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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학문의 주체성과 오늘의 대학

 

대학평가·학문평가를 평가한다

 

 

홍덕률 洪德律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공저로 『참여민주주의와 한국사회』 『한국사회의 구조론적 이해』 『영남지역 계획도시의 사회구조와 생활문화』 등이 있음. drhong@daegu.ac.kr

 

 

1. 평가가 휩쓸고 간 대학가 스케치

 

원래는 낯설고 어색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게 된 ‘평가’가 있는데, 늘 평가와 심사의 주체이기만 했던 대학과 교수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다. 우선 교수들은 재단과 대학에 의해서 일상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재단과 대학은 재임용과 승진 심사를 통해 교수를 평가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주로 연구실적 평가에 국한되었다. 지금은 연구실적 외에 학회활동, 사회봉사, 대학발전기금 모금실적, 외부연구비 수주액, 산학협력 실적, 신입생 모집 및 학생 취업알선 실적, 학교내 봉사실적 등 교수의 일거수일투족이 점수로 환산되고 있다. 연구실적도 과거와는 달리 게재된 학회지의 등급에 따라 다른 점수를 받는다. 또한 이전의 재임용과 승진 심사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계약제·연봉제 등과 함께 운영되면서 매우 살벌하게 바뀌었다. 평가 결과에 근거해서 연봉과 승진 여부가 결정되고 심지어는 계약이 해지되기도 한다.

교수들은 재단과 대학본부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항상 평가대상이기만 했던 학생들로부터도 평가받고 있다. 강의를 얼마나 잘했는지, 휴강은 자주 하지 않았는지, 수업준비는 제대로 했는지, 기자재 활용은 적절했는지 등도 모두 평가받는다. 자주 결석하면서 매우 성의없이 수업에 임한 학생들까지도 강의를 평가한다. 강의평가 제도가 처음 도입될 때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대학들에서 정착되었다. 실은 그것보다 더 신경쓰이는 것이 있다. 학생들의 수강 기피에 의한 폐강 가능성이다. 학생들은 대개 취업을 준비하는 데 도움되는 교과목을 선택한다. 취업에 직접 도움되는 것도 아니면서 수업내용이 어렵거나 과제가 많거나 성적이 박하다는 소문이 나기라도 하면 수강생을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폐강으로 책임 시수를 채우지 못할까도 걱정이지만, 교수의 학문적 자존심도 상처를 받는다. 시장과 수요자(학생)의 선택에 의해 강좌와 교수가 퇴출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종종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문제많은 시장인 것을 두눈으로 확인하면서도 교수들은 시장의 부당한 요구에 타협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불안의 그림자는 학과에도 드리워졌다. 예컨대 신입생 충원율에 따라 학과의 존폐를 결정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교수들은 자신의 학과를 살려내기 위해 학과 명칭을 바꿔보기도 하고 신입생을 찾아 고등학교를 떠돌기도 한다. 폐과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학과별 신입생 충원율과 교수 봉급을 연동시키겠다고 교수들 스스로 결의한 대학도 있다.

그러나 요즘 더 문제되는 것은 대학과 학과가 대학 밖의 기관들에 의해 종합적으로 평가받게 되었다는 사실과 그러한 평가가 범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교육부가 행정감사식의 평가를 하거나 혹은 재정지원을 위해 대학의 특정사업을 대상으로 평가하는 것이 전부였지만,1994년 이후 대학교육협의회가 실시하고 있는 대학종합평가 인정제에서는 대학의 재정상태와 발전계획의 타당성 등 대학의 전반적인 운영실태와, 교수의 연구실적, 교수 확보율, 학생 복지, 교사(校舍) 확보율, 교육용 기자재 구비율 등의 연구·교육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학종합평가 외에도 대학교육협의회는 학문분야별 평가도 실시하고 있으며, 학문분야별 평가인증기관과 일간신문 등에 의한 평가도 일상화되어 있다.1

평가가 범람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새 평가가 대학의 생존을 결정지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2 지금 대학들은 각종 평가에서 평가인정을 받고 좀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행정조직에 상시적인 평가전담기구를 두고 있다. 평가지표에 맞춰 예산을 편성하고 행정조직을 재편한다. 평가를 앞두고 갑자기 많은 교수를 채용하기도 하고 조교를 늘리기도 한다. 건물을 새로 짓거나 뜯어고치기도 한다. 강의동 복도마다 대학헌장과 교육이념을 담은 액자가 걸리는가 하면, 실내조명을 높이고 도색을 새로 하기도 한다. 느닷없이 강의실을 뜯어고쳐 첨단강의실로 개조하는가 하면 연구소가 갑자기 큰 평수의 방으로 이사를 가기도 한다. 교수에게 연구비를 늘려주기도 하고 교내 연구소 논문집이 한해에 몇권씩 발간되기도 한다. 엄청난 양의 평가서류를 준비하느라 대학 행정직원은 몸살을 앓는다.

행정직원뿐만이 아니라 교수들도 평가를 준비하느라 아까운 연구·교육 시간을 뺏긴다. 시간을 뺏기는 정도가 아니다. 온갖 비교육적인 방식으로 평가준비에 동원되면서 심각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학종합평가의 현장방문평가 기간 중에는 학생들을 상대로 예상질문과 모범답안을 교육시킨다. 설문조사 결과를 조작하기도 한다. 사전에 입수된 현장방문 평가위원 명단에 아는 교수라도 있게 되면, 대학으로부터 그를 상대로 로비를 하라는 특명을 받게 된다. 접대를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평가위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식사나 술을 접대하려고 인근 대학 교수들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교수들은 또 연구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동료 교수들과 공모해 이름을 빌려주고 빌린다. 학회활동의 실적과 논문의 등급을 부풀리기 위해, 자신이 주로 관계해온 지역 학회를 외양만 손질해 전국 학회로 바꾸고 그 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를 저명학술지로 둔갑시킨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학회 회원은 부풀려지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타 지역 교수가 학회 임원으로 명부에 올라가기도 한다. 학회와 회원교수들에게는 물론이고 학회에 이름을 빌려준 교수에게도 득이니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학회지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 논문심사 서류를 허위로 만들고 논문심사 탈락률을 조작하는 식의 편법까지 동원한다.

숭고한 대학이념, 학자적 기개와 지성, 교육자적 양심은 증발해버리고, 재단이든 대학이든 학과든 교수든 점수따기 경쟁만 남은 것이다. 각종 평가들이 대학가 풍경과 교수들의 삶을 크게 바꿔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비극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3

 

 

2. 대학과 학문의 현실: 대학개혁과 교수개혁의 과제

 

평가가 초래한 비극적 결과들에도 불구하고 평가제도의 도입은 매우 강력한 논거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학과 교수사회에 뿌리내려 있던 비리와 부도덕, 지적 태만과 낮은 생산성의 문제 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쟁과 평가 씨스템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논거가 꽤 설득력을 가질 만큼, 평가가 본격 도입되기 전의 대학과 교수사회는 매우 심각한 중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몇가지만 간추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대학의 도덕성 위기이다. 그것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사립대학의 재단비리다. 사실 대학은 오랫동안 경쟁의 무풍지대였다. 문만 열어놓으면 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구조였으니 재정난도 피할 수 있었다. 대학 경영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대학정원을 늘려 승인받고 학과신설을 허용받는 것이었다. 재정수입을 늘리는 가장 쉬운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과신설과 정원증원은 모두 교육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대학 경영자들은 교육부 담당자를 찾아 로비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전국 대학들의 백화점식 획일화, 그리고 교육부와 대학 경영자의 유착과 동반 타락으로 귀결되었다. 재단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사립학교법과 교육인적자원부의 친재단적 관점도 각종 사학비리와 일탈을 부추겨왔다.4 족벌경영, 교비 유용, 건설 비리, 교수채용 비리, 교권 유린 등 각종 비리가 번창하게 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학과 교수사회에 만연해 있는 도덕적 해이를 들 수 있다. 대학과 교수가 추구하는 보편주의 정신이나 지식과는 양립할 수 없는 특수주의적 사고와 관행이 학교이기주의, 학과이기주의의 형태로 만연해 있는 것이다. 교수사회의 도덕불감증도 위험 수준이다. 논문 표절, 연구비 유용, 논문 저자이름 빌려주기, 불합리한 학맥·파벌 관행, 후배나 제자를 교수로 채용하기, 교재채택료 및 논문지도비 수수,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수탈, 일탈적인 총장선거 문화와 교내 권력다툼 등은 이미 대부분의 대학에서 문제가 된 위기요소들이었다.5

둘째는 대학의 민주주의 위기이다. 비민주적 의사결정구조와 독선적 행정, 전횡 등은 대학사회를 멍들게 하는 핵심적 병폐들이다. 대부분의 사립대학들에서 소위 ‘주인’(법적으로는 당연히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대개 설립자나 그의 자손 혹은 그와 특수관계에 있는 재단주를 말한다)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그의 학교 경영이 사회적 윤리를 크게 벗어나 독선과 전횡으로 흐르게 되면 학문과 지적 활동도 질식될 수밖에 없게 된다. 총장선거가 정착된 국립대학과 소수의 민주화된 사립대학에서도 총장의 권한은 거의 절대적이다. 교무회의는 대개 통과의례이며 교수협의회나 교수회도 견제기능을 안정적으로 행사하기가 어렵다. 학생회와 학부형은 물론이고 교수회마저도 학사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 권한과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대학에서 재단과 총장은 과다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으며, 여타의 교육 주체들과 이해관계자들은 대학 운영에서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다. 오랜 대학민주화운동이 거둔 부분적인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대학운영구조의 민주화는 여전히 절박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대학의 경쟁력 위기를 들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지적과 논의들이 있었다.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낮은 투자, 대학의 재정 궁핍, 그 결과로서의 열악한 연구 및 교육 환경 등이 우선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과 교수사회의 경쟁부재와 그에 따른 교수사회의 지적 태만도 대학과 학문의 경쟁력 저하를 초래한 중요한 요인이다. 예컨대 교수직은 오랫동안 철밥통으로 인식되었다. 일반인의 눈에 비친 대학교수는, ‘강의노트 한권으로 10년을 우려먹고’ ‘1주일에 9시간만 강의하면 되며 1년에 넉달이 방학인데다 65살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철밥통’이었던 것이다.6 그러니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넷째는 대학과 교수의 정체성 위기다. 이는 ‘대학과 교수의 사회적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된다. 지금의 대학과 교수사회는 한마디로 혼돈과 무질서, 거기서 비롯되는 광범위한 무기력증과 자괴감에 빠져 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대학과 교수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다 사회적 합의도 존재하지 않다는 데 있다.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4년제대학과 전문대학, 일반대학과 산업대학 등, 대학의 유형별 역할분담 체제는 사실상 부재한 실정이다. 특히 4년제 종합대학들이 서울대 체제를 따라 백화점식 편제를 갖고 있어서 특성화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대학도 매우 적다. 대학의 역할과 주력 분야를 특성화할 필요가 절실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학 외의 다양한 고등교육기관, 전문교육기관이 많아진 것도 대학과 교수의 사회적 역할을 흔든 중요한 요인이다. 예를 들면 신기술 개발을 비롯한 실용적 연구는 기업 부설연구소가 대학보다 앞서 있기도 하다. 심지어 몇몇 재벌기업들은 사내에 대학을 운영하면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고급인력을 직접 양성하고 학위도 수여한다. 최근 수년 사이에 싸이버대학들도 많아졌으며, 각종 평생교육기관과 사교육기관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것도 대학의 역할 정체성을 심각하게 위협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학교육의 대중화도 대학과 교수의 정체성 혼란을 초래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그들이 대학에 대해 갖는 기대와 욕구가 매우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캠퍼스는 학문과 보편적 진리 추구에 관심 갖는 학생보다 다양한 분야의 취업에 필요한 실용지식을 요구하는 학생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법과대학 교수들은 이미 고시학원 강사와 다를 것이 없어졌다고 푸념하고 있으며, 공과대학 교수들도 기업체에서 요구하는 신기술을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대학교육이 대중화되면서 대학은 엘리뜨교육 기관에서 대중교육 기관으로, 진리와 학문을 탐구하는 상아탑에서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기술과 자격증 습득을 준비하는 취업학원으로 바뀐 것이다. 당연히 대학교수도 실용적 지식 전수자로, 학원강사로, 단편적인 지식과 대학 졸업장을 판매하는 지식상인으로, 대학교사(university teacher)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대학의 교수들은 4년제 대학이 학문 탐구를 포기하고 직업교육, 기능교육에 나서면서 전문대학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에 비판적 지식이나 보편적 진리 추구를 대학교수의 사명이라 믿고 씨름하는 인문학과 기초학문 분야의 교수들은 찾아오는 학생이 없어서 폐과와 폐강을 고민해야 하는 지경이다. 많은 대학과 교수 들이 자신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놓고 혼돈과 갈등에 빠져 있는 것이다.

다섯째는 학문과 지성의 위기를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주로 인문학과 인문학적 지성의 위기를 말한다. 응용학문의 경우 기술적·실용적 수요에 얼마나 부응했는가에 따라 위기 여부가 가늠되지만, 인문학과 인문학적 지성은 거시사회적·역사적 사명에 얼마나 충실히 답했는가에 따라 위기 여부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인문학과 인문학적 지성은 거시사회적·역사적 요구와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은 창조적 지식활동의 위축과 학문·지성의 식민지성에 있다. 학문후속세대의 자주적 재생산구조가 붕괴되고 있는 것도 학문과 지성의 중요한 위기를 구성한다. 그것은 학생을 충원하지 못해서 초래되는 재정적 위기와는 별개로 학문과 지성의 역할 위기를 의미하며, 더 근본적인 대학위기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의 원죄는 물론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했던 과거의 권위주의 정치권력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학문과 비판의 자유를 갖지 못한 채 정치권력에 굴종했던 과거의 대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대학이 아니었으며, 교수 역시 교수일 수 없었다. 과잉교육열 덕에 대학과 교수사회의 위기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물론 그런 반대학적·반지성적 정치상황에서 아무런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용기있는 소수의 교수와 학생들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쟁취하는 일에 나섰고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하지만 “(험한 일제 식민지 하에서도 지조를 지킨 선비들과 무서운 군인들의 고문 앞에서도 양심을 지킨 지식인의) 도덕적 책임과 양심은 지식인 사회의 그 어느 곳에서도 전통과 관행으로 정착하지 못했”7던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과거에 대학과 교수사회에서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뺏긴 일을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늘날의 학생미달 사태를 위기라고 호들갑떠는 이 비극적 현실이야말로 교수사회와 지성의 존재론적 위기상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대학평가·학문평가의 불가피성과 목적

 

결국 위의 문제들을 치유하기 위해 강구된 제도들 가운데 하나가 대학·학과·학문·교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평가의 갖가지 부작용과 문제에도 불구하고, 평가제도가 도입되게 된 현실적 배경이었다.

물론 대학과 교수사회의 개혁이 평가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대학 경영자와 교수사회의 자율적 통제와 자기개혁 메커니즘을 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으로서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럴 경우 다른 대안은 감독기구의 권한에 의해 개혁을 강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충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도 볼 수 없다. 사정기관의 개입은 범법행위에 국한될 수밖에 없으며, 교육인적자원부의 감사 역시 비리를 원천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자칫 대학과 학문의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도 있는데 교육인적자원부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효과를 떨어뜨리는 원인이다. 사립학교법의 개정과 같은 법·제도 개혁을 통해 대학 의사결정구조의 민주화를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최소한의 지침 이상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결국 남은 방안은 대학간·교수간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그것이 대학·학과·학문·교수 평가가 빠른 시간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현실적 기초였던 것이다.

이러한 평가들이 빠르게 받아들여지고 광범위하게 확산된 데는 또다른 배경이 있다.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한 것이다. 이제 대학과 교수는 기존의 관행을 그대로 간직하고선 생존하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는데, 특히 중요한 것으로는 학생수의 급감을 들 수 있다.8 학생수의 급감은 두 가지 결과를 초래했다. 하나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체제로의 전환이다. 애초에는 교육부의 교육개혁 프로그램(1995년의 ‘5·31 교육개혁안’)으로 제시되었지만, 이제는 대학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학생과 학부형과 기업의 요구에 적극 반응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대학·학과·교수 들은 오랜 관행을 깨고 학생을 고객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학생과 기업이 요구하는 내용을 교육과정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학생의 취업을 위해 뛰어다니고 기업체가 요구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주문식 교육과 산학협력 등이 대학가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의 변화와 대학간 경쟁의 심화는 수요자의 요구에 어느 대학이 더 잘 부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의 필요성을 낳았다. 또 하나는 대학의 연구·교육 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학생수의 급감은 대학의 재정위기를 낳았고 일부 대학에서는 연구와 교육의 질이 심각한 수준까지 추락했다. 그리고 그것은 ‘대학교육의 최소한의 질 관리’의 필요성을 증대시켰고 대학평가 인정제가 도입된 이유로도 작용했다.

대학과 교수사회가 안고 있던 갖가지 문제들과 급변하는 대학환경, 그리고 대학에 대한 사회적 기대의 상승은 대학과 교수도 개혁되어야 하고 개혁을 위해서는 평가가 불가피하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대학과 교수들은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평가에 적응해갔으며, 피할 수 없는 각종 평가들에서 이왕이면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사활을 건 총력전에 내몰리게 되었다.

문제는 어떤 평가, 무엇을 위한 평가냐 하는 점이다. 대학·학문분야·교수 평가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평가들이 대학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대학의 민주주의와 교수사회의 도덕성을 회복하고, 지적 태만을 극복하며, 연구의 질을 제고하고,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 일정수준의 교육의 질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학의 위기요인과 대학개혁의 과제를 정확하게 분석, 설정하고 대학평가의 기준과 방식을 제대로 설계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4. 대학평가·학문분야평가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제언

 

그런데 지금 대학가를 휩쓸고 있는 각종 평가들은 어떤가? 한마디로 앞에서 거론한 개혁과제들에 대한 진지한 고뇌 위에서 설계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대학평가와 학문분야별 평가를 주관하고 있는 대학교육협의회는 교육인적자원부의 평상시 문제의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이다.9 평가가 갖고 있는 근본적 문제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10

첫째, 대학평가와 학문분야별 평가가 주로 대학과 학문의 경쟁력 위기 해소, 즉 대학과 학문의 경쟁력 제고를 유인하는 데 집중되고 있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대학경쟁력 강화 방안’으로서의 대학평가, ‘학문의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서의 학문분야 평가라고 해야 할 정도다. 평가내용은 주로 연구여건과 교육환경에 대한 평가와 그것의 결과물로서의 교수의 연구실적, 학생의 취업률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대학교육협의회와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학 위기의 본질을 낮은 경쟁력으로 보고 있고, 대학위기의 극복방안을 경쟁력 제고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대학과 학문과 교육의 경쟁력에 대한 평가조차도 대부분 ‘양’에 대한 측정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서·논문편수, 교수 1인당 학생수, 교수충원률, 국제학술교류 건수, 도서관 장서수, 학생 취업률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논문과 저술의 ‘질’, 교육의 ‘질’에 대한 평가는 최소한으로만 그치고 있을 뿐, 타당한 평가지표조차 제대로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11 평가의 ‘객관성’에 대한 강박과 집착이 평가의 ‘타당성’에 대한 고민을 압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는 연구의 양을 늘리는 데는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평가의 애초 목표였던 대학과 연구의 질을 제고하는 데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둘째, 대학평가에서 대학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매우 취약하다. 현재 대학(재단과 행정직원과 교수)의 도덕성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 도덕적 리더십이 불신당하고서는 대학의 사회적 기능을 올바로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 교육기관이면서 동시에 혁신의 중추로도 기능해야 할 대학에는 도덕성 제고가 어떤 과제보다 선차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재단이나 대학행정의 부도덕성으로 인해 구성원들로부터 심각한 문제제기를 받고 있는 대학, 심지어 그 부도덕성으로 인해 지역사회로부터도 따가운 원성을 들어온 대학이 대학평가에서 오히려 좋은 점수를 받고 그 결과 교육부로부터도 적지 않은 지원을 받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식의 평가가 초래하는 결과는 치명적이다. 대학내 비리 주체의 입지를 더욱 강화해주고 대학의 부도덕과 비리를 부추기게 되며 대학평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 외에도 평가를 준비하는 많은 대학들에서 엄청난 규모의 거짓과 사기가 횡행했는데, 행정직원은 물론이고 교수와 학생들까지 거짓 자료 만들기와 거짓 보고에 동원되었던 것이다. 거대한 거짓말 경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더 걱정인 것은 이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대학이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대학이 교육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서’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어떤 건강한 문제제기도 해교(害校)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학생충원과 재정 위기가 급박해지는 상황에서 몰아닥친 대학평가, 특히 도덕성에는 관심없고 수치상의 경쟁력만 따지는 대학평가는 대학사회를 거짓과 집단 광기와 이기주의와 도덕불감증으로 뒤덮어버렸다.12

셋째, 대학 민주주의에 대한 고려도 매우 미흡하다. 대학은 어떤 기관보다도 민주주의가 필수적 요건임에도 불구하고 대학내 의사결정구조와 민주주의의 수준에 대한 검증과 유인에 대한 문제의식은 최소한에 그치고 있다. 물론 대학 민주화가 대학평가의 일차적·중심적 목표일 수 없다 하더라도, 각종 대학평가에서는 대학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가 아예 없거나 최소한으로만 고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종합평가가 ‘대학경영 및 재정’ 영역 평가에서 ‘의사결정의 합리성 및 민주성’이란 평가 항목을 포함시키고 있는 정도다. 이 평가항목과 관련해서는 ‘대학은 경영 목표 및 전략을 구성원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타당하게 설정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그리고 대학은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하여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해 평가하도록 되어 있다. 최소한의 선언적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민주주의에 대한 낮은 관심은 결과적으로 대학 현장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예컨대 대학 민주주의에 대한 구성원들의 정당한 요구마저도 학교를 위해서 자제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앞에서 든 대학의 구조적 비리나 독선·전횡 등에 대한 구성원의 문제제기조차도 해교행위로 매도되기 십상이다. 심지어 과거에 구성원들이 재단의 고질적인 비리에 맞서 민주화를 이뤄내고 현재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대학이 사업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는데도 교육인적자원부는 분규 대학으로 분류해 지원을 하지 않은 예도 있었다. 교육부의 대학평가와 대학지원 정책이 대학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결여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대학 민주주의에 대한 대학 구성원의 정당한 요구마저 압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사립대학 교수협의회연합회가 전국의 사립대학을 대상으로 행정의 투명성과 의사결정구조의 민주성 등을 중점 평가해 ‘훌륭한 대학교’를 선정·발표하기 시작한 것13도 각종 대학평가들이 안고 있는 그와 같은 문제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넷째, 대학과 교수가 앓고 있는 정체성 위기도 대학평가에서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특성화는 대학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라는 관점에서 지금의 대학종합평가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으나, 그 외에 개별 대학들의 사회적 역할 수준에 대해서는 사실상 어떤 개념 구분도 갖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즉 같은 분야(영역)를 특성화하고 있더라도, 어느 대학은 그 분야의 창의적인 연구를, 다른 대학은 국가적 수준의 인력양성을 그리고 또다른 대학은 지역사회 수준의 인력양성을 각각 중점 목표로 설정할 수 있다. 물론 그것에 따라서 학과와 교수의 구체적인 역할도 다르게 설정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대학평가는 대학과 교수의 다양한 역할 유형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해왔다. 예컨대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 간의 역할분담에 대한 고려 없이 하나의 잣대로 평가가 실시된 것이다. 전국의 모든 대학들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해 인정 여부를 판단하거나(1,2차 대학종합평가) 혹은 서열화해서(교육인적자원부 대학재정지원 평가) 발표해온 것이다. 대학환경의 변화(지역사회와의 연계 강화, 세계화, 지식기반 정보사회가 요구하는 인력의 변화 등)에 따른 교육내용과 교육방식의 개선노력에 대한 고려도 빈약한 실정이다. 한편 평가기관들간의 정보교류와 연계 부족이 엉뚱한 결과를 빚기도 한다. 예컨대 특성화를 유인한다는 목표로 실시된 여러 평가들이 전혀 다른 특성화 분야에서 한 대학을 동시에 높게 평가하는 모순적 상황이 종종 벌어지곤 하는데, 그것은 오히려 대학의 특성화를 저해하는 결과를 빚게 된다.14 결국 대학평가가 대학의 정체성 확립을 유도해가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섯째, 학문과 지성의 위기에 대한 관심이 사실상 없다.‘객관적일지는 몰라도 타당하다고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선정된’ 학술지에 몇편의 논문이 실렸는지, 학술행사에서 발표한 논문수는 몇편이나 되는지에만 관심있지, 지금 한국의 학문과 지성이 직면해 있는 질적 위기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창조적 지식활동 및 식민지성 극복과 학문후속세대의 육성과제 등에 대해서는 관심 두지 않는다. 심하게 말하자면 학문과 지성의 위기가 대학평가와 학문분야별 평가로 인해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계량화되고 획일적인 기준에 입각한 평가체제하에서 교수들은 창조적 지식활동을 자극받기보다는 논문편수 늘리기에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고, 그 틀을 거부하는 실험적 지식활동에 나서기보다는 기성의 틀에 순응하는 기능적 지식활동에 내몰리게 되기 때문이며, 학문의 식민지성 극복을 위한 필생의 연구보다는 1년 단위로 발표실적을 극대화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5. 나가면서

 

한마디로 지금 대학가를 휩쓸고 있는 각종 유형의 평가들은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렇다고 대학평가와 학문분야별 평가 그리고 교수평가 자체를 원천적으로 거부할 수도 없다.이 싯점에서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평가들을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특히 평가의 목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대학·학문· 교수사회에 만연해 있는 위기요인을 정확하게 직시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 위에서 위기요인을 해소하는 데 도움되는 방향으로 대학평가를 재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각종 평가들이 많은 문제들을 지니게 된 것은 대학·교수사회·학문이 처한 위기에 대한 편향된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위기를 ‘양의 위기’로 보는 인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교육부·대학재단·대학 밖의 기업의 관점이 과다하게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이 위기의 본질은 ‘질의 위기’에 있다. 대학의 민주주의 위기와 도덕성 위기, 낮은 질의 학문과 연구, 부실한 학사 운영, 학문의 식민지성과 학문후속세대의 단절 등이야말로 위기의 본질이요 핵심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평가에서 제대로 고려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이 현행 대학평가·학문평가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학문활동과 교육의 주체인 교수의 문제의식이 평가의 설계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게 된 데에는 교수사회의 책임도 크다. 교수들은 대학과 교수사회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평가의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그 대신 갑자기 범람하기 시작한 대학평가에 개별 대학·학과·교수별로 적응해 살아남기에 급급하였다. 학자적 고민과 학문 일반의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내동댕이친 채, 대학조직과 학과의 한 구성원으로, 생계를 고민하면서 교수‘직’에만 관심 갖는 직장인으로 전락한 것이다.

대학과 학문, 그리고 연구와 교육의 궁극적 목적과 존재이유에 대한 문제의식이 실종된 대학평가와 교수평가는 기형적일 수밖에 없다. 연구와 교육의 ‘양’이 아닌 ‘질’의 중요성,그리고 ‘질’의 제고에 기여하기 위한 평가지표의 개발에 무감각한 학문분야별 평가와 학술지 평가, 교수평가 역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자칫 대학과 교수사회를 황폐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대학평가와 학문분야별 평가 등에 대한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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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 의과대학 인정평가위원회’와 ‘한국간호평가원’의 의학·간호학 분야 평가, ‘한국공학교육 인증원’의 공학분야 평가가 대표적이다. 언론사 평가의 예로는 중앙일보가 1994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전국대학평가를 들 수 있다. 학술진흥재단은 학술지 평가와 연구논문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2. 예컨대 2001년에 끝난 1기 대학종합평가 인정제에서는 평가받은 160개의 4년제대학 모두가 ‘인정’평가를 받았으며, 세부적인 내용은 대부분 비공개 처리되었다. 따라서 대학과 사회에 준 충격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2004년 8월 31일에 발표된 ‘대학구조개혁방안’을 통해 교육인적자원부는 2005년부터 평가 결과를 비롯해 대학관련 각종 자료와 지표를 일반에 공개하겠다는 방침(대학정보공시제)을 천명했는데, 그렇게 되면 앞으로 대학평가는 대학가에 엄청난 폭풍을 몰고 오게 될 것이다.
  3. 물론 그간의 대학·학과·학문·교수 평가들이 부정적인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대학이 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됐고,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명확하게 진단할 수 있게 됐으며, 나아가 발전계획을 세우고 노력을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 등은 대학평가가 가져온 긍정적 결과들이다. 교수들 역시 지적 태만과 나태를 극복하도록 자극받은 측면도 없지 않다.
  4. 필자가 이해하기에 교육부가 사학재단을 바라보는 기본 관점은 다음과 같다. 즉,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고 정부 재정이 매우 어려울 때, 정부가 마땅히 책임져야 했던 육영사업을 개인이 사재(私財)를 털어 시작했고 그 뒤에도 정부 재정으로 그들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했는데, 사학재단의 비리들에 대해 사사건건 정부가 나서서 제재를 가하게 되면, 누가 사재를 희사해 육영사업을 하려 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기본적으로 재단 설립자를 비롯해 교육부 관료와 상당수 국회의원까지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그들이 사학 분규와 관련해 비리 재단과의 구체적인 유착 때문이 아니더라도 재단을 비호하게 되고, 또 사립학교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사학재단의 배타적 권리를 옹호하고 나서게 되는 논리적·정서적 배경이 되고 있기도 하다.
  5. 홍덕률 「교수사회의 위기와 극복방안」, 『역사비평』 2004년 여름호 참조.
  6. 그렇게 된 데에는 교수 재임용 및 승진 심사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물론 일부 사립대학에서 재임용과 승진 심사가 재단 비리에 비판적인 교수들을 옥죄거나 내쫓는 무기로 악용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은 간과하지 말아야겠지만, 교수는 정권과 재단의 비리에 대해 적당히 눈감고 타협하기만 하면 사회적 지위와 여유있는 생활과 정년이 함께 보장되는 가장 부러운 직업 가운데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다.
  7. 최종욱 「지식인의 무책임성에 대한 자기반성과 제안」, 현대사상 편 『한국 좌파의 목소리』, 민음사 1998,81면.
  8. 교육인적자원부의 국감 제출자료(2004.10.13)에 의하면 전국의 4년제대학 213개교 가운데 2004년도 모집정원 대비 신입생 등록률이 80%가 안되는 학교수가 전체의 26%인 55개교에 달하고, 전문대의 경우는 44%에 이른다. 심지어 20%대의 등록률을 기록한 대학들도 여럿 있다.
  9.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대학총장들의 모임이다. 형식적으로는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독립된 협의체인 것이다. 대학교육협의회가 주관하는 대학평가가 교육인적자원부와 무관한 대학인 스스로의 자기 평가라고 주장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하지만 대학교육협의회를 독립된 기구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손홍숙은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학교육협의회의 대학평가 사업에 재정을 지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원 임명과정에서 장관 동의가 필요한 점, 그리고 대학평가 결과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게 보고된다는 사실을 들어, 대학평가는 국가통제기관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손홍숙 「다른 조건, 유사한 정책이념의 사회학적 의미: 한국과 영국의 대학평가 정책의 사례」, 한국교육학회 『교육학 연구』 42권 1호(2004),284면.
  10. 기존 연구들이 제기해온 대학평가의 문제점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내용에 집중되어 있다. 첫째, 평가의 중복과 평가 준비 대학(교수)의 행정·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대학교육협의회와 교육부 등이 평가를 담당하는 것이 타당한가, 또한 독립적인 평가인증기구나 언론사, 임의단체들이 대학을 평가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문제제기다. 셋째는 평가위원들의 전문성 부족 문제며, 넷째는 평가척도가 불합리하고 대학의 다양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다섯째로 평가 결과의 활용 문제, 예컨대 재정지원과의 연계나 평가 결과의 공개 여부를 놓고서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매우 지엽적인 문제제기로 보인다. 대학평가의 기본골격을 문제삼는 연구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연구는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제기해온 그와 같은 지적 사항들에 대해서는 재론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보다는 대학평가의 문제의식과 골격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따져보고자 한다.
  11. 연구물, 특히 인문학 분야의 연구성과와 학술지에 대한 기존 평가들이 갖는 그와 같은 문제와 대안적 평가 모형에 대해서는 김동노·이민행·박태균의 중간보고서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인문학 관련 연구결과 평가모형 개발」(연세대 인문과학연구소,2004.10.15)을 참조할 수 있다. 위 중간보고서를 참고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필자들에게 감사드린다.
  12. 물론 사립대학의 재단 비리를 척결하고 대학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이 반드시 평가를 통해서 달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재단비리 문제는 일차적으로는 교육인적자원부의 감사 혹은 검찰수사의 영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의 감사는 심각한 분규가 일어난 대학에 집중되거나 비리 재단과의 유착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해결 기능으로는 대단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검찰의 수사 역시 심각한 비리가 드러났거나 관계인의 고발이 있을 경우로 더욱 제한될 뿐만 아니라 대학개혁의 수단으로는 부적절하다. 그것들로는 대학의 도덕성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평가는 마땅히 대학과 교수사회의 자정능력 및 높은 수준의 도덕성 확립을 위한 자율적 씨스템 구축을 유인함으로써 대학사회의 도덕성 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13. 2004년 3월에 있었던 ‘훌륭한 대학교’1차 선정에서는 영남대학교가 선정되었다.
  14. 하나의 대학이 산학협력 중심대학 지원 사업에 선정되고 또 연구중심대학 지원 사업에도 선정되기도 하는 등의 예는 비일비재하다. 대학들, 특히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고 있는 국립대학과 대규모 종합 사립대학들에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 특성화할 분야, 주력해야 할 역할과 정체성 등에 대한 명확한 방향감각 없이 모든 지원사업들에 지원해 일단 돈을 따내고 보자는 접근이 팽배해 있다. 대학들의 그러한 접근을 가능하게 한 것은 평가 및 지원 기관들이 지원 후의 사업평가를 게을리하고 다양한 지원기관들 사이에 상호 교류나 협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사실에 기인한다. 교육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아서 신입생 유치난도 겪고 있지 않은 일부 대규모 종합대학들은 대학의 특성화를 유인한다는 명분의 각종 지원사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아내는 것이 목표이지, 실제로 특성화를 추구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