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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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윤지관 『세계문학을 향하여: 지구시대의 문학연구』, 창비 2013

민족문학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계문학

 

 

변현태 卞鉉台

서울대 노문과 교수 smex36@snu.ac.kr

 

 

이 책을 읽는 내내163새책-06세계문학을향하여-표1_fmt 평자가 떠올렸던 것은 삼각형의 구도였다. 제1부 ‘지구화시대의 언어와 번역’과 제3부 ‘영문학 연구와 사회 이해’가 삼각형의 밑변 꼭짓점을, 이 책의 핵심이자 마땅히 촌평의 주요 대상이 되어야 할 제2부 ‘세계문학의 이념과 실천’이 삼각형의 정점을 이룬다.

삼각형이니 마땅히 꼭짓점과 정상을 연결시켜주는 빗변들이 있다. 가령 저자는 「지구화에 대한 한 고찰」에서 “일국의 민주화도 국제관계의 정치적 지배와 간섭에서 완전히 벗어난 채 이루어지기는 어렵고, 무엇보다 자본의 작동과 시장 메커니즘의 점증하는 개입 속에서 단순히 민족 내부의 문제로만 한정되지 않는 복합성을 안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최근의 지구화가 초래한 “새로운 국면”으로 파악하고, “민족국가의 소멸을 당연시하는 지구화 이데올로기에 맞서 그 저항 가능성을 되살리는 한편, 민족국가를 넘어선 국제적 연대의 전망이 필요”(122면)하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러한 인식과 전망이 저자의 세계문학론과 연결되고 있음은 자명하다.

한편, 현재 서구에서 세계문학론을 주도하고 있는 이론가 중 한 사람인 프랑꼬 모레띠(Franco Moretti)의 모더니즘을 논쟁적으로 분석한 「근대성의 황혼」도 3부와 2부를 연결시켜주는 빗변으로 손색이 없다. 모레띠의 모더니즘론에 대한 꼼꼼한 독서가 세계문학론과 관련해서 중요한 이유는 최근 서구의 세계문학론이 모더니즘 문학을 특권화하는 경향이 있기에 이를 리얼리즘론의 관점에서 제대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이 주축이 된 서구문학의 현대적 성취들이 제국주의의 팽창과 더불어 광범하게 세계문학의 정전으로 자리잡은 반면, 식민 혹은 탈식민 사회의 독자들에게는 리얼리즘의 기법과 정신이 더 폭넓은 보편성을 얻어왔기 때문”(163면)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서구의 모더니즘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예컨대 모레띠의 모더니즘론이 “모더니즘의 가능성뿐 아니라 리얼리즘의 당대적 역할을 모색하는 우리의 문학논의”(343면)에 어떤 시사점을 주고 있는가를 꼼꼼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삼각형을 관통하고 있는 어떤 ‘비평의 애티튜드’를 지적해둘 필요가 있을 듯하다. 저자 자신이 ‘문학번역의 이념’으로 내세운 ‘충실성’이 그것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비록 정의하기 어려울지라도, 결국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옮기려는 비평의 정신과 그 실천”(33면)이 충실성인데, 세계문학을 다루는 저자의 태도야말로 이 ‘충실성’이라는 말에 값한다.

저자의 논의들은 최근 세계문학과 그를 둘러싼 담론의 새로운 지점들에 대한 민족문학론의 적극적인 개입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지점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가령 2000년대에 들어서 뚜렷하게 형성되고 있는 한국에서의 세계문학출판 붐을 한 예로 들 수 있겠는데, 저자는 이 현상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시장 리얼리즘’을 지적한다. 세계문학출판 붐은 “지구화하는 자본의 현실에서 세계적인 정전조차 상품화되어 세계시장의 유통구조 속에 놓이는 위기국면의 한 증좌”(197면)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위기국면’을 괴테와 맑스의 ‘이념’으로서의 세계문학론의 뜻을 되새김으로써 돌파하고자 한다. 요컨대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가속화되기 시작한 “현금의 지구화가 모든 문제들의 지구적인 확산 내지 심화를 강화하는 가운데, 그에 대한 문학적 대응으로 세계문학의 이념이나 그 방향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바로 저 새로운 지점, 혹은 저자의 말을 빌리면 “새 국면의 도래”(135면)의 핵심이다.

이 ‘새 국면의 도래’에 직면해서 민족문학의 관점에서 세계문학 이념의 새로운 내용을 모색하는 저자의 태도는 상당히 발본적이다. 가령 최근 서구에서 세계문학을 둘러싼 논의를 촉발한 계기이기도 했던 빠스칼 까자노바(Pascale Casanova)의 『세계문학공화국』(La République mondiale des Letters, 1999)에 대한 비판이 그러하다. 까자노바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와 그 법칙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세계문학공화국’을 모색하면서, 현재의 세계문학은 빠리(Paris)를 수도이자 ‘세계문학의 표준시’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획과 주장이 갖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까자노바의 주장이 서구중심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이제는 다소 새삼스럽다.

까자노바의 저서를 논의하는 대부분의 필자들이 빠리를 그렇게 설정한 데 대해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한다면, 저자는 까자노바의 ‘세계문학공화국’이라는 기획 자체를 문제삼는다. 가령 “까자노바는 세계체제의 불평등 구조를 그것과는 독립되어 움직이는 문학장의 논리로 환원하여 그 물질성을 희석할뿐더러, 그런 희석을 통해, 즉 그 구체적인 지역성의 탈피를 통해 도달하는 세계문학의 보편성을 그것대로 긍정함으로써 서양중심주의를 교묘하게 재생산하고 있다”(145면) 같은 진단이 그러하다. 아마도 이 ‘물질성’에 대한 더 많은 고찰에서 자본주의의 전지구화라는 현실에 맞서는, 그리고 지구화에 근거한 세계문학론에 맞서는 민족문학론의 이론적인 교두보가 만들어질 것이다. 저자의 세계문학론이야말로 이 교두보의 벽돌이 될 터인데, 그 입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앞으로 세계문학론을 살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저자의 발본적인 논의는 필히 상대해야 할 수문장으로 보인다.

이제 이 책을 읽으면서 해결할 수 없었던 몇가지 지점을 언급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자. 먼저 세계문학론이라는 문제설정 자체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러시아문학을 연구하는 평자가 아는 바로 현재 러시아문학계에서 세계문학론은 그다지 문제적이지 않다. 저자가 세계문학의 관점에서 동아시아문학을 개괄하고 있는 대목(219~26면)을 보면 중국문학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까자노바의 저서를 둘러싼 논의도 그렇다. 불어로 쓰인 이 책에 대한 비영어권의 논의를 평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만일 평자의 심증이 실제 상황에 부합한다면, 왜 지금 유독 한국에서 세계문학론이 문제적일까? ‘한국문학의 세계화’ 같은 당위적으로 보이는 명제가 불러일으키는 불편함이 만일 평자만의 것이 아니라면, 최근 한국에서의 세계문학론에 대한 ‘핫’한 논의에 개입되어 있는 어떤 욕망에 대한 한층 정치(精緻)한 분석도 필요하지 않을까?

더 근본적인 질문도 떠올랐다. “세계문학이 의제가 되면서 다시 한번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이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본원적인 물음이 환기될 수밖에 없었고 또 환기되고 있는 것”(135면)이라는 저자의 주장과 관련된 것이다. 이 주장은 세계문학을 바라보는 민족문학론의 또다른 입지, 즉 ‘제3세계문학론’의 근본적인 취지와 일맥상통한다. 요컨대 “제3세계적 관점은 민중적 관점을 좀더 세계적인 차원으로 열어놓으며 세계화의 과정에서 비단 제3세계뿐 아니라 제1세계 내에 존재하는 민중들과의 국제적 연대의 전망을 전제하는 것”(273면)이다. 위 질문은 자본주의의 전지구화라는 현재의 상황에 맞서서 더욱 새로운 세계문학 이념의 획득을 위해 싸울 수 있는 문학의 ‘보편적 혁명성’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의 답에 대한 하나의 모색을, 저자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들뢰즈(G. Deleuze)와 가따리(F. Gattari)의 ‘소수문학론’에 대한 더욱 꼼꼼한 독서에서 출발할 수는 없을까?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평자의 이 질문이 까자노바의 세계문학론을 포함해서 저자의 세계문학론을 저 ‘소수문학론’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있는 진은영(陳恩英)의 글(「문학의 아나크로니즘: ‘작은’ 문학과 ‘소수’ 문학을 중심으로」, 『인문논총』 제67집,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2012)과 역시 저 ‘소수문학론’을 리얼리즘과 청치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있는 김성호(金成鎬)의 글(강렬도의 미학과 장편소설: 들뢰즈 문학론의 잠재력에 관하여, 창작과비평 2013년 가을호)을 참조한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해두기로 하자.

스스로 해결하지도 못하는 질문을 던지는 평자의 욕망이 이해되기를 바란다. 이 욕망이 민족문학론의 관점에서 세계문학론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살피고 있는 저자의 ‘충실성’에 대한 기대와 민족문학론 외부의 담론들과 대화하면서들뢰즈식으로 말하면자신의 근본적인 테제들을 ‘탈영토화’해왔던 한국의 민족문학론의 ‘역량’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변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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