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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멜라 奇俊英

1983년 서울 출생. 2014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적어도 두 번』 등이 있음.

ocloud2@daum.net

 

 

 

제 꿈 꾸세요

 

 

학교 음악시간에 「메기의 추억」을 부르면 늘 같은 대목에서 궁금증이 일었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왜 메기일까. 넓적한 입에 수염이 난 물고기 메기는 아닐 텐데. 볕이 들지 않는 음악실, 수명을 다해가는 형광등 아래 앉아 나는 입을 벌려 노래 불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높은 벼랑에서 별안간 훅 떨어지는 듯한 노래의 낙차에 나는 매번 가슴이 울렁였다. 메기는 미국 이름 ‘Maggie’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것이었지만 음악책에는 원곡의 가사가 없어 메기가 누구인지, 누가 메기를 그리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메기라는 이름의 수수께끼를 누군가에게 묻거나 찾아보지 않고 풀리지 않는 매듭 그대로 두었다. 외국 민요를 부를 때 떠오르는 의문은 「오 수재너」에도 있었다.

멀고 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 밴조를 메고 나는 너를 찾아왔노라.

수재너를 찾아온 사람이 메고 온 밴조. 밴조가 뭘까. 뭔지는 몰라도 어딘가 녹슨 쇠 냄새를 풍기고, 열기 힘든 경첩이 달린 단어 같았다. 잠결에 언뜻 들은 누군가의 고해성사처럼 밴조나 메기에는 비밀스러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고 나는 노래가 불러일으키는 미궁을 마음껏 헤맸다. 내 고향은 대한민국 무슨 시 무슨 구가 아니라 맑은 시냇물이 넘쳐흐르는 새빨간 알핀로제가 아닐까. 다스 오버랜야 오버랜. 뜻도 모르는 이국 말을 흥얼대며 메기와 수재너가 ‘아름다운 베르네’로 떠나는 상상을 했다. 내 상상 속에서 메기는 다른 노래에 사는 수재너를 만나 밴조를 메고 알핀로제로 향했다.

 

“그런데 당신이 온 거죠.”

나는 종아리까지 눈이 쌓인 길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챔바에게 말했다. 챔바는 언제까지 이런 날씨에 이런 길을 걷게 할 거냐는 듯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웃었다. 굵고 탐스러운 눈이 퍼-엉-퍼-엉 쏟아지고 있었다. 챔바와 나는 ‘커피 포리’를 찾기 위해 남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마지막으로 그 커피우유를 마셨던 곳을 기억해 남산길 마지막 슈퍼로 왔다. 남산길 마지막 슈퍼, 그게 슈퍼 이름이었다. 둥근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우유나 사각 종이팩에 담긴 우유는 흔했지만, 나는 꼭 삼각 비닐팩에 담긴 커피우유여야 했다.

“굴러가면 굴러갔지 난 더 못 걸어요.”

커피우유를 마시고 슈퍼를 나와 챔바가 차양막 아래 서서 말했다. 올라올 때 우리가 만든 발자국이 벌써 눈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 벽을 따라 고정된 양철 홈통에서 무게를 이기지 못한 눈이 후드득 쏟아졌다. 나는 눈송이가 떨어지는 산잔등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 없이 잔잔했다. 먼 곳의 파랑이 지상으로 내려오며 조금씩 그 농도가 묽어지다 눈 쌓인 산 등마루에 다다라 완전히 희게 바뀌었다. 얕은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오는 듯했다. 먼 땅도 가까운 땅도 흰 눈이 덮어버렸고 도로의 아스팔트와 가로수 나뭇가지에도 소오복히 눈이 쌓였다. 배기가스와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에 지친 나무들이 흰 눈을 덮어쓰고 쉬는 듯했다. 죽은 나도 저렇게 쉬고 있을까. 나는 챔바에게 내가 먼저 시작하겠다고 했다.

“오익오익, 잘 따라와요.”

돼지 울음소리를 내며 나는 두 손을 가슴에 포갰다. 돌이킬 수 없는 바람에 관통당한 낙엽처럼 나는 눈밭으로 쓰러졌다.

 

*

 

챔바는 내가 죽어갈 때 나타나 노래를 불렀다. 기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기타는 아니고, 기타의 육촌 고조할머니뻘 되는 듯한 악기를 들고서 「오 수재너」를 불렀다.

“멀고 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 밴조를 메고 나는 너를 찾아왔노라.”

이마의 제비초리가 두드러질 만큼 짧은 머리를 가지런히 뒤로 넘긴 챔바는 감색 차이나 재킷에 행커치프까지 한 맵시있는 차림새였지만 지독한 음치에다 한눈에도 악기 연주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둥근 울림통에 구리색 후크가 달린 현악기의 쇠줄을 위아래로 쓸고 있을 뿐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았다.

“계속 나만 볼 거예요?”

챔바가 말했다. 우리는 바닥에서 발을 뗀 채 천장 가까이 떠 있었다. 챔바와 나 사이 아래에 의식을 잃은 내가 쓰러져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내 몸에서 빠져나왔는데, 그건 마치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로 이어지는 노래처럼, 마디 바꿈도 없이 나를 둘러싼 리듬이 일시에 다른 흐름으로 전환되는 느낌이었다. 리시브 다음 토스, 스파이크로 이어지는 단계를 건너뛰어 변칙 속공으로 네트를 넘어간 공의 기분이랄까. 무섭거나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빠져나온 나와 쓰러져 있는 나 사이에서 희미한 캐러멜 향이 났는데, 그건 아마도 의식을 잃기 직전 내가 먹었던 캐러멜 향이 첨가된 아몬드크런치크랜베리초코바 때문인 듯했다. 아몬드와 잘게 부순 과자, 말린 크랜베리가 딱딱하게 굳은 초콜릿 덩어리와 함께 인후부의 길을 잘못 든 순간, 내 숨구멍의 마디들이 생장점을 뚫고 나가는 식물처럼 몸이라는 외피를 뚫고 나갈 듯 팽창했다. 폼매트에 엎드려 캑캑거리면서도 나는 이 상황이 죽음으로 끝날 수 있음을 인식했다. 그렇다면 내 사망확인서에 적힐 사망 원인은 이런 건가. 이물질에 의한 기도폐쇄와 호흡곤란. 하지만 그보다 먼저 시도한 약물 과용은? 켜켜이 쌓인 삶의 질곡들과 내가 나를 찢고 소각해버리고 싶게 만드는 과거의 크고 작은 수치심은? 한마디로, 여름이 다르고 겨울이 다른 내 바이오리듬과 양극성 심리는? 수면장애와 토막잠, 그것들을 불러일으킨 바닥난 의지력과 압력솥의 추처럼 옆으로 누운 팔 자를 그리며 요동친 인간관계는?

관계, 그러니까 이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히시오,라고 할 때의 인(因)은?

 

혼자 사는 30대 무직 여성이 된 이유를, 단단히 준비한 끝에 모아놓은 수면제를 삼키고 사흘 만에 깨어나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며(어떻게 생과 사를 오간 사흘 동안 카드회사에서 보낸 이벤트 문자 외에 단 한명의 연락도 못 받은 거지?) 그 누구도 나의 안녕을 궁금해하지 않는 세상, 이 악물고 살아주마, 그렇게 결심하고 급히 먹은 원 플러스 원 초코바에 목이 막혀 죽는 이 블랙코미디, 누구의 삶도, 어떤 죽음도, 다른 이에게 웃음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건만, 어째서 당사자인 나부터 쓴웃음이 나는 이 뒤엉킨 인과관계의 인을

 

설명할 도리 없이 내 몸은 마치 튜브로 된 물감을 짠 것처럼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빠져나왔다. 곧이어 챔바가 나타나 노래를 불렀다.

“실례지만, 천사?”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나는 예의를 갖춰 물었다. 이런 순간에 나타났으니 천사나 그 비슷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소개는 나중에 하고, 30초 남았네요. 15초 뒤에 심장박동이 멈추고 그다음 뇌에 산소 공급이 끊기면 당신은 길손이 되어 떠날 거예요.”

챔바가 공중에 뜬 두 발을 천천히 움직이며 말했다. 내 발도 물살에 흔들리는 해초처럼 흐느적거렸다. 그 아래 청색증으로 얼굴이 파랗게 된 내가 쓰러져 있고, 핫소스 얼룩이 묻은 폼매트 위에는 수년에 걸쳐 모아온 여러 조제일자의 약 봉투와 굵은 실로 제본한 정사각형 무지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아, 저걸 저기에 그냥 뒀네. 유서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이건 엄연히 사고사인데. 나는 크라프트지에 굵은 펜촉으로 쓴 내 흔적(‘내 플러그는 내가 뽑고 싶어요’)을 없애기 위해 팔을 뻗었다. 그때 챔바가 오페라핑크색 행커치프를 펼쳐 내 얼굴에 덮었다. 그러니까 죽어가는 내 육신에. 그러자 몸을 빠져나와 있는 내 눈앞이 밝아지더니 출퇴근 시간 지하철 환승역에서 떠밀리는 승객처럼 방 밖으로 밀려 나갔다. 그대로 콘크리트 벽을 통과했다.

고소공포증 있는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불안이나 공포를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상승하고 또 상승했다. 지상의 액체가 태양열을 받아 대기로 올라가는 듯했다. 사람이나 덩어리진 물질이 아니라 빠르게 움직이는 하나의 흐름이 된 것 같았다. 입자. 그 와중에도 나는 내 상태를 설명할 단어를 떠올렸다. 쪼개고 쪼개고 쪼개 더는 쪼갤 수 없는 근본적이고 단순한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일년 전 첫번째 시도를 했을 때 응급실로 찾아온 엄마가 내 팔뚝살을 비틀며 했던 말. 이번에도 엄마일까. 엄마여야 할까. 나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됐고 받아야 할 우편물도 없으며 공과금은 내 통장에서 빠져나가게 자동이체 해놨는데. 앞집에 사는 유일한 이웃도 이사 간 지 몇달째. 모르겠다, 이렇게 된 마당에 평생 뽑지 못할 못 하나를 더 박는 게 뭐 대수겠나 싶으면서도 최악은 피하자는 마음에 죽은 나를 발견할 (엄마 아닌)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그러자 곡류에 휘말리는 물살처럼 나는 급히 꺾였다가 무언가를 둥실 타 넘었다가 차고 따듯한 기류를 넘나들며 밑으로 밑으로 하강했다. 벌써 내 육신의 세포들이 부패하기 시작한 것이다.

 

*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도 한낮의 태양이 높게 떠 있었다. 눈송이가 녹지 않을 정도의 온기와 눈의 결정들이 엉겨 붙지 않을 정도의 냉기가 적절하게 배합된 기후 안에서 나와 챔바는 반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 걸었다. 죽기 전 공중에 떠 있던 순간은 첫 주문 시 할인 쿠폰을 쓸 수 있는 신규 가입자의 혜택 같은 것이었는지 나는 방한 부츠를 신은 두 발로 걷고 또 걸었다. 북극의 얼음덩어리 같은 교차로를 보니 스키와 체인이 달린 스노우모빌이 떠올랐다. 이런 길은 스노우모빌을 타고 활강해야 제격인데. 하지만 내 상상력의 도시에는 엔진 동력으로 움직이는 이동 수단은 그 무엇도 작동하지 않았다. 챔바의 영향인 것 같았다. 자기의 차 안에서 스스로 플러그를 뽑았다는 챔바는 자동차를 싫어했다. 버스나 오토바이도 거부했고 오직 두 발로 걸어가길 원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나 같은 길손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된 건지 의문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아요?”

발을 뻗으면 부츠가 금세 눈에 파묻히는 땅을 보며 내가 물었다. 챔바는 밑창에 아이젠을 단 워커를 신고 내 앞에서 걷고 있었다.

“어떤?”

“죽은.”

나처럼 죽은, 그러니까 죽으려다 못 죽고 예기치 못하게 죽은. 자의로 계획했지만 타의의 습격을 받아 애매하게 그 사이에 낀, 칸과 칸 사이에 절취선이 그어진 휴지처럼 자의/타의로 말끔하게 끊어지지 않고 불규칙한 선으로 찢겨나간.

“여기선 깨어났다고 해요. 우리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챔바가 고글을 고쳐 쓰며 말했다. 라자로가 누구더라.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스페인 영화에서 봤었나. 라자로 디에고 가르시아? 내가 속으로 중얼거리자 챔바가 장갑 낀 손을 앞으로 뻗었다.

“라자로야, 나오너라! 몰라요? 예루살렘의 라자로.”

나는 모른다고 했다.

“예루살렘은 알죠. 이스라엘, 종교, 타지마할.”

그러다 타지마할은 다른 쪽인 것 같아 나는 챔바의 가슴 주머니로 시선을 피했다. 처음 봤을 때와 달리 챔바는 위아래가 하나로 이어진 두툼한 스즈끼복을 입고 있었다. 가슴 주머니에 노란 실로 ‘챔바챔바’라는 글씨가 박음질돼 있어 볼 때마다 속으로 챔바,라고 발음하게 됐다.

“성경을 인용한 거예요. 교회 다녔다고 해서.”

“예전에, 몇번.”

내가 말하자 챔바는 걸음을 멈추고 오픈핑거형 장갑을 벗었다.

“특정 단어로 말하지 않고 괄호로 두기도 해요. 깨어난 사람, 혹은 괄호.”

“괄호?”

“비난도 칭찬도 아닌, 괄호. 판단 이전의 괄호.”

손가락 끝마디 부분이 뚫린 장갑으로 고글 렌즈를 닦으며 챔바가 말했다. 그사이 나는 챔바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자기와 눈을 마주쳐서 좋을 게 없다는 듯한 무심한 눈빛, 그 아래 눈 밑을 따라 난 고글 자국과 좁지도 넓지도 않은 뺨, 말년 운이 좋은 하관의 예시로 관상 책에 나올 법한 턱. 나이는 몇살쯤일까. 성별은? 목소리만 들으면 중년 남자 같은데 옷 안의 상체 굴곡을 봐선 여자 같은, 어느 쪽이든 이차성징의 호르몬을 폭포수처럼 뒤집어쓴 타입은 아닌, 한마디로 모터사이클 레이싱 슈트인 스즈끼복이 잘 어울리는 챔바였다.

“뭐요.”

챔바가 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알고 싶어요?”

챔바가 고글의 밴드를 머리 뒤로 넘기며 말했다. 나는 어깻짓을 했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을 누를 수 없어 챔바의 옷에 달린 흰색 지퍼 재봉선을 훑었다. 상하의가 일체형으로 된 챔바의 옷에는 지퍼가 여러개 있었고(가랑이와 엉덩이골에도 있는 듯했고 그건 아마도 화장실 갈 때 편하게 옷을 입고 벗는 용도 같았다) 가슴과 양 허벅지에 각각 오페라핑크색 띠가 세줄씩 들어가 있어 흰 눈밭에서도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소괄호예요? 아니면 뾰족 괄호?”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물었다. 내겐 당신의 성별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듯. 하지만 우리 사이가 좀더 가까워지길 원한다면 그 머플러를 내려 울대뼈가 튀어나왔는지 확인해주면 된다는 듯, 조금 웃었다.

“빈 괄호, 비워두는 거예요.”

챔바가 두 손을 가슴 높이로 올려 괄호 부호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보송한 털 방울이 달린 모자를 고쳐 썼다. 챔바는 다시 걷기 시작했고 나도 챔바를 따라 걸었다. 눈 덮인 가로등 위로 날개가 작은 새들이 날아갔다. 나는 챔바가 내 생각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자꾸 잊었다. 내 모든 생각이 유리컵 속의 물처럼 투명하게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가이드가 알아야 할 길손의 상태가 챔바에게 전해진다고 했다. ‘나’라는 사이트에 동시접속한 상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했지만, 정작 챔바도 그 이상 설명하지 못했다. 내 생각이 영화의 내레이션처럼 귀에 들리느냐고, 아니면 책 속의 활자처럼 눈앞에 보이느냐고 물었더니, 챔바는 누가 생각을 그렇게 해요?라고 되물으며 발을 내디디면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의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이라고 했다. 그 설명이 나는 더 어려웠다. 어떻게 서로 다른 개체의 뇌신경 활동이 하나로 연동될 수 있을까. 공식만 달달 외워 응용문제가 나오면 번번이 틀리는 수학 시험처럼, 나는 내 생각이 챔바와 이어져 있고 내 상상력 안에서 다른 사람의 꿈으로 간다는 길손의 원리를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첫번째 꿈의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내 선택이 틀렸다는 불안이 커졌다.

 

나는 규희의 꿈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애라면 내 시신을 발견하고도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고통받지 않을 것 같았다. 같은 중학교에 다니며 점심시간이면 서로의 반찬이 얼마쯤 남았나 흘깃거리며 밥을 먹던 내 친구. 토요일 오후가 되면 학생회 예배에 참석하자며 우리 집 앞으로 날 데리러 오던 목사님 딸 최규희.

꼭 내 시신을 발견해달라는 부탁을 해야 해서가 아니라 규희와 나는 십대 무렵 돈독한 우정을 나누던 사이였다. 둘 중 한명이 ‘동백떡볶이’에 가고 싶으면 생리 둘째날이라도, 삼일간 머리를 안 감았어도, 오버나이트 패드를 팬티에 붙이고 모자를 뒤집어쓰고 꼭 같이 가주던 떡볶이 메이트였으니까. 삼겹살은 혼자 구워 먹어도 즉석떡볶이는 둘이 가서 2인 세트에 볶음밥을 볶아 먹어야 제맛이라는 걸 아는 최규희니까. 비록 그애가 찾아온 어느 토요일, 교회에 가기 싫어 벨 소리를 듣고도 문을 열어주지 않은 적 있지만 그건 규희가 또래 애들을 전도하면서 으레 한번씩 겪는 일이었다. 규희와 나는 다른 고등학교에 배정받으며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대학 입학 후에는 성인으로서 맺는 사교관계에 지칠 때면 서로를 불러내 떡볶이 국물에 김말이를 푹 적셔 먹었다. 규희가 회사를 그만두고 제빵 기술을 배워 디저트가게를 차리겠다고 했을 때나 만나다 헤어지기를 반복한 첫사랑과 결혼을 고민할 때도 우리는 동백떡볶이에서 당면 사리를 추가해 먹으며 함께 고민했다. 덜 손해 보는 선택지보다 손해 봐도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일에 마음을 모았다. 규희는 고민을 털어놓는 쪽이었고 나는 들어주는 쪽이었지만, 규희는 내가 에둘러 던진 테스트 질문(내가 쫄딱 망해서 노숙자 돼도 친구 해줄 수 있어? 내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기면? 내가 빨주노초로 머리를 염색하고 내가 양팔에 용 문신을 하고 내가……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넌 그래도 똑같이 날 친구로 대해줄 수 있어?)에 뭘 그렇게 쉬운 문제를 내느냐는 듯 대출받는데 보증 서달라고만 안 하면 죽어 납골당에 갈 때까지 친구가 되겠다고 했다.

“나한테 발가락 하나 정도는 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발 한쪽을 다 주진 못해도 자기 발가락 하나에 내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까짓거 준다고.”

나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동백떡볶이집을 둘러보았다. 동백여중 건너편 골목에 있는 떡볶이가게는 예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벽 없이 트인 일층 실내와 손글씨가 어지럽게 적힌 석고벽, 바둑판무늬 식탁보와 테이블마다 올려져 있는 가스버너. 변한 게 있다면 사계절 내내 녹색 낚시 조끼를 입고 주문을 받던 사장 아저씨가 보이지 않고 입구의 무인 주문기계에서 메뉴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랑 만나서 추억 쌓는 거죠. 규희가 김말이 두개 주면 착해지거든요.”

나는 허벅지 사이에 손을 넣고 고추장 양념 냄새가 풍겨오는 주방 쪽을 보았다. 떡볶이 맛이 달라졌을까 걱정됐지만, 정작 전에 먹었던 맛이 기억나지 않았다.

“먹는 게 좋다고 했죠? 같이 먹던 음식.”

나는 챔바에게 물었다. 챔바는 올리브색 밴조 케이스를 빈 의자에 올려놓고 그 위에 털 방울이 달린 모자를 벗어놓았다.

“성공 확률이 높죠.”

그렇게 말하고서 챔바는 앞치마? 하고 물었다. 반대편 벽에 고추장색 앞치마가 겹겹이 못에 걸려 있었다. 나는 버너에서 솟아나는 푸른 불꽃을 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사실대로 털어놓고 애절한 표정으로 부탁할까. 규희야, 와줘, 도와줘. 아니면 악몽을 만들어 놀라게 할까. 열두시간 안에 날 찾아오지 않으면 너희 가족 중 한 사람이 죽는다! 떡볶이를 먹다 이가 몽땅 빠지거나 가스 불이 앞치마로 옮겨붙거나 가게에 사나운 짐승이 들이닥치는 꿈을 만들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보글보글 끓는 떡볶이를 먹으며.

“성령 충만한 애라 괜찮을 거예요. 모태신앙이니까.”

나는 스테인리스 컵에 물을 따르는 챔바에게 말했다. 챔바는 나에게 물컵을 건넨 뒤 흰 단무지를 접시에 담아 가져왔다. 멜라민 접시 테두리가 불에 그슬려 검게 이지러져 있었다.

“걔가 술도 좀 하거든요. 아버지 몰래 책상 서랍에 소주 숨겨두고 생라면 부순 거랑 같이 먹고 그랬어요. 취하면 회개도 잘된다고. 나 때문에 놀라더라도 술 마시고 기도하면 괜찮아질 거예요.”

자꾸 날 발견할 규희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믿음이 신실한 애라도 죽은 사람을 보면 충격받지 않을까. 규희는 죽은 사람을 본 적 있을까. 어머니 아버지는 무탈하시나. 지난 명절 때 어머니가 무릎 수술 받으셔서 혼자 화장실도 못 가신다고 했는데. 문득 중학교 때 화장실 변기에 새끼 쥐가 죽은 걸 보고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쥐를 발견한 사람은 나였고 규희는 옆 칸에서 볼일을 보다 내 소리에 놀라 교복 치마 끝단이 속바지에 말려 올라간 것도 모른 채 경비실로 뛰어갔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어지러우면 나는 그때 변기 속에 두 눈을 감고 죽어 있던 쥐가 꿈에 나왔다. 깨끗한 양변기를 찾아 학교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는 꿈을 꿨다. 규희도 그런 꿈을 꿀까. 슬프거나 아플 때 그애는 인생의 어떤 기억으로 돌아갈까.

“된 것 같은데요?”

챔바가 불 세기를 조절하려고 냄비 밑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꺾었다. 잘 익은 떡이 매실액을 넣은 국물과 함께 끓고 있었다.

“예전에 규희한테 물어본 적 있어요. 너 진심으로 마리아가 혼자 임신해서 아기 낳은 거 믿느냐고.”

나는 젓가락으로 당면을 휘젓는 챔바에게 말했다.

“그래서요?”

“자긴 임신 안 해봐서 모르겠대요.”

챔바가 내 접시에 떡과 김말이를 담아 건네주었다. 나는 김이 피어오르는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규희는 알까. 다섯살 된 아들과 세살 된 딸을 키우는 규희는, 내가 펜으로 등을 찌르며 묻던 질문을 기억할까. 자율학습 시간, 공부는 하기 싫고 다른 애들은 방해할 수 없을 때 목사님 딸 최규희를 건드려 성경 얘길 하자고 귀찮게 굴었다. 그러면 규희는 흰 종이가 까맣게 되도록 열중하던 영어 단어 외우기를 멈추고 뒤에 앉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대충 믿어, 뭐가 궁금한데? 나는 폐기 자료로 분류돼 커다란 포대에 담겨 있던 학교 도서관 책(『성경은 없다』)에서 본 내용으로 규희를 시험했다. 성경에 말이지, 생리할 때 남자랑 그거 하면 남자 여자 둘 다 제거해버리래, 교회에서 여자는 입 다물고 남자한테 복종하라는데? 그리고 저번에 전도사님이 했던 말,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넌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해? 힘들어서 죽은 사람은 더 잘해줘야 하는 거 아냐? 그때 규희는 뭐라고 했더라. 웃었나. 화를 냈나. 입 다물고 영어 단어나 외우라고 했나.

“문제는……”

챔바가 떡 두개를 한번에 입에 넣은 뒤 뜨거운지 흰 무를 베어 먹고 그래도 뜨거운지 물을 조금 삼킨 후 말했다.

“이걸 다 먹어야 볶음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거예요.”

나는 탱탱 불은 김말이를 숟가락으로 두동강 내고 세동강 냈다. 그게 힘든 일일까. 날 위해 발가락 하나 정도는 줄 수 있다고 했는데. 발가락을 자르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잖아. 택배상자에 붙은 스티커를 떼고 버려달라는 정도? 내 이름과 주소가 적힌 종이가 사방으로 쏘다니는 게 싫어 운송장 스티커를 떼어달라는 당부 정도로 여겨달라면 무리일까. 사람의 육체는, 시신은, 신상정보보다 중요하니까. 썩어 부패하기 전에 훼손되기 전에 날 발견해 이 세상에서 조용히 물러나게 해달라는 부탁은 누구에게, 어떤 말로 해야 할까.

“생각났어요. 왜 규희한테 가면 안 되는지.”

나는 냄비 열기에 두 볼이 달아오른 챔바를 보며 말했다.

“걔가 키가 컸거든요. 그래서 음악 선생님이 규희한테 형광등 좀 안 깜박거리게 돌려보라고 했더니 규희가 그랬어요. 여기 의자 밟고 올라서면 다 자기처럼 키 커질 거라고. 그러니 꼭 자기가 아니어도 된다고.”

 

*

 

오가는 차는 없었지만 우리는 건널목에 서서 녹색불이 켜지길 기다렸다. 신호등 옆에 선 주목의 좁은 나뭇잎에 눈이 쌓여 있었다. 어디서부터 굴러온 건지 모를 플라타너스 낙엽 위에도, 밟고 올라서기 위해 전봇대에 박은 굵은 쇠못, 그 작은 못 머리에도 눈이 내려앉아 있었다. 자동차들은 유리나 합금 소재 같은 겉모습이 덮이고 지붕과 보닛으로 이어지는 형체만 알아볼 수 있었다. 차바퀴 고무에 팬 빗살무늬를 따라 눈송이들이 착지했다. 그 옆으로 허리가 길어진 챔바와 나의 그림자가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다른 괄호들은 어땠어요? 한번에 다른 사람 꿈으로 갔어요?”

눈에 덮여 차선이 사라진 도로를 건너며 나는 챔바에게 물었다. 규희 다음으로 나는 세모를 생각하고 있었다. 일년에 서너번, 계절이 바뀔 때나 안부를 묻던 친구보다 서로의 벗은 몸을 본 연인 사이가 나을 듯했다. 싸우면 경쟁하듯 저주를 퍼붓던 애인이 아무래도 덜 미안하겠지. 좀 아프게 해도 괜찮은 사람, 서로에게 준 상처보다 사랑했던 기억이 큰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세모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있었는데 조카에게 갔어요. 같이 바나나빵을 먹던 기억으로. 할머니 기억이 흐릿해 한참 돌아다녔죠.”

“붕어빵 같은 건가요?”

“좀 달라요. 붕어빵은 팥이나 크림이 들어가는데 바나나빵은 바나나 모양에 속 없이 반죽만. 지금 그 조카는 바나나빵을 파는 시장 근처에 살아요.”

“좋은 예시네요. 그 할머니도 혼자였어요?”

“혼자였고, 깨어났죠.”

깨어났다는 건 스스로 플러그를 뽑았다는 뜻이었다. 아닌가, 죽을 때 혼자여서 세상에 그 죽음을 알릴 사람이 없는 경우인가. 그것도 아니면 혹시 누구나 죽으면 길손이 되나.

“기준이 있어요.”

챔바가 말했다. 나는 어떤 기준이냐고 물었다.

“정확히는 모르고 짐작할 뿐인데, 어떤 가이드는 빛이 필요한 사람이 길손이 된다고 해요. 어떤 가이드는 세상의 빛이 된 사람이 길손이 된다고 하고.”

확실히 나는 후자 쪽은 아니었다.

“챔바는 어떻게 생각해요?”

내가 묻자 챔바는 걸음을 멈추고 길의 먼 지점을 보았다. 사방이 알비노 토끼의 털처럼 하얬다. 도시의 번잡한 풍경을 단순하게 흰빛으로 덮어버린 길에 서서 챔바가 나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슬퍼한 사람.”

그렇게 말한 뒤 챔바가 다시 움직였다. 유난히 눈이 많이 쌓인 곳을 지나며 나는 다리에 부목을 댄 사람처럼 큰 각도로 몸을 비틀며 걸었다. 여든이 넘은 그 할머니는 왜 길손이 되었을까. 빛이 필요했을까. 슬퍼했을까. 죽으면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을까. 그래도 뭐, 그 정도면 살 만큼 살았으니. 그렇게 생각하며 걷는데 누군가 천장의 무대 조명을 바꾼 것처럼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우리를 따라오던 볕이 높은 필로티를 세운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가스 배관 위에 쌓여 있던 눈이 종이 구겨지는 소리를 내며 챔바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세상 어디에도 살 만큼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챔바가 말했다. 그러고는 물기를 터는 동물처럼 머리를 크게 흔들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굽잇길을 지나자 익숙한 소공동 풍경이 펼쳐졌다. 대형 광고판이 올라선 거리에 호텔과 대기업의 사옥들이 보였다. 엇비슷하게 생긴 유리 벽 빌딩들에는 눈보다 밝은 조명이 켜져 있었다. 나는 헬기 착륙장이 있는 고층빌딩 앞에 서서 맨 위층부터 한층씩 아래로 내려가며 세모의 사무실이 있던 층을 헤아려보았다. 어쩌면 세모는 내가 알던 때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을지 몰랐다. 가장 높은 층까지 올라 아무도 침범하지 못할 힘을 갖는 것. 그게 세모가 원하는 삶이었다.

세모와 만났을 때만 해도 나는 까다로운 심사과정 없이 새 신용카드를 발급받던 정규직 사원이었다. 이따금 불면증 증세로 병원을 찾아 항우울제를 처방받긴 했지만 그 정도는 해열제나 진통제처럼 집에 두는 비상약쯤으로 여겼다. 세모는 내가 다니던 회사를 인수하기로 한 모 기업의 컨설턴트였고, 내가 테이블을 정리하고 음료를 준비하는 정기회의의 참석자였다. 무채색 정장 차림에 회색 백팩을 멘 세모는 언제나 제일 이른 시간에 나타나 회의실 모퉁이에 서 있는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겠죠. 서 있지 말고 앉아서 기다려요.

세모는 회의 때나 티타임 때나 좀처럼 목소리의 톤을 바꾸지 않던 사람이었지만 나와 있을 때면 표정이 많아지며 감정을 드러냈다. 내게 토라지면 눈꺼풀이 한껏 올라가 눈꼬리에 모서리가 생기던 모습. 난 그걸 보는 게 좋았다. 나보다 열네살이나 많고 특허권 수익 같은 복잡한 서류를 검토하지만 내가 굽 높은 구두 때문에 발이 붓거나 내 팔을 잡고 말하는 임원에게 웃는 얼굴로 응대하면 눈을 세모나게 뜨고 싫은 걸 드러내던 사람. 세모는 아랫배가 볼록했고 같은 디자인의 안경 여러개를 번갈아 꼈으며 키스할 때 가끔 사랑니 썩은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도 좋았다. 나밖에 맡지 못하는 냄새니까. 세모의 왼쪽 뺨에 난 손톱자국과 아래쪽 어금니 옆에 눕듯이 난 이도 좋았다. 웃는 입처럼 생긴 그 흉터를 나는 ‘웃는 아이’라고 불렀다. 비뚤게 난 아랫니는 ‘누운 아이’라고 이름 붙였다. 세모가 나를 서운하게 대할 때면 나는 세모에게 아이들을 보여달라고 졸랐다. 웃는 아이 보여줘. 누운 아이 보여줘. 이건 나밖에 모르지? 나밖에 안 보여주지?

그 시절, 나는 세모를 기다리며 소공동 주변을 걸었다. 한시간 내로 정리하고 나오겠다는 세모의 말에 나는 세모가 있는 빌딩에서 시청까지 걸어가 길 건너에 있는 덕수궁 앞을 배회했다. 언제 세모가 나올지 몰라 궁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고궁 맞은편 미술관 뜰로 가서 바닥 조명이 켜지는 야외 조형물을 구경했다. 그래도 세모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정동길을 걸어 연극 포스터가 붙어 있는 극장 앞을 서성였다. 미국대사관저 쪽으로 이어지는 오르막을 걸어 구세군교회가 있는 돌담길을 오가기도 했다. 퇴근 시간에 맞춰 나왔는데도 걷다보면 캄캄한 밤이 되었고 나는 지치고 허기져 세모가 나타나면 쉽게 용서해주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웃는 아이 보여줘도, 누운 아이 보여줘도 화 안 풀 거야. 그렇게 다짐해도 막상 세모가 나타나면 세모가 내게 왔다는 그 이유만으로 미움은 사라졌고, 세모는 내가 기다린 시간보다 더 짧게 나와 보낸 후 노트북을 켜고 일했다.

내가 기억하는 세모, 기대어 누우면 푹신한 어깨, 코를 맞대고 숨 쉬면 잘 여문 단감에서 나는 것 같은 냄새, 가늘어서 끊어지기 쉬운 머리카락과 엎드린 숫자 3 같은 윗입술선, 내가 입으로 해줄 때 내지르던 소리(시조새의 울음 같은). 무리해 일하면 개구리 발처럼 관절이 퉁퉁 붓던 손과 그 손으로 집어 먹던 피클, 커플로 맞춰 입은 키스 해링 그림의 수면 바지, 둘 중 한명이 어린애처럼 떼쓰고 싶을 때 주문처럼 외우던 『어린 왕자』 속 구절. 양 한마리만 그려줘, 양 한마리만 내게 그려줘! 그리고 또, 세모는 어떤 사람이었나.

귀밑머리에 새치가 보이는 걸 싫어하고 치과에 가서 입을 벌리고 눕는 걸 무서워하는 겁보. 아버지가 죽으면 엄마한테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철저히 숨길 거라던 벽장. 이혼녀. 정체성이란 스스로 밝히는 게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알게 하는 것이라고, 안다는 것을 알아챌까 오히려 눈치 보게 하는 강한 힘이라고 말하던 사람. 힘이 정체성이라니. 세렝게티에 사는 초식동물도 아니고 왜 세상을 온통 적으로 보느냐고 내가 물으면, 세모는 그 경계심이 자신의 유일한 방어수단이라고 했다. 잡아먹힐 때 들이받을 수 있는 뿔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세모는 치과에 갔을까. 사랑니를 뽑았을까.

내가 꿈에 나타나면 세모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문자로 시작해야겠어요.”

나는 챔바에게 말했다. 우리의 옆으로 목덜미에서 흰 김이 나는 사람이 제설 삽을 밀며 지나갔다. 그 뒤로 또다른 인부가 자루에서 염화칼슘을 퍼서 길에 뿌렸다. 챔바는 희고 딱딱한 알갱이가 뿌려진 쪽으로 가 잰걸음으로 그 위를 돌았다.

“꿈에서 알람이 울리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보낸 문자가 뜨는 거죠.”

너도 잘 자.

두번째 데이트 후, 세모가 내게 보낸 문자처럼. 마치 내가 먼저 밤 인사를 한 듯, 너도 잘 자.

“내가 잘 있다고 말해주려고요. 걱정하지 말라고. 난 천사랑 천국에 있으니까……”

“어디에 있다고요?”

발밑으로 오도독오도독 소리를 내던 챔바가 말했다.

“천국에 있는 거 아니에요?”

“여긴 시청 앞인데요.”

챔바가 내 시선을 잡아끌 듯 높은 곳으로 고개를 들었다. 중앙 지붕이 돔 모양인 옛 시청 건물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석벽 건물을 따라 얇게 펴 바른 크림처럼 눈이 쌓였고 그 아래 두꺼운 나무문이 닫혀 있었다. 눈 맞은 돌계단에는 누군가 장난을 쳐놓은 것처럼 잔디보호, 마음정원, 음악분수라는 나무 팻말이 기대어 있었다. 나무에 새긴 궁서체를 따라 눈이 내려앉았다. 언제 여기까지 온 걸까. 세모와 먹었던 시금치커리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세모가 좋아했던 갈릭난과 걸쭉한 라씨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뒤돌아 우리가 걸어온 길을 보았다. 눈을 치우던 인부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들이 지나간 길을 따라 측백나무 화분들이 반원을 만들며 서 있었다. 원 끄트머리의 화분에서 마치 흰 눈을 찢고 나온 듯한 짙은 핑크색 조명이 빛났다. 챔바는 어느새 그 조명 앞에 가 있었다.

이런 색감은 내 상상 어디에서 나온 걸까. 색소 넣은 사탕 같고 크레파스로 그린 고무장갑 같은, 촌스럽고 조화롭지 않은 무지막지한 오페라핑크빛. 그 사이사이로 눈송이가 내렸다. 착지하자마자 꽃잎 모양을 한 조명 열에 녹아 사라졌다. 그 빛은, 빛이 만드는 색 번짐은, 아크릴 통에 담긴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나와 상관없이 아름다웠다.

새빨간 알핀로제. 이슬 먹고 피어 있는 꽃. 다스 오버랜야 오버랜. 베르네 산골 아름답구나.

한 소절을 들으면 뒤이은 가사와 멜로디가 떠오르는 건 내 상상이 아닌 습관이었다. 삼십여년간 살아온 내가 익숙하게 다니던 생각의 길. 나는 여전히 다스 오버랜의 뜻을 모르고 베르네 산골의 정확한 위치도 모르지만, 노래 속 새빨간 알핀로제가 알프스철쭉이란 것을 죽고 나서야 알았다. 핑크색 조명 아래 꽂힌 나무 팻말. 알프스철쭉(Alpenrose). 진달랫과에 속한 꽃으로 고산지대에서 자라며 페루기네움철쭉 혹은 스노우로즈라고도 불리며……

나는 몰랐는데 내 상상은 어떻게 아는 걸까. 난 끝났는데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걸까. 죽었는데 아직도 뭐가 두려운 걸까. 죽어서도 죽지 않는 감정이 있다면 노래가 끝나도 혀끝에 맴도는 멜로디가 있다면 누군가의 꿈에 찾아가 어떤 말을 해야 한다면.

나는 챔바를 보았다. 챔바가 고글을 이마 위로 올린 채 내 곁에 서 있었다.

“내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죠. 자기 탓이라고, 자기랑 내가 이런 사람이라, 이런 성향의 사람은 결국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다고 여기면.”

나는 장갑을 벗고 눈가를 닦았다. 탁 트인 광장에서 부는 바람이 옛 시청 건물의 석조 벽에 막혀 우리가 서 있는 측백나무 화분 위에서 회오리쳤다. 제비초리를 따라 한 방향으로 누운 챔바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흐트러졌다.

“가서 내가 죽은 것 말해줄래요? 경찰서에 전화 한통만.”

나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손등으로 비빌수록 시야가 더 흐려져 알프스철쭉의 핑크색이 노랑, 초록, 파랑으로 스펙트럼을 만들었다.

“난 가이드예요. 푹 자고 숙면해서 꿈도 안 꿔요.”

챔바가 말했다. 나는 눈을 뜨지 못한 채 요들의 꺾인 음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요, 챔바품바씨, 혼자만 기능성 옷 입고, 난 엉덩이도 안 덮이는 이 누비 점퍼만 입었는데! 내가 떡에 목이 메든 말든 혼자 김가루 뿌려 볶음밥 먹었죠!”

현기증이 날 정도로 눈앞에 색이 와글거렸다. 나는 챔바의 팔을 붙잡았다.

“팔에 지퍼 달린 주머니도 있고, 이 옷 어디서 샀어요?”

잠시 말없이 서 있던 챔바가 가까이 다가와 내 얼굴에 묻은 눈가루를 불어주었다.

“미안하지만, 나 밴조를 두고 왔어요. 아까 그 떡볶이집에.”

 

*

 

챔바는 길손이 자신의 상상력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것이 가이드가 맡은 일이라 했다. 하지만 가이드가 되기 전 챔바도 길손이었으며, 그때 챔바는 장마철을 앞둔 푹푹 찌는 날씨에 시와 도의 경계를 걸어 한 사람에게 갔다고 했다.

“고추밭에 갔어요. 해거리로 고추랑 양파 심는 엄마 밭에. 여름이라 흙이 붉고 기름졌는데 엄마가 꽃무늬 차양 모자를 쓰고 잡초를 뽑고 있었어요. 고무장화를 신고 허리를 굽힌 채 호미로 흙을 긁으면서. 나도 엄마 뒤에서 고랑 하나를 맡아 풀을 뽑았어요. 벌레가 윙윙거리고 땀이 줄줄 흘렀죠. 그러다 엄마가 밥 먹고 하자길래 집에서 가져온 아이스백에서 얼린 보리차랑 현미밥이랑 전날 만든 임연수구이를 꺼내 상추에 싸서 먹었어요. 방금 딴 고추랑 같이. 한참을 먹는데 밭고랑 끝에서 오익오익오익 하는 소리가 나더니 검은 새끼 돼지 한마리가 달려오는 거예요. 발굽으로 막 흙을 튀기면서. 돼지가 엄마한테 와락 안겨서 납작하고 축축한 코를 얼굴에 문질렀어요. 키스를 퍼붓듯이. 그다음 엄마가 잠에서 깼죠.”

챔바가 말했다. 우리는 시청에서 다시 소공동을 지나 남산으로 가고 있었다. 챔바와 나는 여전히 팔꿈치 길이 정도 떨어져 걸으며 각자의 발자국을 만들었다.

“로또 살 꿈이네요. 돼지꿈.”

“맞아요. 엄만 그 꿈을 꾸고 복권가게에 갔어요. 자동으로 할까, 반자동으로 할까? 나한테 물어보려고 전화했는데 내가 안 받았죠. 나는 좋은 꿈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일어났을 때 웃게 되는 꿈. 복권을 사야 할 것 같은 꿈. 내가 돼지띠거든요.”

눈 덮인 숭례문의 이층 기와지붕이 가까이 보였다. 다섯갈래 길로 움직이던 차들은 사라지고, 그 가운데 누각을 올린 석축이 섬처럼 외떨어져 있었다. 돌과 돌 사이의 틈을 흰 줄로 메운 눈을 보며 나는 챔바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 꿈에 가고 나면 그다음엔 뭘 하죠?”

“뭘 하고 싶어요?”

“다른 길손은 뭘 했나요?”

“대부분, 하던 걸 계속하죠.”

챔바가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정도는 말해줘도 괜찮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잘 아는 사람을 예로 들자면, 고흐는 그림을 그렸다고 하더군요. 버지니아 울프, 전혜린은 글을 썼어요. 들뢰즈는 책을 읽고, 장국영은 영화를 봤죠.”

“누구요?”

“유명한, 알 만한 사람들.”

“난 몰라요. 고흐랑 장국영은 알죠.”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날 보는 챔바의 시선이 느껴졌다.

“가수는 깨어나서도 노래 부르고 춤춰요. 그걸 제일 좋아하니까. 농부는 작물을 심고 상인은 물건을 팔죠. 깨어나기 전 펀드매니저였던 길손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보며 전화했어요.”

“그 사람은 왜 길손이 됐을까요? 펀드매니저.”

“괄호.”

챔바가 말했다. 우리는 숭례문의 측벽 길을 따라 걸었다. 맞은편에 남대문시장의 아치형 문이 보였다. 저 너머 어딘가에 물건을 팔고 상점을 구경하고 도넛이나 어묵을 먹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그런 북적거림이 내게는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길이 좁아지면서 산의 오르막이 시작되자 챔바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 위에 있는 거 맞죠?”

나는 어느 가을날 은행잎이 떨어진 남산길을 걷다 엄마와 슈퍼에 들어가 커피우유를 마셨던 기억을 말해주었다. 엄마가 즐겨 먹던 커피 포리를 엄마의 방식대로 마셔보고 싶었다.

 

남산길 마지막 슈퍼라는 이름답게 슈퍼는 소월길 언덕 끄트머리에 있었다. 성에 낀 유리문을 밀자 문에 달아놓은 녹슨 종이 울렸다. 빛바랜 담요를 덮고 앉은 주인이 우리를 보고 화면이 불룩한 티브이에서 나오는 소리를 줄였다. 우리가 삼각 비닐팩에 담긴 커피우유를 찾는다고 하자 주인은 펩시콜라 스티커가 붙은 냉장고를 가리켰다. 과자와 초콜릿, 빵이 올려진 낮은 나무 가판대를 지나 나는 녹슨 종이 달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커피우유를 꺼내든 순간, 나는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의 꿈에 갈 수 있는지 깨달았다. 꿈을 꾸는 엄마의 마음과 그 꿈으로 간 내 마음,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을 이어주는 챔바의 마음이 삼각뿔의 세 직선처럼 하나의 꼭짓점에서 만나고 있었다. 세 방향으로 뻗은 마음의 면들이 커피우유의 모습을 하고 내 손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한 마음, 나보다 어둡고 나보다 빛나는 슬픔이 삼각뿔 커피우유의 밑면처럼 우리를 떠받치고 있었다.

“여기, 빨대.”

챔바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려 슈퍼 주인에게서 건네받은 빨대를 내밀었다.

“잘 봐요. 이거 아무나 못 하는 거예요.”

나는 가판대 앞에 쪼그려 앉아 빨대 껍질을 이로 물어 벗겼다. 빨대의 뾰족한 부분이 아래로 가게 손에 쥐고서 커피우유가 담긴 폴리에틸렌 필름의 빗면을 조준했다. 단번에, 강하게, 눈 깜짝할 사이에, 비닐을 뚫고 빨대를 꽂던 엄마처럼!

“안 되네요. 엄만 잘했는데.”

구부러진 빨대를 펴고 다시 시도했지만 빨대 모양만 더 망가졌다. 옆에서 보던 챔바가 우유팩 모서리를 가위로 잘랐다.

“쉽게 갑시다. 도구를 써요.”

챔바는 빨대를 꽂지 않은 채 입에 대고 마셨다. 팔을 들고 고개를 꺾자 챔바의 옷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검은색 워커 주변에 눈 녹은 물이 고였다. 챔바의 뒤로 무릎 높이의 등유 난로가 열을 뿜었고 철판 위에서 바닥이 찌그러진 놋주전자가 김을 피어 올렸다.

“이제 눈 좀 그만 내리게 해요.”

밖으로 나온 챔바가 말했다. 우리가 서 있는 차양막은 눈이 쌓여 아래로 불룩했다. 챔바는 올라올 때 만든 우리의 발자국이 벌써 눈으로 덮였다고 했다. 차라리 눈덩이처럼 굴러가면 모를까 더는 걸을 수 없다고 했다.

“춥지는 않잖아요. 우리 눈싸움할까요?”

나는 주저앉아 눈을 뭉쳤다.

“나 옷 젖는 거 제일 싫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던진 눈덩이가 챔바의 목덜미에 닿아 부서졌다. 상처받았지만 품위를 잃지 않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챔바가 회색 점무늬 머플러를 벗었다. 나는 챔바의 목을 보았다. 울대뼈가 튀어나왔는지 안 튀어나왔지 확인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본 것은 챔바의 상처였다. 챔바의 목에는 스스로 플러그를 뽑을 때 생긴 흉터들이 있었다. 차 안에서, 혼자, 다신 깨어날 수 없게. 한 소절을 들으면 저절로 다음 소절이 떠오르는 노래처럼 챔바의 시간이 나에게 흘러왔다. 나는 머플러를 터는 챔바에게 물었다.

“궁금한 게 있어요.”

“옷이요? 가이드 시작할 때 받은 거예요. 어디서 샀는지 나도 몰라요.”

“아뇨, 내가 꿈에 가고 나면 챔바는 뭘 해요?”

“하다뇨. 안 해야죠. 난 쉴 거예요.”

나는 떡볶이집으로 가 밴조를 가져오자고 했지만, 챔바는 연주법도 모르고 노래에 소질도 없으니 그냥 두자고 했다.

“그럼 나도 쉴래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구부려 앉아 세수하듯 얼굴에 눈을 문질렀다. 찬 눈에서 녹슨 쇠 냄새가 났다. 목부터 정수리까지 쨍한 냉기가 퍼졌다. 나는 그대로 눈에 파묻혀 단숨에 지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죽어서도 쉬지 못했다. 이유를 찾느라, 인과관계의 인(因)에 매달리느라 죽음의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나는 나라는 존재를 빈 괄호로 두고 싶었다. 이제 죽은 나를 발견해주길 원하지 않았다. 내 죽음의 경위와 삶의 이력들을 오해 없이 완결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나는 나와 이어진 사람의 꿈으로 가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세모의 꿈으로 가서 웃는 아이를 보고 입술을 벌려 누운 아이를 보고 싶었다. 그다음 세모를 치과에 데리고 가서 조금도 아프지 않게 사랑니를 뽑아야지. 세모의 부은 뺨을 차가운 얼음으로 찜질해주고 얼어붙은 뺨을 내 뺨으로 녹여줘야지. 언젠가 오래 기다린 나에게 달려와 얼어붙은 내 뺨에 자기의 뺨을 대고 녹여주던 세모처럼. 규희와 동백떡볶이에서 만나 스위트콘을 넣고 떡볶이 국물에 밥을 볶아 먹어야지. 규희의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용 의자와 키즈 메뉴를 만들어볼까. 내 상상력의 힘으로, 내가 기억하는 기쁨을 위해. 벌써 그 꿈들이 도착해 나와 꿈꿀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그 꿈들이 나보다 오래 머물며 사람들 마음을 떠다닐지도 몰랐다.

그런 꿈을 나 혼자 만들 수 있을까. 스즈끼복을 입은 챔바가 핑크색 줄무늬로 내가 있는 곳을 표시해줘야 하지 않을까. 내 방한 부츠는 다 젖어버렸고 양말까지 축축해 더는 걷고 싶지 않은데.

그리하여 나와 챔바는 굴러서 눈밭을 내려갔다. 눈덩이처럼 데구루루 굴러서 갔다. 바람이 무섭지 않은 낙엽처럼, 떨어진 이후를 걱정하지 않는 눈송이처럼 데구루루 데구루루 굴러 비탈길을 내려갔다. 내가 먼저 구르고 챔바가 날 따라왔다. 우리는 눈에 눈을 더하며 둥글게 부풀어가는 돼지 두마리였다.

그러니

당신은 기쁘게 내 꿈을 꿔주길.

 

오늘 밤은 엄마, 엄마의 꿈으로.

커피우유 가지고 갈게요. 멋지게 빨대 꽂아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