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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사토 마사루‧가타야마 모리히데 『일본은 어디로 향하는가』, 열린책들 2021

일본 현대사에 대한 일본적 이해

 

 

김형수 金亨洙

일본근대사 연구자 kim.hs@ma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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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산업화된 현대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연호(年號)를 사용하는 나라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헤이세이(平成)는 1989년 1월 8일에 시작되어 2019년 4월 30일에 이르는 기간 동안 사용된 연호이다. 한편 헤이세이와 그 뒤를 이은 레이와(令和)가 특이한 점은, 천황(아끼히또, 明仁)이 사망한 것이 아니라 퇴위하였고 이에 따라 새로운 천황(나루히또, 徳仁)이 즉위하면서 연호도 새로이 제정되었다는 점이다.

30여년간 당연하게 사용되어온 연호가 바뀌면서, 지난 그 시기를 어떻게든 정리하고 총괄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실제로 헤이세이라는 키워드로 일본 아마존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해보면 시대로서의 헤이세이를 총괄, 정리하는 다양한 저자들의 저서를 상당수 찾을 수 있다. 그 가운데 『일본은 어디로 향하는가』(平成史, 2018, 송태욱 옮김)는 당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식인 두명의 대담 형식을 빌려서 헤이세이를 되돌아보고 있다.

그렇다면 헤이세이는 어떤 시기였을까. 가장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거품경제의 붕괴이다. 헤이세이보다 앞선 쇼와(昭和, 1926~89)는, 두번에 걸친 원폭 투하와 그에 이은 패전을 경험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속도와 규모로 경제적 성장과 번영을 이룬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특수 등의 요인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일어나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된 시기이며, 이로써 패전으로 완전하게 상실했던 국가적 자신감을 되찾은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 가격의 급상승 등으로 나타나게 된 경제적 거품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속도로 붕괴하고 이후 일본은 장기 불황과 저성장의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혹자는, 헤이세이가 희망이 사라진 불황의 시대로서 시작되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헤이세이’라는 연호에는 나라 안팎과 천지의 평화를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던 쇼와가 지나고, 경제적 성취를 기반으로 무엇보다 전쟁의 경험을 극복하고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 적어도 1989년, 헤이세이 원년의 일본에서는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헤이세이 또한 그렇게 평화롭기만 한 시대는 아니었다. 당장 이 책에서 언급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만 꼽아도 그러하다. 옴 진리교 사건이나 ‘55년체제’1의 종언, 그리고 1995년과 2011년에 있었던 두번의 대지진과 후꾸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등, 사회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또한 이 책에서는 깊게 다루지는 않지만, 사회 전반에서 격차 및 우경화가 심화하고, 재일조선인(혹은 재일한국인)을 포함한 한국과 중국 등을 대상으로 한 배타주의가 현저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평자는 개인적으로 반한(反韓) 혹은 혐한(嫌韓)의 형태로 표출되는 극단적 배타주의를,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전후한 일본 사회의 질적 변화를 드러내는 하나의 표상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인식과 관련된 일본 사회 내부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일본인의, 일본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한국인, 혹은 일본에 있어서 외부인의 감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식이 대담 전반을 관통한다고 느꼈다. 특히 평자가 기대했던 내용은 뜻밖에도 중요한 주제로조차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굳이 역사 문제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특정 대상에 대한 극도의 배타성(혹은 적개심)이 그 사회의 불건전성을 나타내는 표상의 하나라고 한다면, 헤이세이 후기에 일본 사회가 보여준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비중있게 논하지 않는 것은 의외였다.

물론 이 책은 일본 사회 지식인들의 현실인식을 엿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컨대 아베 신조를 “무사상의 기회주의자”(279면)로 규정하거나, 일본의 현재 정치 상황을 민주주의의 약화 혹은 “독재적 민주주의”(379면)를 향해 나가는 과정으로 인식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한국의 반일운동이 기본적으로는 “선을 넘지 않”(347면)고 있다면서, “일본에 대한 항의가 목적이라면 원래 일본의 어딘가에 땅을 사서 위안부상을 세우면”(348면) 된다는 발언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도발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역시 한일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관련 주제에 대한 논의가 많지 않다는 점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의 한국, 혹은 한반도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의 정도 혹은 관점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본의 주류 미디어가 한국과 한반도에 대해서 병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비쳐지는 경우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일본 사회의 외부를 향한 관심의 대상에 한반도가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은 여전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편 최근의 한일관계와 관련해서 “한국에 대해 우위에 있고 싶으면 국력을 키워 나갈 수밖에”(460면) 없다는 언급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편협한 한국 비방의 논조는 아니지만, 양국 관계의 역사와 성격, 그리고 지향해야 할 지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일본인(혹은 일본 사회)의 사고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저자가 현대 일본 사회에 대해서 비판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수많은 현상들로 이해하고 그에 대한 의견이나 감상을 피력하는 데 그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특히 2015년 아베 정권의 안전 보장 관련 법안들에 대한 반대운동의 일환으로 젊은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되었던 ‘실즈’(SEALDs)에 대해서 ‘이류·삼류’ 대학생들의 “새로운 형태의 진학 또는 취업 활동”(342면)으로 치부하는 대목에서는 극히 현실주의적인 일본인들 특유의 사고방식이 엿보인다. 이들의 지적에 타당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젊은 세대의 사회적 비판 혹은 저항 행동이 전무에 가까운 일본 사회에서 종래와는 다른 새로운 움직임이 탄생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가치를 인정할 만하지 않았을까.

이처럼, 이 책 한권을 통해서 현대 일본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신자유주의나 경제체제의 글로벌화 등이 초래한 사회경제적 격차의 심화, 불평등, 정치적 불안 등 지난 30여년 동안 일본 사회가 겪은 경험들이 오로지 일본 특유의 것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깊이있는 논의를 의도한 것이 아니다. 헤이세이를 거치며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접할 수 있고, 특정 사건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점과 논리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은 한국의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의미이다. 또 ‘버블경제’ 시절에 성장기를 보내고 성인으로서 헤이세이를 살아온 일본인들의 개인적인 술회들—어린 시절 보았던 티브이 프로그램이나 사회 초년생 시절의 경험담 같은—이 흥미로워서, 일본에 대해 진지한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인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대화들이 산재해 있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장들이 기본적으로 편하게, 쉬이 읽힌다는 점은 전문이 대화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그러나 인명 표기의 오류나 직역된 단어들의 부자연스러움 등 사소하지만 눈에 띄는 흠결이 보이는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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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55년에 시작된, 자민당이 여당의 지위를 유지하고 사회당이 제1야당으로 존재한 38년간의 일본 의 양당 체제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