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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도종환 『정순철 평전』, 정순철기념사업회 2011

열정과 발품으로 복원한 동요 작곡가의 생애

 

 

김제곤 金濟坤

아동문학평론가 jegoniid@hanmail.net

 

 

15945정순철(鄭淳哲, 1901~?)은 우리 창작동요가 꽃피기 시작하던 1920년대 초반부터 홍난파, 윤극영, 박태준 등과 더불어 어린이 노래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던 동요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작곡한 노래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한 생명력을 지니고 아이들 입에서 불리고 있다.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하고 시작되는 동요 「짝짜꿍」이나 해마다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어김없이 불리는 「졸업식 노래」는 다름아닌 정순철이 작곡한 노래다. 그런데 동시대에 동요 작곡가로 활동한 다른 이들과 다르게 그의 이름은 까마득히 잊혔다. 이는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가 한국전쟁 때 납북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분단의 비극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음악가의 삶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그런데 한 시인의 집념어린 열정으로 그 잊힌 이름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빛을 쐬게 되었다.

시인이 복원해낸 정순철의 생애는 기구하고 비극적이다. 정순철의 어머니는 동학 2세 교주 해월 최시형(崔時亨)의 딸인 최윤(崔潤)이다. 1세 교주 수운 최제우(崔濟愚)가 사형당하고 그뒤를 이은 해월이 관군의 추적을 피해 도피중일 때, 최윤 또한 도망다니다 붙잡혀 청산현 관아에 갇히게 된다. 이때 청산군수 박정빈은 죄인 신분이던 최윤에게 자기 휘하에 있던 정주현(鄭周鉉)과 억지로 혼인을 맺게 한다. 정순철은 그렇게 억지 인연을 맺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런 까닭에 그의 어린 시절은 “언제나 쓸쓸하얏고 언제나 외로”(86면)웠다. 그렇게 자라난 그가 평생 어린이를 위해 동요만을 작곡하다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에게 끼친 불행은 어느 누구보다 가혹했다 할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1920년대부터 소년운동과 어린이문화운동의 선두에 섰으며 이후 동요 작곡가로서의 삶을 고수한 정순철의 배경에 외조부인 해월의 사상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음을 강조한다. 해월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에서 비롯된 어린이 애호 정신이 어린이를 위한 활동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밝히기 위해 지은이는 책의 앞부분에서 수운으로부터 해월, 의암(손병희)으로 이어지는 동학사상의 흐름과 동학이 근대종교인 천도교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고찰한다. 이 과정에서 정순철의 생애와 관련해 그동안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새롭게 밝혀냈다. 그것은 바로 관군에 잡혀 최윤과 함께 청산현 관아에 갇혔던 사람이 종래 알려진 대로 해월의 둘째 부인 김씨가 아니라 셋째 부인 손씨였다는 점, 정순철이 소년시절 서울로 상경하게 된 것은 단신가출이 아니라 의암의 배려로 인한 가족 이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또한 그가 보성고보 졸업 후 일본에 유학하여 동경음악학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한 것으로만 막연히 알려져 있었는데, 필자의 발품으로 유학 시기의 과정이 좀더 소상히 밝혀졌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동요 작곡가와 음악교사로서 정순철의 면모를 밝힌 부분이다. 정순철은 창작동요운동의 선구자로 1929년 첫 동요작곡집 『갈닢피리』와 1932년 동요작곡집 『참새의 노래』를 펴냈다. 1931년에는 ‘색동회’ 동인이던 정인섭, 이헌구 등과 ‘녹양회(綠陽會)’라는 동극단체를 조직해 활동하기도 한다. 한편 그는 1927년 동덕여고 교사를 시작으로 납북되기 직전까지 음악교사의 길을 걸었다. 지은이는 이러한 정순철의 음악가로서의 활동과 그 활동이 지니는 의미를 조목조목 짚고 있다.

정순철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피난을 하지 못하고 남아 있다가 인민군 제자에 의해 납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알고 있던 지은이는 남북한 문학교류의 일환으로 북한에 갔을 때, 납북된 이후 행적이 묘연한 정순철의 발자취를 열심히 수소문했던 것 같다. 지은이는 북한의 음악사를 기술한 자료들에서 정순철이 일제강점기의 중요한 동요 작곡가로 다루어지는 것을 확인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어떤 활동을 하다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를 끝내 알아내진 못했다고 한다.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해월 최시형으로부터 시작되는 가계사에 대한 소상한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정순철의 생애만큼이나 기구했던 최윤의 생애와 맞닥뜨리게 된다. 정순철이 어린이를 위한 음악활동으로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개척했다면, 어머니 최윤은 종교적 수행으로 그러한 질곡을 극복했다. 정순철의 생애만큼이나 어머니 최윤의 삶은 또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평전 출간의 정해진 기한이 있어 자료조사를 미처 다 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며, “악보도 조금 더 찾아야 하고, 사실관계 확인도 더 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23면). 지은이의 말처럼 정순철에 대한 최초의 평전이 안을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완하는 후속 작업이 꼭 이루어졌으면 한다. 보완시 고려할 점은 우선 정순철의 활동을 언급한 여러 증언과 선행연구자들의 발언을 인용하는 차원을 넘어 그에 대한 좀더 엄밀한 검증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예민한 시기라 할 1942년 이후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 정순철의 구체적인 행적이 더 밝혀지면 좋겠다. 책 서두에 소개한 정순철 관련 사진들과 책 말미에 수록한 『갈닢피리』와 『참새의 노래』 악보는 우리 동요연구의 1차 자료로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지은이가 밝힌 대로 미처 발굴되지 못한 악보들을 더 찾아내 정순철의 온전한 동요작품 목록이 완성되길 바란다. 이 책은 ‘비매품’이어서 일반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다. 모처럼 나온 이 귀한 책이 좀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