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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원 톄쥔 『백년의 급진』, 돌베개 2013

새로운 ‘급진’은 가능할 것인가

 

 

조문영 趙文英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munyoung@yonsei.ac.kr

 

 

촌평-백년의급진_fmt1970년대말의 ‘개혁개방’은 신()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망라한 모든 영역을 그 전과 후로 대별하는 절대적 분기점으로 간주되어왔다. 포스트 사회주의를 선언한 러시아 및 동구권 국가들과 달리 사회주의라는 명칭을 고스란히 남긴 채 주식과 부동산 투기로 들썩이는 이 기묘한 나라에 대해 대부분의 학자들은 ‘자본주의’ 대신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모호한 용어로 마오 쩌둥(毛澤東) 집권기의 ‘계획경제’와 대별되는 개혁개방 이후의 경제체제를 설명해왔다. 이 절대적 분기의 후광을 걷어낸 학자가 중국인민대학의 ‘농업 및 농촌발전대학’ 학장을 맡고 있는 원 톄쥔(溫鐵軍)이다. “사람들은 흔히 1978년에 개혁의 봄바람이 조국의 대지에 불었다고 말하거나 또는 지도자 ‘모모’가 개혁개방의 나팔을 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진지하게 직접 자료를 정리하고, 1978년의 어느 문건에 ‘개혁개방’이라는 네 글자가 쓰여 있는지를 살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여러분이 직접 문건을 정리해본다면, 1978년의 어느 문건에도 이 네 글자가 없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62면) 원 톄쥔은 개혁개방은 물론 1949년 신중국 성립과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분기점 대신 백년이라는 긴 호흡을 갖고 현대중국을 마주할 것을 제안한다. 현대중국을 정의하는 것은 공산당과 국민당의 정쟁, 좌와 우의 대립 같은 이데올로기적 투쟁이 아니라 ‘백년의 급진’, 즉 국가자본 중심의 공업화를 이룩하기 위한 자본축적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원 톄쥔의 논문과 강연록을 모아낸 저서 『백년의 급진』(김진공 옮김)은 중국이 지난 한세기 동안 밟아온 공업화 과정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서구의 현대화 모델을 따르지 않는 독자적인 발전경로를 모색한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경험하고 뒤늦게 공업화를 추진한 농민국가에서 자본의 축적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서구처럼 해외 식민지를 통해 부를 약탈하고 내부 모순을 전가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국은 내향형 원시적 축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축적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전체 인민, 특히 농민이 고스란히 지불해야 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뿌리깊은 중국의 향촌사회야말로 공업화 축적의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차례의 파국에 대응하게 해준 ‘안전장치’였음을 강조한다. 비전형적인 초고속 개발주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도시 산업자본 위기의 연착륙이 가능했던 것은 신중국의 도농 이원구조하에서 도시로의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농민이 일종의 ‘총알받이’가 되어준 덕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저자는 신중국이 경험한 일련의 캠페인을, 도농의 괴리를 극복하고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운동으로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총동원체제’를 가동함으로써 산업자본에 대한 국가적 수요를 창출하려 했던 경제적 전략으로 이해한다. 1950년대말의 ‘대약진’은 농촌의 공업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사회운동이었으며, 문화대혁명 시기의 대규모 상산하향(上山下鄕)은 도시의 과잉 노동력을 농촌으로 축출해버린 작업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원 톄쥔의 독창적 해석은 중국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의 방향을 모색하는 작업에도 힘을 불어넣는다. 이제 자본의 결핍에서 과잉의 상태로 접어든 21세기의 중국은 초고속 경제성장이 가져온 풍요를 자찬하기보다는 친자본적 정책이 주도한 ‘백년의 급진’에 제동을 걸고, 공업화가 야기한 환경파괴와 지역격차를 극복할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특히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토지 사유화를 추진할 것이 아니라, 방대한 농민층이 소자산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신농촌 건설에 힘써야 한다. 또한 급속한 도시화로 농촌을 공동화(空洞化)할 것이 아니라, 성진화(城鎭化) 작업을 통해 농촌과 긴밀히 연계된 진()급의 중소도시를 발전시켜야 한다. “(농민이) 도시로 갈 자유와 다시 돌아올 자유만 보장된다면 사회는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208면) 결국 저자는 21세기 중국을 구원할 해법을 경자유기전(耕者有其田)이라는 향촌사회의 오랜 전통에서 찾는 셈이다.

동아시아적 사유로 잘 알려진 쑨 거(孫歌)가 발문에서 강조한 대로 『백년의 급진』은 중국이 식민과 약탈로 지탱된 서구의 현대화 모델을 복제할 수도 없고 복제해서도 안된다는 점을 명쾌한 구조적・실증적 분석을 통해 보여준 역작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실제의 경험과 유리된 도구적 명분으로 축소시킨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오 쩌둥의 정책이 실제로는 친자본이었다는 원 톄쥔의 주장은 현실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국가 못지않게 개발신화에 집착해왔음을 예리하게 보여주지만, 혁명 이데올로기를 당-국가가 공업화에 필요한 무상의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동원한 대중설득 기제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저자 본인이 강조한 연구의 ‘현장성’을 오히려 퇴색시킬 수도 있다. 우리가 이데올로기를 실재에 대한 단순 허위의식으로부터 끄집어내어 개인이 자신의 실제 조건과 맺는 상상적 관계의 표상으로 바라본다면(알뛰세르), 주체가 실재와 관계를 맺기 위해 경유하는 이념과 규율, 언어가 일상적인 삶 한가운데서 얼마나 큰 진폭을 낳았는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저자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경험 위에서 분석”(61면)할 것을 제안하나 사회주의 중국의 역사를 관통했던 수많은 인민(특히 노동자 집단)에게 이데올로기가 곧 경험의 한 형태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 중국의 인민은 ‘국민’으로서 공업화를 통한 국가건설의 대오를 형성함과 동시에 ‘계급’으로서 그 선도적 위치를 호명받았는데, 원 톄쥔의 논의에서 배제된 이 후자의 측면은 현재까지도 정치적 저항의 중요한 형태로 남아 있다. 기우에 불과하겠지만, 중국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그의 심도 깊은 논의가 혁명으로서의 사회주의를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시킨 채 일당지배하의 엘리트 통치를 정당화하는 국가주의적 변()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