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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대졸자 취업난과 3, 4학년 선배들

 

 

공인주 孔仁柱

고려대 국어교육과 2학년. 고대신문 기자. igrazie@kunews.korea.ac.kr

 

 

 

고등학생 시절, 도서관 문닫는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서면 교복 입은 학생 수보다 더 많은 일반인들이 주섬주섬 보온병과 방석을 가방에 챙기는 모습이 보였다. 고등학생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얼굴로 집중해서 책을 들여다보던 사람들, 형형색색의 펜글씨로 빽빽이 적힌 문제집과 빈 노트를 펼쳐놓고 열심히 적으며 외우던 그들을 보며 무엇을 공부하는지 궁금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를 2년 동안 다닌 지금, 반갑게 인사하고 함께 점심을 먹던 선배의 얼굴이 그들의 얼굴과 겹쳐 보인다.

‘대졸자 극심한 실업사태’라는 신문의 머릿글자가 유난히 커 보이는 요즘, 도서관 열람실은 평소에도 공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죄다 토익책은 한권씩 칸막이에 기대놓고 점심시간에는 그날 아침에 산 신문을 펼쳐 취업정보를 체크하며 읽곤 한다. 늦은 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며 졸음을 쫓는 모두가 살길 마련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선배들 대부분은 학교생활과 취업준비를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 얼굴 보기도 힘든 경우가 많다. 우연히 지나가는 말로 다른 선배의 안부를 물어보면 “글쎄”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함께 공부하지 않는 이상 서로 생활에 쫓기기 때문에 연락한 지도 꽤 됐다는 것이다. 어쩌다 서로 안부를 물을 때면 취업준비로 어려운 자신의 생활을 이야기하기가 난감해 대강 얼버무리기 일쑤라는 게 선배의 씁쓸한 설명이다.

컨썰팅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한 동아리 선배는 군대를 다녀와 지금 3학년 2학기에 재학중이다. 그는 비교적 취업준비를 미리부터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어학연수를 다녀오지 않아도 되느냐는 질문에 “웬만한 어학연수생보다 내가 더 영어 잘해”라고 자신있게 대답한다. 선배의 말에 따르면 취업은 도박이라고 한다. 대부분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토익점수 몇백점 정도는 다들 거뜬히 넘는 상황에서 무엇으로 어떻게 판가름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비중이 큰 면접에서 필수적인 것을 조언해주는 말들은 비슷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차라리 자기소개서 밑을 이런저런 자격증을 써넣어 승률을 높이는 데 정신이 없다고 한다. 더불어 매우 불안해하는 심리를 이용해 취업준비를 위한 학원들이 극성이라고 한다.

얼마 전 졸업한 선배와 식사를 함께 했다. 언론사 준비를 하고 있던 선배는 번번이 3차까지 갔다가 마지막에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바람에 주변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선배는 우리에게 “요즘 내 사정이 이렇다, 선배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끝을 흐렸다. 평소에 한없이 사람 좋고 명랑하기만 하던 선배가 이런 자괴감에 빠지면 후배들 입장에서는 어찌할 수 없이 숙연할 따름이다. “아니에요, 잘될 거에요”라거나 “힘내세요”라고 말해보기도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선배의 맘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머쓱해진다.

1, 2학년에게서는 아직 취업난을 걱정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적어도 2학년까지는 대학생의 자유로움을 즐길 때라는 것이 대부분의 생각이다.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청사진만 있을 뿐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직업을 위해 노력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학점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대학을 학부제 등 광역 단위로 모집하는 문과대나 인문대를 예로 들면 많은 학생들이 학점을 따기 위해 절대평가인 교양을 주로 수강하면서 치열한 점수경쟁을 한다. 학점을 잘 받아야 자신이 원하는 과를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학생이 가고 싶어하는 과는 대체로 취업과 연관성이 높다. 대학교 1학년의 취업준비 모습은 대학사회에서 학점경쟁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2학년으로 접어들면 진로설정과 관련한 부모님의 걱정이 시작된다. 교사 지망을 원치 않는 사범대 친구의 경우 방송인이 되겠다고 집안에 선언을 한 뒤로 어머니의 으름장과 협박(?)을 동시에 받고 있는 상황이다. 점수에 맞추다보니 생각지도 못한 사범대를 가게 됐는데 2학년이 되자 부모님이 임용고사를 준비하라는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싫다고 반항하는 친구에게 부모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럼 너 선생님말고 다른 거 할 자신 있냐?”라고.

몇년이고 준비해보겠다고 다짐하던 그 친구가 요즘 흔들리고 있다. 주변에서 “취업난도 심각한데 교사가 되면 직장은 든든하겠네”라며 부러움의 눈빛을 보낼 때, 특히 국문과나 영문과에 재학중인 친구들이 교직 이수를 위해 학점관리하는 모습을 볼 때 그냥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에게 현실과의 타협은 말 그대로 현실이다. 이런 친구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교육학과를 다니며 교육행시를 준비하는 한 선배의 말에 따르면 “1, 2학년 때 함께 행시 준비를 하자고 한 친구들이 너무 힘들 거 같다며 지금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많이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교사라는 직업을 갖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단순히 경쟁률로 따진다면 적어도 10대 1에 육박할 정도이며 앞으로도 꾸준히 높은 경쟁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도 취업전쟁 속에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비교적 되기도 쉽고, 된다면 보험에 든 것 같다는 것이 세상과 그들이 찾은 타협점일 것이다.

군대 가는 내 또래의 남학생만이 아닌 여학생들로부터 “휴학이나 할까봐”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어학연수가 기본이라는 시대에 살기 때문에 일단 어학연수도 다녀와야 할 것 같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정확히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취업난’이라는 물결에 휩쓸려 선택의 기회마저 잃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대학생이라는 표를 빨리 떼는 일명 ‘칼졸업’은 취직이 확실할 만큼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망설이는 일이 된 것이다.

취업난에 대해 신문의 여론란에서 ‘직장을 고르는 눈높이를 낮춰라, 그러면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기성세대의 목소리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 우리의 꿈을 펼치기도 전에 현실과 타협하라는 충고는 내가 평생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조차 사치스럽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학교 때, 장래희망을 이야기하면 들을 수 있었던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말씀은 사회 어느 곳에도 없다. 임시방편으로 일단 취업해놓고 이 경력을 바탕으로 더 나은 회사로 도약(?)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하는 분위기에서 우리는 흔들리는, 남아도는 인력인가 싶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에서 대학생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을 전문화된 상품으로 만드는 일과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일뿐이다. 친분이 있는 한 교수님은 대학생의 취업난을 가리켜 “비전문화된 인력들이 자신을 겉으로만 포장해 경쟁하는 것”이라며 인력이 필요한 곳은 있지만 내실화된 인력은 적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렇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취직하고 싶은 곳을 정해 그곳이 원하는 전문인력이 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취업의 지름길일 것 같다.

또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낮에 공부를 하는 한이 있어도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아침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오늘도 마음껏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기뻐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학생과 이십대가 가진 젊음과 패기로 도전할 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