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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근세 촌락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

안병직·이영훈 편저 『맛질의 농민들』, 일조각 2001

 

 

김필동 金弼東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pdkim@cnu.ac.kr

 

 

『맛질의 농민들』은 근세 촌락사 연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주목에 값한다. 하나는 이 연구가 경상도 지방의 한 양반촌락(‘맛질’은 그 촌락의 속칭이다)의 사례연구를 통해 19세기 초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촌락민의 일상생활을 매우 구체적으로 복원했다는 점이고, 또하나는 ‘근대로의 이행기’로 인식되어온 이 시기에 관한 기왕의 거대담론에 대해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는 후자의 논점의 당부(當否)와는 관계없이 학계에 매우 소중한 성과를 안겨주었다고 할 수 있다. ‘맛질’이라는 한 촌락과 농민들의 경제생활 및 사회생활(책에서는 ‘촌락생활’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을 다각도로, 그리고 생생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맛질’의 주도적인 양반가(예천 박씨가)의 생활일기와 가계출납부가 여러 종류 남아 있었고, 이 일기류 자료들을 공동연구자들이 치밀하게 분석하는 동시에 촌락 및 주변지역의 관련자료들을 포괄적으로 동원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료들을 기초로 공동연구자들은 농촌의 경제생활을 사회적 분업(1장), 재화시장(3장), 물가(4장), 농업임금(5장), 지주경영(6장)으로 나누어 분석했고(2장은 기본자료인 『日用』에 대한 해제이다), 사회생활을 신분관계(7장), 신용과 계(8장), 선물교환(9장), 사망의 계절적 분포(10장), 토지소유구조(11장)로 나누어 분석했다. 목차에서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연구는 넓은 의미에서의 촌락의 사회·경제사를 지향함으로써, 공동연구자들의 의욕대로 아날학파의 방법과 성과를 한국에서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다고 말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촌락민의 일상생활을 구체적으로 복원했다는 점 외에도 이 연구가 거둔 성과는 더 있다. 우선 지적할 것은 일상생활과 직결된 다양한 기본적 경제지표(물가, 임금, 농가의 수입과 지출, 재산 변동, 이자)와 일부 사회적 지표(부조비와 사망의 계절적 특성·추이, 토지소유)의 시계열적인 구성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런 작업들은 그 자체 경제사 연구의 폭을 넓힘과 동시에 학계에 유용한 기초자료를 제공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또하나 돋보이는 것은 이 연구가 경제사 연구의 폭을 넓혀 사회사적인 주제를 함께 다루는 열린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새로운 연구주제(선물교환, 사망의 추이)를 개척하거나 종래 경제사 연구의 일부 잘못된 통념(예컨대 계契나 촌락의 성격에 관한)을 과감하게 수정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러한 개방적인 자세는 이 연구가 보여준 모범적인 공동연구와 함께 인접 분야의 연구자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하다.

114-460한편 『맛질의 농민들』은 이러한 작업을 바탕으로 이 시기의 역사상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그것이 가장 극적으로 집약된 것이 총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자본주의 맹아론’과 ‘신분제 해체론’이라는 거대담론에 대한 비판이다. 이런 입장에 대해 본격적인 논평을 가하기에는 ‘촌평’의 자리가 협소하고 또 필자의 능력도 부족하지만, 논평자의 소임상 약간의 소감을 피력하는 것은 피할 수 없겠다. 우선 현재의 한국사 연구 수준에서 ‘자본주의 맹아론’과 ‘신분제 해체론’을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양자에 대한 비판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자본주의 맹아를 검출하는 작업은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실패했으며, 따라서 거대담론으로서의 ‘맹아론’은 힘을 잃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신분제의 해체과정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필자도 ‘해체론’이 가진 도식적 이해, 특히 그 추동력을 한편으로는 ‘맹아론’과, 다른 한편으로는 ‘계급투쟁’과 직결시키는 설명방식에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노비제와 반상제(班常制)가 현저한 변화를 겪었으며, 그러한 변화가 1894년 신분제 폐지의 법적 조치로 이어졌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후에도 신분제는 관습적으로 힘을 발휘하였지만, 그 힘이 갖는 의미는 달라져갔다. 따라서 ‘해체론’ 전반에 대한 비판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닐까?

이 점과 관련해서 필자는 총론의 다른 부분에서 제시된 ‘전통의 잠복론’을 대입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신분제는 해체되어가면서도 상당기간 ‘역사적 토양’으로 그 영향력을 남겼다. 한국에서 신분제는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계급(제)으로 대체되어갔지만, 그 이행의 과정은 자생적인 성장을 거친 시민들의 혁명에 의해 근대를 열어간 서구사회보다는 완만했고, 새로 형성된 계급의 성격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더욱 중요한 것은 거대담론을 단순히 비판하는 것보다 신분제 해체의 과정과 그 속에서 사회관계가 어떻게 변해갔는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이 점에 관해서도 총론에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회조직’에 대한 관심의 촉구이다.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은 이 책의 제2부를 이루는 촌락생활, 그중에서도 제7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글의 논지에 대해서는 논평할 여지가 많지만 지면관계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맛질의 농민들』이 거둔 성과는 많은 부분 좋은 자료를 이용한 데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더 많은 관련자료들을 모으고 이를 치밀하게 분석한 연구자들의 공력도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의 한계 또한 자료에서 찾아질 것이다. 그것은 경상도 지방의 한 촌락을, 그것도 양반가의 시점에서 관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맛질’과 전체 사회를 연결짓는 작업은 연구자 모두의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에도 경박한 연구가 판치는 시대에 이만한 진지함을 가진 연구가 나온 것은 기쁨이다. 이제 한국근대사 연구자들은 한번은 씨름해야 할 버거운 상대를 만난 셈이다. 그런 상대를 맞아 한 수 배우면서 허점을 찾아보는 것, 그리하여 한걸음씩 더 내딛는 것이야말로 학문하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