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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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윤고은

윤고은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무중력 증후군』이 있음. shellmaker@naver.com

 

 

 

달콤한 휴가

 

 

커피메이커가 배달된 후로 그는 아침마다 원두를 내렸다. 커피향이 부엌에서 거실로, 그리고 각 방으로 천천히 전달되었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와 인도네시아 만델라가 그가 처음으로 선택한 커피들이었다. 그는 하루는 예가체프를, 다른 하루는 만델라를 마셨다. 커피맛을 미세하게 구분해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얼른 다른 나라들의 원두도 마셔보고 싶었다.

커피메이커는 퇴직금의 첫번째 지출항목이었다. 그는 7년간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 그는 바로 다른 직장을 알아보지 않고, 6개월간의 휴업을 선언했다. 실업급여가 나오는 동안 조금만이라도 쉬고 싶었다. 퇴직금의 두번째 지출항목은 DSLR이었다. 그는 사진 동호회에 가입했지만 잘 나가지는 않았고, 그래도 책과 인터넷을 통해 DSLR작동법을 배웠다. 메모리카드 두개를 샀고, 외장하드와 넷북도 샀다. 그리고 항공권도 샀다. 두장이었다. 교사인 아내가 여름방학을 맞이하면 바로 출발할 생각이었다. 2주간의 유럽여행이었다.

그는 2주를 위해 두달을 준비했다. 카메라를 얼추 익숙하게 다루게 된 다음에는 여행 동호회에 가입했다. 가이드북을 사고, 방문할 도시들의 말을 배우고, 그 도시에 관한 책이나 영화를 봤다. 출근할 일이 없어도 그의 일과는 여전히 규칙적이었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그는 아침밥을 먹고, 커피를 내린 다음, 커피잔을 들고 컴퓨터 앞으로 가서 앉았다. 컴퓨터를 켜면 또다른 세상이 열렸다. 그는 여행 동호회를 통해 가이드북에는 나와 있지 않은, 보다 세세한 정보들을 모았다. 수첩에 적고, 파일로 만들고, 프린터로 인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인쇄된 정보들 속에 빈대가 무척 많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21세기에 웬 빈대? 유럽에?”

아내가 말했다. 그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빈대라면 이미 의인화된 지 오래였다. 진짜 빈대를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군대에 있을 때 잠시 빈대소동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그때도 그는 정작 빈대를 보거나 빈대로부터 어떤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자기 너무 많은 정보를 본 거 아니야? 필요한 것만 골라 봐도 바쁠 텐데.”

아내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내는 그가 실직한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여름방학에 맞춰 남편과 유럽여행을 간다는 것에 다소 들떠 있었다. 결혼 3년차, 신혼여행 이후로 오랜만의 해외여행이었다. 아내는 피곤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활기찬 여행을 기다렸다.

일주일쯤 지나자 그가 모은 정보는 몇가지로 압축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빈대였다. 빈대에 대한 정보의 대부분은 빈대로 인한 피해사례였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빈대 경험담을 읽었다. 비행기 안에서 빈대에 물린 신혼부부의 이야기부터 야간열차에서 물린 여행객, 그리고 빈대인지 모기인지 구분은 안 가지만 아무튼 뭔가에 물려서 극심한 가려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람의 이야기도 읽었다. 여행 막바지에 빈대를 만난 후, 돌아와서 반년이 넘도록 지워지지 않는 흉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대를 생소하게 여기지만, 잘 생각해보면 여행에서 빈대와 동행할 확률은 굉장히 컸다. 청결상태가 양호한 숙소에 머문다 해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특급호텔에서도 빈대에 물린 사람들이 가끔 나타났기 때문이다.

잠자리는 햇빛이 드는 쪽으로 선택하라. 침대 모서리와 머리 뒤편, 매트리스 이음매, 굽도리널 밑을 살펴라. 벽에 걸린 액자나 달력, 시계 뒤편을 살펴라. 빈대 퇴치를 위한 도구들을 동원하라. 이 정도가 그가 알아낸 대처법이었다. 그는 빈대에 관한 파일을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파일은 점점 두툼해졌다. 며칠 후, 그의 집에는 빈대 퇴치용품들이 하나씩 배달되었다. 레몬과 유칼립투스, 민트향의 아로마오일과 샤워용품들, 그리고 계피향 방향제와 진짜 계피 몇가닥, 티락스와 비오킬 등 빈대를 쫓는 스프레이형 약품까지.

“차라리 담배를 피워.”

아내가 말했다. 그는 담배를 끊은 지 오래였지만, 담배가 빈대 퇴치에 효과가 있다면 기꺼이 다시 피울 생각도 있었다.

“모기향도 가져갈까? 매트 갈아 끼우는 걸로.”

아내가 거들었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모기와 빈대는 엄연히 달랐다. 빈대를 모기나 이, 벼룩과 같은 종류로 묶는 것은 곤란하다. 빈대는 그냥 벌레가 아니라 노린재목 빈댓과에 속하는 곤충이기 때문이다.

“곤충이라고? 빈대가?”

“그래. 곤충 중에 흡혈습성을 가진 건 별로 없는데, 좀 특이한 경우지.”

빈대는 복잡했다. 그는 조금씩 빈대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빈대는 일반적인 흡혈벌레와 달리 숙주에 직접 기생하지 않는다. 대신 숙주의 공간에 서식하며 밤이 되면 기어나와 숙주를 뜯는다. 그래서 빈대를 퇴치하려면 자신의 영역을 먼저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향기들이 효과가 있대? 그게 빈대가 좋아하는 향이야?”

“무슨 소리야, 빈대가 싫어하는 향이지. 빈대가 기피하는 걸로 우리 몸을 코팅해야지.”

열심히 캐리어 내부를 들여다보던 아내가 하품을 했다. 그 역시 피곤이 몰려왔다. 하루종일 집밖으로는 한발짝도 나가지 않았는데도 여행정보를 구하고 준비하는 것만으로 육체적 피로가 몰려왔다. 졸음이 몰려오는 순간, 그는 오늘 아침에 커피를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요즘은 그렇게 커피 없이 지나가는 날들이 조금씩 생겨났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그는 브라질 싼토스를 내렸다.

 

여행 하루 전, 그는 동호회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많은 회원들이 그러듯, 내일이면 미지의 세계로 간다는 설렘과 두려움이 묻어나는 글이었다. 그는 소매치기, 전염병, 테러, 그리고 빈대와 싸워야 하지만 그래도 설렌다고 적었다. 더불어 빈대 퇴치를 위해 10만원을 투자했다고도 적었다. 실제로 아로마오일부터 연고, 의약품까지 사는 데 10만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이게 모두 동호회의 정보 덕분이라는 말도 잊지 않고 적었다.

그들 부부를 태운 비행기가 드디어 떠올랐다. 손바닥만한 창 아래, 그들의 일상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내는 한껏 들떠서 와인을 계속 주문해 마셨다. 그 역시 들떠 있었으나, 아침에 공항 라운지에서 확인한 댓글이 마음에 걸렸다. 그가 남긴 글 밑에 열두개의 댓글이 붙어 있었다. 회원들은 주로 그의 준비력을 칭찬하거나, 좋은 여행을 응원하거나, 혹은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글들을 달아놓았다. 딱 하나만 예외였는데, 그의 뇌리에는 그 댓글만 남았다.

‘빈대는 복불복입니다.’

그는 숙소를 옮길 때마다 두개의 쏘프트캐리어에 스프레이형 빈대 퇴치제를 흠뻑 뿌렸다. 빈대가 싫어하는 향의 바디워시로 샤워를 하고 빈대가 싫어하는 향의 바디로션을 바르고 빈대가 싫어하는 향의 아로마오일을 베개와 침대 시트, 이불 등에 뿌렸다. 매트리스 이음매나 벽지 틈새, 그리고 액자 뒤를 살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행이 중반을 넘어설 무렵, 아내가 말했다.

“우리 여행의 테마는 빈대로군!”

아내의 피로는 빈대 때문이 아니라, 빈대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남편 때문이었다. 아내는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얼마 쉬지도 못하고 다시 보충수업을 하러 학교에 나가야 했다. 그는 그런 아내에게 미안해졌다.

유난을 떤 덕분에 그는 빈대를 만나지 않았다. 물론 누구 말마따나 빈대는 복불복이었으니 운도 따라준 셈이었다.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공항에서 확인한 인터넷 기사만 아니었다면 그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만이라도 평온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기사를 보았고, 기사는 그의 막연한 두려움을 활자와 사진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도 이제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2006년부터 간헐적으로 빈대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최근에는 그런 사례가 더 잦아지고 있었다. 2006년 9월 기숙사, 2006년 11월 집단수용소, 2006년 12월 스포츠팀 합숙소, 2007년 3월 호텔 객실…… 가장 최근의 피해사례는 겨우 며칠 전 날짜로 기록되어 있었다. 뉴욕에 거주하던 여자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온몸을 이름 모를 벌레에게 뜯겼다. 그 여자는 질병관리본부로 그 벌레의 사체와 유충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여느 벌레가 아니라 곤충이었고, 흡혈곤충, 그러니까 빈대였다. 여자의 수화물에 붙어 뉴욕의 슈퍼빈대 몇마리가 함께 들어왔던 것이다. 기사에는 뉴욕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 빈대들의 사체 몇구가 점처럼 박혀 있었다.

비행기가 몇천피트 상공으로 솟아오르자 그의 심장이 또 쿵쿵 뛰기 시작했다. 수십만마리의 빈대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국경을 검색 없이 통과하고 있다고, 아내에게 그렇게 말하던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내가 성난 얼굴로 그를 쏘아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빈대처럼 박혀 있는 별들 사이를 지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몇주 후 아내는 보충수업을 하러 다시 학교로 나갔다. 그는 실업급여가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한 후, 다시 여행 전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그들의 짐에는 빈대가 딸려오지 않았다. 그가 매일 아침 청소기를 돌렸기 때문에 바닥은 늘 말끔했고, 거실에는 커피향이 기분좋게 맴돌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아내가 집 곳곳에 머리카락을 흘려놓는 것만 빼면 그로서는 평온한 일상이었다.

그는 지역 소식을 알리는 신문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그 신문에서 다시 그들을 만났다. 빈대였다. 그는 뉴욕에서 돌아온 여자의 오피스텔이 신촌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집도 신촌에 있었다. 며칠 후 그는 그 오피스텔이 자신의 집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임을 알았다.

사건 이후, 그 피해여성은 이사를 갔다. 피해여성과 빈대들과 같은 층에 살았던 사람들도 모두 방을 비웠다. 사람을 내쫓고 들어앉은 빈대들은 피 냄새를 찾아 이리저리 새로운 숙주의 방향을 가늠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보통 성충은 실온에서 1년 정도 살 수 있고, 봄에는 60일, 겨울에는 175일까지 굶으면서도 생존이 가능하다. 그는 기사를 추적하면서 여행중에 사온 커피를 꺼냈다. 봉투 뜯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 안에는 윤기나는 갈색 커피콩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커피콩을 한주먹쯤 꺼내면서, 그는 처음으로 커피와 빈대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둥글납작한 빈대가 이 커피콩처럼 통통해지려면 피를 빨아야 한다. 굶은 빈대는 쌀알만하다. 다 자란 빈대의 몸길이는 5~8mm정도로 앞날개는 매우 짧고 뒷날개는 퇴화했으므로, 사실상 날개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엄지와 검지로 주워든 커피콩 위로 짧은 털이 솟아나고, 커피콩의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어린 벌레는 다섯번 탈피해야 어른 빈대가 된다. 커피콩이 다섯번 벗겨진다. 암컷은 하루 5개가량, 지름 1mm크기의 알을 낳는데, 열흘 정도가 지나면 부화한다. 일주일 후에 피를 빨 수 있으며, 6~8주 후에 다 자란 벌레가 된다. 이 둥글납작한 흡혈귀는 피를 빨면 몸 전체가 핏빛으로 물들고 복부가 크게 팽창한다. 그래서 이 커피콩처럼 통통해진다. 빈대는, 커피는, 빈대는, 커피는, 그는, 커피를 떨어뜨렸다. 갈색의 통통한 콩들이 와르르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무릎을 꿇고 커피콩을 줍기 시작했다.

그는 커피잔을 들고 컴퓨터 앞으로 갔지만, 커피는 한모금도 줄지 않았다. 처음으로 집안 가득한 커피향이 역하게 느껴졌다. 그는 창문을 열고, 식은 커피를 개수대에 부어버렸다. 그의 머릿속을 빈대가 점령한 것 같았다. 다시 지역신문을 펴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컴퓨터로 다른 지역신문 기사들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세상은 빈대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뉴욕은 몇년 전에 빈대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그 당시 뉴욕의 빈대 수는 2차대전 이래로 가장 많았다. 빈대와의 전쟁을 선포하거나 적어도 빈대에 주목하기 시작한 도시는 뉴욕뿐만이 아니었다. 빈대 퇴치운동을 시 단위로 전개한 곳도 있고, 빈대 때문에 마을 전체가 폐쇄된 곳도 있었다. 어느 대륙을 막론하고 빈대는 들끓었다.

갓 태어난 아기 빈대가 사람의 피를 빨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겨우 일주일이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 수가 점점 감소하는 반면, 빈대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다산(多産)은 우리의 단산(單産)을 불안하게 한다. 빈대는 이제 전쟁지의 막사, 낯선 여행지의 허름한 숙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옷, 누군가의 양말, 누군가의 침대, 누군가의 소파를 타고 빈대는 이제 어디로든 간다. 헝겊에 들러붙은 채 기차도 타고 비행기도 탄다. 특급호텔도 가고 기숙사도 간다. 그리고 이제, 여기까지 왔다.

다시 24인치 캐리어가 등장했다. 그는 캐리어 안에 넣어두었던 여행소품들, 그러니까 티락스니 비오킬이니 하는 빈대 퇴치용품과 레몬, 유칼립투스향의 오일들을 꺼냈다. 마룻바닥에 캐리어를 눕혀놓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여행을 준비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행이 아니었다. 일상이었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그는 아침을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여행 전과 비슷한 일과였지만, 시간은 한참 더 걸렸다. 여행 전에는 두시간이면 가능했던 것이 이제는 그 배나 걸렸다. 모든 청소를 마치고 나면 다시 배가 출출해졌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오후 2시가 가까웠다. 나머지 한나절은 인터넷이나 책, 신문을 보며 빈대에 대해 알아보는 것으로 지냈다. 빈대에 관한 정보를 알면 알수록 그의 청소시간은 길어졌다. 빈대는 그에게 세상에 대해 알아가도록 자극하는 매개체, 연결고리나 다름없었다. 그는 빈대를 통해 청소법을 알았고, 빈대를 통해 요리법을 알았고, 빈대를 통해 부동산을 알았고, 빈대를 통해 이웃들을 알았다.

그가 살고 있는 빌라는 빈대소동이 벌어진 오피스텔로부터 반경 1km거리에 있었다. 지하1층부터 4층까지, 총 10세대의 빌라 사람들도 대부분 그 빈대 소동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니, 대부분은 아닐지라도, 매일 아침 무료로 배포되는 지역신문을 빌라 안쪽 우편함에 넣어두는 B102호 노인은 알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쿠폰 때문에 지역신문을 꼼꼼히 들춰보는 102호 여자도 알고 있을 확률이 컸다. 202호 대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저번에 빌라 전체를 소독하려고 방역업체를 불렀을 때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걸 보면, 이런 문제에 둔감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302호, 옆집 남자도 알고 있을 확률이 컸다. 302호 남자는 그와 동선이 비슷했다. 302호 남자 역시 백수였다.

일주일에 한번씩 배달되는 지역신문은 전국신문이 놓치거나 생략한 이 동네 빈대들을 보다 소상히 다루고 있었다. 신문은 빈대의 흐름을 중계했다. 빈대들은 1km밖에서 이제 900m로, 또 800m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의 누군가는 인터뷰에서 초기대처가 중요하다고 했다. 집에서 빈대가 발견될 경우 섣불리 밖에 내다버리지 말고 반드시 본부에 신고해달라는 말이었다.

그는 마트에서 문풍지를 샀다. 문풍지이긴 했으나 바람보다는 벌레를 막기 좋은 제품이었다. 그는 그것을‘빈대가드’라고 불렀다. 그가 마트를 나서서 집으로 걸어오고 있을 때, 빈대들도 그의 집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한걸음 한걸음 가까워질 때마다 빈대들도 몇쎈티미터씩 새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빌라를 쳐다보았을 때, 3년 동안 살아온 그 건물은 어쩐지 낯설었다. 두시간 전,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어색하고 낯선 기운이 그 붉은색 건물 안팎에서 느껴졌다. 전운이 감돌았다.

그는 창문과 방문, 그리고 현관문의 틈새에 빈대가드를 붙였다. 그리고 3층 복도에 나 있는 창문 틈에도 설치했다. 붙여놓은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비가 많이 내린 다음날, 복도의 문풍지는, 아니 빈대가드는 똑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그가 동선이 같은 302호 남자와 마주쳤을 때, 302호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와 302호 남자는 빌라가 바라보이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아이스바를 깨물었다.

“그 댁 문단속 좀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 말씀입니다. 신문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놈들은 이 집 저 집 가리지 않아요. 벽을 공유하고 있는 한, 이건 빌라 공통의 문제다 이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 동네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고, 국가로까지 확대시킬 수도 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과는 별로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혹시……”

“그러니까 우리는 공통의 적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뚝, 302호 남자가 아이스바를 우직하게 깨물었다. 마치 무언가를 분지르듯이. 그도 크게 한입, 아이스바를 베어물고서 302호 남자를 바라보았다. 혹시 신문을 보았느냐고 물어볼 생각이었다.

“혹시, 일전에……”

“예, 제가 그랬습니다.”

“무슨…… 뭘 말입니까?”

“빈대 막으려고 문풍지 붙이셨죠? 킹마트에서 파는 거. 그거 제가 떼어낸 겁니다.”

“예?”

그는 당혹감을 감추기 위해 크게 아이스바를 깨물었다. 302호는 굵은 저음으로 계속 말했다.

“언제고 조만간 찾아뵙고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오늘 우연히 이렇게 마주치게 되긴 했지만. 이사 오신 지 3년 넘으셨죠?”

그는 왜 빈대가드를 떼어냈는지 이유도 물어보지 못하고, 302호 남자의 말에 휩쓸려가고 있었다. 302호 남자는 이 상황은 보다 거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시적으로?”

“아, 그러니까 그 댁 문틈을, 복도 창문 틈을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말입니다. 빈대라는 건 벽과 벽 사이를 타넘으니까요. 우리는 이미 같은 벽을 공유하고 있는 겁니다. 같은 벽을, 그러니까 같은 적(敵)을! 빈대는 인간의 몸이나 가구, 가방 속에 붙어서도 충분히 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죠. 매일 이 빌라에 오는 우편물들 말입니다. 그 틈에 껴서 우리의 집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 겁니다. 또 학교, 회사, 아니면 이웃집이나 까페, 심지어는 택시에 한번 탔다가도 빈대를 들여올 수 있는 겁니다.”

빈대가드 이야기는 저만치 사라져가고 있었다. 어쨌거나 302호 남자는 그를 휘어잡고 있었다. 302호 남자가 아이스바를 먹고 남은 나무막대기를 벤치 위에 올려놓는 것을 보고, 그 역시 마지막 한입을 먹고 나무막대기를 302호 남자 것 위에 겹쳐두었다. 마치 성호를 긋는 듯했다. 302호 남자가 그를 쳐다보았다.

“아무데나 버리면 안됩니다.”

그는 얼른 그것을 주워들었다. 302호 남자가 버려둔 것까지.

 

개나 고양이를 기를 때도 이웃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다세대주택 거주자의 예의다. 하물며 이 집 저 집을 경계없이 드나드는 빈대에 대해서라면! 공동의 대책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이유로 이 거리의 반상회가 부활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뭉칠수록, 빈대들도 더 재빠르게 움직였다. 신문에 의하면 그 뉴욕여자의 오피스텔에서 시작된 건지 어떤지는 몰라도 빈대가 더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었다. 최근에 빈대가 점령한 아파트는 그의 빌라에서 겨우 반경 500m거리에 있었다.

일주일 후, 빌라 주민들 사이에서 빈대퇴치모임이 결성되었다. 모임 이름은 빈사세(빈대가 사라진 세상)였다. 주도적으로 모임을 추진한 사람은 302호였다. 가구마다 한명 이상은 꼭 출석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출석률은 의외로 좋았다. 그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빈대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였다. 그들을 뭉치게 한 힘은 같은 번지수를 가진 사람들, 같은 구조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유대감이었다. 그들은 같은 위치에 냉장고를 두고, 같은 위치에 가스레인지를 두고, 같은 위치에 세탁기를 두고, 같은 위치에서 용변을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같은 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첫 회의는 101호에서 다과를 곁들이면서 진행되었다. B102호 노인이 빈대에 관한 경험을 이야기했고, 누군가가 정주영 회장의 빈대에 관한 일화를 이야기했다. 유학시절에 빈대 때문에 룸메이트와 싸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도 직접 빈대를 겪어본 적은 없지만 이야기할 만한 자료들은 많았다. 그들의 토론이 깊어질수록 하나둘 몸을 긁적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회의가 끝날 무렵에는 발목이 벌겋게 부어오른 사람도 있었다. 빈대였다. 빈대가 아직 빌라 안으로 들어오기도 전에, 그들은 물릴 자리들을 미리 긁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몇몇은 근처 통닭집으로 몰려갔다. 사람들은 빈대 외에도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공통적인 요소들에 대해 푸념했다. 누군가는 빈대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이 모임을 유지하자고 말했다. 박수소리가 이어졌고, 곧 빈사세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쏟아져나왔다. 빈곤이 사라진 세상, 빈부격차가 사라진 세상, 빈정거림이 사라진 세상, 빈, 빈, 빈, 빈사세는 그렇게 밤이 깊도록 활용되었다.

빈사세는 보통 일주일에 한번씩 모였는데, 항상 술만 마신 것은 아니고 빈대에 대한 체험교육도 했다. 겪어본 사람만 안다는 빈대 특유의 냄새에 대한 훈련이었다.

“빈대의 가슴 부위에 있는 분비샘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나는데,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고대 동굴에서 빈대는 박쥐의 피를 빨아먹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박쥐의 간식거리인 먼지벌레붙이에게 빈대의 분비물을 바르면 박쥐가 먹지 않는다는 실험결과도 있었죠.”

그가 말했다. 빈대가 아주 많은 방에서는 방문을 열자마자 냄새가 풍긴다는데, 그러려면 일단 빈대가 아주 많아야 하고, 또 빈대 냄새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그 방문을 열어야 한다. 빈사세는 적을 이기기 위해 먼저 적을 알기로 했다. 빌라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 빈대 냄새에 대해 확실히 아는 사람은 단 두명이었다. 어릴 때 빈대를 숱하게 봐왔던 B102호 노인과 유학시절 빈대와 싸움을 벌여야 했던 402호 피아노선생이었다. 그들은 시장에서 구한 고수를 가지고 빈대 냄새에 대해 가르쳤다. 얼마 전에 홍콩 여행을 하고 돌아왔던 202호 대학생이 고수 냄새를 맡은 후 얼굴을 찌푸렸다.

“으, 매니큐어 냄새! 여행 가서 식사할 때도 전 이거 빼달라고 따로 부탁했거든요. 냄새가 너무 이상해서.”

집집마다 고수를 조금씩 나눠 가져갔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에 모두 거둬서 버렸다. 빈대 냄새에 얼마나 익숙해졌는지는 몰라도 빈대에 대한 거부감을 키우는 데는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빈사세에서는 알껍질과 탈피각, 그리고 배설물 등 빈대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단서들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그는 여행을 위해 준비했던 카메라와 저장장치를 총동원해서 빈대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는 데 투자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그가 청소해야 할 범위도 넓어졌다. 집은 그대로였지만, 청소해야 할 틈새는 계속 늘어났다. 그는 이제 하루에 두세번씩 청소기를 돌렸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내의 동선을 따라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보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이불도 좀더 자주 빨았다. 햇볕에 이불을 소독하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보면 302호 남자가 멋쩍게 웃고 있었다. 그의 손에도 이불이 몇장 들려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빈대에 대한 대처가 이제는 초기단계가 아니라고 말했다. 집에서 빈대가 발견될 경우 섣불리 밖에 내다버리지 말고 반드시 전문가를 불러서 처리해달라고도 했다. 빈대는 이제 현실이었다. 102호 여자가 빈대에 물린 것이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것이 빈대인지 아니면 가을까지 활개를 친다는 모기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빈사세 사람들의 지식이 동원되었다. 그는 지난 여행 중에 야간열차에서 빈대에 물렸다는 사람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 여행객의 다리는 일렬로 세방, 혹은 네방씩 연달아 빈대에 뜯겨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다리를 예로 들며 빈대와 빈대 아닌 것에 물린 상처를 구별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때 얻은 지식이 이제 빈사세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빈대는 보통 3-4-3 이런 식으로 박자를 맞춰가면서 물죠. 세방, 네방, 세방, 이런 식으로요. 정확하게 몇쎈티미터 간격으로 물려 있다면 그건 거의 빈대입니다. 가운데 보면 침자국도 있을 거예요.”

꼭 그랬다. 그것은 누가 봐도 빈대였다. 그를 비롯한 몇사람이 빈대임을 확신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102호 여자가 약 바른 부위를 벅벅 긁으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어떻게 500미터 밖에서 갑자기 옮겨올 수가 있지? 그럼 이 동네에 다 퍼졌단 말인가요?”

102호의 말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사실은 지난 주말에 이미 옆골목이 접수됐대요. 다들 쉬쉬한 거죠.”

“왜요?”

“집값 때문에요!”

모두가 공감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 빌라에서도 또 하나의 비밀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302호 남자가 말했다.

“빈대는 3~6피트 이상은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설마 빈대가 도로 위를 이동해서 여기까지 왔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빈대는 생각보다 영리해서 수많은 도구를 이용합니다. 집집마다 배달되는 우편물, 중고물품, 그리고 운동화나 가방 같은 것에서도 묻어올 수 있죠. 결국 사람이 빈대를 운반해주는 셈입니다. 아, 동물을 통해서도 옮을 수 있죠.”

“102호 개요, 그 개가 숙주, 그러니까 통로였는지도 모르지. 자주 외출하잖아요, 온동네 다 돌고.”

그런 말이 들려올 때까지만 해도 102호 여자는 개를 끔찍이 끌어안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 102호 여자는 개의 몸 여기저기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였고, 급기야는 신경이 날카로워진 개를 몇 정거장 떨어진 동네에 데리고 가서 혼자 돌아왔다. 어쨌거나 그 행동에 대해서는 빌라 사람들 모두가 만족했다.

침대 매트리스를 바꿔도 빈대가 사라지지 않자 102호에서는 방역업체를 부르기로 했다. 소문이 나지 않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방역은 202호가 잘 안다는 업체에 맡겼다. 방독면을 쓴 사람들이 빌라 앞에 도착한 날, 102호뿐 아니라 모든 빌라 사람들이 계단 아래로 내려와 102호의 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방역업체 직원들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방역업체 직원들은 빈대가 발생한 방뿐 아니라 다른 방과 거실까지 모두 소독하기로 했고, 집안의 가재도구를 하나하나 수색하면서 외부로 내놓았다. 마치 이삿날 같았다. 김장날 같기도 했다. 전문가들이 문틈을 모두 막고 그 안에서 빈대와 싸우는 동안 그는 빌라 앞 벤치에 앉아 발을 땅에서 들고 있었다.

6시간 후, 사람들은 심호흡을 하면서 문을 열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빈대들의 시체를 먼지와 함께 쓸어 담았다. 도배도 새로 했다.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5일간.

 

소탕작전에도 불구하고 402호가 점령당했다. 그 집에서 아직 빈대에 뜯긴 사람은 없었지만 402호 피아노선생이 빈대의 유충으로 보이는 것을 휴지로 잡아냈던 것이다. 빈대의 유충이 있다는 것은 그곳에서 빈대들이 새 삶을 시작하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어른이 된 빈대보다 새끼가 더 무섭고 끔찍했다. 그 삶의, 생명탄생의 흔적이 이 터전 안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 두려웠다. 1층에서 시작된 빈대들이 2층과 3층을 건너뛰고 4층으로 갔을까. 밤마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군사작전이 교묘히 벌어졌다. 이제 그는 천장을 볼 때마다 위층에서 벌어지는 빈대들의 생존투쟁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 위로부터 쿵쿵쿵, 음계를 밟아가는 서투른 피아노 소리가 천장을 낮추며 내려왔고, 그의 집은 조금씩 눌리고 있었다. 마치 타원형의 납작한 몸, 빈대처럼.

빈대는 소문을 먹고 자라났다. 402호는 피아노로 빈대들의 귀를 멀게 하려는 듯이 격정적인 곡들을 자주 연주했다. 홈패션을 하는 201호는 최근 유독 자주 재봉틀을 돌리곤 했는데 며칠 후, 옷감뿐 아니라 자신의 팔에서 박음질 자국처럼 규칙적으로 돋아난 흔적을 발견했다. 402호가 그저 팔과 다리를 경미하게 물린 정도에 그쳤다면, 201호는 온몸을 중구난방으로 물렸다. 201호가 빈사세 모임에 나왔을 때, 그녀의 손가락은 퉁퉁 부어 있었다. 빈대에 물린 게 아니라 재봉틀 바늘에 찔린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빈대를 생포하라. 그것이 빈사세의 첫번째 특명이었다. 일단 빈대를 잡아 질병관리본부에 가져가서 정확한 종류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빈대를 생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들이 확보한 것은 유충 몇개, 그리고 방금 죽었지만 완전히 몸이 일그러지지 않은 사체가 전부였다.

빈사세 활동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모두가 빈대에 동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내는 빈대를 만만히 보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다른 일에 더 마음을 쏟고 있었다. 이를테면 집안의 재정상태나 2세 계획 같은 것, 그러니까 빈대를 제외한 모든 것들 말이다. 빈사세 모임에서 결의를 다지고 내려오자, 아내가 대출금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는 곧 그의 구직활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는 봄부터 출근하기로 약속된 회사가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곧 겨울이었고, 빈대가 극심한 계절이었다. 봄이 오기 전에 이 동네의 빈대들을 소탕하고, 새 일자리를 구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내가 말했다.

“겨울엔 빈대가 더 극성을 부린다던데.”

그는 찬물로 몸을 씻었다. 따뜻한 물로 씻으면 빈대가 달라붙을 확률이 더 컸다. 겨울철 빈대는 적당히 따뜻한 사람의 체온을 좋아한다. 빈대에 물리기 전에는 찬물로 몸을 씻는 것이 좋지만, 일단 물렸다면 아주 뜨거운 물로 씻는 게 좋다. 물리기 전과 물린 후의 대처법이 조금 달랐는데, 그는 물린 후의 대처법은 쓸 일이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찬물로 깨끗하게 몸을 씻고 나온 그는 아직 빈대가 출몰하지 않은 그들의 방으로 갔다. 침대 위에 누워 있던 아내가 그에게 몸을 기대왔다. 아내의 몸은 더웠다. 방 전체가 더웠다. 그는 보일러 온도를 조금 낮추기 위해 일어섰다. 아내가 조금 기분이 상한 듯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가 돌아왔을 때 아내는 감았던 눈을 떴다. 애써 낮춰놓은 몸의 온도를 아내는 다시 올려놓기 시작했다. 아내가 그의 위로 올라갔다. 위층에서 하농 연습곡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밤에, 피아노 건반이 무너질 듯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까지 끌어올린 이불 위를 음표들이 밟고 지나갔다. 도미라솔시라솔라 레파시라도시라시 미솔도시레도시도…… 한음씩 단계를 높여가며 반복되는 가락이 아슬아슬했다. 그 음표 위로 샵이 하나씩 올라가고 플랫이 하나씩 들러붙었다. 점점 무거워지는 악보만큼 박자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왼손 넷째와 다섯째 손가락의 힘이 부족해요, 손목에 힘주지 말고! 피아노 선생이 그의 앞에서 거친 박수를 쳐대고 있었다. 넷째와 다섯째 손가락은 점점 악보에서 도태되고 마침내 틀에서 벗어났다. 그는 그것들을 제 박자에 맞춰넣느라 열이 펄펄 끓었다. 그리고 겨우겨우 음표들을 악보 속에 몰아넣은 순간, 그는 깨어났다. 아내가 그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출몰한 것은 빈대, 빈대였다. 그가 놀라서 벌떡 일어서니, 아내가 한숨을 폭 쉬면서 말했다. 먼지야, 먼지.

 

그는 이제 커피를 내리지 않았다. 빌라 곳곳이 빈대에 먹힌 이상 한가롭게 커피향으로 후각을 둔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방안 어디선가 빈대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닐까 킁킁거렸다. 빌라 입구를 드나들 때는 옷자락이 벽에 닿지 않도록 조심했고, 우편물을 꺼낼 때마다 빨래를 걷듯이 탈탈 털었다. 지하까지 점령되자, 빌라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매트리스 세척을 하는 업체를 부르기로 했다. 이미 빈대에 먹힌 매트리스들은 버리고, 아직 먹히지 않은 것들은 소독하는 방법을 쓰기로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각종 도구를 들고 호기롭게 등장했다.

“침대에는 평균 200만마리의 진드기, 곰팡이, 박테리아가 우글거립니다. 특히 집먼지진드기는 침대를 집 삼아 사람의 비듬이나 피부 각질을 먹고 유해한 배설물을 쏟아내죠.”

“우리가 퇴치하기 원하는 것은 진드기가 아니라 빈댑니다.”

그가 말했다. 전문가는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 같은 맥락이죠.”

다 같은 맥락에서, 전문가의 빈대 퇴치가 시작되었다. 150도의 고온 고압 스팀, 자외선 살균, 아로마향 살포까지 몇단계에 걸친 작업이 끝났다. 며칠 후, 빌라 사람들은 이제 내성이 생겨 더 강해진 빈대는 결코 그전의 빈대나 진드기 따위와 다 같은 맥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들이 전문가를 초빙해서 얻은 것이라고는 빈대 외에도 신경써야 할 귀찮은 적들이 많음을 깨달은 것과, 자신들이 빈대와 싸우고 있다는 소문이 동네 전체에, 그것도 지역신문 기자에게까지 퍼진 것뿐이었다.

똑.

그는 빈사세 모임에 다녀온 후, 자기도 모르게 방문의 잠금장치까지 누른 것에 대해 놀랐다. 아내가 왜 그것까지 잠그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도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여하튼 잠금장치는 중요했다.

그는 밤마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처럼 사명감을 띠고 추적했다. 지구 핵까지 뚫고 들어가는 빈대들의 흐름을. 마치 문맥을 읽듯이, 한단어, 한단어, 한마리, 한마리. 그는 잠들 수 없었다.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밤과 새벽을 가르는 정확한 경계는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을 때에야 들렸다. 오토바이 멈추는 소리, 누가 계단을 뛰어오르는 소리, 신문배달부가 움직이는 소리가 밤을 정리하고 새벽을 불렀다. 문을 열면 그날 신문에 빈대가 나와 있었다. 그는 점점 야행성이 되어갔다. 여행을 다녀온 지 석달이 다 되어가는데 시차 탓을 할 수는 없었다. 이제 아내와 그 사이에는 엄청난 시차가 존재해서 부부는 어느 순간부터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았다. 아내가 출근할 즈음에 그는 잠들었고, 아내가 잠들 즈음에 그는 깨어 있었다.

퇴근 후 돌아와서 아내가 발견하는 것은 빈대를 막기 위해 그가 설치해놓은 수많은 소탕작전의 흔적들뿐이었다. 빈대를 없애기 위해 놓인 그것들로 인해 아내는 빈대의 존재를 떠올렸다. 빈대 퇴치약병에 그려진 그림을 통해 빈대의 생김새를 알고, 남편이 인쇄해둔 정보들을 통해 빈대의 습성을 알았다. 그리고 빈대를 막기 위해 준비해둔 많은 약품들을 보며 빈대의 취향을 배웠다. 빈대 없음을 바라는 그 모든 행동들로 인해 아내는 빈대를 느꼈다. 무엇보다도 남편의 눈빛에서 빈대를 느낄 수 있었다. 집안에 빈대 관련 용품들이 늘어날수록, 그것들이 차지하는 면적만큼이나 빈대들이 늘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집은 하나의 거대한 곤충도감이 되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침대 위치를 조금 바꾼 후, 누우면 바로 얼굴이 오는 곳에 천장등과 연결된 끈을 내려뜨려두었다. 빈대가 오는 듯한 느낌이 들면 바로 잡아당겨서 재빨리 불을 밝히려는 의도였다. 아내는 그 끈을 보면서 올가미 같다고 생각했다. 어둠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어쩐지 돌처럼 굳어질 것 같아 먼저 시선을 돌렸다.

 

“조문지효라고 들어봤습니까.”

B102호 노인이 말했다. 빈대에 온몸을 뜯긴 몇사람이 참석하지 않아 빈사세는 조금 단출해졌다. 그러나 이미 물린 사람들이 꼬박꼬박 나오지 못하는 것을 다른 이웃들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들은 어쩌면 몸에 알을 까고 있을지도 모르는 빈대들을 완벽히 죽여야 했다. B102호 노인 역시 빈대에 물렸지만, 꿋꿋이 계속 모임에 나왔다. 다만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말을 이었다.

“예전에 효자들은 부모가 잘 방에 미리 들어가서 잠을 잠으로써, 모기나 벼룩, 빈대 들을 배불리하고 나오곤 했지. 그러면 배부른 빈대들이 부모 피를 탐하지 않거든. 이를테면 숙주를 내세우는 방법이랄까.”

그것은 오래전 어느 섬마을에서 시도해서 성공했다는 비법이기도 하고, 유학생들이 어렵게 터득한 비법이라고도 했다. 노인의 아들이 밴쿠버에서 4년, 뉴욕에서 5년을 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슈퍼빈대에 관한 정보를 많이 안다고 했다. 빈대가 좋아하는 미끼를 끈끈한 점액에 섞어서 온몸에 바르면, 빈대는 그 향을 맡고 들러붙다가 영영 그 숙주의 피부 표면에서 떨어질 수 없게 된다. 이를테면 꿀독에 빠진 개미처럼. 일주일 내에는 그 건물의 빈대들이 모두 거대숙주에게 달라붙는다. 그대로 빈대를 생포하게 되는 것이다. 거대숙주가 빈대를 온몸에 달고 그 마을을 떠나 구역 밖의 목적지에 갖다버리고 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노인이 말했다.

“빈대 퇴치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미끼를 이용한 방법을 쓰기 때문이지. 빈대는 사람 피를 섭취하니까. 그래서 미끼와 인간의 몸을 하나로 합쳐놓는 방법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거대숙주 요법인 게지. 그러니까 거대숙주는 다른 게 아니라, 인간일세. 빈대를 한사람에게 몰아버리는 거지. 인간 끈끈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 그거네요. 근데 누가 해요?”

202호 대학생의 말에 모두들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는 TV에서 가끔 보았던 벌이나 거미, 전갈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특이한 취향 때문에 자기 눈과 혀를 그들의 사랑에게 물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몸뿐 아니라 마음이라도 내줄 각오로 그들의 사랑을 온몸에 받아들였다.

그는 침묵하다가 주목을 받을까 두려워서 입을 열었다.

“그럼, 거대숙주는 죽습니까?”

“허허, 죽지 않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울 수야 있나. 다만 아무리 빈대가 끈끈한 점액에 파묻혀서 못 움직인다고 해도 처음에 무는 것은 어쩔 수 없어. 그러니까 미칠 듯이 가려운 것은 참아내야 할 걸세. 피부에 흉도 조금 남겠고. 그러니까 너무 여린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거대숙주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야.”

빌라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피부를 일정기간 동안 내던질 거대숙주가 필요했다. 거대숙주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피부가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피한다.

2. 면역력, 체력이 강해서 2차 질병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적은 사람이어야 한다.

3. 대담하거나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이어야 한다.

4. 적어도 일주일간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한집에서 한명씩, 거대숙주 후보를 내세워야 했다. 날마다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은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거대숙주가 되면 적어도 일주일의 잠복기 동안 외부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옆 건물에 가서 잠복기를 보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거대숙주와 상의할 일이지만, 그 외부는 멀면 멀수록 좋았다. 빌라 사람들은 거대숙주가 보낼 일주일간의 비용을 분담하기로 했다. 물론 거대숙주의 가정에서는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모두 아홉 가구에서 한집당 100만원씩, 총 900만원이 모인다는 가정하에 계획이 진행되었다.

거대숙주는 강하고 용맹해야 했다. 바퀴벌레 하나에도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면 곤란했다. 따라서 겁이 많은 사람들도 제외되었다. 거대숙주는 몸을 빈대들의 숙소로 제공해야 하므로 피부도 건강해야 했다. 아픈 사람, 연약한 사람도 제외되었다. 내세울 인물이 한명도 없는 가정에서는 비용을 좀더 부담하기로 했다. 그렇게 열집에서 총 다섯명의 후보가 나왔고, 나머지 다섯집에서는 돈을 조금씩 더 내서 250만원이 추가로 모아졌다. 투표 끝에 다섯명 중 하나가 당선되었다. 302호였다. 일단 현재 직업이 없고, 돈이 필요했고, 가족도 멀리 살기 때문에 가장 적합할 것 같다는 평이 뒤따랐다. 게다가 302호 남자의 피부는 아주 질겼다. 그러나 며칠 후, 302호 남자는 빈사세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저, 취직했습니다. 모레부터 출근인데……”

그들은 또 한번 대책회의를 열고 새로운 숙주를 구해야 했다. 그새 빌라의 빈대들이 더 퍼졌기 때문에 지체할 수가 없었다.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시선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그였다.

그는 출근하지 않으면 안될 회사가 없었고, 특별히 돌보아야 할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피부는 적당히 두꺼웠고, 겨울이 끝날 때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빈대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다. 그에게는 하룻밤의 고민할 시간이 주어졌다. 만약 그가 거절한다면 암암리에 숙주로 활동할 사람을 외부에서 찾아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 밤, 그는 빌라의 구조를 생각해보았다.

 

2

 

빈대가 규칙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 다음 차례는 3층이 될 것만 같았다. 그는 어차피 뜯길 거라면 빈대가 찾아오기 전에 먼저 그들을 찾아가자고, 무모하지만 용감한 생각을 해보았다. 빈대 걱정을 하며 집안에 틀어박혀 있기보다는 행동하는 편이 나았다. 빈대가 그의 집 벽과 이불에 알을 까기 전에 그들을 차단하자.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일을 하면 많은 혜택이 따라왔다. 그의 집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가구에서 모두 1150만원을 모아서 그에게 주었다. 그 돈으로 그는 비즈니스석을 타고 날아가 최고급 리조트에서 일주일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고도 돈이 남을 수도 있었다. 일주일 동안 그가 몸을 던져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예전에 직장 다닐 때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컸다. 그는 누운 채로 눈을 감았다. 벽과 천장과 바닥이 모두 얇은 기름종이처럼 느껴졌다. 그 얇은 벽을 타고 소리들이 들려왔다. 어쩌면 소리를 타고 빈대들이 움직이는지도 몰랐다.

새벽에 재봉틀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201호 여자가 재봉틀을 돌릴 리는 없었지만 분명히 노루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윗집 혹은 아랫집, 벽을 맞대고 있는 공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가 그의 온몸을 침대에 고정시켰다. 부르르 바닥을, 벽을, 천장을 통과하는 긴 호흡은 건물 벽을 뿌리째 흔들었다. 그는 이제 재봉틀 바늘이 돌아가는 소리만으로도 노루발이 어떤 길을 가는지 그릴 수 있었다. 시접에 여유분이 없어 아슬아슬하게 달려가는지, 거칠고 두툼한 데님 종류 위를 터덜터덜 걸어가는지, 순면인지 면과 폴리 혼방인지, 소맷부리나 네크라인 부분을 둥글게 말아가는 중인지. 어둠속에서 재봉틀은 끝을 갈퀴처럼 날카롭게 만든 노루발을 달고 있었다. 노루발은 그를 침대에 고정시키고 몇초 간격으로 뾰족한 바늘을 쏘아댔다. 북집에 걸려 있는 이 빌라 사람들의 신경이 한올 한올 방향 없이 풀려나가고, 결국 그는 반으로 접힌 채 솔기 한끝부터 다른 한끝까지 완전히 봉합되었다.

빈대다!

그는 눈을 번쩍 떴다. 방금 무언가가, 그러니까 5mm의 납작한 그것이, 피를 빨아먹으면 몸이 둥글게 부풀어오르는 그것이 자신의 팔뚝 위를 지나간 것이다. 그는 재빨리 얼굴에 드리워진 끈을 잡아당겼다. 빈대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그의 몸 위로 몇가닥 침범한 아내의 머리카락이었다. 검고 긴,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은 그의 팔뚝 아래로 혹은 위로도 뻗어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뒤엉킨 머리카락을 바로잡아주려고 했다. 그러나 한움큼 집어들기가 무섭게 다시 떨어뜨렸다. 한때 라푼젤의 머리카락처럼 그를 침대로 불러들이던 머리카락이 지금은 빈대의 온상, 서식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구불구불하게 베개 밖으로 뻗어 있던 아내의 머리카락 속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용수철처럼 침대에서 튀어올랐다.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 빈대와 머리카락의 관계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었다. 급했다. 10분 만에 그는 젖은 머리로 그냥 베개에 눕는 행동은 빈대 퇴치에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내는 머리를 감고 나서 완벽히 말리고 잠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축축한 아내의 머리카락이 메두사의 머리처럼 보였다. 그 틈에 빈대가, 아니 빈대 아닌 무엇이라도 충분히 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가 머리카락을 창밖으로 늘어뜨리면, 그걸 타고 놈들이 올라올지도 모른다. 이제는 빈대 아닌 것들도 다 빈대로 보인다는 것, 그게 문제였다.

그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아내의 머리카락이 삼손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아내의 머리카락이 빈대들의 힘의 원천이 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잘랐던 데릴라처럼 자신도 가위를 들고 아내의 머리카락을 잘라야만 평화가 올 것인가, 생각했다. 코끝에서 천장등과 연결된 끈이 구원의 동아줄 혹은 썩은 동아줄처럼 간질간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부여잡기로 했다.

 

거대숙주가 되기 하루 전, 그는 교회와 성당과 절에 다녀왔다. 그는 종교가 없었지만, 이웃들 중에는 종교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그들 모두의 희망을 종합해서 그는 바쁘게 움직였다. 그날 오후, 동네의 소소한 소식을 다루는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다. 그들의 거대숙주 요법이 성공한다면, 이것은 특종이 될지도 몰랐다. 어쩌면 직업적으로 거대숙주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아내가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아내는 그를 거대숙주로 보내는 것에 대해 특별히 슬퍼하지도, 말리지도 않았다. 다만 이 소동이 끝나고 나면 봄부터는 새롭게 시작하자,고 말했을 뿐이다.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자는 건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와서 그에게 약병을 건넸다.

“그러니까 일종의 페로몬 같은 걸세. 암수 모두에게 반응하지.”

“빈대를 유인하는 페로몬?”

“빈대를 유혹하는 페로몬이라고 해야겠지. 끈적끈적하기 때문에 한번 이 냄새를 맡고 숙주의 몸에 들러붙은 빈대들은 헤어날 수 없네.”

몇사람이 그 액체에 코를 들이댔다.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얼핏 고수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지만, 그것과는 또 달랐다. 그냥 무향무취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를테면, 바람의 냄새. 바람의 냄새였다. 빈대 페로몬으로 그는 몸을 씻었다. 빈대 페로몬으로 머리를 감고, 빈대 페로몬으로 이를 닦았다. 빈대 페로몬으로 족욕을 하고, 세수를 했다. 그리고 남은 페로몬을 매트리스에 가득 뿌렸다. 그는 빈대들의 은신처가 될 매트리스를 몸 앞뒤로 붙이고, 피해가구들로 들어갔다. 앞뒤로 매트리스를 둘러매자, 정말 한마리의 거대한 벌레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대숙주 같았다.

피해가구의 사람들은 최소한의 도구들을 챙겨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 있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아직 피해를 입지 않은 가구들도 대부분 집을 비워두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자신의 몫이 된 공간에서 페로몬을 온몸에 규칙적으로 바르며 빈대들을 기다렸다.

하루가 지났고, 또 하루가 지났다. 빈대를 더 잘 끌어들이기 위해 커튼을 쳐두었다. 햇빛을 차단한 실내에서 그는 마구 뒹굴었다. 다행히 텔레비전에서는 24시간 내내 즐거운 프로그램들이 흘러나왔고, 냉장고 속에는 맛있는 간식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빈대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를 홀가분하게 했다. 확실히 빈대를 퇴치하는 것보다는 유인하는 것이 더 쉬웠다. 최근 몇달간 그가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누린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는 걱정없이 먹고 마셨다. 편안히 잠을 잤고, 간지러움에 온몸을 벅벅 긁으면서도 더이상 두려울 게 없다는 위안으로 포만감을 느꼈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휴식이 빈대들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그는 3~6피트 정도만 움직였다. 끼니때마다 진수성찬을 배달시켜 먹었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DSLR로 그의 몸을 찍었다. 카메라와 넷북, 그리고 저장장치는 빈대들과 함께하는 이 시기에도 참 유용했다. 빈대 소동에 시큰둥하던 아내에게서도 응원의 문자가 왔다. 문자가 온 그날 밤에 그는 아내를 생각했다. 아내는 학교 근처의 친정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가 최근에 읽은 어떤 책에 의하면 빈대들은 하루에 200번이 넘게 성관계를 갖기도 한다. 수컷은 송곳처럼 뾰족한 생식기로 암컷의 심장을 찌르기도 한다. 수컷의 생식기는 정확하게 암컷의 생식기에 닿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래도 수정이 가능하다. 암컷의 등이며 배며 생식기며 구분없이 들어간 수컷의 정액은 암컷의 혈관 어딘가에 숨어서 겨울을 난다. 그리고 봄이 되면 암컷의 몸 곳곳에 있던 그 정자들이 본능처럼 암컷의 난자를 찾아간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을 아내를 생각하며 빈대처럼 원격사정을 시도했다. 아내는 모를 것이다.

그를 깨운 것은 아침 햇살이나 알람소리가 아니라 가려움이었다. 팔뚝에 세개의 반점이 같은 간격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제 막 떠오르는 북두칠성처럼 보이기도 했다. 별은 밤마다 그의 팔 위에서 돋아났다.

3-4-3. 빈대였다.

4-3-3. 드디어 빈대였다.

3-3-3. 역시 빈대였다.

3-4-3. 2-4-3. 3-4-4. 4-3-2. 빈대는 그의 팔뚝을, 그의 허벅지를, 그의 종아리를, 심지어는 그의 등과 목과 얼굴을 악보 삼아 음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빈대는 그의 팔뚝을, 그의 허벅지를, 그의 종아리를, 심지어는 그의 등과 목과 얼굴을 천 삼아 재봉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그는 꽤 많은 빈대를 매트리스에 모을 수 있게 되었다. 거대숙주가 방을 빠져나오자 거대숙주의 페로몬 냄새에 중독된 빈대들이 함께 방을 빠져나왔다. 페로몬이 그의 땀과 피 냄새와 섞이면서 더 큰 효과를 냈다.

 

다음날 아침, 그는 길을 떠났다. 그의 가방 속에는 300만원의 빳빳한 현금과 왕복항공권, 그리고 숙소 예약을 증명하는 바우처가 들어 있었다. 그가 선택한 곳은 태평양의 한 섬이었다. 그는 그곳에 가서 빈대 붙은 매트리스를 불태우고, 새 물을 받은 스파에서 몸을 씻으며 일주일간 잠복기를 보낸 다음, 집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는 남태평양의 원두커피는 어떤 맛일까 생각하며 심호흡을 했다.

누구도-심지어 아내조차도-그를 배웅하지 않았다. 그는 빌라 문 앞에 있던 지역신문을 한부 집어들었다. 그가 공항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을 때, 거리는 유독 고요했다. 모든 창문들은 닫혀 있었고, 거리에는 고양이 한마리 지나가지 않았다. 공항버스 한대가 한적한 도로를 뚫고 달려왔지만, 버스기사는 그를 태우기 전에 누군가와 통화를 해야만 했다. 그는 다행히 짐칸이 아니라 버스좌석에 올라탈 수 있었다. 버스 안에 있던 승객 몇사람이 그가 지나갈 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아침에 챙겼던 지역신문을 펼쳐서 얼굴을 가렸다. 오랜만에 본 지역신문이었는데, 빈대에 대한 소식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그의 이름이 있었다. 부고란이었다. 동명이인이었지만 어딘지 기분이 묘했다.

버스가 출발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온 빌라의 빈대들을 몸에 착 붙이고 있는 지금보다 더 최악의 상황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제 더 두려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이 생겼다. 그 사실이 그를 쉬게 했다. 안식은 그렇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