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독자의 목소리

 

 

문학이라는 디딤돌

▶ 이태원참사를 애도하는 플래카드 아래 지자체가 걸어둔 야간 노래교실 참여신청 안내를 보고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야간 사교모임까지 지자체가 나서서 모집하고 있는데 이태원참사의 진상규명과 피해자의 회복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현 정부의 민낯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능력함을 증명하는 듯한 정치상황을 보며 답답하지만, 외면이라는 비겁한 선택을 하기보다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참된 교육과 돌봄이라는 점을 되새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공동체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위태로울수록 결속해야 하는 이유와 그 힘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 알기 위해.

겨울호 특집에서는 당면한 다양한 위기들에 대해 논하고, 문학이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짚었다. 문학 특집을 읽을 때면 늘 새로운 시각을 접하는 기분이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문학이라는 디딤돌을 밟아가면서 기후위기와 자본주의체제 등 거시적인 문제의 이면을 두루 볼 수 있었다. 실증과 연구에 기반하여 구체적인 수치를 통해 위험성을 경고하는 과학도 설득력 있지만, 특집 글에서 인용된 시와 소설의 구절들을 읽으며 문학만이 가진 선명한 호소력을 느낄 수 있었다. 문학을 읽고 조금씩 움트는 이 마음이 큰 변화를 도모하기 위한 불씨일 것이다. 이처럼 문학이란 모든 사회적 변화나 문제의식을 대변하는 매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동양철학 연구자 김용휘의 「문명전환기의 감각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어떤 삶의 방식과 태도를 지향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볼 수 있어 의미있었다. 대전환이 필요한 지금, 익숙한 사고방식을 떠나 자연과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해보자고 다짐해본다. 설령 당장 달라지는 게 없다 해도 더 높은 가치를 향해 ‘구르기’를 멈추지 않으면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지윤 angielee1221@gmail.com

 

‘바깥’에 대한 한국문학의 상상력

▶ 클럽 창작과비평 활동은 처음이라 기대하며 받아든 겨울호는 특집부터 눈길을 끌었다. 지금 우리가 여전히 문학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황정아와 김미정의 글은 그 대답을 찾기 위한 실마리를 보여주었다. 팬데믹을 비롯한 여러 위기로 이제는 개인적인 정체성보다 “‘전체’ 또는 ‘총체’를 향한 인지감수성의 필요성”(황정아)을 바탕으로 거대서사를 탐구하는 경향이 발현된다는 지적에 적극 공감했다. 문학은 개인을 통해 세계를 조망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문학작품을 통해 나와 너, 우리와 세계 그리고 그 바깥까지 사유할 수 있다. 문학이 오늘날 자본주의체제에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대안의 실마리를 상상하고 사유한다면 분명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자본주의 ‘바깥’에 대해 한국문학이 어떤 상상력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가장 마음에 남았던 시는 이문재 시인의 작품이었다. 두편의 시의 공통점은 ‘죽음’과 ‘휴대전화’일 것이다. 휴대전화는 한 사람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물건일 텐데 주인이 죽은 이후의 휴대전화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죽은 이의 번호를 “선뜻 지우지 못하”(「죽은 자의 전화번호」)거나 고인이 된 어머니의 전화기에 “문자메시지가 와 있”(「엄마 전화기」)는 걸 보기도 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시인의 깊은 통찰력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은 최근의 경향을 여실히 반영하듯 김이정 박서련 이서수 이재은의 여성서사가 눈에 띄었다. 그중 이서수의 「춤은 영원하다」는 할머니부터 나에게까지 흐르는 춤의 역사를 짚으며, 춤을 통해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상 깊게 형상화되어 재밌게 읽었다. 앞으로도 더욱 재기발랄한 모녀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

고유준 yujun917@naver.com

 

우리의 미래를 바꾸는 씨앗 한알

▶ 양경언의 특집 글에서 만난 신동엽은 현실의 사안들을 체제 차원에서 이해하고 지구적 과제와 삶의 과제를 통합하는 데 유효한 경로를 마련해주었다. 신동엽은 현대문명이 분업에 기초함으로써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진 전문 기능자들이 서로 경쟁하게 되었고, 문학·예술·과학·정치 등 각 영역이 구심력을 상실한 채 허공에 흩어져 있는 상황을 지적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전경인(全耕人) 또는 시인의 마음가짐을 갖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의 시인정신론은 기후-생태 위기에 놓인 현 시대의 우리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조그만 씨앗에서 온 생명의 박동을 감지하는 시인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자는 제안을 실천하기 쉽지 않은 요즘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도 모르고 있던 우리의 가능성을 깨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씨알’은 우리가 그를 어떻게 돌보는지에 따라 우주를 펼쳐낼 수” 있다는 말을 되새겨본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다른 시대를 겪어온 연구자 넷이 모여 나눈 대학개혁과 페미니즘에 관한 대화도 잘 읽었다. 특히 대학 내 성평등기구가 왜 아직도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지 점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문제의식에 공감이 갔다. 단순 제도화를 넘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지 실질적인 인식 공유와 토론이 필요하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현재 대학은 아주 촘촘한 신분사회다. 페미니즘에서 강조해온 연결성과 공감능력,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책무의 분배 같은 것들이 대학에서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어 있다. 대화에서 짧게 언급되었듯 여성 교수의 수가 객관적으로 너무 적다는 것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그래도 학교의 경계를 넘어 여성 교수들의 연대, 학생들의 참여로 성폭력에 적극적이고도 빠른 대응을 한 사례도 있었다고 해 고무적이다. 학교 안의 페미니스트들이 대학을 향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느껴진다. 대학과 페미니즘이 상생의 선순환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김영완 kpoly@naver.com

 

유가족들에게 다시 일상이 찾아오기를

▶ 건강하게 눈뜨고 일어나 출근하고 공부하고 웃을 때마다 일상을 누리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이태원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생각나 뜻 모를 슬픔과 미안함을 함께 느낀다. 정부 차원의 대책들은 여러모로 미진해 보이는데 이런 때일수록 주변의 이웃들과 국민들이 나서서 여론을 구성하고, 공동체 차원에서 유가족들의 슬픔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가족들이 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김봉준의 산문은 뜻밖의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내가 사는 서산에는 ‘박첨지놀이’라는 전통 놀이극이 있다. 바가지로 만든 탈을 쓰고 양반사회의 모순과 남성중심 사고방식을 비판하며 종교인과 세속인의 갈등 등을 해학적으로 풀어내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박첨지놀이가 던지는 메시지와 의미도 물론 중요하지만, 김봉준이 마당굿을 대표하는 특징을 ‘마당’과 ‘신명’이라고 했듯 즐거움을 바탕으로 공동체 문화를 구성하는 힘이 마당문화를 이해하는 핵심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러시아가 2022년 연말 이후 잠잠했던 핵전쟁위기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문장렬이 논단에서 지적한 대로 한반도도 여러모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북한은 핵무기 대량 제조와 대남 타격 추진전략을 발표한데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할 시 최고 천배 응징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불확실성이 점차 커져만 가고 있다. ‘전면 핵전쟁’ 시나리오가 가상의 것만이 아닌 듯 느껴진다. 서울에 핵공격이 가해지는 순간 우리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정부가 한반도 평화를 염두에 두고 신중한 대북정책을 고민했으면 한다.

조하나 dus-gk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