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독자의 목소리

 

 

모두의 마음들

2017년 봄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고 쓴다. 그 일들을 겪으며 나와 당신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다짐을 받았다. 우리는 신호를 기다렸다. 곧 축제의 봄을 맞이했고 우리는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봄에 연재를 시작한 소설 『경애(敬愛)의 마음』을 읽으며 여름과 가을, 겨울을 마주했다. 반도미싱에서 팀장대리라는 이상한 직함을 달고 일하는 상수와, 그 팀에서 일하게 된 경애는 폐기되어야 할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대화는 묘하게 핀트가 어긋났고 친해질 수 없는 공간인 회사에서 마음 또한 만나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려간다. 누군가의 마음을 만나는 일,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채는 일들. 경애는 그 마음의 무늬를 헤아리다가 시간을 놓치고 발목을 잡힌 채 현재의 시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김금희의 이 소설에서 내가 발견한 건 조각으로 부서진 누군가의 마음들이었다. 경애의 마음과 상수의 마음.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다 아파져 페이지를 넘길 수 없는 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들. 소설은 일상을 사는 우리의 흩뿌려진 마음을 이어 붙이려는 김금희 작가의 위로와 격려로 가득하다.

12월의 마지막 날 해가 바뀔 때 100개들이 지퍼를 주문하는 인물의 마음을 상상하며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소설 속도 현실 안도 외로운 마음들이 떠다니고 있음을 확인했다. 괄호를 치고 “연재 끝”이라는 글자를 마지막으로 썼을 소설가의 마음을 어두운 방에 누워서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같은 한자와 한글을 하나씩 이름에서 나누어 쓴다는 것으로 이 세계에서의 인연을 강조하고 싶은 이곳의 나와 그곳의 소설가가 만날 수 있기를 꿈꾼다. 그럴 수 있다면 서로의 고독한 마음을 주고받고 소설로서 공손하게 내민 그 악수를 돌려주고 싶다. 우리의 마음은 폐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경애의 마음이 무참한 이 세계를 살아갈 수 있는 기억으로 쓰일 수 있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박금미 siinnim@naver.com

 

촛불 이후, 우린 무얼 말해야 할까

촛불 이후 다시 새로운 한해가 시작된 이 시점에서, 문학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열망해야 할까. 이 질문을 던지며 특집 ‘촛불의 눈으로 한국문학을 보다’를 읽었다. 한기욱은 ‘촛불민주주의’를 언급하며 87년에서 한걸음 나아간 형태로서 촛불을 조명했다. 특히 여성차별, 여성혐오에 대해 다룬 소설들을 통해 차별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읽어냈다. 심진경 역시 최근 페미니즘 운동 및 논의를 바탕으로 한국문학을 살피면서, 혐오와 배척이 아닌 연대로 나아가려면 성폭력의 현실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문학이 새로운 페미니즘 주체를 상상하고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규관은 최근 우리 시가 고도화된 금융자본주의라는 구조적 억압에서 벗어나 새로운 몸을 얻기 위해 벌이는 투쟁을 논증했다. 특집을 구성하는 이 세편의 글은 촛불의 기저를 문학을 통해 심층적으로 탐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촛불이 일차적으로 원한 것은 분명 정권교체였지만, 그 안에는 ‘근본적으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있었다. 이는 혐오와 배척이 사라진, 87년체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이해와 연대가 가능한 세상에 대한 열망이며, 그러한 새로운 민주주의를 써나갈 새로운 주체에 대한 갈망이다. 최근 페미니즘 열풍이 거센 것도 이러한 바람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가는 것을 체감하면서, 무언가가 시작되었음을 여실히 느낀다. 문학 또한 이러한 시대적 바람을 읽어내어 새로운 주체를 상정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페미니즘에 대해 입을 열어야 할 것이다. ‘촛불 이후’라고 앞서 말했지만, 우리가 열망하는 세상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므로 촛불은 계속 타올라야 한다.

한인선 sogaoxing@naver.com

 

내가 잘 모르는 세상

리베카 솔닛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를 읽고 그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고 내가 잘 모르는 세상에 대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솔닛이 주목하는 삶 말이다. 그건 보편적인 삶이자 평등의 삶이며 주도적인 삶이었다. 그래서 리베카 솔닛과 백영경이 나눈 대화 「평등한 세상은 평등한 과정에서」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페미니즘뿐 아니라 환경과 반핵 문제, 미국정치 등 대화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도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좋았던 대목은 일상을 지배하는 인터넷의 폐해를 지적하는 부분과 공간·장소에 대한 언급이었다. 서울이라는 도시 속 재개발 현장과 상권의 이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심각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여성이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방식에 대한 문답은 성을 구분하여 차별하자는 게 아니라 저마다의 삶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그것은 비단 여성의 존재만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평등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현재 우리 사회는 페미니즘이 아주 뜨겁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문학에서 강세를 보이는 듯하다. 이 열기가 식지 않고 그 온도를 유지하기를 바란다. 그 속에서 『창작과비평』이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유경 littlegirl73@naver.com

 

직접민주주의를 꿈꾸며

겨울호를 받자마자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의 글 「민주주의는 진전되고 있는가」를 가장 먼저 읽었다. 민감하고 중요한 국가적 사안에 대해 본격적인 심의민주주의 방식을 처음 적용한 사례인 신고리5·6호기 공론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기도 했고, 마침 가을호에서 시민의회를 다룬 오현철 교수의 글도 재미있게 읽은 터였다. 가을호에서 직접민주주의와 심의민주주의의 개념을 정리하고 고찰한 데 이어, 겨울호에서는 그러한 방식이 실제로 적용된 한국의 사례를 검토하는 흐름으로 이어진 듯해 해당 주제에 관심있는 독자로서 흥미롭게 읽었다. 하대표는 이번 공론화가 한국의 에너지정책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많은 고민을 던져주었으며, 심의민주주의 도입과 관련해서도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다소 안전한(?) 평가를 내리며 글을 맺는다. 상당 부분 동의하며 글을 읽었으나 몇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좀더 강한 비판이 나오길 바랐기에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이를테면 공론화가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의 공약을 뒤집는 명분이 되었다는 점, 아울러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온 에너지정책에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중요한 계기일 수 있었음에도 해당지역 주민들의 의견수렴은 부족했으며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 또한 좁았다는 점은 단순히 ‘시행착오’로 판단하고 넘어가기 어려운 중대한 과오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심의민주주의에 대한 더욱 다양하고 깊이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필자의 주장에는 십분 공감한다. 앞으로도 『창작과비평』을 통해 깊이있는 논의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정은경 melodyjek@gmail.com

 

자기 색깔을 보여주는 ‘창비’가 되길

2016년의 여러 사건들 이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죠. 각종 문예지가 새롭게 개편되거나 창간되었고 사건과 관련된 비평들도 여럿 시도되었고요. 제가 부지런히 문예지를 챙겨 본 건 아니라 순수시의 정치성이나 경제적 비평 같은 문구들이 단편적으로 기억나네요. 그런 글을 읽을 때 속으로 ‘그렇구나’ 하고 동의하면서도 답답했습니다. 몸에 간지러운 부분이 있는데 거기만 쏙쏙 피해가는 효자손 같달까요. 그래서 겨울호에 실린 문학평론들을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순수시나 이념, 문학과 사회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문학성 자체에 대한 의심으로 접근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근대에 개발되고 수입된 문학성이라는 개념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2016년의 사건들이 던졌던 질문이고 지금 필요한 질문이니까요.

『창비』를 인터넷으로 정기구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뭐라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삼사년 전의 『창비』는 잘 손이 가지 않았어요. 글은 모두 훌륭했지만 중년이 인터뷰한 청년같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난호는 구매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전자구독을 하고 있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아 내용이 좋을 땐 종이책을 산답니다.) 성실한 독자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겨울호 독자리뷰에 나온 말처럼 더 확실하게 자기 색깔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그럼 또 찾아뵙·…지는 않고 찾아 읽겠습니다. ; )

이소현 mary73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