에서 모내기를 했고, 다른 논으로 지나가는 길에 담배를 사러 들렀었다. 그런데 여자를 불러내려 한 것 자체가 잘못인 것 같다. 눈사람처럼 뚱뚱한 여자가 탁자 사이를 빠져나오려 하자 걸상이 넘어지고 재떨이와 휴지가 떨어져내리며 소란스럽다. 그 사이 술청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잔부터 내밀며 손을 까분다.

“어이, 동현이 잘 왔네. 이리 와 술 한잔 받게.”

신남리 장씨다. 동현이 바쁘다는 시늉으로 손을 내젓자 장씨가 아예 술잔을 놓고 쫓아온다. 그러나 다행히 먼저 다가온 여자가 두툼한 몸뚱이로 가로막아 선다. 동현도 다짜고짜 여자를 싸안듯 술청에 등을 돌리고 선다.

“어제 그 사람, 추리닝 차림에 모자 쓰고 술 먹던 사람. 여기 사람 아니던디, 어디 산답디여?”

“누구 말예요? 눈썹이 이렇게 짙은 그 사람이요?”

여자가 손가락으로 자기 눈썹을 힘껏 밀어 보이며 되묻는다. 행여 누가 뺏어먹을까봐 그러는 것처럼 잔뜩 웅크리고 앉아 술을 마시던 그의 얼굴을 동현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동현은 어떤 얼굴을 눈앞에 떠올리며 예,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뻔하잖아요. 염전 아니믄 낯선 사람이 어디서 오겠어요.”

“자기 입으로 염전에서 왔다고 그럽디까?”

“비오는 날이 공일이라고 하는 거 보니까 염부겠지요. 그런데 왜요?”

“첨 본 사람이라 그냥 궁금해서라.”

동현은 제가 생각해도 싱겁게 돌아서려다 여자를 불러낸 값은 해야겠어서 담배나 한갑 주시오, 한다. 아랫마을 사람들이 잔을 흔들며 부르는데도 동현은 문밖을 가리켜 보이며 바삐 담뱃값을 치른다. 연희 때문이다. 그러나 지키고 서 있던 장씨가 막무가내로 손목을 잡아끈다.

“어이, 그러지 말고 한잔 받으란 말이여. 자네한테 사정할 일이 있어서 이러는 것인께.”

“뭔 일인디요?”

“혹시 트럭 몰고 읍내 나갈 일 있음 우리 경운기 대가리 좀 싣고 가자고. 어디가 고장인지 써비스쎈터에 가봐얄 모냥이여.”

“저는 읍내 못 가는디라. 면허증을 파출소에 맡겨놔서.”

나이를 더 먹은 사람들한테는 거절을 하더라도 서운하지 않게 기술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동현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하루종일 눈에 밟혀 정신을 산란케 하던 그가 역시 숯검댕이 눈썹의 문수라는 것이다. 문수가 염전의 염부가 되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면허증을 왜 파출소에 맡겨?”

“그거 들고 다니다 잃어불믄 어쩌겄소. 아예 맡겨놔야제.”

“예끼 이 사람, 음주운전 하다가 뺏겼구만.”

동현은 겨우 장씨의 손에서 놓여난다. 그러나 가게를 나와서 보니 트럭이 없다. 연희가 혼자 가버린 것이다. 정말 술을 먹는 걸로 오해한 모양이다. 아니면 무턱대고 소리부터 질러댄 동현한테 화가 난 건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 그냥!”

동현은 물장화에서 부걱 소리가 나도록 발을 구른다. 그러나 그뿐이다. 두 사람은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인연이야 자연스러웠지만 결혼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어렵게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말단공무원이 된 연희는 군청에 근무하고, 객지바람을 쐬다 돌아온 동현은 고향집에 들어앉아 몇뙈기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 조그만 신분의 차이를 두고 양가에서 죽어라 반대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관하는 사람도 없고 제 살 남의 살 구별이 안될 만큼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동현은 새로 산 담배를 뜯어 한 개비 붙여 물고 까마득히 먼곳으로 눈을 돌린다. 푹 가라앉은 들 건너 멀리, 담수호 너머 간척지 너머 아스라히 먼곳에 염전이 있다. 갯벌을 막아서 생긴 호수는 무성한 갈대밭이 되었고 육지로 움푹 들어와 있던 바다는 지평선과 수평선이 맞물려 보이는 간척지가 되었다.

간척지에서 탈곡한 보릿대를 태우는지 자욱한 연기가 노을진 하늘을 향해 줄기를 이루며 올라간다. 그 너머 염전에는 행여 사람이 있더라도 너무 멀어서 훤한 대낮에도 육안으론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으로 술을 마시던 염부의 모습이 떠오르자 동현은 저도 몰래 살래살래 고개를 내젓는다.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왔기에, 하고 중얼거리다가 동현은 다시 퉤! 침을 뱉으며 병신 같은 자식! 하고 욕지거리까지 보탠다. 도대체 동현은 이 새삼스런 배신감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친구들 중에 대학진학을 한 사람은 문수뿐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림 솜씨가 유별나 온갖 대회를 다 휩쓸고 다니더니 대학도 장학생으로 뽑혀간 것이다. 그 문수가 염전의 염부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얼룩무늬 제복에 검은 베레모를 쓰고 세상이 좁다는 듯 활개치던 그 문수가 단무지처럼 배들배들, 한눈에도 맛이 간 몸뚱이로 막장 인생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먼 길을 발로 타박타박 걷자니 마음까지 폭폭해진 동현은 가던 길을 돌아선다. 아무래도 술 힘을 좀 빌려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땅거미에 밀리듯 쏜살같이 달려오는 그림자 하나가 먼데서도 동현을 알아보고 손을 흔든다. 작은아들 준섭이다. 중학생 신분에 통학버스도 마다하고 경운기로 통학하면서 길목마다 친구들을 태우고 다니더니 그것도 싫증이 났는지 요즘엔 또 자전거 바람이다.

“또 게임하느라 늦었구나.”

아들은 컴퓨터게임에 미쳐 있다. 제 엄마가 한때는 쫓아다니며 말렸는데도 소용없었다. 동현은 소용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말리지 않는다.

“나 좀 태우고 가자.”

동현이 다짜고짜 짐칸에 훌쩍 걸터앉자 한참 비틀거리던 자전거가 겨우 중심을 잡는다. 힘에 부친 페달을 밟느라 아들이 궁둥이를 실룩거리며 용을 쓰는데도 동현은 모른 척 아들의 허리만 더 세게 끌어안는다.

동현이 미친 건 기타였다.

걸핏하면 학교 공부를 빼먹고 뒷동산에 올라가 기타를 치다가 선생님들한테 붙들려가곤 했다. 어느날은 동산 옆 콩밭에 숨게 되었는데, 키 낮은 콩밭 속에 납작하게 누워 있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밤중이 되어서야 책가방을 가지러 교실에 들어가보니 문수가 그때까지 기다리다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시오리의 등하교길을 한번도 따로 다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른들은 그런 그들을 두고, 친구도 연분을 따로 타고 나는 모양이라고 했다.

 

 

3

 

“도대체 얼마나 마셨길래 그 지경인가?”

“짜면 한 서너 되 나올 겁니다.”

헐떡거리며 방문고리를 잡고 선 문수는 몸을 한껏 비틀어서 빨래 짜는 시늉을 해보인다. 그 바람에 흙투성이의 몸뚱이가 방바닥으로 철퍼덕 나부라진다. 다들 투전방에 박혀 있는지 방에는 이씨뿐이다.

“이씨.”

문수는 괜히 이씨를 한번 불러본다. 이씨는 사람을 죽이고 감방에서 칠년 죄값을 치른 게 벌써 이십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여자가 가버리고 없던가?”

“아니요. 그새 살이 쪄서 몰라보겠습디다.”

여자가 있다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문수는 기를 쓰고 몸을 일으키며 킬킬거린다. 이씨가 여자 여자 할 때마다 문수는 차붓집 여자를 떠올리곤 했다. 이씨 덕분에 문수는 오늘 여자를 자세히 보았다. 덩치에 비해 얼굴은 밉상이 아니었다.

“마누라가 편하다니 다행이구만. 없는 사람들이 근수라도 불렸다니 좀 좋은가.”

이씨는 여자가 살쪘더라는 말을 자기 식으로 해석한 모양이다. 딴엔 덕담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시큰둥하게 굴던 문수가 오늘 따라 살가운 것에 감동받은 탓인지도.

문수는 사실 차붓집에선 앞골이 약간 흔들릴 정도로밖에 마시지 않았다. 그곳에서 더이상 취해버리면 안될 것 같아서 자리를 털고 나오는데 이씨가 마음에 걸렸다. 그동안 이씨를 괜히 경계하며 싫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나름의 선물로 댓병짜리 소주를 사서 안고 비에 젖은 농로가 미끌거려서 비틀비틀 춤을 추듯 걸어왔다.

그러나 꼬불꼬불 논둑길이 아닌 반듯하게 농지정리된 농로를 걸어 담수호 둑방길에 이르고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목이 탔다. 견딜 수 없는 갈증이었다. 사방에서 물총새가 울었던 것이다. 드넓은 갈대밭으로 변한 담수호 사방에서 물총새가 찢어지게 울었다. 문수는 일부러 준비해온 것처럼 술병 뚜껑을 따고 꿀꺽꿀꺽 목을 적시기 시작했다.

가슴이 따뜻해지자 연희야! 하고 언제나처럼 그 이름을 한번 불러보고 싶었다. 연희라면 아주 어렸을 적 모습까지 기억할 수 있었다. 동갑내기였기 때문에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녔던 것이다. 양지꽃처럼 방긋방긋 잘 웃는 연희 덕분에 동현과 문수도 늘 싱글거리며 그 먼 시오릿길을 걸어다녔다. 그래서 문수는 푸르고 싱그럽던 그 시절을 총칭해서 ‘연희’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누구도 아닌 동현과 결혼하여 자식 낳고 알뜰살뜰 잘살고 있다는 것이다.

연희가 그동안 결혼을 안했을 리도 없고, 했다면 짝은 당연히 동현일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동현이 고향에 주저앉아 농사꾼이 되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일찌감치 대도시로 나가 하다 못해 술집의 삼류 악사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작곡을 하네 기타를 치네 하며 날밤을 새우던 열정을 문수가 다 아는 것이다.

이제 와서 새삼 그들과 부딪힌다면 어떤 얼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문수는 준비한 게 없었다. 그들은 전생의 일처럼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던 먼 기억속의 사람들일 뿐이었다. 문수는 새삼 싸늘하게 식어버린 자신을 느꼈다. 함께 뛰어놀며 자랐던 꼭 그만큼의 세월을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데에 이미 써버린 것이다.

가느다란 빗줄기뿐,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사라진 넓은 천지 둑방길에서 혼자 병나발을 불다보니 빗물인지 얼굴에 홍수가 지기 시작했다. 문득 어린시절 이후론 한번도 제대로 울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내와 헤어졌을 때도 문수는 눈물 한방울 흘린 적이 없었다. 가슴에선 늘 흙먼지만 풀썩거렸다. 문수는 아예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울다보니 술이 바닥나고 없었다. 비가 멎었는지 빗소리도 물총새 소리도 바람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느새 천지가 고요해져 있었다. 사방이 너무나 조용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누군가, 어떤 눈길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문수는 벌떡 일어나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비는 멎었으나 젖은 안개 때문에 사방은 몇미터 전방도 내다보이지 않았다.

그만 엉덩이를 털고 발길을 옮기려던 문수는 그러나 다시 돌아서서 들 건너 멀리, 방금 다녀온 삼거리 쪽을 바라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시선을 집중하자 뽀얀 안개 너머로 어떤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문수는 엉거주춤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두 손으로 이마를 가리고 깊이, 더욱 깊이 그 모습을 바라다보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었는지 후줄근하게 젖은 사람이 그 역시 손바닥으로 이마를 가리고 이쪽을 한없이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씨!”

기를 쓰고 몸을 일으킨 문수가 킬킬거리며 방구석에 세워진 빗자루를 집어든다. 이씨는 최대한으로 다리를 꼬고 등을 구부린 채 두 팔로 배를 누르며 앉아 있다. 매처럼 사납게 무엇인가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씨는 지금 술 마실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알코올중독자도 술 마시는 원칙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문수는 처음 알았다. 이씨의 원칙은 안주 없이 술만 마시되 한 사발씩 제 시간에 천천히 마시는 거였다.

“이씨, 내가 노래 하나 할랍니다. 내 친구가, 천재 작곡가 친구가 국민학교 때 벌써 작곡한 노래거든요.”

빗자루를 마이크처럼 두 손으로 움켜쥔 문수가 난데없는 노래를 하겠다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며 캑캑 목을 가다듬는다.

“자아 합니다. 시이작! 흔들흔들 흔들흔들 흔들이할머니/눈깔사탕 한개만 꺼내주세요/맛이 있나 맛이 없나 알아보게요/맛있어도 맛없어도 돈은 없어요 돈은 없어요!”

개구쟁이 시절 그대로 문수가 삐죽하게 내민 엉덩이를 사정없이 흔들자 배 아픈 얼굴의 이씨가 그만 히히힛 하고 웃는다.

“그 친구 재주가 많았나보구만.”

“암요. 하마터면 세계에서 제일 가는 작곡가가 될 뻔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뭐가 된지 아세요? 농사꾼이요, 시커먼 농사꾼.”

“인생사가 다 그렇지. 김씨는 뭐 소 돼지 값에 팔리고 싶어서 팔려왔는가? 소금쟁이가 되고 싶어서 되었냐고.”

입싼 이씨가 또 불쑥 지르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문수는 개의치 않는다. 뭔가를 다 토해버리고 싶을 뿐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요. 고흐씨 고갱씨보다 더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이곳의 햇빛, 바람을 다 그리고 싶었어요. 세상에서 이곳만큼 강렬하고 투명한 햇빛은 없을 겁니다. 저 불질러놓은 것 같은 황토땅두요. 저 바다도 하늘도 바람까지도 다 그리고 싶었어요.”

“소싯적에 노래 안 불러보고 그림 안 그려본 놈 있나. 그런 아리랑 타령일랑 레지 꼬실 때나 써먹는 거고, 오토바이 타고 들병이 다니는 다방 레지 말여. 그러지 말고 이왕에 뻔할 뻔짜 신세 조진 사연이나 말해보게.”

이씨가 새삼 기웃기웃 하면서 문수의 얼굴을 훑어본다. 문수는 희미하게 웃는다.

“나는 사람 잡은 살인마요. 그림을 그리겠다던 이 손으로 이렇게 막 총을 쏘고 쑥대밭을 만들었으니까.”

빗자루를 휘저으며 날뛰던 문수가 제풀에 철퍼덕 나부라진다. 네 팔다리를 널어놓은 채 푸슬푸슬 웃어대는 문수를 돌아보며 이씨가 엉겁결에 웅크렸던 몸을 슬며시 푼다. 사발을 엎어서 윗목에 세워둔 댓병을 가만히 잡아당기는 게 드디어 술시가 되었나보다.

“친구를 만났죠. 트럭에 끌려오더라구요. 손을 뒤로 묶인 채 시무룩한 얼굴루요. 내가 누구를 향해 총질을 했던 건지 그제야 깨닫게 됐죠. 다시는 고향에 돌아올 수가 없었어요. 물론 그림도 그릴 수가 없었죠.”

“김씨.”

“예.”

“입 다물고 이리 와서 술이나 받게. 여기 염전은 업경대(業鏡臺) 같은 곳이라서 제 입으로 안 떠들어도 그만한 것들은 저절로 알려진다네. 쑥대밭을 만들었으면 훈장 받고 벼슬이나 할 일이지 뭣이 어쨌다고 아직까지 그 엄살인가.”

엄살이라도 좋다. 문수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았다. 함께 살던 아내에게도 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문수는 큰대자로 뻗은 채 큰숨을 내뿜으며 쥐오줌 무늬가 그려진 천장에 눈을 박는다.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내는 도망치듯 빠리로 건너갔을 때 거기서 만났다. 서로가 외로워서 자주 만나고 사랑하게 되고 결혼도 했다. 그런데도 문수는 끝내 자신의 바닥까지 다 열어 보이지 못했다. 자신의 고통을 아내가 속으로 염오할 거라는 생각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결혼생활은 사랑인지 증오인지 아주 복잡하게 꼬인 채로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끝장이 나버렸다. 정작 내리막길은 그로부터였다.

문수는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한다.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 가는 척 슬며시 방을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몸뚱이가 자꾸 땅밑으로 가라앉는다. 몸뚱이가 그대로 홈을 파며 떨어지는데 갈수록 가속이 붙는 것 같다. 문수는 얼른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속도를 즐기려는 것이다. 약물을 주사하면 거꾸로 붕 떠오르곤 했다. 붕 떠오를 때의 무중력감만큼 황홀한 게 있을까. 그것은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 그 자체였다.

“그러고 보니 김씨도 참 딱한 사람일세. 사연이 그러한데 지랄한다고 여자까지 끌고 돌아왔는가? 그렇게도 갈 데가 없던가?”

뜻밖에도 이씨의 목소리가 젖어 있다. 술잔을 앞에 둔 탓인가보다. 정말 꼭 돌아올 필요가 있었을까. 진정한 귀향이라면 진즉, 슬픔도 분노도 생생할 때 그때 돌아왔어야 했다. 그러나 문수는 마개를 따버린 술병처럼, 조금은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갈 데가 있었죠. 도시락 폭탄을 가슴에 품고 달려갈 데가 꼭 한군데 있었어요. 그런데 자꾸만 바다가 부르는 거예요. 저 담수호랑 간척지가 우리 어렸을 적엔 바다였거든요. 세발낙지 아시죠. 손가락에 둘둘 감아서 통째로 씹어먹는 그 쫄깃쫄깃한 세발낙지요. 그거 먹다 잘못 삼키면, 낙지발이 목젖에 달라붙는가 하면 콧구멍으로 빠져나오고 입밖으로 빠져나와 목을 감기도 하고 여간 힘들지 않죠. 그 세발낙지가 제일 많이 잡히던 바다였어요. 그런데 밀물이 가득 차고 달이 떠오르면 저 바다가 어땠는지 아세요? 바닷속에도 또하나 하늘이 떠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하늘과 하늘 사이에 서 있자면 내가 중력을 느낄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거예요. 우주 한가운데 서 있은 것처럼 외롭고 무서워서 몸서리가 쳐지죠. 나를 산산이 부숴서 허공에 흩뿌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거예요. 숨을 죽인 채 그런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 순간 나를 초극한 것 같은 느낌이 저절로 찾아와요. 몸뚱이가 없는 것처럼 가벼워지면서 말할 수 없는 평화가 찾아오죠. 나라는 형체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느낌이에요. 출렁이는 물결소리며 바람결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런 것에 대한 감상조차 사라져버리죠. 평화 그 자쳅니다. 그건 달이 없는 칠흑 어둠속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틈만 나면 우리는 기타를 어깨에 메고 들판을 달려서 바다에 이르곤 했죠. 남의 배를 훔쳐 타고 삐걱삐걱 노를 저으며 밤새도록 온몸이 녹초가 되도록 그렇게 밤바다를 떠도는 거예요.”

“사람 싱겁네. 코골면서 주절대는 사람은 또 첨 보는구만.”

문수는 코를 골면서 주절댈 뿐 아니라 귀로 이씨의 말을 듣기도 한다. 이씨가 막걸리를 마시듯 술사발에 새끼손가락을 담갔다가 빨아먹은 다음 쩝쩝 입맛을 다시고 천천히 술사발을 들어올리는 장면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네 방구석이 관처럼 조여오며 가슴이 답답해진다. 관은 오래도록 늙은 소의 오줌에 담가두었던 듯하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찝찝한 홀애비 냄새가 뒤섞여 진동한다.

 

 

4

 

비가 그친 것 같다. 마당을 때리고 지붕을 때리고 창고 지붕에 씌워놓은 비닐포장을 때리며 바람에 쓸릴 때는 콩 볶는 듯 소란스럽던 빗소리가 자는 듯 조용해졌다. 동현은 슬그머니 일어나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내다본다. 시커먼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쫓겨가는 틈 사이로 삐죽 달빛이 내다보인다. 달이 제법 크다. 누웠다가 다시 일어난 동현은 창틀에 턱을 얹은 채 담배 한대를 다 태운다. 그래도 잠은 쉬 올 것 같지 않다. 자다가 받은 전화 때문이다. 삼거리 차붓집 여자였다.

“염전에서 전화가 왔는데요. 혹시 김문수씨 처 되는 사람이 있느냐고 하는데 무슨 말인 줄 알 수가 있어야죠. 자꾸 전화해서 죄인 다루듯 다그치는 바람에 밤중인데도 전화 드리는 건데요, 준섭이 아빠는 혹 그 사람 처가 누군지 아는가 해서요.”

“무슨 일이라고 그럽디까.”

“김문수라는 그 사람이 도망갔대요. 계약기간이 아직 멀었는데 계약금 소개비 다 떼먹고 가버렸다네요.”

문수의 처라면 동현도 아는 바가 없다. 문수가 이곳을 다시 떠나고 말았다는 사실에 동현은 다만 할말을 잃었다. 도망치듯 빗속으로 달려가는 문수를 동현은 끝내 불러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어이, 자?”

동현은 그만 구원이라도 청하듯 자는 연희를 돌아본다. 그러나 연희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죽은 듯 꼼짝을 않는다. 연일 계속되는 동현의 불면증 때문에 연희조차 늘 잠이 부족하다. 동현은 혼자만 죽은 듯 자는 연희가 부럽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다.

동현은 지금까지 쉬지 않고 죽어라 일을 하든지 농민회다 뭐다 정신없이 쫓아다니든지 코가 빠지도록 연일 술에 취해버리든지, 쳇바퀴 돌듯 그렇게만 살아왔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채, 마지못해 그저 사는 시늉으로만 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서였다.

음악공부 한다고 서울의 뒷골목을 헤매다가 일찌감치 군대에 갔다온 동현은 그 도시로 내려가 마침 중장비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우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동현이 그렇게 기타 대신 기계를 들여다보며 열중해 있을 때, 뒤늦게 입대한 문수는 난데없는 특수부대원이 되어 있었다. 늘씬한 허우대 덕분에 차출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첫 휴가 때처럼 고향에 함께 내려가서 신나게 놀기로 약속한 두번째 휴가가 그만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그리고 불과 열흘도 안된 어느날이었다. 담 밖이 소란했다. 소란은 갈수록 끔찍해졌다. 난리가 터진 것이다. 처음에는 다만 기계를 더이상 들여다볼 수 없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동현은 차츰 도시의 중심으로, 난리의 중심으로 휩쓸려들어갔다. 그리고 트럭에 실려가다가 자신들을 향해 총을 쏜 적들 속에서 뜻밖에도 문수를 발견한 것이었다.

쓰레기처럼 실려가서 재판을 받고 단순가담자로 풀려나긴 했지만 동현은 무의식중에도 ‘좆같은 세상! 좆같은 세상!’ 하는 주문을 입에 달게 되었다. 연희가 곁에 없었더라면 동현은 그 주문 속에 스스로 익사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동현은 살아오는 동안 내내 수도 없이 결론을 내렸었다. 본의가 아니었을 문수 역시 자신과 똑같은 피해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피해자임에도 문수는 자기가 원하던 대로의 인생을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봄날 그 도시에서의 활약으로 그들의 비호를 받는다면 하늘 아래 무서운 것이 없을 터였다. 온 가족이 완전히 이주한 이후, 문수의 소식이라면 풍문 한 편도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소년시절의 꿈대로 프랑스 유학을 떠난 건지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고흐는 지독한 가난뱅이였다는데 어떻게 유리창 달린 방에 침대를 놓고 살 수 있었을까, 소년들은 그것이 몹시 궁금했다. 초가지붕에 침대는커녕 이부자리도 변변찮은 자신들의 가난이 되레 의문스럽던 것이었다. 하지만 문수는 그 문화의 차이를 벌써 극복해버렸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 잊기로 수없이 다짐하곤 했다.

그렇게 수없이 결론 짓고 다짐했으면서도 동현은 그동안 어떤 강박관념이나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온 게 틀림없다. 차붓집에서 문수를 처음 발견했을 때 동현은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 문수에 대한 그 오래고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뒤집히는 충격 때문이었다. 문수 자신이야말로 편치 못했다는 듯 그동안의 세월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되레 시위라도 하듯 돌아온 것이다.

차마 마을로 돌아오지 못하고 아스라한 들 건너 염전에서 차붓집이나 기웃거리는 문수를 생각하면 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달려가서 모든 걸 한꺼번에 문질러 지우듯 서로를 껴안고 울어버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술을 먹던 문수의 모습만 떠오르면 동현은 저절로 마음이 다잡혔다. 자신의 모습이 노출될까봐 경계하는 것이라면 모른 척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문수가 기어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동현은 알고 있는 것이다.

처음 고향을 떠났을 때 문수는 빨간 물고구마를 캐서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황토밭을 그리고 싶다느니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열광하듯 빛이 튀는 담수호의 수면이 환히 보이는 것 같다느니, 빨리 돌아가서 그 모든 것을 그림에 담고 싶다는 편지를 쉴새없이 보내왔다. 태풍이 불면 태풍을 보러 바다로 달려가고 눈보라가 치면 바다가 눈보라 삼키는 걸 보려고 줄달음치던 문수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쉽게 다시 떠나고 만 것일까. 그 몰골이 되어서까지 기어이 찾아온 곳이 아닌가. 그런데 왜 계약파기라는 위험까지 무릅쓰고 떠난 것일까. 염부들이 계약기간을 어기고 도망치다가 붙들리는 날엔 병신이 되도록 몰매를 맞는다고 했다.

동현은 날마다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시간이 흐르다보면 자연스럽게 문수와 부딪히게 될 거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처음 만나게 되면 손부터 잡게 될까 허리부터 안게 될까, 그 다음엔 담배부터 한 개비씩 붙여 물고 길게 연기를 뿜으면서 비로소 눈길을 마주치게 되겠지 하고 상상도 해보았다. 그러나 논에 물꼬를 트려고 다녀오다가 빗속으로 달려가는 문수를 발견했을 때 동현은 스스로 몸을 낮춰 주저앉았다. 미끌거리는 농로를 춤추듯 허겁지겁 달려가는 게 영락없는 도망자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차붓집에서 문수를 처음 발견했을 때 다짜고짜 다가가서 등짝을 치며 아는 척을 해버렸더라면 차라리 모든 게 쉬워졌을지 모른다. 동현은 자신의 소심함에 새삼 가슴을 쳤다. 아는 척은커녕 자신의 충격도 감당하지 못해 비틀거렸던 것이다. 나중에라도 동현이 염전으로 찾아갔으면 그 역시 좋았을 것이었다.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그것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였다. 소년시절엔 염전 정도 거리는 늘 단걸음에 치달려 다녔다.

이 생각 저 생각, 결국은 같은 자리를 맴도는 생각의 홍수에 그만 염증이 난 동현은 억하심정으로 곤하게 자는 연희를 기어이 흔들어 깨운다.

“뭔 잠을 그렇게 깊이 자느냐고. 일어나봐. 얘기나 좀 허게.”

자다가 흔들린 연희는 일단 숨을 멈추고 사태를 파악한다. 그것은 동현과 함께 살면서 생긴 버릇이다. 동현의 불면증은 하루이틀의 것이 아니지만 가끔 위태로울 때가 있었다. 자신도 제어 못하는 어떤 감정에 휩싸이곤 하는 것이다. 창밖은 빗소리가 그쳐 고요하고 동현의 숨결도 다행히 위험수위는 아니다. 마음이 놓인 연희는 대신 짜증이 치민다.

“날마다 해가 서쪽에서 뜨느라고 마실도 안 나가고 술도 안 마시고, 되레 사람이 말라죽겠다니까 정말.”

“마실이야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못 나가는 것이고, 술이사 당신 소원이 그렇다니까 안 마시는 것이제. 기어이 바다로 나가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얘기만 좀 하자는 것인디 그렇게 성질을 부리는가.”

동현은 사뭇 사정조다. 동현은 술만 마시면 밤중이건 새벽이건 바다로 나가자고 조르는 버릇이 있었다. 동현의 말마따나 바다로 나가자고 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며 연희는 어쩔 수 없이 이불깃을 젖히고 잠 깬 시늉을 해준다. 그것이 그렇게 반가운지 동현 역시 어둠속에서도 기색이 달라진다.

“왜 문수 처를 차붓집에서 찾았지? 당신 삼거리에서 낯선 여자 본 적 있어?”

“왜, 당신이 찾아나서려고? 그러려고 밤잠을 안 자고 궁리라도 하는 거야?”

그랬을까? 동현은 어둠속에서 눈만 껌벅거린다.

“그래 내가 뭐래디? 집으로 데려와서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하고, 서로 싸우든지 술을 먹든지 일단 얼굴부터 마주해보라고 그랬지?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하냐구.”

“………”

동현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문수가 그 봄날의 가해자라면, 동현의 존재야말로 집요한 그림자처럼 끝없이 문수를 따라붙어서 매번 죄질을 따지고 추궁하고 처단하며 괴롭히는 망나니였을지 모른다. 동현의 존재야말로 문수에겐 지긋지긋한 추격자였는지도 모른다. 역시 그 모든 충격과 혼란 때문에 동현은 문수를 마주할 용기를 쉬 낼 수 없었다.

“이야기나 하자면서 왜 말을 안해?”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있지. 우리 결혼식 때 문수가 꼭 나타나리라고 믿었거든. 어디선가 소식을 듣고 조용히 찾아와서 축하 한마디쯤은 해줄 거라고 생각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문수 축하가 빠지면 안될 것 같더라고.”

“그래. 주례 앞에서도 두리번두리번, 폐백 드릴 때도 두리번두리번. 뿐이야? 신혼여행 가서까지 기분 다 망쳤지. 말도 없이 나가서 자기 혼자 술 마시고 돌아다니고.”

문수 이야기라면 이 오밤중에 언제 끝날지 모른다. 신혼여행 때의 낭패가 아직 억울한 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연희는 말꼬리를 돌리느라 일부러 거친 숨을 뿜는다. 그러나 동현이 더 발끈 한다.

“무슨 말 좀 하려고 하면 당신은 꼭 앞서서 삼천포로 달리더라. 관두자, 관둬.”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면 뭐하냐구. 그 이야기 세 번만 더하면 백 번이잖어.”

자다 깨서 같이 싸울 수도 없고 연희는 달래는 수밖에 없다. 동현도 쉬 풀어진다. 그러나 동현은 고집스레 같은 이야기다.

“사실은 그날 내가 얼마나 울고 싶었는지 알기나 해? 그날 내가 깨달은 것이 내가 아직도 문수를 무지하게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이었거든. 그런데 그날 따라 문수 생각이 간절한 게 내가 왜 문수를 미워하지 못할까, 그것이 또 무지하게 속상하더라고.”

연희는 그만 내놓고 한숨을 터뜨린다. 이 증세만 나타나면 동현은 새벽에라도 기어이 바다에 가자고 조르곤 했다. 완전히 잠이 달아나버린 연희는 허공에 눈길을 박는다.

연희는 가족들의 지독한 반대를 무릅쓰고 동현과 결혼했다. 연희마저 떠나버리면 동현이 그만 술독에라도 빠져 익사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현을 그렇게 버려두고는 어떤 행복도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연희는 자신이 동현을 위로하고 상처를 말끔히 치료하리라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연희는 동현의 상처라면 자신이 씻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되어버린 상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문수와 동현은 서로의 상처에 박힌 채 생을 함께 해온 존재인지도 모른다.

연희의 침묵 속에서 동현은 어이없이 잠결에 빠지고, 창을 들여다보던 달빛이 슬그머니 지붕으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