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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신현준‧최지선‧김학선 『한국 팝의 고고학』(전4권), 을유문화사 2022

당신이 듣는 한국 대중음악의 씨앗이 움트던 순간들

 

 

조일동 趙一東

문화인류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 heavyjo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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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모 전자백과사전에 해방 이후 한국 대중문화 관련 항목을 개발하는 꽤 품이 많이 든 프로젝트를 맡았다. 선행연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한국 학계에서 대중문화·예술 연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노골적으로 깨닫게 되었달까? 1990년대 이전까지 ‘순수’ ‘전통’ ‘실험’과 같은 단어가 앞에 붙지 않는 예술, 즉 대중문화에 대한 한국 학계의 연구는 놀라울 만치 드물었다. 대중음악과 이를 둘러싼 실천에 관해 연구하면서 필자가 느꼈던 고립감이나 허전함의 실체를 수치로 확인한 경험이었다.

그나마 영화학 분야는 한국 영화사에 대한 촘촘한 데이터베이스가 마련되고 추가로 발견되는 자료와 내용 보강이 지속해서 이뤄지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이론이나 사회과학적 관점에 기반한 분석도 상당한 수준으로 자리 잡아왔음이 체감되었다. 하지만 대중음악 연구 상황은 영화와 비교하면 빈약하다는 말이 무색한 수준이었다. 한국 대중음악 사례 분석에 바탕을 둔 독자적 이론 정립이나 특수성을 반영한 역사 서술은커녕, 학술적 관점과 엄밀성을 갖춘 데이터베이스조차 구축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한국 팝의 고고학 1990: 상상과 우상』(이하 『1990』) 서문에서 신현준이 적은 것처럼 한국 대중음악 데이터베이스와 자료 다수는 소수 애호가 개인의 노력에 빚지고 있다.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의 가장 큰 가치는 여기에 있다. 196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한국 대중음악 데이터베이스는 물론, 앞으로도 데이터베이스 기획과 구축의 기준이 될 시각과 반드시 거론해야 할 작품들을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툼한 네권의 책은 압축적 근대화와 포스트-식민, 냉전에 봉쇄당한 듯 여겨졌던 한국 근현대사 속에 다양한 개인 혹은 사회적 실천, 변화, 창발, 연대와 대립의 드라마가 흩뿌려져 있음을 한국 대중음악이라는 재료로 ‘발굴’하고 있다. 심지어 2005년(과 이번에 다시) 발표한 『한국 팝의 고고학 1960: 탄생과 혁명』과 『한국 팝의 고고학 1970: 절정과 분화』가 대중음악 하위장르 형성과 세분화의 과정이 만든 연대기 사이사이에 사회상과 변화를 끼워 넣는 다소 평범한 구성이었다면, 이번에 초판 출간된 『한국 팝의 고고학 1980: 욕망의 장소』(이하 『1980』)와 『1990』은 대중음악 실천과 지리적 공간을 연결시켜 이론적 시각 변화를 꾀했다.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에 자리한 구체적 공간에 사회, 문화, 음악이 만든 시간성이 겹쳐지며 발생한 독특한 장소성과 그 변화를 추적한다.

이를테면 KBS 방송국이 자리한 여의도와 조용필을 필두로 한 주류 대중음악의 흐름을 엮어 하나의 장소성으로 설명하고, 강남 개발과 카바레 문화를 1980년대식 트로트와 묶으며, 명동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소위 ‘다운타운’ 지역과 송창식에서 해바라기, 조동진, 들국화에 이르는 포크 기반 언더그라운드 음악인의 실천을 직조한다. 규모도 크고 대관료도 저렴한 파고다극장과 “낙원악기상가가 바로 옆에 있어 미비한 사운드를 보완하기 위한 장비의 조달이 원활”(『1980』, 476면)했기 때문에 고출력 음악을 추구하는 젊은 헤비메탈 음악인이 모여들었던 낙원동처럼 당대에 이미 특정된 음악적 장소를 탐색한 경우도 있지만, 저자들이 새롭게 지역성을 발굴해 의미화한 사례도 있다. 방배동 인근에서 느슨하게 끼리끼리 음악하던 이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재해석한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사자가 “지금 생각해 보니 문화가 있기는 있었다”(647면)며 오히려 성찰적 회고를 한 경우가 그것이다. 후자의 발견은 장소성을 탐색하며 한국 대중음악 역사 속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복원한, 말 그대로 ‘고고학’적 시도라 하겠다.

서울의 몇몇 특징적 장소와 현대 한국 대중음악의 분화를 짚는 이같은 시도는 『1980』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신현준이 논문과 보고서, 단행본에서 이미 주장해온 내용이기도 하다. 다만 이 책은 대중서를 표방하고 있기에 장소와 음악실천 사이의 관계가 정교한 이론적 검토보다 저자들이 경험한 혹은 인터뷰 대상자들이 밝힌 이야기 속에서 느슨하게 연결되는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 책이 더 많은 독자, 연구자의 손에 쥐여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평자는 저자들이 선택한 사례와 이야기 중심의 전개 방식에 매우 동의하는 편이다. 저자들 스스로 인정하는 바와 같이 ‘한국 팝’을 내세우면서도 소수의 예외적 사례를 제외하면 서울이라는 한정된 공간, 그것도 몇몇 장소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한계점이 크다는 사실에도 동의한다. 물론 ‘서울공화국’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한국사회의 서울 중심성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서울이 가진 문화·사회·정치·경제·예술 권력이 1970년대 이래 지금까지 내내 확대·강화되고 있음은 연구자료를 들추지 않아도 충분히 감지되는 사실이다.

저술 과정의 부침 때문에 인터뷰 시기가 들쭉날쭉하지만, 덕분에 세상을 떠난 이가 구술한 기억과 평가를 들을 기회가 되는 점도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19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 전자악기·장비의 도입과 로컬 변용 및 보편화의 과정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서술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미 대중음악사에서 전자악기는 음악실험 시료가 되기도 했지만, 때론 인건비를 아낄 수 있는 저렴함 때문에 선호되던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 경우도 있고, 힙합의 사례처럼 샘플링 소스의 선택이 정체성 정치의 실천 요소로 전유된 경우도 있다. 같은 전자악기·장비라도 한국 대중음악의 일부가 되기까지는 영미의 그것과 다른 과정 및 의미화를 경험한다. 한마디로 로컬적 변용의 대상인 것이다. 또 전자악기와 디지털 녹음과 음원 유통은 조용필에서 서태지, 김광석에서 가리온에 이르는 음악인의 작업 환경, 태도, 나아가 상상력까지 변모시켰다. 이는 특정 음악인 개인의 실력이 발휘된 결과인 동시에 디지털과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기술적 환경 변화가 음악인과 전자악기를 다른 판의 네트워크로 재구성한 상황적 결과물이기도 하다. 저자들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장소와 대중음악을 엮는 책의 구성에서는 이러한 내용까지 파고들기 어려웠으리라 짐작한다.

『한국 팝의 고고학』은 파편적으로 존재하던 현대 한국 대중음악의 형성사를 방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로 엮어낸 묵직한 책이다. 한국 대중음악 연구가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의 구축과 공개는 물론, 여러 이론적 배경으로 세분화된 장르와 실천의 입장에서 이를 기술하는 더 많은 저서와 연구가 등장해야 한다. 『한국 팝의 고고학』이 정전이 아니라 여러 저서 중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한국 대중음악 연구가 자리 잡았다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