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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동아시아 평화를 앞당기는 소중한 첫걸음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미래를 여는 역사』, 한겨레신문사 2005

 

 

백영서 白永瑞

연세대 교수, 중국사학 baik2385@yonsei.ac.kr

 

미래를여는역사

한일간에 이어 한중간에도 ‘역사전쟁’이 일어날 정도로 갈등의 파고가 높은 동아시아의 현실 때문에 역사교과서 문제가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관한 연구과제가 유행이고 관련 학술회의가 한창 성행중이다. 평자도 나라 안팎에서 열리는 회의에 여러차례 참여한 바 있다. 그런데 점차 역사교과서에 지나치게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게 아닌가 하고 염려하게 되었다. 입시에 대비한 암기용 지식 전달에 치중하는 교육제도에서 사용되는 역사교과서가 과연 역사인식 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이다. 실제로 역사교육은 공식 교과서로 가르치는 교실 현장뿐 아니라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도 이뤄진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다시 보면,동아시아에서 20세기 역사교과서와 교육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다양한 시도들이야말로 새로운 희망의 싹이 아닐 수 없다. 그 가운데, 교과서를 주도하는 국가의 제도 밖에서 민간인들이 제작한 한중일 공동의 대안적 역사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는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첫걸음’으로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세 나라 연구자, 교사 및 시민활동가 들이 2002년 3월부터 이 책을 준비해온 과정을 보면, 후소오샤(扶桑社)판 역사교과서로 상징되는 일본 우익의 역사왜곡에 항의하는 시민연대운동이 그 추동력이 되었다. 한국의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가 주동적 역할을 하여 ‘동아시아평화포럼’을 구성했고, 이에 동조하는 각국 필진 54명이 집필에 나섰다. 한국어·중국어·일어로 각각 초안을 집필하고 이에 대한 검토의견서를 다시 번역해 이견을 조정하고 재집필하는 긴 작업과정에서 그들은 서로의 역사관과 역사기술 관행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중국인 집필자 쑤 즈량(蘇智良)은 한국과 일본 참여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역사서술에서 ‘중국식 정치화’와 무미건조함을 줄이려 애썼고 경제와 민중생활의 변화 같은 내용을 보충하는 데 힘썼다고 밝히고 있다(『亞洲週刊』 2005.6.26). 이렇듯 공동작업을 통해 그들은 서로 소통하는 ‘작은 학술공동체’를 실험한 것이다.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교과서가 평화의 동아시아를 일궈내는 데 상징적 작용을 할 것임을 평소 강조해온 평자는 이 책이 편찬중이란 소식만 듣고도 그간 논의의 차원에만 머물렀던 것이 이제 가시화되는구나 싶어 크게 반겨마지 않았다. 이제 간행된 책의 내용을 보니 여러 참여자들의 공력이 곳곳에서 스며 있어 믿음직한 느낌이 든다. 우선 책의 구성에서 3국의 풍부한 사진과 그림, 간략한 사료 소개 및 ‘역사 들여다보기’란 칼럼은 역사의 실상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배려한 부분이다. 그리고 ‘서장: 개항 이전의 삼국’ ‘개항과 근대화’ ‘일본제국주의의 확장과 한·중 양국의 저항’ ‘침략전쟁과 민중의 피해’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동아시아’ 및 ‘종장: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하여’로 이어지는 내용은 강자 중심의 역사가 아닌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서술하겠다는 집필진의 역사의식이 꿰뚫고 있다. 특히 일상생활 속의 민중의 삶을 재현한 1, 2장의 4절은 읽는 재미를 안겨주고, 식민주의와 냉전질서가 결합되는 과정을 묘사한 4장은 오늘의 역사적 과제를 일깨워주어 더욱 주목된다.

여기서 이 책의 내용을 더 깊이있게 짚어보는 것이야말로 그 소중한 성취에 대한 올바른 대접이요 그것을 한층 더 심화시키는 요체라 믿고, 주요한 특징을 추려내고 그에 대한 비평을 덧붙이고자 한다.

이 책은 일본제국주의의 수탈과 그에 대한 한국인과 중국인의 저항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제작동기를 염두에 둔다면 수탈과 저항의 시각이 서술 전면에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 책이 세 나라에서 각각 간행되어 보급될 때 일정한 교육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역사서술의 특징이 세 나라의 독자에게 어떻게 수용될지 좀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저지른 ‘가해’와 그로 인해 한국인과 중국인이 입은 ‘피해’를 좀더 많이 그리고 강력하게 전달하는 데 큰 효과가 있겠지만, 이런 내러티브는 한국과 중국의 기존 역사교과서에서 상당히 강조되어 있어 이미 익숙한 것이므로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동아시아적 정체성을 갖게 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비해 일본의 젊은 독자들에게는 당연히 충격적인 내용일 터이고 그들의 비판적 역사의식을 자극하는 교육적 효과가 클 것이 예상된다. 반면에 이같은 수탈과 저항의 시각을 너무 단순한 것으로 여기고 일본근대사에 대한 ‘자학(自虐)’과 ‘자찬(自讚)’을 넘어선 새로운 역사인식의 틀을 원하는 일본 독자들에게는 이 책의 영향이 제한적이지 않을까.

또한, 이 책은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다. 우선 본문 구성에서 삼국의 이야기를 각각 균등하게 다룬 특징이 돋보인다. 특히 동아시아 역사를 서술할 때 상대적으로 덜 중시하기 쉬운 한국 부분이 잘 드러난다. 한국인이 다른 두 나라의 민중에 비해 피해자의 역사경험만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을 비중있게 다룬 것은 독자가 동아시아의 역사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집필진의 동아시아적 관점은 삼국을 병렬한 것, 다시 말하면 각국의 역사를 나열한 것이지 동아시아지역 전체를 구조적으로 연관시켜 파악한다는 목표에는 미치지 못한다. 물론 각절 말미의 ‘역사 들여다보기’란 칼럼으로 국경을 횡단하는 개인이나 사물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비교함으로써 그 한계를 보완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세 나라의 역사를 합친 ‘삼국지’란 인상을 벗어나기 힘들다.

바로 앞의 지적에서 드러났듯이, 이 책은 일국을 넘는 동시아적 관점에서 삼국의 근현대사를 재구성해 “평화와 민주주의, 인권이 보장되는 동아시아의 미래를 개척”(11면)한다는 실천적 목적에서 기술되었다. 그런데 동아시아적 관점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공통의 역사교과서’란 도대체 어떤 서술방식을 택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이어진다. 삼국의 역사에 대한 단순 비교를 넘어서 상호연관의 역사를 서술하고, 더 나아가 국가중심의 역사서술을 어느정도는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온전한 동아시아적 관점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와 관련해 평자는 동아시아 안과 밖의 ‘이중적 주변의 눈’, 즉 서구중심의 세계사 전개에서 비주체화의 길을 강요당한 동아시아라는 주변의 눈과 동아시아 내부의 위계질서에서 억눌린 주변의 눈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런 ‘눈’으로 동아시아의 역사를 다시 볼 때, 연대와 갈등의 동아시아 역사의 전모가 또렷이 드러날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 질서의 역사에서 중국(제국)―일본(제국)―미국(제국과 그 하위파트너 일본)으로 중심이 변화함에 따라 그 각각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기억이 어떻게 변화하면서 중첩되기도 하는지가 복합적으로 서술될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이 책을 평가하면, 기본적으로는 일본제국이란 중심의 수탈과 한국과 중국이란 주변의 저항에 치중한다는 점 때문에 서구에 저항하는 동아시아 연대, 중심을 지향한 일본으로 인한 동아시아 분열, 중화제국의 변방이었다가 일본제국에 넘겨진 1895년 이래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동을 겪는 대만인의 식민지 경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로 자처하는 일본인의 근대적 경험, 냉전기와 탈냉전기 미국의 역할에 대한 동아시아의 복잡한 반응 등이 잘 드러나지 못한다.

이 책의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이 5월, 그리고 중국어판이 6월 각각 현지에서 간행된 이래 중국과 일본의 서점에서는 판매가 호조를 보인다고 한다. 동아시아 역사인식의 공유를 위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사정이 좀 다른가. 사회적인 요인으로 보자면 일본에서는 우경화에 대한 자기성찰 움직임에 힘입고, 중국에서는 최근 고조된 반일감정이 작용한 면도 있을 것이다. 또한 내용적으로 일본 독자에게는 충격적이며 새로운 사실이 많고, 중국 독자에게는 ‘중국식 정치화’와 무미건조함을 어느정도 벗어난 서술방식과 한국사 부분이 흥미를 끌었을 것이다. 반면 한국 독자에게는 익숙한 한국사 내용을 포함하여 저항과 수탈의 동아시아 역사 전체가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 탓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것은 독서시장에서의 문제이고, 이 대안교재가 제도 안의 교과서로 채택된다면 보급률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국의 교과서제도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제도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교과서적 서술체제 자체에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앞으로는 과거의 기억을 전달하는 데서 다양한 역사서술 양식을 개발하고, 특히 매스미디어를 창조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자는 과거의 원인이나 결과에 대한 지식이나 지적 이해보다 상상력이나 공감에 의한 과거와의 만남을 더 원하는 게 아닐까. 과거에 산 사람들과의 공감적 관계, 즉 과거에 산 타자와의 일체화는 종종 현재 우리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정체성 형성의 계기를 역사에서 찾는 작업의 모범을 『미래를 여는 역사』가 제시했다.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