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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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용인·테일러 워시번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 창비 2014

미국인이 말하는 미국의 진실

 

 

최종건 崔鍾建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jongchoi@yonsei.ac.kr

 

 

165-촌평-미국의아시아회귀전략_fmt종합편성방송 채널 등장 이후 시사 프로그램이 범람한다. 각계의 전문가들은 현안에 대한 의견을 쏟아낸다. 의견은 풍부해졌는데, 무엇이 정확한 정보인지 혼란스럽다. 다양한 의견 속에 가려진 유용한 정보에 대한 갈증만 심해지는 시대이다. 세월호 참사의 허망함과 무력감 속에서도 국제정치는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획득과 위안부 부정 그리고 독도 영유권 주장은 왜 우리 이웃은 이 모양인가라는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중국의 부상(浮上)은 더이상 미래사적 관측이 아닌 오늘날의 현실이 되었다. 박근혜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화려한 선언을 쏟아냈지만 정작 실현의지는 매우 빈약하다. 그런데도 통일을 준비한다며 초현실적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경제침체와 전쟁 피로에서 회복되지 못한 미국은 아시아로 군사와 외교력을 재조정하겠다며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을 겨냥하는 미사일방어체계에 참여해야 하는지,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과 전략적으로 협력해야 하는지, 부상하는 중국과 어떠한 협력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자신의 이론과 이념 그리고 편견으로 포장된 의견을 여러 매체에서 발산한다.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북한이 마치 진실의 전부인 양 이야기한다.

루쏘(J.- J. Rousseau)는 이 세상에 ‘너의 진실’, ‘나의 진실’ 그리고 ‘진실 그 자체’라는 세가지 진실이 있다고 주장한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진실이 ‘진실 그 자체’라고 할 수 없듯이, 그들의 미국이 미국 그 자체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갈증을 해소해줄 책 한권이 출판되었다. 이용인(李鎔寅) 한겨레 기자와 미국의 법률가이자 정치학자 테일러 워시번(Taylor Washburn)이 집필한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은 201111월 미국 오바마(B. Obama) 대통령이 발표한 아시아 회귀 정책을 정면으로 조명한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가 15인에게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무엇이고 어떻게 선택되었으며 동기와 이익구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과감히 던져 ‘그들의 미국’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을 현장에서 입안한 커트 캠벨(Kurt Campbell)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부터, 아시아 회귀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저스틴 로건(Justin Logan) 케이토연구소 외교정책연구국장의 의견까지 담아낼 정도로 이 책의 스펙트럼은 넓다. 동북아 국제정치와 안보론을 강의하는 일선 교수의 입장에서 참으로 훌륭한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미국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왜 미국이 일본의 우경화로 상징되는 집단적 자위권 획득을 지지하는가에 대한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부상 자체만으로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설명할 수는 없다. 미일동맹의 성격상 미국의 지지 없는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불가능하다. 일본의 보통국가화 앞면에는 중국의 부상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이 있다. 아시아 회귀 정책을 설계한 커트 캠벨은 이 정책이 대()중국 봉쇄정책이 아닌 경제와 외교에 관한 아시아 중심 정책이라고 주장하지만, 미국 내 최고의 중국 전문가인 케네스 리버설(Kenneth Lieberthal)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은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군사·외교적 고려가 없다면 그것이 진정한 아시아 전략일 수 있겠느냐며 비판한다. 역시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선임국장을 지낸 더글러스 팔(Douglas Paal)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이란 “외교정책으로 장식된 국내 정치게임”(174~75면)의 결과물이라는 주장을 편다. 2011년 이라크 철군을 시행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나약함을 보여주었다는 공화당의 비판에 직면한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대선 직전 미국의 강성함을 보여야 할 대상으로 중국을 지목했고 이것이 곧 아시아 회귀 정책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리버설은 미중 간 전략적 불신의 원인이 중국의 정책결정과정에 깃든 불투명성과 함께 미국 내 중국 전문가의 비전문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관료들이 중국을 피상적으로 이해한 채 정책을 편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중국이 미국의 위협이 되어야 이득을 보는 세력이 있다는 미국의 민낯에 독자들은 매우 놀랄 것이다. 이를테면 버지니아 주가 지역구인 미국 의원들은 이 지역 조선소에서만 건조될 수 있는 초대형 항공모함의 후속 주문을 위해 중국위협론을 강조한다고 한다. 책을 읽다보면 미국 정치인의 지역구 이익이 어떻게 대중국 위협으로 전환되는지 그 연결고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일 간 역사갈등은 일본이 위안부의 실체와 책임을 인정한 코오노(河野)·무라야마(村山) 담화를 정치적 담합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독도 영유권 주장과 집단적 자위권 획득이 위협적으로 인식되어 증폭된다. 이럴 때 동맹국 미국이 적극적으로 중재하기는커녕 오히려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적극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 우리 입장에서 야속하기까지 하다. 미국은 한미동맹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왜 일본의 손만 들어주는 것일까? 이 질문의 해답은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인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 조지타운대 교수의 입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는 “한국이 일본을 대체할 수는 없다”라며 “미국은 일본을 포기하지 않을 것”(333면)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미일동맹이 한미동맹보다 서열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한일 간의 역사문제에 대해 그는 한··일 공조를 위해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역사문제는 옆으로 치워놓고, 한일관계가 미국, 한국, 일본, 북한 문제에 대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강변한다. 이는 곧 미국의 이익이 곧 일본의 보통국가화이며 한일 간의 역사문제는 상관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전면에서 대응하는 일본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역사적 정체성 문제가 한미동맹의 테두리 밖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미국인이 말하는 미국의 진실을 탐독할 수 있다. 저자들은 인터뷰이들로 하여금 ‘그들의 미국’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한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미국’과 얼마나 간극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각 인물마다 경력, 대표논문과 저서 등을 자세히 설명한 점도 유익하다. 시중에 유행하는 이른바 ‘묻다’ 서적들 중에 가장 돋보이는 책임에 틀림없다.

최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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