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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해찬 『이해찬 회고록』, 돌베개 2022

이해찬에 대한 오해와 이해

 

 

정상호 鄭相鎬

서원대 사회교육과 교수, 정치학자 shojeong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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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회고록』을 읽으면서 이해찬만큼 많은 오해와 야박한 이해를 받은 정치인도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그러한 정치인의 맨 앞줄에는 고(故) 김대중과 노무현이 있지만, 그들은 대통령으로서의 영예, 그리고 유권자의 애정과 지지를 그 보상으로 받았다). 재야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평화민주당에 영입되어 초선 의원(1988)이 된 이래, 반대 당이나 보수진영에서는 줄곧 그를 ‘버럭 총리’ ‘상왕’ ‘원조 독설가’ 심지어는 ‘저승사자’로까지 폄훼해왔다. 진보개혁진영에서는 그의 개인적 능력에 초점을 두어 ‘전략가’ ‘기획통’ ‘킹 메이커’ 등 긍정적인 평가를 해왔지만 언제나 그만큼의 신뢰와 존경이 담긴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해찬에 대한 나의 평가 역시 그 중간 어딘가에 있었다. 평자는 정치학자이자 노무현·문재인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을 역임했지만 묘하게도 그와는 일면식도 없다. 그럼에도 아주 오랜만에 정치인의 회고록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동안의 정치인 회고록은 세상을 뒤흔들 비사(祕史)를 앞세우거나(박철언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2005) 엄청난 사회적 논쟁을 불러 금서 처분이라는 법원 결정을 낳았는가 하면(『전두환 회고록』, 초판 2017), 한국현대사를 응축한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전기도 있었다(『김대중 자서전』, 2010). 『이해찬 회고록』에는 이런 극적인 요소나 정치적 파급력은 없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덕목 두가지를 설득력있게 전한다. 덕분에 평자는 뒤늦게나마 오랜 편견을 벗고 그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는 그가 그야말로 ‘민주적 관료 통제’의 능력을 갖춘 유일무이한 선출직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이다. 87년 민주화 이후로만 한정해도 다선 의원과 장관을 거쳐 총리를 지낸 이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안정과 질서를 중시하는 보수주의를 내면화하고 위계적 단일 조직을 갖춘 무소불위의 기술관료들(technocrats)을 민주적으로 통제해 나름의 정책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은 압도적이다. 그는 초선 때부터 회계사를 초빙해 정부 예산의 구조와 체계를 밤새워 공부했고(234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6년의 경험으로 교육부장관 시절에는 새로운 예산할당제(top-down ceiling)를 도입했다(328면). 재정경제부나 기획재정부 관료와 논쟁해도 밀리지 않을 논리를 갖춘 민주진영의 유일한 인물이었기에 대통령들의 남다른 신뢰를 받을 수 있었고(452면), 공무원들한테는 ‘저승사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282면).

평자는 지난 민주정부 세번의 공통된 한계와 부동산정책 등 분야별 실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관료에 의한 정부의 포획이라고 본다. 세 정부 모두 출범 당시에는 정치인이나 민간전문가 출신의 장관이 다수였으나 정권 말미에는 관료가 압도하는 공통점을 보였다. 회고록을 읽는 내내, 이해찬 같은 개혁성과 능력을 겸비한 인물이 경제 분야에 단 한명만 있었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또 하나의 미덕은 그가 정치의 목표로 ‘민주주의 완성’과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을 분명하게 제시했다는 점이다(8면). 반(反)독재 민주화를 위한 그의 희생과 헌신은 존경하지만, 민주주의 완성은 아테네 이래 공동체를 향한 국민·시민의 보편의무라는 점에서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회고록의 면면에 흐르는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의 비전과 노력(시스템 공천을 통한 당의 현대화)은 그를 좀더 깊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정당을 ‘게임의 장이 아니라 제도’로 본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을 기본으로 정당, 노조, 관료, 시민사회 등의 여러 기둥으로 구성되는데, 그중에서 정당은 가장 큰 기둥이다(447면). 대선 후보를 결정해놓고 선거 막판에 어깃장을 놓아 흔드는 모습이나 정당 정책과 후보 정책의 빈번한 어긋남은 민주당계 정당의 고질병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정부의 무능과 혼란의 기저에도 사실 정당정치, 즉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배척하는 대통령의 오만과 무지가 깔려 있다.

사람들은 이해찬을 ‘선거의 귀재’라고 부른다. 실제로 그는 13대부터 20대까지 출마한 일곱번의 총선(18대 총선에는 불출마)에서 모두 승리함으로써, 민주화 이후 정계에 진출한 정치인 중 정몽준과 함께 최초의 7선 의원으로 기록된다. 그의 당선이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수도권(관악구 5선)과 충청권(세종 2선)에서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게다가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를 맡았던 21대 총선에서도 압승(180석)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일곱번의 선거에서 그의 소속 당명은—당원과 지지자들은 같았으나—매번 달랐다(545면). 그가 정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촛불시위는 한국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독창적이고 자랑스러운 역사다. 그렇지만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다”(173쪽)는 그의 말마따나 광장과 거리의 정치만으로는 불안정과 갈등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수 없다. 검찰이든 기재부이든 ‘영혼 없는 관료’를 설득하고 선도해 평화의 한반도와 복지국가의 길로 나아가는 항구적 힘은 헌법과 정치, 즉 헌정체제이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강력한 추진체이자 기둥은 결단력(virtu)과 선견지명(fortuna)을 갖춘 현대의 군주, 즉 ‘민주적 국민정당’이다.

이해찬은 공인으로서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엄격한 삶을 살았다. 그 덕에 세명의 대통령을 만들어낸 야당의 일등 참모인 그가 엄혹한 시기에도 단 한번도 부패와 비리로 옥살이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가 정치인의 최고 덕목으로 뽑은 ‘공인의식’(public mind)의 엄정함이 당내 경선에서의 연이은 패배(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원내총무 경선, 2001년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2004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 경선)를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의 성공과 실패는 공적 엄정함과 사적 관대함을 동시에 허용하지 않았던 민주적 이행기의 시대적 한계일 수 있다.

한편 그가 키워드 삼았던 ‘민주정권의 20년 집권’이 무산되고, 보수세력조차 회의와 불안감에 떨게 만든 최악의 정권교체를 가져온 지난 제20대 대선과정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결핍은 아쉽다. 아울러 그의 경륜과 역량을 고려할 때 상대 당과 반대편 지지자를 아우르는, 나아가 정치적 양극화를 넘어서는 국민통합을 향한 실천과 구상에는 다소 인색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직업 정치인을 꿈꾸는 이들과 교양시민들에게 이 회고록은 필독서로서의 가치가 있다. 이 책에는 많은 전기나 평전의 의례적인 공통점, 즉 공칠과삼(功七過三)의 자기 과시가 없어 읽는 내내 평정심을 유지하며 단박에 돌파할 수 있다. 독자들은 책을 덮을 때 지금 당장 한국정치에 없는, 그래서 더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문재인도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이 얻을 수 있었던 뛰어난 지도자이자 역사적 자산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지도자만으로는 성공한 정부의 역사를 이어갈 수 없다. 각각의 국정 분야를 담당할 ‘새로운 이해찬’이 필요하며, 그러한 인적 자산을 키워낼 텃밭은 시민의 이해와 염원을 조직화한 민주적 국민정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