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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대전환, 어디서 시작할까

 

날갯짓과 쇠사슬 사이에서

민중시의 현재와 미래

 

 

황규관 黃圭官

시인. 시집 『패배는 나의 힘』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정오가 온다』, 산문집 『강을 버린 세계에서 살아가기』 등이 있음. grleaf@hanmail.net

 

 

나는 오늘날의 시적 풍요와 그 풍요를 일군의 비평가들이 옹호하는 현실을 착잡하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내게는 이런 현상이 불가사의할 뿐이다. 니체(F. W. Nietzsche)가 『반시대적 고찰』(책세상 2005)에서, 보불전쟁의 승리에 취한 당시의 독일사회를 비판하며 “승리의 결과로부터 더 심각한 패배가 발생하지 않도록 승리를 견뎌내는 것보다 그러한 승리를 쟁취하는 것 자체가 훨씬 더 쉬운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한 것처럼, 패배에 대한 두려움에 손쉬운 승리주의를 구가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은 비평의 무기력에서 심각하게 증명되는데, 일테면 비평은 비판이라는 ‘망치’를 내려놓았고 시는 그런 비평의 온화함에 화답하며 우리가 처한 현실을 수사학적으로 한번 더 구부리는 게 시의 몫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그래서 ‘민중시’라는 한물간(?) 카테고리로 포착될 수 있는 시의 흐름은 발견하기 쉽지 않다. 저 ‘불의 시대’인 1980년대 이후로 민중시는 한껏 남루해져서 아무도 그 옷을 걸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내가 이 글에서 민중시라는 이름으로 호명하려는 시인이나 작품마저 그것을 내켜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민중시는 특정 시대의 경향 혹은 편의상 불렀던 범주의 이름이었던가. 아니, 억압된 삶의 리얼리티에 충실한 시는 꼭 ‘민중시’라고 불러야 하나, 하는 의문부터 제기될 수 있다.

이런 인식은 이 글을 쓰는 내게도 없지 않은데, 그럼에도 나는 ‘노동시’나 ‘민중시’라는 호명 방식을 아주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것은 문학제도의 에토스를 위협하지 않은 채 안전하게 속해 있기를 바라는 일반적인 경향에 대한 타자-되기의 한 방식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에서 버려진 혹은 망각된 존재들을 향한 시의 윤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입장에서도 아직은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민중시란 무엇인가. 아니 민중이란 무엇인가. 숱한 신식 이론이 있었고 새로운 명명법이 개발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주체들이 무엇이라 불리든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그에 대한 착취와 수탈, 그리고 배제와 망각이 그치지 않고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민중시를 삶의 현장에 즉하는 작품이냐 아니냐로 판단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그럴 경우 시가 현장의 싸움에 이벤트로 응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실제로 정치적 실천과 행동은 권장되어야 하지만 그것들이 작품에 포함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비참한 현실에 대한 ‘문학적’ 참여와 시민적 모럴 정도로 시와 세계의 질적 변화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들뢰즈(G. Deleuze)는 『차이와 반복』(민음사 2004)에서 “우리는 수축된 물, 흙, 빛, 공기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식별하거나 표상하기 전에, 심지어 그것들을 느끼기 전에 이미 수축된 물, 흙, 빛, 공기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이런 인상적인 구절도 덧붙였다. “사유는 비자발적인 한에서만 사유일 수 있고, 사유 안에서 강제적으로 야기되는 한에서만 사유일 수 있다.”

견강부회식 해석을 해보면, 우리는 우리의 외부세계와 절연된 채 존재할 수 없으며 도리어 그 세계가 응축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우리의 사유활동 그리고 그것의 결과물인 각종의 표현은 세계에 의해 “강제적으로” 조형된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이러한 성격을 갖는다면, 그리고 오늘날의 현실이 민중의 아우성과 절규로 이루어진 세계라면, 그런 존재와 세계가 만드는 시에 그 흔적이 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 시에 그 흔적이 남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시는 본질적으로 현존하는 세계를 초월함으로써가 아니라 세계에 내재함으로써 그 의미와 위의를 갖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뒤따를 수 있다. 우리의 무의식을 어지럽히는 시의 ‘이데아’를 거부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연원한다. 다시 말하면 ‘좋은 시’에 대한 이데아가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세계에 대한 물음들로 충만한가에 시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좋고 나쁨이 판가름나는, 척도라면 척도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온갖 의미가 넘실대는 구체적인 현실과 그것을 있게 한 잠재적 구성력으로서의 시간까지 포함한다.

 

 

사라진 민중

 

박정희정권의 억압적인 개발독재가 추동한 근대화 과정은 우리에게 한국을 신식민지로 인식하게 했으며, 이것은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주체적으로 해방되지 못한 역사적 사실과 그후에도 식민주의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여기서 역사 발전의 주체가 시급히 요청되었고 피억압자적 위치에 있지만 저항의 잠재력을 가진 ‘대중’이 민중으로 호명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민중 개념에는 근대화 과정이 필연적으로 파괴하기 마련인 공동체에 대한 유전자가 이념적으로 이식되기도 했다.

물론 “‘민중’은 물적·역사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 분석적인 개념이 아닐뿐더러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도” 아니었다. “비록 1970년대와 80년대의 민중담론에서는 공장노동자와 농민이 진정한 민중으로 분류되어 특권적인 위치를 누렸지만, 1980년대 후반에 와서는 자영업자, 더 나아가 군부의 ‘민족주의적 요소’까지도 민중으로 간주되었다. 다시 말해, 민중이라는 용어는 다분히 추상적이고 가변적이었다.”(이상 이남희 『민중 만들기』, 후마니타스 2015 참조) 결론적으로 말하면, 민중은 한국 근·현대사의 굴욕과 질곡이 낳은 역사적 개념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난 다음에 벌어졌다. 그 사태는 그간의 민중 개념에는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가 추구한 근대화에 대한 대항 혹은 대안적인 이념이 있었으며, 그 모델 중 하나가 현실사회주의였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물론 모든 역사적 사건은 평지돌출 식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깊이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그때부터 민중 담론에는 급격한 썰물효과가 발생했으며 문학장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문학적 상상력에서 물질적 삶에 대한 부분이 깨끗이 소거돼버린 데는 1990년대의 공이 크다고 하겠다. 이런 돌아봄도 일종의 후일담일지 모르겠으나, 그뒤 얼마 안 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체제에 접어든 사실을 떠올려보면 극복 못한 식민주의의 변종이 1990년대에 다시 나타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IMF의 금융 식민통치는 대한민국 사회에 부정적인 의미의 급변을 가져왔다. 이에 대해 최태섭은 『잉여사회』(웅진지식하우스 2013)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외환위기는 전국민에게 IMF라는 기관의 이름을 뼛속 깊이 각인시킴과 동시에, 정체불명의 빚을 떠넘겨 많은 이들의 삶을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 탈냉전, 금융 자유화, 재벌 체제의 파행, 정치적 갈등, 해외 금융자본의 투기 등등…… 수많은 조건과 배경들이 얽히고설켜 닥친 파국이었다.”

이러한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민중의 내포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여기서 이런 이견이 제시될 수 있다: 왜 계속 민중이어야 하는가? 그러나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은 메아리도 감수해야 한다: 왜 다시 민중이어서는 안되는가? 구제금융사태를 통해 변한 조건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주체들을 이론가들은 여러 이름으로 명명해왔으나, 그것들이 실제로 그 새로운 주체들을 얼마나 여실히 표현했는지 나로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민중이란 개념이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형성된 대항주체라면, 다중(multitude)이라든가 하위주체(subaltern)라든가 벌거벗은 생명(homo sacer)이 민중을 대체 혹은 포괄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현실이라는 용광로에 좀더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한국사회는 IMF의 금융 식민통치를 통해 그 낙차가 아찔할 정도로 변했는데, 착취의 대상이 노동력을 넘어선 점에서 그랬고, 그동안 민중이 가졌던 정치적 권리마저 부단히 해체되면서 그래왔다. 나아가 밀양과 강정마을이 상징하듯 강과 산, 바다에 사는 생명권마저 수탈과 개발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이런 현상의 누적이 민중 개념을 서둘러 폐기한 현실적 배경일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노동자와 농민 아래에 새로 생긴 계급들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저 현실의 화염에 그슬린 존재들 말이다. 우리가 민중의 내포를 재충전해야 한다고 할 때, 성큼 다가오는 존재들이 바로 이 노동자·농민도 못되는 이들과 인간 아닌 존재들이다. 우리는 이렇게 착취와 수탈의 새로운 위계구조를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다.

 

 

닫힌 반복들

 

첫 시집 『하늘공장』(삶창 2007)에서 자본주의 노동에 의해 찢겨진 혹은 분열된 감수성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노동이 지닌 파괴성을 보여준 임성용(任成容)은 둘째 시집 『풀타임』(실천문학 2014)에서는 확고한 주체를 내세운다. 그런데 이 주체는 자본주의에 대립적인 현실인식을 보여주면서 세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동력이 되지만, 그것은 언제나 그 그림자를 깊게 가지는 법이다. 전작에서 보여준 노동 ‘바깥’의 세계가 있음은 분명히 나타나지만, 그 세계는 지금껏 충분히 재현된 세계이다. 다시 말하면 임성용은 직접 경험한 세계를 재확인하고 재현할 뿐 재해석하거나 재구성하지 않는다.

임성용의 시에는 “방이 마당이고 마당이 방이던/방바닥에 마당의 흙이 묻어 있던/어머니의 방, 어머니의 마당”(「어머니의 방」)과 “내가 지나온 길은 죽음의 길이 아닙니다/비정규직 철폐 투쟁 10년의 길입니다/대법원 판결 이행 정몽구 구속의 길입니다/(…)/내가 가혹하게 사랑했던 노동자의 길입니다”(「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같은 다른 “길”이 공존한다. 그러나 “방”과 “길”로 표상되는 두 세계는, 내가 보기에는 최소한 『풀타임』에서는 철도의 레일마냥 끝 모르게 펼쳐져 있는 것만 같다. 만날 것 같지 않은 두 세계는 서로를 외면한 채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 있는 것이다.

『하늘공장』에서 뒤엉켜 있던 복잡한 길이 『풀타임』에서 단지 두 갈래로 정리된 사태는 임성용의 시에 그렇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한 것 같다. 도리어 그 정리는 그의 시에서 악마적 힘을 빼앗아버렸다. 결국 「돌아오라, 노래여」에서 보듯 시인의 의지가 아무리 “불꽃 파편들이 튀어 올라/귀청을 찢”는 “노래”를 앙망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시인의 의지적인 바람에 지나지 않게 된다. 차라리 임성용은 “돌아보니” “타다 용접봉이 그대로 있고/스패너와 볼트는 움직이지 않”는 지점,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허공”을 ‘그라운드 제로’로 삼아야 했다.

거기에서만이 임성용에게 존재하는 두 계열은 수렴될 수 있다. 그리고 두 계열이 서로 수렴되어야 다른 의미를 발산하게 되며, 그랬을 때 그의 안에 있는 어머니의 세계와 노동의 세계는 다른 진경을 연출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80년대적 혁명 주체로 얼굴을 돌려버린 것은 그러니까 퇴행에 가깝다. 그의 시가 익숙한 것을 반복하는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근 10여년간 저항시의 한 상징이 되어 있는 송경동(宋京東)의 시는 임성용의 경우보다는 안정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가 임성용 시의 분열증적 정서와는 다른 것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송경동은 고향의 경험을 통해 지금은 사라져버린 세계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그가 한동안 거주했던 가리봉 인근의 체험을 노래하기도 하며, 싸움의 현장에서 강력한 선동시를 발표하기도 한다.

그러한 맥락 위에서 송경동은 시인-아님의 상태를 지향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송경동을 문학제도권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의 선동시는 급박한 호흡과 직설적인 언어를 통해 현장의 절박함을 뛰어나게 표현하는 역량을 지닌다. 송경동은,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동시를 쓰는 순간에 가장 전위적이다. 이 말은 단지 그의 급진적인 전투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가 전위적인 미학을 추구한다며 선동시를 쓰는 것도 물론 아니다. 도리어 기존의 미학을 무시해버림으로써, 즉 현장의 숨막히는 절박함만을 시화(詩化)함으로써 자본과 지배권력이 감추고자 했던 현장의 리얼리티를 새로이 인식하게 한다.

사실 일군의 비평가들이 비난했듯 문제는 재현 자체에 있지 않다. 비난받아 마땅한 것은 재현을 위한 재현 또는 재현된 것을 동일하게 반복해 재현하는 무능과 나태이다. 재현의 진정한 힘은, 뒤에서 백무산의 시를 읽으며 한번 더 말하겠지만, 재현되지 못한 혹은 재현할 수 없는 현실을 새로이 재현할 때 발휘된다. 따라서 재현에는 죄가 없다. 도리어 문제는 재현 양식을 폄훼하는 시들이 재현해야 마땅한 현실을 고급언어로 래핑(wrapping)하는 오류로까지 나아가곤 하는 사태에 있다. 이들은 재현이라는 것이, 우리가 세계와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어떤 단계라는 데 무지하기까지 하다.

송경동의 시에도 임성용의 경우처럼 과거에 대한 상기는 존재한다. 사실 내가 말하는 상기에는 플라톤적 의미로서 본질의 되새김, 이데아라는 최종 심급의 재확인이라는 뉘앙스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송경동도 종종 과거를 불러옴으로써 실체화된 고향을 확인하고 거기에서 휴식을 취하는 경향을 띤다. 여기서 송경동 시의 특이성은 후퇴한다. 우회해서 말하면, 송경동의 시는 현재적 현실에 격정적으로 리비도를 부딪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다른 부분은 고정된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어쩌면 송경동 시에서 적지 않게 보이는 닫힌 반복은 여기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만일 송경동이 현재에서 시적 힘을 재충전하지 못하고 실체화된 과거로 돌아가 방전된 힘을 수습하는 것을 되풀이한다면 그같은 사태를 한동안 피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예전의 민중시가 어느날 급격히 힘을 잃은 채 일반적인 서정시가 되고 감상적인 생태시로 빠진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과거는 지나가버린, 용도가 다 된 시간일 뿐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과거는 ‘누적된 현재’로서 잠재적인 상태로 살아 있을 때에만 현재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랬을 때에만 과거는 현재의 동력이 되고 심지어 과거 자신마저 재구성한다.

 

 

원시언어와 고급언어

 

박소란(朴笑蘭)의 시에서 민중시적 특질을 짚어내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민중시는, 민중의 역사적 의미에 비춰볼 때, 일종의 대항미학이라는 성격도 가지며 당연히 그것은 어떤 정치시보다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민중시가 함의하는 정치는 숱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와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며, 프로파간다 문학을 현실정치에 복무하는 문예선전대 문학으로 치부하려는 의도적인 술수가 지금도 없지 않다.

하지만 민중시가 말하는 정치는 문학주의자들의 불편한 심기와는 상관없이 생활언어의 과감한 차용으로 기존 언어에 내재하는 엘리트주의를 공격하기도 한다. 민중시 혹은 민중언어가 정치적이라면 문학주의자들의 엘리트주의도 정치적이긴 마찬가지이다. 도리어 문학주의자들의 고급언어는 민중의 언어를 배척하거나 또는 탈정치화하면서 권력의 성곽을 구축해오지 않았던가. 다시 말하면 민중시의 정치적 특질을 비난하면서 정확히 그 반대쪽에서 자신의 봉토를 확장해온 것이다.

언어학 이론에 이러한 주장들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도 나는 어떤 층()이 있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길’이라는 단어에는 여러겹의 뉘앙스가 존재하는데, 그 뉘앙스를 느끼게 하는 것은 삶의 겹에 대한 여러 경험이다. 언어의 여러 층 중 삶의 물질적 면에 가장 근접한 언어가 원시언어이며 사실상 이것은 민중의 언어이다. 오래전에 그 원시언어는 구전이라든가 소문, 유언비어로 유통되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서 더한층 물질적인 형태들, 즉 벽화, 구호, 전단지, 팸플릿, 플래카드 등에서 그 표현의 장을 획득했다. 원시언어를 근대화의 여러 요소들이 부단히 배척하면서 동시에 그 토대를 말살해온 과정 속에서 말이다.

이 사태를 문학에 대보면, 고급언어를 문학국가의 국어로 채택하면서 원시언어를 고급언어의 아랫단계로 취급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학은 원시언어를 버리거나 원시언어를 고급언어로 진화시키는 예술이 아니다. 차라리 소수언어화되는 원시언어를 통해서 고급언어의 타락을 저지하는 동시에,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해 ‘다른’ 언어를 창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원시언어와 고급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층과 층 사이의 운동이 된다. 나는 이 운동의 성패가 언어의 변화 그리고 창조까지 좌우한다고 믿는다. 당연히 이 운동은 자폐적이지 않고 도리어 구체적인 현실을 그 계기로 삼는다. 여기에 원시언어, 즉 민중의 언어가 갖는 정치성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박소란의 시는 자의적인 기호투성이인 현재의 대체적인 시의 흐름에서 분명 비켜서 있으며, 최소한 시의 표면은 구체적 현실의 자장권 내에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또 현실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는, 즉 자신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처리하지 않는 미덕도 있다. 무엇보다도 박소란의 시는 슬픔의 정서가 지배적인데, 그것은 자신의 경험과 실존이 포함된 세계를 자기 내면 안으로 함축하는 역량에 관계된다.

그래서 박소란은 『심장에 가까운 말』(창비 2015) 처처에서 운다. 잠이 들기 전 “베개 너머 스탠드 버튼을 누르고만 싶은데” 시인의 손길 안쪽에서 베개는 그만두라며 흐느끼고(「베개」), 참외를 깎을 때도 “작고 심약한 날벌레가” “몰래 우는 것을”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없으며(「그녀가 참외를 깎을 때」), “실연에 취한 친구”도 운다(「돌멩이를 사랑하다는 것」). “너무 오래 울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울음의 방」) 울기도 하는데, 박소란의 이 사소한 듯한 울음의 뿌리는 의외로 깊다.

먼저 「배가 고파요」에서 보듯 “삼계탕집에 앉아 끼니를 맞을 때/펄펄한 뚝배기 안을 들여다볼 때면” “삼양동 시절 내내 삼계탕집 인부로 지낸 어머니”가 현재의 화자를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삼키고 또 삼켜도 질긴 허기는 가시질 않는” 것이다. 그 ‘가시지 않는 허기’는 박소란의 다른 시에서 어떻게 반복·변주되는가. “아침은 이미 이곳으로 오는 길을 잃었”고(「없다」), “내 집은” “늘//안간힘으로/바퀴를 굴려야 겨우 가닿는 꼭대기”일 따름이며(「종점」), 자신은 “새끼를 죽인 슬픈 어미”임과 동시에 “그늘의 정부(情婦)”일 뿐이다(「내연」). 그러니까 박소란의 시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강제한 비극적인 조형물이면서 그 세계의 일면을 표현하고 있다.

진은영(陳恩英)은 「문학의 아토포스: 문학, 정치, 장소」(『문학의 아토포스』, 그린비 2014)에서 일반적으로 가정되는 “문학의 공간”의 바깥을 탐색하면서 거기는 “정체가 모호한 공간, 문학적이라고 한번도 규정되지 않은 공간”이라고 부른다. 진은영에게 이 “정체가 모호한 공간”은 “프로파간다로서의 문학에 반대하는 모방과 감응의 문학”을 통해 메시지 전달자인 작가와 수신자인 독자는 죽고 다른 “하나의 장소가 개시”되면서 발생한다. 이 장소는 기존의 문학장과 같지 않으며 정확하게는 “어떤 장소에도 고정될 수 없어서 그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글에서 진은영은 문학이 문학 외부와 갖는 관계의 양태를 중심으로 서술하는데, 그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주유소」(『일방통행로』, 새물결 2007)에 기대어 “사회적 장소들 사이의 축과 이음매에서 하나의 장소가 탄생되고 기계에 기름을 치는 순간 새로운 움직임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벤야민을 직접 인용해보면 이 대목이 해당된다. “온갖 의견이 사회적 삶이라는 거대한 장치에 갖는 관계는 기름과 기계의 관계와 동일하다. 아마 터빈 위에 서서 위에다 기계유를 쏟아부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감추어져 있는 축이나 이음매에 기름을 조금 쳐주는 것이 다일 텐데, 그러자면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진은영이 말하고 싶은 것은, “정치적 공간과 문학적 공간의 이음매를 새롭게 사유하려는 시도” 즉 “미학적 욕망”에 다름 아니지만, 그것은 그가 직접 말하듯이 “시민적 공간을 예술가적 주체로서 범람하려는 시도들”이기도 하다.

 

 

힘으로서의 시

 

그런데 사실 이런 “시도들”은 일종의 미학주의의 변종으로 나아갈 기미를 품고 있다. 물론 진은영은 이런 시도들을 통해 “예술가는 변화의 욕망과 더불어 변화되어야 할 강제를 느낀다”고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그가 기대하는 것은 결국 “문학의 욕망”으로 개시되는 문학의 ‘다른 장소’, 즉 문학의 ‘아토포스’(atopos)이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시도들을 통해 “작품의 분위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바뀌고 작품이 발표되는 공간을 최대한 변화시키려는 문학의 욕망”을 통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진은영이 “어떤 작품들이 지닌 모종의 모호함”을 “정치의식의 부족분이 아니라 이전과는 달라진 정치적 공간과 문학적 공간의 접속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효과라고 이해”하자고 제안할 때, 거기에서 그는 “모종의 모호함”을 문학의 아토포스를 향한 “문학의 욕망”으로 읽고 싶은 무의식을 드러낸다. 어떤 비판적 검토도 생략한 채 말이다.

하지만 과연 진은영의 바람대로 “정치적 공간”에 “문학의 욕망”이 개입하는 하나의 방향만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에 정치적 공간이 문학의 욕망을 조형하는 방향도 존재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정과 그에 입각한 시의 발생학적인 원리에서 보자면 오히려 시는 후자의 벡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게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진은영처럼 전자를 강조할 때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미학주의의 무한회로에 갇힐 수 있으며, 오랫동안 한국시에서 미학주의가 유물론적 발생학을 압도했던 사실을 연장시킬 것이다. 즉 미학이 미학을 낳고 미학이 “정치적 공간”을 바꿀 수 있다는 일방향적인 의견(doxa), 모든 시는 정치적이다,라는 맥빠진 결론의 되풀이 같은 것을 말이다.

그런데 벤야민이 “확신”과 “사실”을 대비시키고, “문학에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행동과 글쓰기가 엄격하게 교대되어야만 한다”고 말할 때, “교대”는 “정치적 공간”과 “문학적 공간”의 변증법적인 운동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벤야민이 말한 “감추어져 있는 축이나 이음매에 기름을 쳐주는” 문학의 역할을, 현실에 대한 문학의 최대주의적인 수동성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는”(『일방통행로』) 것을 드러내려는 최소주의적인 능동성으로 읽는 것은 불가능할까. 김수영(金洙暎)에 기대어 말하자면, 현실이 생산하면서 은폐하려는 진실, 즉 새로운 리얼리티의 인식 여부가 문학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현실세계가 작품을 조형하는 어떤 압박이 되는 경우가 당연히 박소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도리어 박소란이 자신이 소유한 유물론적 발생원리를 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가지고 있는데, 물론 그 우려는 시인 자신이 아직 현실세계에서 어떤 ‘비빌 언덕’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에서 시작된다. 다음과 같은 현실인식을 읽어보라: “언젠가 울고 웃던/노래들 모두 어디로 흘러갔는지/스산한 장송의 메아리만 우죽우죽 돋아난다”(「단추를 잃어버리고」). 혹은 다음과 같은 허무의 어두운 전조들: “얼마나 다행인지/눈을 감을 수 있으니까//이 방은 밤의 것”(「눈꺼풀」).

한편 김해자(金海慈)의 시는 어떤 능동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이 능동적인 힘은 세계를 희극적으로 인식한다거나 단순히 명랑하게 노래한다는 뜻과는 무관하다. 도리어 그의 시는 세계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데, 그 비판을 넘어서 차라리 세계와 함께 앓는다고 하는 게 더욱 정확할 것이다. 지난해 상재된 그의 세번째 시집 『집에 가자』(삶창 2015)에 실린 「버버리 곡꾼」에서 “초분 옆에 살던 버버리, 말이라곤 어버버버버밖에 모르던 그 여자”를 떠올리며 시인은 “살아서 죽음과 포개진 그 여잔 꽃 바치러 왔네 세상에/노래하러 왔네 맞으러 왔네 대신 울어주러 왔네”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 여자”가 시인의 다른 페르소나와 겹쳐 읽히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이렇듯 김해자에게 시인은 ‘대신 맞고 대신 울어주는’ 샤먼인데, 당연히 그 샤먼은 타자를 계몽하는 근대적 자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김해자의 샤먼은 단순히 사건 이후에 그것의 망각을 도와주는 샤먼이 아니다. 김해자의 샤먼은 고통스런 사건 자체를 자신의 자아로 삼으며, 그 고통스런 사건의 반복을 온몸으로 견디려는 샤먼이다. 「어진내에 두고 온 나」에서 “어진내라 불리던 인천 갈산동 그 쪽방” 시절에 겪었던 “푸른 작업복에 떨어지는 핏방울”과 “머리채 잡혀 끌려가”던 사건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읊조리는 “나”는 바로 그 샤먼의 현현이다.

이 지점에서 김해자의 민중적 정치시는 기존의 시적 외형을 넘어서 출현한다. 「일하지 않는 자여, 맛있게 먹어라」는 단순히 시인의 낭만주의적 정치성향을 드러내는 작품이 아니다. 정치 프로파간다라는 외형을 입은 이 작품은, 김해자의 문명과 존재 그리고 정치에 대한 응축된 사유를 보여준다. 그는 이제 “한자리 꿰차는 순간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는 혁명”보다 “불화와 불안”을 “양식”으로 삼아 “흙과 씨앗의 인과를” 더 믿게 된 것이다(「언더그라운드」).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김해자의 정치적 상상력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밑받침하고 있는 경험의 두께와 질이다. 그리고 그 경험의 격렬한 운동이다. 오늘날에는 경험에 대립해 시의 예술적 자율성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심지어 신체적 경험을 문화적 경험으로 대체함으로써 신체적 경험을 시의 세계에서 추방하려는 경향마저 엿보이는데, 경험보다는 언어를 앞세우는 경향은 그러한 의도와 무관치 않다. 이 경향은 물질의 질량과 운동을 함축하지 못한 기호들을 양산한 후 그 기호들의 회전속도를 빠르게 함으로써 마치 그것들 자체가 물질의 질량과 운동인 것 같은 환영을 만들어낸다.

이에 비해 김해자는 철저한 경험주의자이다. 오늘날에 경험주의가 천시받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고 어떤 경험주의는 나날이 경량화돼가지만, 김해자의 경험주의는 자본이 만든 깊은 응달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그 내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 관계들 속에서 새로운 민중시적 특질을 창조하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예컨대 「남자보다 무거운 잠」이라든가 「가이아노래방」 「하부구조」 같은 작품들은 기왕의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는 어림도 없는 리얼리티를 포착한다. 또 「지상에 의자 하나」에서는 “모든 정상은 수직의 높이, 제 발밑을 파먹은 만큼 올라가는 정상들 때문에 너희 디딜 땅”이 사라지리라는 것을 아프게 예언하기도 한다. 이것은 시인의 민중-되기가 동시에 수행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지경이다.

김해자의 시가 능동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안 열리면 문을 부숴라”(「문고리」)라든가 “솟구쳐라 스스로를 늘려 절벽을 치는 파도처럼”(「가난한 사람들」) 같은 정치적 메시지가 명확한 작품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힘은 “살아 있다고 믿고 물을 주는 한”(「죽은 나무에 물 주기」) 세계는 살아 있는 것이라는 대긍정과, “문턱을 넘고 싶은 게 병이라면 아직도 아픈 탓”(「경계선 장애」)이라는, 세계의 혁명과 존재의 혁명을 동시에 밀고 나가는 고투에서 생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 힘의 정체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시가 구체적인 현실에 열려 있을 때 가능한 것이고, 이 말은 시의 힘은 운동하는 세계의 힘을 표현할 때만 현실화된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곧잘 시의 무용(無用) 혹은 무기력을 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언술들은 시인 자신의 것을 시에 뒤집어씌운 것밖에 되지 않는다.

 

 

들판의 자유

 

민중시적 전통을 정치적 프로파간다나 사실 재현에 두려는 경향은 민중시를 주창해온 쪽에 면면히 존재해왔다. 그러나 민중시는 그 두가지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는데, 그렇다면 운동하는 세계에 내재하는 힘을 포착해 표현하고 증폭시키는 길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은 다른 세계를 꿈꾸는 민중의 삶에 내재해 있음을 인식하는 게 우선이다. 다시 말하면 민중시는 민중의 잠재력을 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미래의 민중을 창조하는 계시적 과업인 것이지 단지 민중을 도덕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고양시키는 일만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하겠다.

이런 맥락에서 백무산을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다. 사실 백무산을 다시 말하는 것은 일종의 동어반복일 정도로 그간의 그의 성취는 뚜렷한데, 『폐허를 인양하다』(창비 2015)가 다시 성큼 뗀 발걸음은 그를 이 자리에 부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는 이 시집에서 우리가 인식하고 있던 기존 사실들을 통렬하게 뒤집는다. 그의 이런 성과는 동시에 결국 형식의 문제를 다시 도마로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시인도 시집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가 무모해지더라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의 요구에 현실이 선택되거나, 시의 행위와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라면, 시가 오히려 삶을 소외시킬 것이기 때문이다.”(‘시인의 말’)

이 발언은 백무산의 이번 시집 편편에 구현되어 있다. 굳이 예를 들자면, 「무엇에 저항해야 하는지는 알겠으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가 사태의 본질은 아니라고 주창하는 작품이다. 물론 이 시는 그것보다 더 심원한 지점을 가리킨다. 노예노동 자체가 “인간에게 자유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생겨나게 한 것이라는, 즉 노예노동에 의해 새로이 규정된 자유의 개념이, 아니 근대문명이 강조한 자유가 “들판의 자유”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들판의 자유”는 백무산의 다른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이미지들, “길 밖의 길”이며 “대지”이며 “기억의 소수자들”이다. 이것을 제도나 문명에 의해 획정되지 않은 원시적인 생명의 힘이며 획정된 삶을 해체하는 실천적 힘 그 자체라고 바꿔 말해도 상관없다.

이런 세계인식은 현상의 너머로 우리를 이끌어주는데, 그 자리는 자칫하면 우리를 태워버릴 수도 있는 ‘어두운 힘’과 근거리이다. 그러나 시는 바로 그 ‘어두운 힘’을 드러내는 데 복무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균질화되고 일반화된 삶을 해체하도록 기도(企圖)하는 것이다. 이런 기도는 「패닉」이라는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이 시에서 백무산은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선사한 “폐허”를 혁명의 잠재적 힘으로 전화시키는데 그 방식은 풍자나 해학, 알레고리 같은 것이 아니다. 백무산의 힘은 그런 것들을 통해 우회하지 않는 직진에서 발생한다. 가끔 거기에서 현기증이 인다면 아마도 그것은 앞에서 말한 ‘어두운 힘’을 느낀 증거가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재현에는 죄가 없다. 도리어 재현은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때 어느 지점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차라리 재현의 필연성에 솔직하고 충실할 때 백무산처럼 사실의 재현을 통해 사실을 전복하고, 재현 불가능한 지점까지 사유를 침투시킬 역량을 펼쳐낼 수 있다.

과거 유산으로서의 민중시 말고, 오고 있는 민중시는 무엇인 걸까. 그리고 오고 있는 민중시는 과거의 민중시와 과연 무관한 걸까. 90년대적 상황 이후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을 청산해왔다. 시는 “들판의 자유”를 버리고 모두 제도권 학당에 포섭됐고, 거기서부터 민중의 언어, 즉 원시언어는 배제되고 말았다. 원시언어는 물질세계의 표면과 직접 맞부딪치며 불꽃처럼 혹은 물방울처럼 생기기 때문에 그런 처분은 손쉬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후 우리는 고급언어, 문화언어의 갱신에 매진해왔다. 원시언어를 고급언어의 아랫단계로 취급하면서 고급언어를 모르는 구제금융체제 이후의 새로운 민중으로부터 시는 떠나온 것이다. 이명박시대에 잠깐 정치시 논쟁이 있었지만, 나는 그게 무슨 의미를 갖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언어의 혁신이 삶의 물질성과 떨어진 채 진행될 수 있는 것일까? 앞에서 말했듯이 시가 초월적인 이데아도 아니고 또 일반적인 시대인식을 넘어 반시대적인 것을 탐색하는 본성을 갖는다면 말이다. 도리어 시는 구체적인 삶에서 생산되어 삶에 변화의 벡터를 뿌리고 사라져가는 물건은 아닐까?

우리가 처해 있는 금융자본주의의 복판은 언어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일테면 중앙정부와 중앙은행이 발하는 언어는 현실에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민중의 고통은 정치가와 은행가의 정책 방향에서 연원하기도 한다. 따라서 시가 정치적으로 민중의 삶을 제 신체로 삼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고 예외적인 시의 임무도 아니다. 예컨대, (추상적인) 자유를 외친 것으로 회자되곤 하는 김수영이 4·19혁명 직후 실제적인 민중의 삶에 자신의 시를 개방한 것처럼 말이다. 김수영의 경우처럼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사실의 재현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의 회피를 말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니체에 기대어 말하자면, 시는 차라리 현실의 근거를 통해 그 근거를 와해시키는, 즉 근거 아래로 “뚫고 들어가고, 파내며, 밑을 뒤집어엎는”(『아침놀』, 「서문」) 일에 가깝다.

 

 

날갯짓과 쇠사슬 사이에서

 

민중의 고통을 말하면서 자본주의 경제가 강제하는 억압과 착취를 문화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일종의 과오에 해당된다. 만일 민중시가 망한 부족의 언어가 아니라면 민중시는 도리어 “문학적 공간”을 떠날 필요도 있다. “정치적 공간”에 관계하는 “미학적 욕망”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공간”에서 시를 발생시키는 소용돌이를 경험하는 게 순서상 먼저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공간”으로 시가 범람하는 것도 의미없지 않지만, 내 생각에는 시가 “정치적 공간”에 의해 더럽혀지는 게 먼저인 것만 같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위버멘쉬(Übermensch)를 향한 날갯짓과 인간의 세계에 존재를 쇠사슬로 묶어두는 “이중의 의지”를 말한 적이 있다. 이를 시와 현실 사이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인의 숙명이자 윤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뜻은 변하지 않는다. 이후로도 민중의 현실은 초월하려는 시의 발목을 붙잡는 악마적 힘일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파괴적인 자본주의가 끝나지 않는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