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제리 크래프트 『뉴 키드』(전2권), 보물창고 2020~21

다문화 교육, 이 책으로 해보면 어떨까요?

 

 

이향규 李向珪

런던한겨레학교장 hyangkue@hanmail.net

 

 

195_475

학교에서는 다문화교육, 상호문화이해교육, 세계시민교육, 평화교육, 통일교육 등 여러 이름으로 비슷비슷한 교육을 한다. 따지고 보면 모두 ‘출신이나 배경이 다른 사람들끼리 그런대로 공정하게 함께 살기’를 가르치는 거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가르칠까?

두권으로 구성된 『뉴 키드』(New Kid, 2019, Class Act, 2020, 조고은 옮김)로 토론 수업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선 어린이를 위한 그래픽노블이어서 학생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일상, 특히 학교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흥미롭고, 등장인물들이 툭툭 던지는 대사가 일품이다. 읽다보면 편견에 가득 찬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찔끔할 때도 있다. 제리 크래프트(Jerry Craft)는 이 책으로 2020년에 아동·청소년문학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뉴베리상을 받았다. 그래픽노블이 이 상을 수상한 것은 1922년 첫 시상이 있은 이래 처음이란다. 인종주의, 빈부 격차, 불평등 같은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데, 유머러스하고 경쾌해서 술술 읽힌다(술술 읽히지만, 되돌아가서 생각하는 것까지 치면 읽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열두살 조던은 동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엄마의 열망에 따라 이웃 부자동네에 있는 사립학교 리버데일 아카데미에 들어간다(한국어판은 이를 ‘리버데일 종합학교’로 번역했는데 ‘종합학교’(comprehensive school)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공립학교로, 이 학교와는 정반대이다. 전반적으로 번역이 자연스럽지만 이 부분은 아쉽다). 이 학교에는 부유한 백인 학생이 대부분이다. 조던은 이곳에서 드류를 만난다. 드류는 조던보다 더 가난한 지역에서 할머니와 산다. 『뉴 키드』는 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년들이 학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리엄은 인종과 출신을 넘어 조던과 드류의 친구가 되는 긍정적 인물인 반면, 앤디는 인종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부잣집 망나니로 비호감 캐릭터다. 조던과 드류의 담임교사인 롤리는 스스로 이해심이 넘치는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며 유색인종 학생에 대해 잘 아는 양 행동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롤리의 행동은 번번이 드류를 화나게 하고 조던을 좌절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수학여행같이 비용이 드는 일을 학생들에게 안내하면서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한다. 모두 드류나 조던을 쳐다본다. 드류와 조던이 어울려서 지내는 것을, 그러니까 ‘백인 학교’에서 유색인종 학생 두명이 친하게 지내는 것을 학교 부적응으로 해석하고 부모에게 알린다. 제일 큰 문제는 드류의 이름을 자꾸 다른 흑인 학생 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거다. 드류는 항의하지만 상황은 악화된다. 조던은 누군가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에 대해 이렇게 그림일기를 썼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내게 나쁜 별명을 붙이는 일이 제일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다보니 ‘돌대가리’는 참을 수 있었다. 내 머리가 진짜 돌은 아니니까. 심지어 꼬맹이, 오레오, 환한 친구(피부색이 밝은 흑인)라는 말에도 익숙해졌다. 대개 그런 이름들은 자기가 자신을 싫어하듯, 나도 나를 싫어하게 되길 바라는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 붙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게 붙일 수 있는 최악의 이름은 과연 뭘까? 그건 바로 다른 사람의 이름이다. 그건 그 사람이 놀릴 거리를 찾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들여 우릴 살펴보지도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가 잠깐의 시간을 들일 가치도 없다고 말하는 셈이다.”(『뉴 키드 1』, 223~24면)

그런데 스케치북을 학교에 두고 오는 바람에 그걸 롤리 선생님이 읽게 된다. 대오각성하고 사과했을까?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 너는 왜 그렇게 우리 학교에 분노를 품고 있니? 인생 자체에 분노를 품고 있는 것 같구나.”(225면) 그는 이 그림일기가 학교가 추구하는 가치와 교사에 대한 공격이라고도 말한다. 매우 방어적이다. 조던은 반박한다. “여기에 공격은 전혀 없어요. 그냥 하나의 관점이에요. 신문의 풍자 만화처럼요. 하지만 여기 담긴 내용이 모두 진짜로 있었던 일인데 어떻게 학교에 대한 공격일 수가 있어요? 선생님도 맨날 드류 이름 틀리게 부르잖아요. 벌써 학년이 끝나가는데도요. 그리고 경제적 지원을 받는 아이들을 깔보는 애들도 정말로 있다고요. 애들이 빤히 쳐다봐요. 항상 그래요. 다르다는 건 정말 살기 쉬운 일이 아니에요!”(226~27면)

교사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남들과 다른 건 그만큼 특별한 축복이라고 강변한다. 가슴이 답답해진 조던은 이렇게 빗대어 이야기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을 거다. “아 알겠어요… 이런 일이 저희에게 벌어지는 건 괜찮지만, 그런 일에 대해 저희가 불평하는 것은 괜찮지 않은 거네요. 선생님 한가지 물어봐도 돼요? 제가 사는 동네에 있는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라면 하시겠어요? 그러면 선생님도 엄청 특별해질 수 있잖아요?”(228면) 2020년에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에 나갔을 때 누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다른 인종으로 살고 싶으냐고 했을 때 대번 꺼려진다면, 그 사회에 인종차별이 있다는 증거라고. 그 생각이 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 학교에 다니는 이른바 ‘다문화’학생이나 ‘탈북’학생이 떠올랐다. 수업시간에 소수자나 경제적 약자 배려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눈치를 보게 되는 마음, 어떤 일이든 감내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들과 그래서 가족에게조차 무엇도 털어놓지 못하게 되는 일……. 드류와 조던이 주고받는 이런 이야기(95면)를 그 학생들도 공감할 것이다.

한두개 에피소드만 소개했지만 이 책에는 소수자가 경험하는 일상의 차별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주 많다. 유색인종 학생들에게 교사가 ‘너한테 어울리는 책’이라며 주인공이 어떻게 암흑의 세계를 탈출하기 위해 역경을 헤쳐나가는지를 쓴 소설을 권하는 장면(135~38면)도 인상적이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자신의 고정관념에 갇혀 상대를 본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당사자의 눈으로 문제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책은 인종적 갈등을 넘어선 우정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아동도서다운 마무리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아동용 도서가 아니라 청소년, 심지어 어른을 위한 동화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어린이가 아니라면, 갈등이 해결되는 결론으로 성급히 넘어가지 말고 차별이 얼마나 일상에 녹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하나의 에피소드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멈춰서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각자의 마음을 돌아보며 읽다보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