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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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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殷熙耕

1959년 전북 고창 출생.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등이 있음. silverpaperbox@gmail.com

 

 

 장편연재 1

태연한 인생

 

 

제1부 이야기의 세계

 

1. 류의 서사

 

아주 오래전 어느 봄날 류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공중전화부스의 유리에 기댄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가냘픈 몸매에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연녹색 원피스와 흰 스웨터 차림이었다. 한 손으로 전화기를 귀에 대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그녀의 얼굴은 희고 투명했다. 옆구리에는 책과 노트를 끼고 있었다. 속눈썹이 긴 그녀의 눈은 꿈꾸듯 먼 허공을 보았고 입술은 장미꽃잎처럼 윤기가 흘렀다. 상아로 깎은 듯한 턱이 살짝 위로 들려서 목선을 한층 우아하게 만들어주었다. 두 뺨은 복숭앗빛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말을 할 때마다 그 위로 검은 단발머리가 조금씩 출렁거렸다. 류의 아버지는 그 눈빛과 뺨과 입술의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상대의 말을 들을 때 그녀는 밤색 구두의 앞부리를 들고 굽으로 바닥을 가볍게 톡톡 쳤다. 숙인 얼굴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면서 뒷목의 작고 둥근 뼈가 드러났다. 갑자기 그녀의 동작이 멈췄다. 다음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고, 그런 다음 조용히 웃음을 지었을 때, 그리고 그녀의 얼굴 가득 그 웃음이 퍼져나가면서 마치 봄 햇살이 비쳐든 듯 갑자기 전화부스 안이 환해졌을 때, 엄청난 볼티지의 전율이 류의 아버지의 심장을 강타했다. 그녀로부터 흘러나온 그 강력한 빛은 순식간에 류의 아버지가 서 있는 곳까지 뻗어와서 그의 두 발목을 꽉 붙잡았다.

그곳은 대학교 앞의 버스정류장이었다. 류의 아버지는 물론 자기의 집 방향과 상관없이 그녀가 타는 버스에 뒤따라 탔다. 그날이 류의 부모가 처음 만난 날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아버지는 졸업반인 어머니보다 한 학년 아래였다.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어머니에게 애인이 있다는 점이었다. 어머니는 마음을 쉽게 바꾸지 않는 순정파였다. 그것은 오히려 류의 아버지가 사로잡힌 맹렬한 불꽃에 산소가 포화된 바람을 불어넣었다. 아버지의 갈망은 산불처럼 타올랐다. 즉각 자신의 모든 낭만적 기질과 무분별한 행동력을 총동원한 끈질긴 헌신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를 뒤따라다니는 아버지의 모습을 전교생이 목격할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술 취한 사람처럼 웃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몽유병자처럼 홀려 있었고 장님처럼 맹목이었다. 결과는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류의 어머니는 물론 어머니의 부모에게도 받아들여져서 약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류의 어머니가 졸업을 하고 재벌회사의 비서로 채용된 다음해까지도 아버지는 취직을 하지 못했다. 집안의 도움을 받을 처지도 아니었다. 류의 어머니는 두 사람이 함께 유학을 갈 수 있도록 끈질기게 부모를 설득했고 마침내는 허락을 받았다. 결혼식을 올린 뒤 난생처음 타보는 비행기 창을 통해 발밑의 구름을 내려다보는 순간에는 인생의 절정에 오른 기분이었다. 그들은 가난한 유학생 부부가 될 서로의 앞날을 축복하고 격려했으며 사랑의 성취에 도취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류라고 짓기로 한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거기까지가 류의 부모에게 허락된 사랑의 서정시대였다. 그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훗날 류는 어머니에게 왜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비행기 안에서 지었는데 흐름이란 뜻이지 뭐겠느냐고 대답했다. 비행기를 뜨게 만드는 공기의 흐름과 힘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위쪽의 흐름이 빠르면 날개가 가벼워지고 아래쪽의 힘이 그걸 들어올리는 거야. 어린 류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이렇게 말했다. 빨리 흘러가는 것들은 가벼워져. 류, 날고 싶으면 빨라져야 해. 온힘을 다해서 뛰면 어느 순간 날아오르는 거야. 그때부터는 어디든 갈 수 있지. 그 무렵쯤에 어머니는 이미 인생에 대해 씨니컬해져 있었다. 그리고 류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조금쯤 단정적이었다.

아버지의 대답은 달랐다. 「울지 마라, 류」라는 오페라 아리아의 제목에서 따왔다는 거였다. 류는 생애 한번밖에 없었던 어느 아름다운 날 단 한번의 미소만으로 왕자를 사랑하게 된 노예의 이름이었다. 왕자는 얼음 같은 이국의 공주에게 빠져 위험 속으로 뛰어들려 하고 있었다. 왕자를 만류하지 못한 류는 결국 스스로 제 가슴에 칼을 꽂아 사랑하는 사람을 구한다. 류의 헌신적 사랑에 마음이 움직인 이국의 공주는 마침내 왕자를 받아들인다. 류는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맺어지도록 자신의 목숨을 선물했다. 아버지는 왜 그처럼 비극적 운명을 지닌 노예의 이름을 딸에게 붙인 것일까. 운명이라는 정서에 쉽게 공감하기 때문이었을까.

어머니와 아버지 중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둘 다 부분적으로는 사실일 것이다. 누구나 지나간 일은 자기 식대로 편집해서 기억한다. 제각기 근거가 있고 심지어 또다른 자기 버전으로 편집을 하는 증인까지도 있기 십상이다. 어쨌든 류에게는 자기 이름의 연원에 대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각기 다른 설명이 두개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비행기와 오페라. 하나가 막막한 허공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회색 두랄루민 날개였다면 다른 하나는 죽음을 부르는 눈물 젖은 오페라 아리아였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것이 베르누이 같은 사람이 밝혀내려고 했던 세상의 정돈된 이치였다면 아버지 쪽은 매혹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매혹은 아버지의 기질이 그렇듯 태생적으로 무책임하고 이기적이었다.

가난한 유학생 부부에게 이국생활은 얇은 강보에 싸인 아기의 첫 겨울 같은 것이었다. 고통스러운 한해가 지나자 어머니는 집에서 부쳐오는 돈으로 두 사람이 함께 공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기 쪽의 공부가 훨씬 빠르고 성적도 우수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먼저 공부하는 쪽을 택했다. 자신은 돈을 벌기로 했다. 아버지가 도서관에 가 있는 동안 어머니는 한국인 가게에서 음식을 나르고 물건을 팔고 옷 수선을 했다. 자신과 관계된 지출은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였는데도 생활은 늘 쪼들렸다. 다행히 조건이 좋은 일자리를 찾아냈는데 그것은 교외에 있는 저택의 입주가정부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어머니는 품위있는 생활방식을 알고 있었으므로 채용은 어렵지 않았다. 주말은 프리였다. 일주일 뒤 어머니는 옷 몇가지와 신분증과 결혼사진이 든 가방을 들고 낯선 외국인의 집으로 떠났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알던 사회와 누려왔던 신분,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었고 그 까다로운 노부부의 집에서 벗어날 날을 고대하며 과외수당을 더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일했다.

걸핏하면 시동이 꺼지는 중고차를 1시간 반씩 몰아 아버지는 주말마다 어머니를 데리러 왔다. 매번 어머니는 물자가 넘치는 주인집에서 버리고 남는 것들이 담긴 커다란 보퉁이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먼저 트렁크에 실은 다음 어머니를 조수석에 태웠다. 어머니의 우려와 달리 그녀가 가져오는 돈과 보퉁이 덕분에 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밝아졌다. 거기 비하면 어머니는 갈수록 지치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의 표정을 살피는 버릇도 생겨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는 2주에 한번씩 오기 시작했다. 3주에 한번, 언제부터인가 한달에 한번씩 왔고 그리고 마침내 한달하고 2주가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날이 닥쳐왔다.

맑은 여름날이었다. 류의 어머니는 그날의 강렬한 햇살과 더운 바람을 또렷이 기억했다. 주인부부는 친척집으로 외출했고 아침 일찍 청소를 마친 커다란 저택 안은 서늘한 정적뿐이었다. 어머니는 매듭이 질끈 묶인 커다란 보퉁이와 함께 부엌 창가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숲 사이로 난 기다란 드라이브웨이로 들어오는 차를 2분 정도 볼 수 있는 그 자리에 네시간째 앉아 있는 중이었다. 잘 손질된 정원에는 꽃들이 키와 색깔을 맞춰 피었고 결을 살려 꼼꼼하게 깎은 드넓은 앞마당의 잔디는 초록색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햇빛이 강렬한 날이었다. 잔디밭 위에 떨어져 있는 커다란 나무의 그림자가 마치 검은색 레이스 탁자보를 펼친 것처럼 섬세하고 화려했다. 오후가 되면서 그림자는 모양과 색깔이 조금씩 변해갔으며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 때마다 순차적으로 부드럽게 물결쳤다. 나뭇가지에 빛이 사선으로 들기 시작했다. 한때의 찬란함은 조금씩 기울어가고 있었다. 류의 어머니는 오랜 시간 그 모든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간의 흐름과 그림자 속에서 어머니가 또 한가지 본 것은 자기 인생의 퇴락이었다.

아버지는 자동차를 수리해야 했다며 다음날 정오 무렵에 왔다. 얼굴이 낯설게 보였던 것은 이발을 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류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미 의심이 시작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사실이라고 믿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기가 가장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자존심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자기 인생을 자기가 아는 방법으로 보전하려는 의지였다. 그녀는 틀을 지키려는 어리석은 긍정과 교활한 평화가 어떻게 사람들을 보수적인 이데올로기 안으로 끌어들이며 또한 자신조차 신뢰하지 않는 채로 그것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데 앞장서게 만드는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상처받지 않으려면 의심해야 했다. 그 생각은 오랫동안 쥐고 있던 소중한 무언가가 손안에서 여지없이 바스라지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가슴을 찔렀다. 언제 또 시동이 꺼질지 알 수 없는 자동차에 실려 말없이 앞만 바라보던 어머니는 잠시 손을 들어 명치께에 갖다댔다. 낯설어진 세계, 그리고 사랑의 상실에 조의를 표한 셈이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16년을 함께 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할 때 류는 열여섯살이었다. 류의 어머니가 자기 인생이 낯설어졌음을 피할 수 없이 목격해야 했던 그 여름날 어머니의 뱃속에서 류는 자기의 인생을 출발시키고 있었다. 함께 사는 동안 류의 부모는 사이가 좋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는데 더이상 서로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둘 다 똑같이 류는 사랑했다. 류의 어린시절은 특별히 행복할 것도 없었지만 불행한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처럼 행복과 불행에 대해 질문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자신이 어느 쪽일까 하는 생각을 품어본 적 없이 평온했다고 할 수 있다. 불행을 숨기지도 과장하지도 않는 가정에서 자란 때문에 류는 고통과 고독을 일찍부터 학습했다. 반면 부모의 불화가 자신의 불행과 인과관계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류의 부모는 호감이 없는 동료와의 직장생활 같은 가정생활을 통해 누군가가 자신처럼 비겁하다고 해서 비겁한 사람과 친해지고 싶지는 않듯이 내가 불행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불행과 연대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류에게 가르쳤다. 류는 아버지와 어머니 각자와는 행복의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류가 한국에 들어와 놀랐던 수많은 일 중에는 부모가 이혼했다는 말에 모두가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도 있었다.

딱 한번 류의 어머니는 입주가정부를 식모살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류, 사랑하는 사람은 동등해야 해. 빚이 있는 사람들끼리는 아무리 사랑을 품고 있어도 그것을 나눠가질 수 없어. 한쪽이 빚을 진 상황에서 사랑은 회복되지 않는 거야. 그럼 빚을 갚으면? 류의 질문에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빚을 갚은 뒤에는 다시 시작할 수도 있겠지. 류는 뒷날 그 말을 떠올리며 어머니는 아버지가 빚을 갚아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빚을 갚지 않았다. 뻔뻔스러움과 몰상식과 불균형을 잃으면 매혹이 아닌 것이다. 당연히 계산도 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의 이야기 가운데에서 류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그때 젊은 어머니는 한 회사원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공중전화를 보자 갑자기 애인이 그리워진 어머니는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자기 쪽에서 전화를 거는 일은 처음이라서 약간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애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표정은 밝아졌다. 저예요. 뺨이 상기되었고 말하는 입술에 교태가 어렸다. 그냥 걸어봤어요. 거기 어딘데? 애인의 말에 무심코 전화부스 밖을 보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그녀의 세상에는 애인과 그녀 둘만 있을 뿐이었다. 오늘 만날 수 있어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애인은 야근을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뒤꿈치로 바닥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사랑해,라는 애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깜짝 놀랐고 그다음에는 류의 아버지가 보았던 그대로 몸속 깊이에서 점점 차오르기 시작하는 환희를 견디지 못하고 얼굴 가득 꽃망울이 터지듯 환하게 웃었던 것이다.

류는 어머니와 더 오래 살았다. 예정대로 어머니는 유학했던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은퇴한 뒤에는 류가 있는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다. 류는 어머니를 닮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성장했고 애증으로써 어머니를 신뢰했다. 그러나 종종 아버지가 물려준 매혹의 세계 속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았다.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그녀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생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날 것이다. 류의 아버지가 포착하고 전율한 것은 그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이미지로 구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서정적 이야기들은 연인의 포옹이나 결혼식으로 끝이 나고 그런 것을 해피엔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이후 일어나는 생활과 이데올로기의 서사는 이미지와 인과관계가 없는 다른 영역의 일이다. 이미지는 순간적으로 쏘이는 광선 같은 것이고 자체로 완결되기 때문에 진위 같은 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의심하지도 상처받지도 않았다. 빚 같은 것도 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사의 영역에 속한 어머니의 삶을 이끄는 것은 이미지가 아닌 패턴이었고 그것은 뜨개질 본처럼 이어져가야만 했기 때문에 절단면의 상처는 깊었다. 그것은 비용을 요구했다. 서사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 류의 아버지는 단독자인 셈이었다. 고독은 피할 수 없었다. 반대로 류의 어머니는 서사의 세계를 택했고 그 부조리함 때문에 필연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여야 했다.

류는 이따금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내 이름을 「울지 마라, 류」에서 따온 걸로 기억하고 있을까. 왕자는 노래한다. ‘울지 마라, 류. 내 사랑을 이루도록 나를 내버려둬. 그리고 앞으로도 내 아버지를 부탁한다. 잠 못 드는 공주여. 내 이름을 맞혀주오. 수수께끼를 풀어 모두를 잠들게 해주오.’ 마침내 공주의 노래가 울려퍼진다. ‘이제 그 이름을 알겠네.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졌다오.’ 이 서사에서 류의 역할은 아버지라는 이데올로기를 책임지다가 운명적 사랑을 남의 발밑에 갖다바치고 그 옆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것뿐일까. 고독은 고통보다 더 치명적인 것일까.

 

 

2. 요셉의 테마—늙은 주검의 죽음

 

요셉은 아침이 되자 눈을 떴다. 그는 알람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같은 소리가 반복되는 게 귀에 거슬렸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누군가 자신을 깨우도록 내버려둘 만한 참을성이 없었다. 아내와 함께 살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내가 하는 모든 말을 자신에게 불리한 참견과 잔소리라고 미리 단정해놓았다. 당연한 말도 그녀의 입에서 나오면 뭔가 의도를 품은 게 틀림없었고 그 의도는 대부분 그녀의 속물근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같은 말을 한번 이상 들으면 지루해서 견디지 못하는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같은 말이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아내의 말은 잔소리의 요건을 완벽히 갖추었다. 아내는 요셉 자신이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일으키는 한 그에 대한 대응도 똑같을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곤 했다. 애초부터 틀려먹은 악습으로 그를 재단하려는 거였다. 요셉은 사춘기도 되기 전에 이미 개인의 고유성에 눈떴기 때문에 어떤 종류든 틀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그리고 친사회적 이데올로기에 물들게 된다는 이유로 남의 말을 듣기 싫어했다. 공부하라는 남의 말을 듣는 결과가 될까봐 숨어서 공부하여 일류대학에 입학한 이력도 갖고 있었다. 그처럼 안내와 고지와 충고를 포함해 모든 ‘알려주는 말’을 원치 않는 그로서는 아침이 왔다는 걸 혼자 힘으로 알아내고 스스로 눈을 뜨는 기능을 익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누가 깨울까봐 일찍 일어나다보니 아침형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는 깨어나면 먼저 유리창 바깥의 빛과 풍경을 바라보았다. 방에 시계가 없었을 뿐 자연친화적인 사람이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연을 싫어했다. 온갖 동식물들이 앞다투어 먹이를 구하고 짝짓기를 하고 영역을 챙기면서 생명을 구가하는 세계란 너무 소란스러웠다.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그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태도가 천박하기 짝이 없었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산과 들, 하늘과 땅밑에서 부화하고 죽이고 잡아먹고 자라나고 맺고 낳는 악착같은 것들에 둘러싸여 사는 기분은 생각만으로도 불쾌했다. 그는 인간이 대지를 시멘트로 덮는 것이야말로 자연이라는 잔인한 살인자를 생매장하는 것이라고 말한 사람에게 깊이 동의하고 있었다. 물론 그는 종 우월론자였다. 예술이라는 위장술을 발명했다는 점에서 인류는 다른 생명체와는 달랐다. 도시 또한 위대한 발명품이었다. 자연의 악다구니에 비하면 도시의 소음에는 차라리 기계문명에 지친 인류의 건조한 우수가 깃들어 있었다. 그는 생명력이란 말이 지닌 단세포적인 삶의 긍정을 터무니없어했다. 그의 방에 벽시계가 없는 것은 어떤 종류의 살아가는 것과도 방을 같이 쓰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아등바등 째깍거리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언젠가 도경이 출간기념이라며 난화분을 보내왔을 때 요셉은 일부러 전화를 걸어서 자신이 맹렬한 경멸만으로 그것을 사흘 만에 시들게 했다고 알려주었다. 도경이 나쁜 머리를 동원해 성의껏 감상적인 일을 꾸미는 건 늘 그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가 사는 오피스텔은 건물의 꼭대기인 13층이었다. 그는 빛이 잘 들지 않는 집을 원했다. 부동산사무소에서 요셉은 남의 발밑에서 살지 않아도 되는 꼭대기층과 옛 선비들이 책을 읽기 위해 일부러 그쪽으로 창을 냈다는 서향의 집세가 다른 집보다 더 싸다는 사실에 놀랐다. 심지어 오랜 시간 햇빛에 시달려야 하는 남향보다 더 쌌다. 그가 세상일 가운데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일을 발견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부동산 남자는 시야가 건물로 막혀 있어 전망이 어둡다고 말해주었다. 요셉은 이마를 살짝 찌푸림으로써 그것이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남자는 집을 보여주면서도 그 말을 되풀이했다. 작가 선생님인데 좋은 경치를 봐야 좋은 글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남자가 추천하는 곳은 햇빛이 쏟아져들어오고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맞은편 라인의 남향집이었다. 요셉은 좋은 글이란 좋은 걸 보기보다는 싫은 것들을 안 보아야 잘 나온다고 대꾸해주었다. 자신이 특히 싫어하는 두가지는 자연과 인간이라는 말도 덧붙여 강조했다. 요셉이 창가로 한걸음 다가가보니 남자의 말처럼 시멘트 건물만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하늘도 있었다. 하늘은 요셉이 자연 형태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으로 비 오는 날을 빼고는 소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맑은 날이군. 침대에 누운 채 요셉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창을 프레임으로 해서 선명한 푸른색 비단 타래를 펼쳐놓은 것 같았다. 정확한 시각까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다른 날과 비슷한 무렵이었다. 서서히 몸이 깨어나면서 익숙한 소리와 냄새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냉장고가 웅웅거리며 돌아가고 싸구려 새 가구에서 풍겨나오는 도료 냄새가 희미하게 떠돌았다. 다리에 감기는 이불 주름의 감촉은 언제나처럼 선득했다. 복도는 조용했다. 그는 규칙적 일과를 가진 사람들이 깨어나기 전의 우물 속 같은 정적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그날도 다른 날과 비슷한 생의 리듬 안으로 얼추 들어섰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더이상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으로 하루가 시작된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다음 순간 그는 창밖을 유유히 날고 있는 까치를 발견하고 몸을 일으켰다. 뭐야, 새가 13층까지 올라오나요? 집을 보러 온 날 까치를 발견하고 놀라는 요셉에게 부동산 남자는 큰 하자라도 들킨 듯 당황하며 저는 몰랐는데요,라고 변명했었다. 물론 요셉은 이사온 첫날부터 온힘을 다해 까치를 멸시했다. 땅 위에 내리지도 않은 채 허공에다 똥을 갈기는 건 자연계의 공중도덕을 어기는 파렴치한 범법행위였다. 특히 똥을 싸기 전 짧은 한순간 날갯짓을 멈추고 움찔 몸을 비트는 모습을 목격한 이후 그는 까치를 쫓는 일을 아침 일과에서 빼는 법이 별로 없었다.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찬물을 마신 다음 그는 쏘파에 가서 앉았다. 그러고는 탁자 위의 휴대폰을 켜서 일정을 확인해보았다. 다섯시 이안과의 약속뿐이었다. 이안은 요셉이 예술대학의 시간강사로 소설창작을 가르칠 때의 조교였다. 요셉의 집에도 여러번 놀러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내와 함께 살던 시기였는데 웬일인지 아내는 술상만 내오는 게 아니라 그 옆에 함께 앉기도 했었다. 이안이 졸업 후 소설쓰기를 포기하고 영화로 진로를 바꿔 러시아인지 폴란드인지로 유학을 갔다는 건 어느 여학생에게서 전해들은 소식이었다. 요셉은 그 소식을 반겼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에게 보아달라고 부탁했던 이안의 소설이 형편없었다는 사실은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안이 얼마 안 가 공부를 포기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건 다른 여학생에게서였다. 이안의 동기였던 그 여학생은 그가 국내 영화제에 괜찮은 단편영화를 출품했는데 상을 받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의 성공을 기다리던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가 사고로 목숨을 잃어 더욱 그렇다는 거였다. 요셉은 그 여학생과 그날 밤을 어떻게 보내게 될 것인지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어 건성으로 들었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는 이안에게 처음부터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이안이 전화를 걸어왔을 때 요셉은 그가 상을 당한 일에 유감을 표했다. 요셉에게 인사치레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세상 소식과 담을 쌓고 지낸다는 인상은 주기 싫었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고맙다고 이안은 약간 침통하게 대꾸했다. 너무 갑작스럽긴 했어요. 그렇게 돌아가실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어떻게 돌아가셨는데? 농약 때문에요. 자살이었나? 요셉은 약간 흥미를 느꼈다. 그건 아니구요. 이안이 말끝을 흐렸지만 요셉의 질문은 이어졌다. 자살이 아니면, 그럼 살인사건이야? 아녜요. 이안은 정도 이상으로 강하게 부정했다. 그냥 사고예요. 생수병에 들어 있어서 물인 줄 알고 마신 것뿐이에요. 누가 농약을 생수병에 부어놓았는지 궁금했지만 요셉은 그쯤에서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만날 테니 그때까지도 궁금하면 다시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긴 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보면 뻔해지는 게 이야기의 속성이었다. 그것들은 요셉이 언젠가 만들었던 이야기이거나 언젠가 했던 생각, 심지어 언젠가 썼던 문장 중 하나일 것이다. 아니라면 남들이 이미 해버린 이야기이거나 그들이 요셉보다 더 잘 아는 이야기임이 틀림없었다. 요셉은 문득 인쇄소에서 용지를 재단하는 데 쓰이는 패턴이라고 불리는 금속 형판을 떠올렸다. 자신의 머릿속은 치수대로 종이를 찍어내고 나머지는 버리는 식으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나은 것으로 옷본이라는 패턴이 있긴 했다. 전세계에서 수많은 옷이 염색과 재단 옷본에 의해 찍혀나와 쇼윈도우에 걸리지만 신상품의 지위를 잃는 순간 창고 속의 재고품으로 굴러다니다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집 앞 까페로 찾아오겠다는 이안을 못 오게 할 이유는 없었다. 달리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은 뒤 요셉은 곧바로 후회했다. 오래전 일이라 깜빡 잊고 있었는데 이안은 지루한 청년이었다. 화제가 뻔했고 결론을 낼 필요 없는 일에 끈질기게 매달렸다. 최악의 경우 예술의 불길한 운명이나 예술가의 각오 따위에 대해 지껄여대기도 했다. 이안처럼 자신의 무지를 순수함이라고 착각하는 부류들은 걸핏하면 자신이 그 이유로 상처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곤했다. 보나마나 술값도 없을 것이다. 요셉의 오후 시간의 즐거움에 보탬이 될 만한 건 한가지도 갖고 있지 않은 셈이었다. 요셉에게는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상의할 것이 있다는 이안의 용건이 궁금할 턱도 없었다. 요셉은 남의 이야기와 사연 듣기를 싫어했다. 자기 인생이 대하소설이라고 강조하는 사람의 이야기일수록 상투적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꼭 한번 소설로 써보라는 사람에게 요셉은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이니 당신이 직접 쓰라고 대답해왔다. 조언과 충고를 구하는 사람도 질색이었다. 의욕적인 계획을 늘어놓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은 오직 동의를 원할 뿐이었다. 충고를 구하는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희망을 기대했다. 비관이 신중함이고 냉정해야만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셉의 충고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결국 시간만 아까웠다.

요셉이 강의를 하게 된 것은 그 학교 교수인 동료 소설가의 부탁 때문이었다. 그때는 요셉이 1년에 한두편씩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할 때였다. 마지못해 그는 봄학기만 맡겠다고 말했다. 스승의 날에 선물을 받은 다음 그만두겠다는 요셉의 말에 동료 소설가는 그의 생일이 언제인지 물었다. 10월이라고 하자 가을학기에 받게 될 생일선물을 놓치면 아깝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그 농담이 재미있어서 거절하지 못한 요셉은 2년 동안 강의를 했다. 예쁜 여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요셉에게 뭔가 지도받기를 바라고 술자리에 따라오는 학생 중에 여학생들이 빠진 적은 없었다. 그마저도 요셉은 곧 싫증이 났다. 젊은이들의 새로움은 짧았고 그것이 풍부한 변주로 이어질 만한 내적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 새로운 것과 어린 것은 달랐다.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기에는 그들은 서사가 빈약했다.

수업시간에 ‘늙은 주검은 젊은 주검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다룬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남편의 무덤을 찾은 늙은 여자가 공동묘지의 관리인으로부터 무덤을 없앴다는 소식을 듣는다. 부지가 좁기 때문에 새로 들어온 시신을 위해 임대기간이 경과된 무덤은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눈물을 참는 장면이 이렇게 묘사된다. ‘그녀는 옛날에도 남편의 죽음을 막지 못했는데, 이제 남편의 두번째 죽음 앞에서도 아무 힘 없이 서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더이상 주검으로서 존재할 수조차 없게 된 ‘늙은 주검’의 죽음 앞에 말이다.’ 그 문장을 읽은 다음 요셉은 책에서 눈을 들어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때만 해도 머릿속에 규격대로 용지를 재단하는 형판 패턴을 적게 갖고 있었다. 그는 무덤에 들어간 뒤까지도 계속 늙어간 나머지 새로 죽은 젊은 주검에게 밀려나야 하는 늙은 주검의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의 세계와 조우하는 순간의 젊은 영혼들의 전율을 보게 되리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졸고 있는 학생 몇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둘러보니 반 이상이 마찬가지였고 강의실 안에는 가수면의 평화가 은은히 흐르고 있었다. 그 평화는 방금 그가 보여주려고 했던 늙은 주검의 죽음과 정확히 반대편에 있었다. 학생들의 나른한 표정을 묵묵히 내려다보며 요셉은 돌연 가르치고 쓰는 일 전부에 격렬한 환멸을 느꼈다.

생각할수록 요셉은 이안을 만나기가 귀찮아졌다. 이안이 상의하겠다는 일의 내용이 무엇이든 그런 건 좋지 않은 아이디어라고 말하려는 쪽으로 이미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요셉은 또한 자기의 판단이 틀리는 것도 원치 않았다. 반드시 좋지 않은 아이디어여야만 했다. 요셉이 이안을 만나기도 전에 그가 하려는 일이 잘 풀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은 그런 경위에서였다.

 

 

3. 이채의 플롯과 요셉의 재구성

 

요셉은 까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안을 만나기로 한 장소에 약속보다 한시간쯤 일찍 나온 것이다. 청소를 해야 할 상태가 되면 그는 집보다 까페에 나와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거나 잡다한 원고정리를 했고 랩탑을 켜놓고 인터넷 싸이트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반사신경만 사용하는 간단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때도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심사를 맡은 보험회사 생활설계사들의 수필원고를 읽는 중이었다. 하지만 말이 빠른 옆자리 여자들의 수다를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프린트 원고에서 눈을 떼고 말았다. 그가 몇번인가 눈총을 주었지만 각기 아기를 데리고 외출 나온 세명의 여자들이 시어머니로 대표되는 시댁을 성토하는 열정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못했다. 요셉의 신경을 교란하는 건 감정이 실린 그녀들의 거침없는 목소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야기였다. 흥미가 없는데도 기승전결이 따라주면 어쨌거나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게 돼 있었다. 익숙한 패턴이면 더욱 그랬다. 그것이 통속의 위대성이었다. 그는 원고 읽기를 포기하고 의자에 등을 기대어 무심히 창밖을 보았다.

건너편의 노상주차장에 차가 한대 선다. 젊은 남녀가 운전석과 뒷자리에서 따로따로 내린다. 둘이 싸웠나? 그건 아니다. 조수석 문을 열고 나오는 여자를 나중에 본 것이다. 옆자리에 앉아 있었으니 그녀가 남자의 애인이겠군. 뒷자리 여자는 남자와 여자 누구 쪽의 친구일까. 요셉이 셋의 관계를 구성해보는 사이 그들은 그가 있는 까페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역시 조수석에서 내린 여자가 남자의 옆자리에 앉는다. 눈에 띌 만한 미인은 아니지만 눈초리가 살짝 올라가고 입술이 도톰한 게 이국적 매력을 풍기는 얼굴이다. 머리는 쇼트커트 스타일이고 빨간 반팔 스웨터에 얇고 긴 머플러를 둘렀다. 스키니진을 입었는데 다리가 길어서인지 빨간 선이 들어간 흰색 러닝화가 무척 산뜻해 보인다. 학생은 아닌 듯하고 직업이 있다면 큐레이터나 음악 매거진의 기자가 어울릴 것 같다. 의외로 어린이집 교사 혹은 간호사처럼 상냥해야만 하는 직업일 수도 있다. 은행원과 판매원은 아닌 게 확실하다. 팔을 젓는 동작으로만 보면 빵을 만드는 여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빠리의 꼬르동 블루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이 동네에 가게를 열려고 알아보고 다니는 중 아닐까. 남자에게는 차가 있고 친구는 이 신도시에 살고 있어 안내를 맡고 있다.

그녀가 남자의 애인이란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자는 별로 영민해 보이지 않는 머리 위에 야구모자를 썼고 다리를 건들거리며 말하는 품이 허세가 많아 보인다. 티셔츠 속에 묵직한 금목걸이를 했을 수도 있다. 입안에서 웅웅거리는 발음도 그의 인상만큼이나 명쾌하지 않다. 그런데도 그녀는 남자가 말할 때마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곤 하는데 무슨 말일지 궁금하다는 듯 입가에는 다정한 웃음이 떠올라 있다. 남자는 이렇게 다양한 드립커피가 있는 커피전문점에 와서 고작 아메리카노다. 두 여자가 주문한 에티오피아와 케냐 커피에 대해서는 잊지 않고 아는 체를 하고 있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 그녀가 찻잔을 들어 커피를 한모금 마신다. 잔을 입술에 댈 때 눈을 약간 위로 뜨며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는다.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윽고 남자의 말이 맞다는 뜻으로 그와 눈을 맞추며 활짝 웃는다.

그녀는 좀 두리번거리는 편이다.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실내를 둘러보고 문이 열릴 때마다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앞자리 여자의 말을 들을 때는 두 손을 허벅지 아래에 밀어넣고 몸을 약간 앞으로 내민다. 생동감이 넘치는 여자다. 이야기하면서도 손짓을 많이 한다. 그녀의 가슴께에서 흔들리는 길고 하얀 팔목에는 씸플한 가죽줄 시계뿐 반지는 끼고 있지 않다. 웃을 때는 어깨를 가볍게 들먹이는데 그때마다 살짝 드러나는 두 개의 앞니가 설치동물처럼 귀엽다. 교정을 하라는 권유를 무시할 만한 고집은 마땅히 갖추고 있는 것이다. 옆으로 고개를 돌릴 때의 각도를 보면 훈련으로 얻어진 씰루엣이라는 느낌이 든다. 주말에는 발레학원을 다니는지도 모른다. 이제 이름을 지어본다. 이채나 시흔 같은 낯선 이름이 어울릴 것 같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미혜 혹은 지수 같은 친근하면서 그럴싸한 이름으로 등장해야 감정이입이 쉽겠지.

그녀에 비하면 앞자리 여자는 이야기를 상상해낼 만한 게 없다. 긴 생머리에 한창 유행하는 짧은 팬츠에 킬힐을 신고 속눈썹을 검게 칠한 공들인 화장을 했다. 예쁘긴 한데 전형적이다. 불특정다수 모두에게 잘 보이려고 기를 쓰고 치장했다는 느낌 때문에 어딘지 천박해 보인다. 아마 처음에 남자는 저 여자의 세련된 전형성에 더 끌렸을지도 모른다. 예쁘다는 실감에 앞서, 저런 모습이 예쁜 거라고 끊임없이 세뇌하는 유행이라는 상업 패턴에 속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투적인 스캔 단계가 지나간 뒤에는 결국 지금의 관계를 형성했을 것이고 저 여자가 친구로라도 남자 곁에 머물기를 원했기 때문에 자신감있는 요셉의 주인공 그녀로서는 굳이 함께 어울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가 맨 뒤에 나간다. 문을 열려다가 걸음을 멈추고 입구에 놓인 화분 쪽으로 몸을 굽힌 채 한참이나 꽃냄새를 맡는다.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의외로 살집이 있다. 가슴도 약간 큰 편이다. 꽃냄새를 맡는다거나 하는 소녀풍의 정서도 이채와 시흔의 이미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주인공의 고유성을 잃어버렸다고나 할까. 한시적으로 주어졌던 이야기 구성의 시간이 끝나기도 했고, 요셉은 이제 그녀를 주인공의 직위에서 해제한다. 까페 문을 열고 나갈 때쯤이면 그녀는 그냥 모르는 여자로 돌아가 있다. 요셉의 시선이 주차장까지 따라가지는 않는다.

요셉의 귀에는 그때까지도 이어지고 있던 아기 엄마들의 일상언어가 강력한 현실감을 갖고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휴대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했다. 조금 일찍 나와도 괜찮을 텐데 이안은 끝내 약속시간을 지키려는 모양이었다. 그 고지식함은 한시간 가까이나 먼저 나와서 그를 기다린 셈인 요셉을 새삼 지루하게 만들었다.

요셉은 본다는 행위에 대해 잠시 생각하기로 했다. 대부분은 뭔가를 인지하기 위해서 본다. 그런데 그 대상이 사람일 경우에 그것은 잠재적 욕망의 표현일 수가 있다. 카메라 렌즈가 관음적인 성격을 띠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불쌍한 피핑 톰의 이야기도 ‘본다’는 행위가 갖는 욕망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16세의 아름다운 여성 고디바가 있다. 그녀의 남편은 70세의 사악한 영주이다. 남편의 가혹한 세금정책으로부터 농노들을 구하려는 그녀에게 남편은 알몸으로 말에 올라 영지를 한바퀴 돌라고 요구한다. 의리의 농노들은 모두 집안에 들어가 커튼을 내리고 그녀를 보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소년 재봉사 톰은 그녀의 알몸이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고 문틈으로 고디바를 엿보다가 눈에 화살을 맞고 만다. 아름다움을 탐한 댓가로 더이상 어떤 아름다움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화살은 톰의 한쪽 눈만을 맞혔겠지만 비유나 상징은 리얼리티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세계가 뻗어가도록 엔진을 달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요셉의 결론은 그 모든 엇갈리는 시선의 기류를 뚫고 조금 전 그 여자가 자신의 눈길을 잡아당겼던 것은 ‘본다’는 행위에 플롯이 주어졌기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빨간 스웨터 여자가 다시 까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10분쯤 지난 뒤였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그녀는 요셉의 자리를 향해서 똑바로 걸어왔다. 다리를 꼬고 있던 요셉의 신발 바로 옆에 예의 빨간 선이 들어간 흰 러닝화 두 짝이 나란히 멈춰섰을 때 그는 뿌린 지 얼마 안된 진한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김요셉 선생님이시죠? 여자는 손에 들고 있던 그 동네 서점의 상호가 박힌 비닐백을 다른 쪽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고는 그 안에 든 책을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은 뒤 자신의 엉덩이는 요셉의 앞자리에 내려놓는 것이었다. 싸인해주세요. 까페에서 나간 지 10분 만에 애인과 친구를 따돌리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산 뒤 향수를 뿌리고 같은 장소로 되돌아온 여자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흥분이 느껴졌다. 무례하거나 당돌하다고 느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오히려 요셉에게 가벼운 호의라는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나를 어떻게 알아봤어요? 요셉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최근 몇년간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처음 여기 들어올 때부터 앉아 계신 걸 봤거든요. 처음 들어올 때? 네. 요셉은 여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처음 들어올 때 요셉을 알아봤다는 말은 여자가 처음부터 요셉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의 다정함과 커피잔을 들어 맛볼 때의 호기심, 친구에 대한 당당하고 친근한 태도, 그 모두에는 그녀의 의도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옆자리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림으로써 요셉에게 자주 자신의 얼굴 정면을 선보였다. 손짓을 하고 몸을 흔들어서 그의 시선을 붙잡았고 나갈 때 화분 앞에서 발을 멈추고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인상을 남기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요셉이 본 것은 모두 연출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녀의 플롯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이름이 뭐지? 요셉이 테이블 위의 책을 끌어당겼다. 제 이름은요. 여자는 요셉이 정확히 적을 수 있도록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했다. 그러나 보험설계사들의 수필원고 위에서 볼펜을 집어든 요셉이 책의 속표지에 쓴 것은 다른 이름이었다. 이채에게? 그게 뭐예요? 여자가 입술을 동그랗게 벌리며 물었다. 그리고 요셉이 곧 쓰기 시작할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이라고 대답하자 긴 속눈썹으로 반쯤 가려진 갈색 눈동자에 웃음을 담고 그의 시선을 맞받는 것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당당히 요셉의 주인공으로 등극한 여주인공의 시선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전 여기 일주일 전에 이사왔어요. 상점하고 아파트가 이렇게 많은 데는 정말 처음 봐요. 근데 여기서 선생님을 만나네요. 선생님 이 까페 자주 오세요?

—글쎄, 한마디로 대답하기는 어려운데.

—네? 왜요?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저기 반대쪽 모퉁이에 있는 까페로 가지. 근데 그 집은 단 쿠키와 케이크만 팔아. 아침이나 점심을 함께 해결하고 싶다면 쌘드위치를 파는 여기 이 까페가 괜찮지. 커피는 중간이지만 브런치 메뉴가 좋거든. 하지만 의자가 불편해. 리필도 안되고.

—까페 자주 다니시나봐요.

—작업도 해야 하고 커피도 마셔야 하니까. 버스정류장 앞 까페는 자리가 넓고 콘쎈트도 많아 일하기는 괜찮아. 그래도, 체인점은 갈 수 없어. 산만하고 커피도 맛없고 특히 화장실이 멀어. 공영주차장 뒤에 있는 까페는 그런 건 없지. 인테리어도 쾌적하고 500원만 더 주면 커피도 에스쁘레쏘로 리필해줘. 보통 3800원은 돼야 커피가 괜찮은데 거긴 3300원이야.

—거긴 단점은 없어요?

—좀 좁아. 아늑하긴 한데 아줌마들이라도 닥치면 망해. 거기 테이블마다 양초가 있거든. 거기에다 불을 붙여서 촛농으로 고막을 틀어막으면 5분은 더 앉아 있을 수 있을 거야. 오전에는 대개 체인점 커피집이 시끄럽고 점심때에는 동네 커피집이 소란스럽지.

—그건 왜요?

—아침에는 운동 마친 아줌마들이 들이닥치고 점심때는 직장여성들이거든. 오후 시간에는 까페란 데가 거의 여자 기숙사야. 온갖 화장품 사용법과 쎌카 찍는 법, 토론하고 실습하고. 밤에는 또 커플천국이지. 보통 몇시에 자나?

—글쎄요. 정해진 건 없지만, 새벽이 돼야 자요.

—그럼 극장 앞의 까페가 좋겠군. 거긴 24시야. 술 먹고 들어왔을 때나 잠 안 올 때 가면 돼. 새벽에 깨었을 때 막막하지도 않고. 커피맛도 그런대로 괜찮아. 언제 가도 시끄럽긴 하지만. 테이크아웃하면 되니까. 근데, 아침에는 늦잠을 자겠군?

—가끔 일찍 일어날 때 있어요.

—이 동네 까페는 아침 8시면 대개 다 문을 열어. 이 다음 블록 사거리에 있는 까페만 빼고. 거긴 모닝빵도 주고 커피값도 싼데 아르바이트 학생이 한번도 제시간에 문을 연 적이 없어. 아침 기분을 망치지. 물건이 고장나 있을 때랑 비슷하다구. 물건이나 사람이나, 하기로 한 일이 있으면 약속을 지켜야지.

—까페가 정말 많네요. 선생님 단골은 어디예요?

—그런 건 없어. 난 잘해주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아. 무조건 당연히 어느 한 장소로 가는 것도 싫고 어쩐지 가줘야 할 것 같은 기분도 싫어. 선택의 여지가 많은 걸 자유롭다고 하지. 대신 선택할 만한 게 모조리 싸구려라야 해. 그래야 자유롭게 아무거나 선택할 수 있거든. 서른개도 넘는 까페가 동등하게 싸구려라는 게 이 거리의 매력이지.

—선생님, 텔레비전 자주 보세요?

—가끔 보지.

—텔레비전에 자기 집 가전제품 소리를 전부 똑같이 낼 수 있는 남자가 나왔었어요. 청소기랑 세탁기, 전자레인지, 냉장고, 선풍기, 모든 소리를 흉내내는 거예요. 선생님도 좀 외로우신가봐요. 그 아저씨처럼.

—글쎄, 나도 애인하고 여자친구가 있으면 안 그러겠지. 그 사람들은 갔나?

—누구요?

—아까 같이 왔던 사람들.

—아, 언니하고 오빠예요. 실은 언니가 선생님 팬이에요. 저는 언니가 알려줘서 알았어요. 죄송해요. 선생님 책은 읽어본 적 없는데, 싸인은 꼭 받고 싶었거든요.

—날 알지도 못하는데 그건 왜 그렇지?

—언니가 좋아하니까요. 언니가 좋아하는 건 뭐든지 궁금해요. 근데 선생님, 언니 못 알아보시겠어요? 눈하고 코만 좀 고쳤는데.

불현듯 어떤 느낌 때문에 요셉은 테이블 너머로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보았다. 이안이었다. 여자도 요셉을 따라서 시선을 돌렸고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하는 이안을 보았다. 저는 일어날게요. 테이블 위의 책을 집어들고 몸을 일으키며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 말씀대로요, 내일은 이 까페에서 브런치를 먹어봐야겠어요. 선생님도 오실 건가요? 눈치없는 이안이 걸음을 빨리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요셉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이안이 요셉을 한눈에 바로 찾은 건 아니었다. 몇년 사이 요셉은 모습이 좀 변해 있었다. 여전히 미남으로 보이긴 했지만 얼굴이 여위고 정수리가 눈에 띄게 휑했다. 그가 있는 테이블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던 이안은 몇걸음 옮기고 나서야 동행이 있음을 알았다. 그는 요셉의 앞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는 여자의 옆모습을 얼핏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안이 신물나도록 보아온 장면이었다. 그것이 이안으로 하여금 요셉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데 환멸을 느끼게 하는 한편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도 느끼게 해주었다. 그가 만들려는 영화 「작가들」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안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세계의 순수함에 상처를 입히고 구원을 박탈하는 추악한 욕망의 서사였다. 인사를 하는 이안의 표정에서 요셉 역시 그가 몇개의 주름을 만들어낼 만큼은 세월을 소화했지만 지루한 청년에서는 그다지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걸 발견했다. 앉으려는 이안에게 요셉은 먼저 술자리로 옮기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4. 이안의 주인공

 

이안의 예상과 달리 요셉이 앞장선 곳은 제법 격식을 갖춘 일식집이었다. 예전처럼 노가리에 생맥주가 아니었다. 요셉의 형편이 남들이 말하는 만큼 나쁘진 않은 모양이라고 이안은 생각했다. 종업원이 그들을 안내한 곳은 맨 구석방이었다. 만난 지 10분 만에 비로소 인사할 틈을 얻은 이안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며 입을 열었다. 요셉은 담배를 끊은 지 5개월째인데 지금까지 그래왔듯 곧 다시 피울 것이며 새 소설을 시작했지만 담배처럼 그것 역시 시작하고 끊고를 반복해왔으니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3개월 안의 최근 소식이라면 도경이라는 유부녀 외에 달리 만나는 여자가 없다는 정도라는 거였다.

이안은 영화 「작가들」에 요셉을 끌어들이는 일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용건은 천천히 꺼낼 생각이었다. 함께 알던 사람들의 근황이나 주고받으며 과거의 친근감을 환기하는 게 먼저였다. 그런 다음 자신이 예술가들을 다룬 단편영화를 찍을 계획이고 워낙 저예산이라 같이 영화하는 친구들이 배우를 맡아주기로 했다며 운을 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 친구들이 소설가에 대해 각별한 존경을 품고 있다고 강조하는 건 빼놓지 말아야 했다. 작가 겸 교수가 한사람 등장해야 하는데 유명한 소설가가 까메오로 나와주면 영화가 살아날 것 같다고 슬쩍 덧붙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이 중요한데, 반드시 그것은 이안 자신이 아닌 영화계 친구들의 의견이어야 했다. 정해진 씨나리오대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점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예술가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이므로 작가는 제자 역을 맡은 남녀 젊은이들과 술만 마시면 된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해야 했다. 처음부터 출연을 제의하면 요셉은 당장 거절할 것이 틀림없었다. 누가 좋을지 상의하는 투로 말을 꺼내고 영화계 친구들 모두 유명한 소설가 역에 요셉을 적임자로 꼽았다는 거짓말은 술이 좀 거나해졌을 때 꺼낼 계획이었다.

이안은 첫 화제로 A의 이야기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요셉이 2년 동안 가르친 제자 중 유일하게 등단한 소설가였다. 나온 지 얼마 안돼 문학상 두개를 연이어 받았고 몇달 전에는 세번째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A의 이름이 나오자 요셉은 표정이 싸늘해졌다. 최근에 그를 만났다는 이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시큰둥하게 술잔을 들었다. 그러나 A의 새 소설이 전작과 달리 팔리지도 않을뿐더러 문예지에서 한줄도 다뤄주지 않아 의기소침해 있더라고 하자 그랬어?라며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정확히 이안의 예상과 맞아떨어지는 반응이었다.

조교시절 이안은 작가 강사들을 많이 상대했고 교내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작가들을 만났다. 작가들에게는 하나같이 자신이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름을 얻은 작가들도 다르지 않았다. 책이 많이 팔리는 작가는 그 때문에 편견이 생겨서 문학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반대인 경우는 문단의 상업주의 탓에 형편없는 작품이 대중의 인기를 업고 후하게 평가되고 있다고 질투했다. A의 태도는 전자에 가까웠다. 자신의 작품세계가 가볍다는 일부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해왔던 그는 본격문학의 무게감을 보여주겠다며 기염을 토했고 그 결과 엄청나게 평범하고도 두꺼운 장편소설을 내놓았던 것이다. 책은 무거웠지만 A 자신이 믿는 것처럼 내용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이안은 A가 자기 문학을 알아주지 않는 이 세상과 자신은 영원히 불화하는 관계이며 지금과 같은 수준의 세상에 자신은 너무 일찍 도착해버린 존재라고 탄식하고 다닌다는 말을 던진 뒤 요셉을 슬쩍 바라보았다.

요셉은 즐거운 표정을 숨기려 하지도 않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직 한두 단계 더 남았군. 뭐가요? 완전히 가려면 몇단계가 더 남았다고. 그게 뭔데요? 예술혼인지 뭔지를 불태우다가 실패한 놈들이 그다음 하는 짓이 있지. 글이 안 써져 고민하다가 짐 싸들고 떠나는 이야기 말야. 여행지에서 또 반드시 누구를 만나지. 그런 소설은 대개 대화가 많고 장황해. 그러고는 예술가소설이라고 갖다붙이는 거야. 요셉은 강의시간에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뭔가 달랐다. 이안은 요셉이 요즘 쓰기 시작했다는 소설이 바로 그런 소설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것은 어느정도 사실이었다. 그런 따위의 엄살 부리는 소설은 결코 쓰지 않겠다고 생각해왔지만 요즘 요셉의 머리에 가득 찬 생각은 어딘가로 떠나볼까 하는 것밖에 없었다. 이마에 주름살을 더욱 깊게 만들며 요셉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다음 단계는 말야, 대놓고 상업적으로 가보겠다고 설치는 거야. 물론 백발백중, 실패지. 그건 문학한다고 폼 잡다가 떨어진 것보다 오백배는 더 아플걸. 대중은 절대 만만하지 않아. 제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일인데 안 그렇겠어? 대중은 자기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구. 그따위 치기를 위악이라고 속아주다니 어림없지. 그런 건 꾀도 못돼. 뭐, 모색? 한국어가 아깝다. 그럼 선생님은 어느 단계까지 간 건데요? 나? 네, 선생님요. 마침내 이안의 입에서는 아니꼽다는 듯 볼멘소리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여기 선생님 말고는 저뿐이잖아요. 부당하거나 위선적인 상황 앞에서 참을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이안이 생각하는 자신의 단점이었다. 그러나 참을성이 없기는커녕 소설가가 되려는 목표가 있었을 때에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요셉의 권위에 비굴하게 복종했다는 걸 이안은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있었다. 타락한 기득권의 세계가 청춘의 상실에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의도이지만 요셉에 대한 사적인 앙심도 영화 「작가들」을 기획하게 된 한가지 동기라는 사실을 이안 자신은 부정하고 있었다.

막상 입에서 말은 튀어나왔지만 이안은 이내 후회했다. 그는 요셉이 나?라고 되물으며 시간을 벌려 하는 것이 당황했을 때 나오는 버릇임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런 반문의 순간이 많아지면 요셉은 얼마 안 가 취해버리곤 했다. 이안은 이쯤에서 빨리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고 싶었다. 요셉은 그렇지 않았다. 이안의 건방진 태도를 보니 이제는 그가 갖고 온 용건을 듣기조차 싫어졌다. 그리고 뭐가 됐든 듣기도 전에 돕지 않을 방법으로는 빨리 취하는 것밖에 달리 떠오르는 게 없었다.

술을 단숨에 들이켠 뒤 요셉이 대꾸했다. 내가 어느 단계냐. 글쎄, 인정받아본 적이 없는 작가한테는 단계 따위가 적용 안돼. 요셉이 스스로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건 솔직함이 아니라 불쾌감의 표현이었다. 선생님이요? 그건 아니잖아요. 지금은 아부라도 해야 한다고 노선을 바꾼 이안이 즉시 대꾸했다. 내가 호랑이를 그려놨는데 사자 잘 그렸다고 칭찬받은 것들 말야? 선생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안의 말꼬리는 약간 올라가 있었다. 그 순간 요셉은 이안이 눈치만 없는 게 아니라 눈치없기를 확보한 상태에서 깐죽대기도 잘한다는 걸 기억해냈다. 그것은 아주 조금밖에 없던 요셉의 참을성이 바닥을 보이면서 그 아래 깔려 있던 노골적 경멸로 접어드는 길을 활짝 열어젖히는 결과를 낳았다. 요셉이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맞아, 뭘 쓰든 마찬가지야. 누구 한사람 제대로 읽어준 적이 없다니까. 잘된 일이지. 어차피 멋대로 읽을 거니까 아무거나 막 써도 되거든. 어차피 엉뚱하게 읽을 텐데 잘 쓰려고 할 것도 없어. 잘 쓰는 게 또 뭐야. 읽는 놈들 기분에 따라 다르지. 정당한 평가 따위는 없다구. 생각해봐. 그런 게 있다면 이안도 벌써 소설가가 됐겠지. 안 그래? 소설 잘 썼잖아? 선생님. 말을 끊는 이안의 목소리가 떨려나왔고 거기에 요셉은 매우 만족했다.

세상이 그렇게까지 엉터리예요? 그건 선생님 생각이죠. 공정함은 있어요. 선생님은 뜻대로 안되니까 그걸 외면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왜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공정한 게 좋은 거야? 그럼 카오스가 좋은가요? 이안은 또 한번 자기다운 고지식한 이분법으로 맞받았다. 맞아. 요셉이 술잔에 남아 있던 마지막 술을 비웠다. 맞다구. 빛과 어둠은 태초에 나눠지지 말았어야 했어. 괜히 헛수고만 했지. 어차피 어둠이 다 먹었잖아. 대체 세상에 빛이란 게 있기나 해? 그런 게 있으면 이렇게 세상이 나쁜 놈들의 천국이겠어? 고개 돌리지 말라구. 돌리는 순간 곧바로 여기 앉아 있는 나 말고도 나쁜 놈이 세명 이상은 보일걸. 아 참, 지금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어서 가서 나쁜 짓 좀 더 해야지. 악행질량불변의 법칙이란 게 있거든. 세계의 악행에는 정해진 총량이 있는데 내가 안하면 다른 놈이 나쁜 짓을 다 해버릴 거 아냐. 그럼 아깝잖아. 선생님, 그렇게 냉소적일 거라면 대안이 있어야죠. 무슨 대안을 갖고 계신데요? 뭐? 대안이 없으면 싫다는 말도 못해? 싫다는 감정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나? 불완전명사인가? 지하철 안에서 떠들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늙은이들 봐. 남을 야단치면 자신은 높아진다고 생각하잖아. 그렇다고 자신은 똑같은 짓 안하는 줄 알아? 고래고래 소리지르잖아. 그 늙은이도 대안은 없어. 대안이 없이 싫다고 소리치는 것이야말로 고결한 태도야. 남을 야단치는 늙은이들은 다 고결하다구.

아 참. 마침 적당한 할 말이 생각났다는 듯 요셉은 이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연세가 어떻게 되셔? 자살한 게 아니라고 했지? 네, 어머니가 부어놓은 농약을 물인 줄 알고 마셨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거기까진 말 안했지. 아무튼 범인이 어머니였군. 다음 순간 요셉은 자기 말을 정정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몹쓸 우연성이지. 그래서, 즉사겠군? 병원에 입원하고 한달 뒤에 돌아가셨어요. 이 화제를 끝내고 싶은 이안이 다소 고통스럽게 대꾸했지만 요셉은 집요했다. 사인이 독극물 과다복용인가? 그게 아니라 패혈증이에요. 병실에서 감염됐어요. 반전이군. 생수병에 든 농약을 물인 줄 알고 마셨고, 다 나은 줄 알았는데 패혈증에 걸려 갑자기 돌아가셨고, 가족들은 병문안을 갔다가 장례를 치렀다. 플롯이 있네.

이안이 아무 말 없이 술잔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모금을 마시는 동안 요셉은 벗어놓았던 겉옷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물론 이안에게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휴대폰을 탁자 위에 내려놓은 뒤 요셉은 강남에 살고 있다는 도경이라는 여자가 신도시에 도착할 때까지 마실 술을 한병 더 주문했다.

 

 

5. 도경과 요셉의 대단원

 

요셉은 화제를 바꿔 여자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유용하고 멋진 소모품이라는 거였다. 곧 그 자리에 도착할 여자는 게다가 공짜라면서 낄낄거렸다. 심지어 요셉에게 비싼 선물을 사주는 취미까지 갖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돈의 극히 일부와 지능의 거의 대부분을 소비해서 그 취미를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그녀가 생각보다 돈이 많으며 생각보다 지능이 낮다는 사실 둘 다로 매번 요셉을 놀라게 해준다는 것이다. 요셉은 그 두가지에 그녀의 정체성에 대한 은유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요셉이 단정짓는 그녀의 특성은 돈으로 표출되는 헌신과 멍청함에서 비롯되는 무의미한 평화였다. 그리고 그 둘은 사실상 서로 돕는 관계인데 자신은 헌신의 지겨움에서 뜻밖의 중독성을 발견했다고 목청을 높였다. 지겨운 관계니까 지속되는 거야. 새롭고 재미있는 건 오래 못 가거든. 지겨우면 끝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요셉의 궤변에 말려든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이안은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게 상대에 대한 예의잖아요. 넌 예의상 연애하냐? 그리고, 지겹다고 박차고 일어나는 게 예의냐, 아니면 지겨워도 참는 게 예의냐? 내가 참을성 많고 예의바른 인간이 아니었다면 어떤 여자가 선물을 주겠냐. 이안은 입을 다물었다. 요셉의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반어법에는 넌더리가 났다.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어떤 작품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요셉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작품보다는 사람이 낫지. 그리고 거기 비하면 부끄럽게도 자신은 자신이 쓴 작품보다 한없이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이안은 그것이 농담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취해가는 이안의 머릿속에 요셉의 집을 방문했던 어느 겨울 저녁이 떠올랐다. 요셉은 집에 없었다. 대문을 열어주던 요셉의 아내는 이안이 취한 걸 보고 조금 놀란 눈치였다. 그때만 해도 이안은 영화에 관심이 많지 않았다. 그날 처음으로 「차와 동정」이라는 영화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지도교수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 대학생의 이야기였다. 교수의 집에 찾아간 그 대학생에게 차를 대접하며 교수의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이 차와 그리고 동정뿐이야. 그 영화 이야기를 하며 요셉의 아내도 이안에게 차를 끓여주었다. 요셉이 좋아한다는 중국차였다. 집 안은 조용했다. 요셉의 아내와 마주앉은 이안의 머릿속은 그녀의 불행한 결혼생활이 끝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는 생각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말없이 뜨거운 차를 홀짝거리는 동안 불을 켜야 할 만큼 실내가 어두워졌다는 걸 두 사람 모두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안은 술잔으로 팔을 뻗으며 탁자 건너편의 요셉을 흘낏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요셉의 아내에 대한 소문이 사실인지 물어보아야 할 것 같았다. 이안이 요셉을 만나러 오는 데는 여러차례의 다짐이 필요했다. 영화 이외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안이 입에 댔던 술잔을 내려놓는 순간 문밖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여자는 이안의 짐작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안이 보아온 요셉의 여자들은 퇴폐적 옷차림을 좋아하고 느릿느릿 말하는 내성적인 타입이거나 정반대로 큰 눈에 깡마르고 헐렁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결핍된 소녀 같은 여자들이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와 감상적인 여자는 질색이었지만 재능있고 영특한 여자라면 그 정도는 접어주었다. 도경은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키가 작고 통통했으며 생글거리는 인상이었다. 나이는 들어 보이지 않았다. 40대로 접어든 아줌마라기보다 공부 못하고 엉뚱한 말썽을 피우는 여고생 같았다. 손에는 학원가방 같은 납작한 토트백이 들려 있었는데 실제로도 발레 학원에서 오는 길이라 목이 탄다며 앉기도 전에 요셉의 잔에 남아 있던 술을 단숨에 마셔 없애는 거였다. 도경은 상 위에 남아 있던 접시들을 훑어보더니 문을 열고 종업원에게 매운탕을 갖다달라고 말했다. 요셉은 도경의 등장이 수선스럽다며 이마를 찌푸렸다. 선생님은 꼭 시간이 남아돌 때만 연락하더라? 그럼 시간 없으니까 못 만난다고 연락해야 하나? 그것이 그들의 첫 대화였다.

이안이 자신을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하자 도경은 자기는 발레학원 학생이라고 받았다. 왜 발레를 배우세요? 춤에 관심이 많은가요? 이안의 물음에 도경은 정도 이상으로 활짝 웃었다. 그건 아니구요. 그냥 배우는 게 좋아서요. 저는 아는 게 별로 없거든요. 배우는 건 금방 잊어버리구요. 뭐든지 새로 배워야 하니까 맨날 배우고 있는 거예요. 요가도 배웠고, 수영도 배웠는데 물에 뜨지도 못했어요. 나중에 다시 배워야죠. 그래서 제가 좀 바빠요. 요셉이 말없이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있는 데에 신경이 쓰인 이안은 조교시절처럼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며 다시 도경에게 말을 건넸다. 운동을 좋아하시나봐요? 그건 아닌데. 근육 생기는 것도 싫고. 근육이 생겨나면 근육통도 생길 거 아녜요. 그냥 전 무조건 남 따라하는 게 좋아요. 강사만 있으면 뭐든 가서 배우거든요. 꽃꽂이랑 사진도 배웠어요. 아, 맞다. 제빵교실도 다시 다닐 때가 됐네. 밀가루에 달걀 섞는 법까지 잊어버렸어.

갑자기 요셉이 끼어들었다. 꼬르동 블루에서 공부했다는 그 사람 어떻게 됐어? 누구요? 누구 말하는 거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도경을 요셉이 다그쳤다. 레스또랑 내는 거 아니었어? 인테리어 업자한테 주방에서 테이블까지 음식 도착하는 시간을 30초에서 25초로 줄여달라고,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는 사람 말야. 왜요? 왜 시간을 줄여야 해? 난들 아나. 음식이 식을까봐 그런다나 어쩐다나. 네가 한 말이잖아. 점점 짜증이 담겨가는 요셉의 말투에 이안은 불안해졌지만 도경은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응, 기억난다. 그 사람 말이구나. 그 사람 근데 죽었어요. 죽었다고? 네. 왜? 베란다 턱에 기대고 달을 보다가 떨어져 죽었대요. 13층이었대. 고개를 너무 뒤로 젖혔나봐. 그래서 레스또랑은 안하기로 했어요. 아, 맞다. 그 사람 문상도 갔었다. 이 신도시였어. 여기 진짜 멀잖아. 전철 타고 오다가 너무 더워서 중간에 내렸거든. 그 동네도 아파트 많더라. 시간도 남고, 그냥 아무거나 하나 샀더니 2억인가 3억인가 올랐대.

종업원이 끓고 있는 매운탕 냄비를 가져다 휴대용 버너 위에 올려놓고 나갔다. 도경이 다가앉아 한 손에 국자를 들었다. 요셉의 앞접시로 손을 뻗는 순간 그는 얼른 그것을 보호하기라도 하듯이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손사래를 치며 사나운 눈으로 도경을 쏘아보았다. 국자에 든 매운탕을 하는 수 없이 자기 접시에 쏟아붓는 도경의 표정은 무안하다기보다 시무룩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요셉의 접시를 흘깃거리기 시작했다.

도경이 밥을 먹는 동안 요셉은 바보들만 터득한 방법으로 젓가락질을 한다고 핀잔을 주었고 오이 씹는 소리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도경이 숟가락을 들자마자 혹시 그것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말을 할 생각이라면 당장 내려놓으라고 충고했으며, 전에도 몇번이나 레스또랑에서 칼을 쥔 손으로 자기를 공격했다는 점을 거듭 상기시켰다. 뜨거운 밥을 식히느라 김을 내뿜으며 입안에서 이리저리 밥알을 굴리는 도경을 바라보는 눈에는 거의 공격성이 담겨 있었다. 국물을 뜰 때 숟가락의 놀림이 빠른 것도 경박하다고 못마땅해했다. 그렇게 짧게 끊는 동작을 보니 팔이 짧은 게 실감난다는 거였다.

어느 순간 도경이 다시 한번 국자를 들었다. 생선 토막이 든 국물을 떠서 요셉의 앞접시에 부어놓는 데에 성공했을 때 그녀는 속눈썹을 깜박이며 가까스로 기쁨을 감췄다. 물론 요셉은 자기만의 매운탕 공략의 단계적 계획을 망쳐버린 도경에게서 증오에 찬 시선을 한참이나 거두지 못했다. 어류의 골격구조를 면밀히 계산하며 신중히 뼈를 발라내서 막 생선의 하얀 살점이 드러나는 순간 그 위를 무식한 뻘건 국물이 덮어버린 데 대한 분노 때문에 자신의 얼굴도 국물과 비슷한 색깔이 되었다. 요셉은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야말로 자기가 가장 혐오하는 것인데 그것의 타당한 이유는 진정한 헌신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스스로 헌신이라고 의식하는 모든 행위는 정산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잠재적 빚이며 자신은 그런 부당한 빚 따위는 결단코 용납할 수 없다고 사뭇 목청을 높였다. 일단 목적을 이룬 도경은 잘 듣는 것 같지 않았다. 어차피 잊어버리기 때문에 들어둘 필요가 없든지 나중에 또 말할 테니 그때 들으면 될 것 아니냐고 생각하든지 둘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잠시 후 이안은 요셉의 감정기복과 변덕에 대해 자신이 간과하고 있었음을 깨달아야 했다. 갑자기 요셉이 도경을 뮤즈라며 칭송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경이는 밑 빠진 독이야. 밑이 빠졌다는 말 알아? 뭐든 부으면 새버리는 것. 의미 따위가 저장되지 않는 거야. 이미지도 패턴도 성립 안돼. 도대체가 성립되지 않는 세계란 말야. 밑 빠진 독, 알아듣겠냐? 헤픈 걸로는 또 최고지.

요셉이 빈 술병을 들어 흔들었다. 술을 더 주문할 기색이었다. 이안은 자신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를 잊지 않고 있었다. 취한 요셉을 바라보는 이안의 시선은 약간 초조했다. 그는 탁자 너머로 슬쩍 요셉의 팔을 잡았다. 선생님 주량은 여전하시네요. 간은 괜찮으신 거죠? 못 들은 척 호출 벨을 누른 다음 요셉이 눈을 아래로 뜬 채 천천히 대꾸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면 안되지.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쉬워. 병고로써 양식을 삼으라, 그거 몰라?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이안이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건너편의 도경에게 던져봤지만 도경은 활짝 웃는 얼굴을 보여줄 뿐이었다. 요셉의 말이 계속되었다. 세상일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하는 마음이 생기니, 근심과 곤란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라. 부처님 말씀이야. 이것도 있지. 공부하는 데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느니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맞아, 딱 내 얘기네. 도경이 박수를 쳤다. 머리 나쁜 건 장애가 아니야. 불능이지. 요셉이 고개를 돌리고 한마디 던지자 도경이 다시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하! 노골적인 경멸을 담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요셉은 되물었다. 아하,라고? 뭐가 아하야? 알았다는 뜻이죠. 장애가 아니라 불능. 그래. 불능이 뭔지 한칼에 보여주는군. 그야말로 장한 대단원이다. 뭐든 아는 건 좋은 거잖아요. 깔깔 소리내어 웃는 도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이안을 향해 웃음을 그치지 못해 어깨를 들먹이며 그녀가 말했다. 저 원래 잘 웃어요.

술을 더 마실지 아닐지는 그들이 결정하는 게 아니었다. 영업시간이 끝났다며 종업원이 계산서를 들고 왔다. 도경이 학원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카드를 빼서 건네주었다. 이안은 자기도 모르게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고 도경에게서는 어머, 돈 때문에 고맙다는 말 처음 들어, 감독님 왜 그렇게 심각하세요,라는 대꾸가 돌아왔다. 이안은 여자가 있는 한 요셉과의 술자리가 2차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젠 종업원이 카드와 영수증을 갖고 돌아오기 전까지의 시간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안의 말이 또박또박하고 빨라졌다. 선생님, 제가 단편영화를 찍으려고 해요. 돈이 없어서 친구들이 출연해주기로 했는데요. 이안은 요셉이 알 리 없는 이름을 줄줄이 늘어놓은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후원하는 곳은 있어요. B문화재단이라고 아시죠? 거기 공모에 씨나리오가 당선돼서 팀장이랑 같이 기획한 프로젝트거든요. 이름이 좀 특이한 여자 팀장인데, 나중에 같이 좀 만나주세요. 어지간히 술이 올랐지만 이안은 마지막 남은 기운을 다해 자기의 계획을 설명했다. 이안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벽에 기대앉은 요셉이 아니라 탁자 쪽으로 윗몸을 내밀고 통통한 하얀 팔을 들어 턱을 괴고 있는 도경이었다. 말이 끝나자 요셉은 알았는데, 그건 꼭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말해야 하는 거냐,라고 한마디 던졌을 뿐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한번 설정된 관계의 틀이 바뀌지 않고 반복된다는 생각이 이안에게 약간의 좌절감을 주었다. 그것은 익히 알고 있었던 요셉의 속된 욕망과 과장과 엄살에 대한 염증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항목 모두는 요셉이 이안에게 염증을 느끼는 이유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안이 잡아주는 택시에 오른 뒤 요셉은 도경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취하긴 했지만 완전히 풀어진 건 아니었다. 술이 들어가면 말이 길어진다는 건 스스로 알고 있었다. 대신 자기연민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거나 심정을 토로하는 어설픈 짓은 하지 않았다. 이안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만은 그날의 만남에서 어느정도 만족스러운 결말이었다. 택시가 출발하고 이안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야 요셉은 그가 찍겠다던 영화 이야기를 떠올려보았다. 이안의 입에서 나왔던 이름들을 생각했다. 거기에는 류의 이름도 있었던 것 같았다. 요셉의 이마에 둥글고 도톰한 도경의 어깨 살집의 감촉이 느껴졌다. 불현듯 이 여자의 옷을 벗길 일이 지겨워졌다. 스할 때 도경은 충실한 애완견처럼 굴었지만 재치도 창의력도 없었다. 시종일관 온몸을 조이는 것만으로 최선을 다했다. 늘 불을 끄기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두 주먹을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힘 좀 빼보라니까. 요셉은 인상을 쓰며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요?라며 깔깔대겠지만 도경의 표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안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요셉은 도경의 어깨에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허벅지에 올려져 있던 그녀의 손을 차갑게 밀쳐냈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도경은 조용했다. 요셉이 택시기사에게 라디오를 꺼달라고 말하려는데 도경이 갑자기 소리쳤다. 어머, 비 온다. 고개를 돌린 요셉의 시야로 차창에 부딪치는 밤의 봄비가 뛰쳐들어왔다. 빛의 빗금이 검은 어둠을 뚫고 맹렬히 따라오며 차창을 두드렸다. 요셉은 차가운 유리에 이마를 갖다댔다. 어서 와라. 꽉 막힌 머리를 벽장문처럼 드르륵 열고 활달하고 신선한 공기를 집어넣어줘. 굳어버린 내 입가를 봄 냇물처럼 녹여서 한바탕 크게 웃게 해주어. 어서. 그것은 류가 식탁 위의 공책에 써놓은 구절이었다. 류의 마지막 말인 셈이었다. 요셉이 류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그토록 수없이 외쳤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류, 왜 그렇게 내게 차가운 거야.

 

16년 만의 무더위라는 기상청의 발표는 매일 기록을 경신했다. 이어서 기상관측 이래라는 말이 며칠 동안 되풀이되고 있었다. 폭염 속에서 우리는 S시에 방을 얻었다. 서로를 떼어놓는 각자의 인생으로부터 도망쳐온 것이었다. 그때의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은 그 섬이었다. 전국을 양은솥처럼 달구고 있는 열기에 비해 S시는 그다지 덥지 않았다. 그러나 거대한 휴화산이 편서풍을 가로막아 도시 전체를 습하게 만들었다. 마치 비닐을 씌운 장마철의 온실 속 같았다. 텔레비전의 화면 귀퉁이에는 매일의 습도가 기온보다 큰 숫자로 떠 있었고 지역뉴스 시간에는 대형마트에 제습기가 동이 났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우리가 세든 태양연립 301호의 벽에도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1. 습도가 높으니 꼭 창문을 닫아주세요. 2. 곰팡이를 자주 닦아주시고 모기향이 준비돼 있습니다. 도망자답게 우리는 하루종일 창문을 꼭꼭 닫고 지냈다. 낙원 추방의 전야처럼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채 먹고 마시고 뒹굴었다. 끈적끈적한 팔을 휘감았고 미끌거리는 이마를 맞댔고 쉴새없이 땀이 흘러내리는 등을 서로 기대었다. 나귀처럼 더운 입김을 내뿜으며 키스했다. 눅눅한 이불 속에서 뜨거운 진흙탕에 빠진 것처럼 얽혀 허우적거렸고 그때마다 달고 뜨거운 시럽같이 그대로 녹아내려 마침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자고 약속했다.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모기를 잡다가 결국 후텁지근한 실내에 모기향을 피웠다. 우리들의 장례식에 온 흉내를 내며 모기향 앞에 절을 하고 킬킬거렸다. 우리는 버림받기를 간절히 바랐다. 무위와 권태에 매혹되었고 따분함을 즐겼다. 시장에 가고 골목을 산책하기도 했지만 금방 태양연립 301호로 돌아오곤 했다. 류는 노래를 잘 불렀다. 그녀가 2인용 식탁에 앉아 손으로 턱을 받치고 작은 목소리로 아리아를 부를 때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온 땀방울이 손등으로 미끄러졌다. 실내에는 늘 모기향과 곰팡이와 하수구 냄새가 떠돌았고 벽과 바닥은 눈물에 젖은 듯 차고 축축했다. 깊은 밤 어쩌다 창문을 열면 희뿌연 입자들이 수상한 기척과 함께 집 안으로 몰려들어왔다. 그뿐이었다. 아무도 우리를 찾아내 갈라놓지 못했다. 눈을 뜨면 언제나 옆에 류가 있었다. 잠들어 있거나 잠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말하기 싫을 때 뭔가 적어놓도록 식탁 위에 공책을 한권 갖다놓았다. 곁에 없다면 그 공책에 편지를 써놓고 집 안 어딘가에 혼자 있는 것이었다. 류가 사라졌을 때 나는 맨 먼저 그 공책부터 집어들었지만 새로 적어놓은 글은 없었다. 집 안 구석구석을 미친 듯이 뒤졌고 계단을 서너칸씩 건너뛰며 구르듯 내려가서 골목과 시장을 샅샅이 살폈지만 그녀는 없었다. 나의 몸은 우리가 함께 흘린 땀보다 몇배나 많은 땀으로 흠씬 젖었지만 거기에 달콤한 훈향은 없었다. 류, 왜 떠났을까. 그길로 다시 태양연립에 뛰어 돌아와 짐을 싸면서 류의 여행가방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는 나의 눈에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그날 밤 공항에 내리자마자 류의 아파트로 갔다. 새벽까지 기다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아파트 앞을 스치는 꽃냄새를 품은 쾌적한 새벽바람이 마치 백화점 향수코너를 채우고 있는 에어컨 냉기 같아 몸을 움츠렸을 뿐이었다. 며칠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온갖 곳을 찾아 헤맸지만 류는 만날 수 없었다. 모든 연락은 끊어졌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새벽 거리에 몸속의 모든 것을 게워놓고 그 옆에 쓰러진 채, 무엇이 달려와 나를 뭉개버리든 지금보다 비참하진 않을 거라는 절망 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던가. 왜 그랬을까, 류. 왜 떠났어. 왜 그렇게 내게 차가운 거야.

 

요셉은 도경의 위에서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땀에 흠뻑 젖어 있었지만 살갗의 안쪽은 차가웠다. 격정 없이 난폭해질 수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스에는 일인극과 소극의 요소가 있었다. 요셉은 일인극을, 도경은 소극을 원했지만 갈망이 없기는 둘 다 마찬가지였다. 패턴의 세계라는 이름의 이 극장의 배우들은 막이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요셉이 거칠고 짧은 숨소리를 뱉었고 도경은 가만히 팔목을 들어 시계의 야광바늘을 보았다. 시계를 차고 스하는 여자들은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각이 언제인지 알고 있는 거였다. 요셉 또한 다른 날과 비슷하게 그날의 이야기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시작될 때와 마찬가지로 약간의 우울과 무거움을 동반했는데 굳이 따지자면 고통보다는 고독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