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심사평

 

 

 

올해 창비신인시인상에는 총 1057명의 응모자가 원고를 보내왔다. 상자에 빼곡히 쌓인 원고 더미를 바라보며 나무를 심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황폐한 땅을 경작해 저마다의 속도와 리듬으로 심고 기른 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세계.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긴장과 설렘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4명의 심사위원들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그 숲을 거닐었고, 최종적으로 응모자 4명의 작품을 두고 긴 대화를 나눴다.

「접속」 외 4편(민경원)의 시는 언어 운용이 자연스럽고 세련되었다는 장점이 있었다. 들리지 않는, 사라지고 깨지는 미묘한 파열의 조짐들을 알아채는 시적 기민함도 엿보였다. 다만 한편의 시에서 소화하기에는 다소 커다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 추상적 세계를 설득시키려다보니 문장들이 압축되지 못하고 설명적으로 흘러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바깥의 시’도 좋지만 보다 가까운 안쪽, 발붙이고 선 현실에 대한 탐색을 조금만 더 이어가보는 것은 어떨까. “너무 지루”(「바깥의 시」)한 삶이더라도, 시적 문장 안에서 그 지루함의 구체성에 기반한 통찰을 강화한다면 새로운 시적 도약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한다.

「먼지로부터」 외 9편(장민기)의 몇몇 작품은 서사와 이미지를 조화롭게 엮어내는 역량이 돋보였다. 「변성기」 「러닝」은 감각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시적 정념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몰입감 있게 시를 전개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명랑」처럼 화자가 고백적 발화를 빌려 내면의 토로를 반복하거나 시적 정념을 설명하려는 진술들이 개입되어 긴장감을 잃은 경우도 없지 않다. 한편 ‘신’ ‘죄’ ‘죽음’ ‘영원’ 등의 묵직하고 추상적인 시어들이 시를 쓰는 이의 감각적 경험으로 육화되지 않은 채 등장하면 상투성이 느껴지고 시의 흐름은 탄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시 전반에서 이와 같은 장단점이 선명하게 나타나 기대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주었는데, 이는 응모자의 시 쓰기가 미학적으로 도약하는 지점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하는 충분한 근거로도 읽혔기에 응모자의 전진을 응원하게 했다.

「템플 스테이」 외 4편(공지혜)은 당선작과 나란히 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한 작품이다. 언어감각이 세련되고 안정적이라는 점, 화자의 어조가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들린다는 점, 응모작 5편이 편차 없이 고른 수준을 보여준다는 점을 장점으로 주목했다. 특히 「메리노는 양의 이름」에서 보여준 우아하고 세련된 시적 전개와 참신한 발상은 응모자가 탄탄히 쌓아온 습작시간을 짐작하게 했다. 다만 시의 마지막 행이 대체로 평이하게 끝난다는 점, 현실에 징 박듯 머무르는 결론이 아쉽다는 지적이 있었다. 일부 시에서 표현한 성장통이나 사춘기적 감성, 안정적이지만 평이한 서술이 기성시에서 읽어온 감각이라는 점도 미흡함으로 남았다. 「메리노는 양의 이름」에서 보여준 예측 불가능한 언술과 리듬, 아슬아슬한 시적 걸음걸이를 살려 새로운 감각으로 충만한 시편들을 더 많이 써낸다면 곧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김상희의 「말하는 희망」 외 4편의 작품은 처음 읽었을 때는 언뜻 거칠게 느껴졌지만 여러번 곱씹어 읽을 때 비로소 그 속에 담긴 시적 에너지와 함께 시가 거느린 넓은 세계가 오롯이 드러났다. 담백하고 힘있는 문장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긴장감을 만들어냈고, 단단한 문장들의 역시 단단한 연결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그 세계 속의 개인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시적 화자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과 깊이 연루되어 있으면서도, 화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균열까지 이처럼 정교하게 한편의 시로 완성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면모를 표제작뿐 아니라 함께 응모한 작품에서 두루 확인할 수 있어, 그것이 고유하고 신뢰할 만한 개성이라는 데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더구나 개성을 마음껏 뽐내는 대신에 낮고 편안한 목소리로 오히려 덜 말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읽는 이가 시에 바짝 다가서도록 하는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단지 기발한 발상이나 감각적인 표현이 아니라 한편의 시로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이러한 시를 찾기 힘들 뿐 아니라 이러한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예사롭지 않은 개성과 매력을 높이 사기로 했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말하는 희망」 외 4편을 제22회 창비신인시인상 수상작으로 정한다. 당선자께서는 드물고 귀한 개성을 잘 간직하고 아껴주시길 바란다.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인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쁘다.

박연준 안희연 유병록 장은영

 

 

 

수상소감

 

 

197_545

김상희 金相希

2001년 충남 부여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재학.

 

 

 

외치는 마음

 

밤이면 청포도 알사탕을 입에 물고 벽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렸을 적의 이야기입니다. 덕분에 이는 다 썩었지만, 그렇게 슬픔을 견뎠습니다. 삶과 내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둥둥 떠다니는, 언제나 그런 기분에 휩싸여야 했던 저를 위로했던 건 혀끝에서 느껴지는 청포도 사탕의 단맛과 제 눈 바로 앞에서 너는 이 집보다 훨씬 더 작은 존재이니 그렇게 슬퍼할 것 없다고 말하는 견고한 벽뿐이었습니다.

 

평화로운 순간에도 소리를 지르며 울고 싶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늘 어쩔 줄 모르겠는 채로 잠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를 만나고 저는, 처음 보는 커다랗고 흰 손이 저를 위로하고 삶을 향해 밀어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너무 밉고 나조차도 참을 수 없어질 때. 그런 마음을 받아들이고 또 용서하는 방법을 시를 통해 배웠습니다. “시가 나를 높이 던졌다”라는 제 시의 구절처럼 삶을 향해 던져지겠습니다.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저와 제 삶이 시를 통해 마음껏 섞여 들어가겠습니다.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직시하며 시를 쓰겠습니다. 커다랗고 흰 손을 꽉 붙들 수 있도록 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고양예고 선생님들과 이승희 선생님, 중앙대 문창과 교수님들과 이승하, 이수명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나의 기쁨과 슬픔을 마음껏 안아주는 채연이와 소담이에게 사랑을 보냅니다. 늘 따뜻한 몸으로 무한한 사랑을 주는 고양이 나기에게 애정을 보냅니다. 많이 마른 몸으로 나의 소식을 기다리는 할머니와 무엇으로든 존재하며 나를 지켜주는 할아버지에게 인사하고 싶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그리고 연지에게.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서로가 무섭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그 마음을 생각하며 단단한 일상을 보내자. 앞으로도 고맙고 미안한 일뿐일 거야. 언제나 그렇듯 내일은 더 기쁜 것을 만지러 가자.

 

나무의 잎이 무성해졌습니다. 그것이 어느 때보다 감격스럽고 아름다운 때입니다.

쓰고, 읽겠습니다. 잎과 같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