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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문수현 『주택, 시장보다 국가』, 이음 2022

상품과 인권 사이, 독일 주택 오디세이

 

 

최경호 崔景皓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隨處作住) 소장 kh@socialhous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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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단호하게 시작한다. “독일의 주택체제를 한국 상황과 맞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해롭다.”(29면) 외국에서 얻은 단편적 교훈을 한국에 단순 적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또는 정확한 이해)를 자주 받는 처지에서, “주택 문제처럼 복잡하고 경로의존성이 큰 문제는 외국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해법으로 삼을 수는 없다”는 저자의 생각은 서늘하고도 반갑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다른 사례나 역사를 살피는 효용은 무엇일까. 가끔 닥치는 허무함을 이겨낼 비결을 저자는 이어서 제시한다.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해법이 있으며 그것이 계속 변화한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가 “그리하여 그 앞에서 좀 더 의연해지도록 하는 것”(30면)이다.

독일은 제국과 공화국을 거쳐, 공산주의와 수정자본주의가 경쟁하고 또 통일된 5개의 체제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의 주택정책의 의미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역사학에 사회과학적 과제가 더해지는 어려운 임무일 것이다. 저자는 『주택, 시장보다 국가』를 통해 이 일을 의연하게 해내는 한편 한국의 유사 사례를 언급하며 독자들에게 사유의 고삐도 쥐어준다.

‘임대병영’이라는 표현이 상징하는 독일제국의 주택정책은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던 임대인 단체나 임대차제도를 넘어 생산과 관리 영역에도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요구하는 사회개혁가 등의 출현과 쟁명 속에서 전개된다. 지상권의 개념이 정립되고 토지초과이득세가 도입되었다가 폐지되며, ‘토지투기왕’과 동시에 공익주택회사, 주택조합이 등장한다. 이는 토지초과이득세 문제에 있어 비슷한 운명을 겪었을 뿐 아니라 ‘갭 투기’ 논란이 불거지면서도 이제 막 사회주택을 통해 민간에서도 공익적 주택공급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지금의 한국에도 의미심장하다.

전쟁과 복구 과정에서 ‘주택강제경제’라는 개념으로 강력한 임차인 보호를 추구하며 독일 주택체제의 기틀을 다진 바이마르공화국이 나치로 이어지는 과정을 볼 때도 저자의 의연한 시각은 이어진다. 세제 등의 규제 및 공급정책 등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공공개입의 축소가 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지지도 않았으며, 협소주택을 통해 시급한 주택난을 해결하려 했던 오스트리아와도 다른 길을 걷다가 결국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상황이 서술되지만, 저자는 이를 다각도로 살피며 쉽게 어리석다고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분단 이후 동독에서는 주거 문제가 경제체제와 분리될 수 없음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사회주의에서 그 해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주택을 통해 사회주의의 승리를 입증한다는 입장으로 주택 문제 해결에 더욱 명운을 걸 수밖에 없었는데, 역설적이게도 주택정책의 실패가 체제 몰락의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 여기엔 “대규모 기념비적인 건축을 제외한 일반인들을 위한 주택의 경우 (…) 정책의 우선순위 바깥에 머무르고 있었다”(185면)거나, 산업 분야의 후진성으로 주택 건설비용이 서독의 거의 두배에 달했다는 점 외에도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다. 통계까지 조작해가며 공공에 대한 불신을 자초한 동독의 실패 원인을 ‘이념’ 그 자체나 ‘이념의 타락’에서만 찾는다면 우리가 얻는 교훈은 앙상할 것이다.

주택공익성 개념과 소유권이 계속 충돌했던 서독에서는 규제와 해제가 긴장 속에 반복된다. 전후 복구시기 과거의 주택강제경제를 철폐하면서도 사회주택의 공급과 주거보조비의 확대를 통해 국가 개입의 끈을 튼튼히 잡았던 것이 보수진영의 입장이었다는 점은 ‘사회국가’ 독일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후 서독에서는 1960년대의 규제완화로 임대료가 폭등하지만 바이마르공화국 때처럼 민간부문의 건설 활성화도 이룩하지 못했고 결국 1971년에 다시 임차인보호강화법을 제정하게 된다. 동독과 서독의 이러한 사례를 보면, 좌든 우든 현실의 복잡함 앞에서 자만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동독이 정치적인 정당성을 가진 체제였다면 허황된 공급계획이나 대규모 신도시 건설과 같이 국민을 향한 ‘아부’가 불필요했을 것이라 꼬집는다. 한국은 어땠을까. 박정희정부의 주택 250만호 건설계획은 유신 직후, 전두환정부의 500만호 계획은 군사반란 직후 발표되었는데,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노태우정부의 200만호 계획은 동독의 마르찬 신도시와 유사한 1기 신도시 덕분에 목표를 달성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지만, 이 역시 태생은 여소야대 지형을 돌파하려는 ‘정치적 정당화’의 기동이었다. 달성되지 않을 것이 뻔한 계획을 남발했다는 동독을 향한 비판에서 과연 한국의 선거공약들이나 현 정부의 250만호 계획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파울과 파울라의 전설」(1973)이라는 동독 영화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사회주의체제에서 어쨌든 낮게 유지된 임대료나 ‘아테네헌장’의 근대도시계획 이념을 실현한 동독 신도시의 편리한 거주환경 외에도 복잡한 문화적 요소나 사회심리적 요인이 인민들의 행·불행을 좌우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통일 이후 소유권 분쟁과 주거비 폭등의 틈바구니에서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했던 것은 동독의 주거안정성이란다. 과연 “상품과 인권 사이의 투쟁이 완결되는 법이 없이 계속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요동”(380면)쳐온 것이 독일 주택의 역사다.

기시감 대신 회시감(回視感)이라고 해야 할까. 일제강점기 주거권운동의 역사를 오늘에 비추어 보면 낯익다. ‘국적에 상관없이 임차인들은 단결하자’던 식민지 조선 땅에서의 차가인동맹운동이나 임대료 미납으로 강제퇴거에 내몰린 가정에 대한 이웃들의 연대투쟁이 바이마르공화국과 같은 시기에 한반도에서도 벌어진 것을 보면, 외려 한국과 독일의 주거권 담론의 차이는 그때가 지금보다 덜한 것도 같다.

앞선 체제를 두루 거치며 도달, 혹은 절충해낸 현재의 독일 주택체제는 소유부문과 임대부문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이는 주거체제론 중 케메니(J. Kemeny)의 단일모델(unitary model)이나 훅스트라(J. Hoekstra)의 사민주의주거체제론을 떠올리게 한다. 주변 여러 나라와의 비교도 놓치지 않는 이 책에서 아쉬운 점 하나는 본격적인 주거체제(housing regime)의 관점에서 그 구성요소나 성격을 규명한 부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주거체제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과 대안을 만드는 일은 주택 분야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의 몫으로 기쁘게 받아들이고, 한국 주거체제에 필요한 전략을 같이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통일 이후 독일의 주택체제가 금융위기와 민영화를 거치며 현재 어떤 도전에 직면해 있는지를 2021년까지 생생히 추적하는 150년 서사의 씨줄과 날줄은 튼튼하다. 세입자주거권을 고민하는 이는 물론 제3섹터의 주택공급에 필요한 교훈을 구하거나, 동독을 포함한 독일 역사 속에서 국가 개입의 실패 사례나 통일 이후 동독의 부동산 소유권 분쟁과 처리의 문제에 관심있는 이들까지, 모든 이들에게 의연한 참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