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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윤고은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1인용 식탁』 『알로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장편소설 『무중력증후군』 『밤의 여행자들』 『해적판을 타고』 『도서관 런웨이』 등이 있음.

shellmaker@naver.com

 

 

 

ㅇㅊㅎ

 

 

뛰는 무리 중 경주에 온 사람은 은우 하나였다. 은우는 가장 늦게 시작했으나 가장 오래 뛰는 사람이었다. 뛰는 무리에 들어갈 때 목표를 ‘마라톤 풀코스 도전’이라고 적긴 했지만 그게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애초에 러너의 마음으로 뛰는 무리에 들어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거리두기가 유효했을 때 회사에서는 최대 여섯명까지 팀을 짜서 회식비를 받아가도록 했고, 팀 구성은 직원들의 자율에 맡겼다. 무리에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섬세하지 못한 처사라는 말도 돌았다. 은우 역시 어느 여섯명에도 들어가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솔직히 은우는 그게 더 좋았다. 무리 안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엔 3만원어치 상품권으로 제 몫을 받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상품권을 선호했고 은우도 그랬다. 시작은 그 상품권 한장이었다. 회사의 제휴 쇼핑몰에서 쓸 수 있는 것으로,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다. 돈을 더 추가하지 않아도 되는 상품은 식빵 아니면 달리기대회 참가권뿐이었다.

식빵이 빠르게 소진되었기 때문에 결국 은우는 서울 도심 10킬로미터 달리기대회를 선택했다. 며칠 후 은우 앞으로 기념 티셔츠와 양말, 기록용 칩이 달린 배번표가 배달됐다. 처음에는 무슨 달리기대회를 참가비까지 주고 나가나 싶어 시큰둥했던 은우였지만 막상 자기 몫의 배번표를 받자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러닝화까지 한켤레 주문하고는 대회 3주 전부터 매일 저녁 2킬로미터씩 달리기로 했다. 트레드밀로는 느낌이 나지 않아서 거리로 나가 뛰기 시작했고, 조금씩 탄력이 붙어서 나중엔 한번에 5킬로미터 정도는 찍고 돌아와야 개운했다.

대회 당일 아침 6시 반, 은우는 집결 장소인 여의도광장으로 갔다. 단체로 서서 준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은우의 오른쪽, 왼쪽, 앞뒤로 끝도 없이 있었다. 7시 반이 되자 모두가 화사한 함성을 내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이 치열한 서울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달리기 위해 같은 티셔츠를 입고 모였다는 사실, 이 명랑한 티셔츠의 물결 속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무리 속에서 익숙한 사람도 발견했다. 바로 앞 책상을 쓰는 입사 동기 최였다.

최와 은우는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앞으로 이런 대회가 더 많아질 거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최는 냉동되었던 세계가 다시 녹았을 때 자신의 모습이 어떨 것인가, 해동되고 보니 너무 쪼그라들어 볼품없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들 모두가 뛰고 있다고 했다. 최는 “은우씨도 잘 뛰네” 하고서 봄부터 가을까지는 주말마다 대회가 있으니 원하면 가입하라고 했다. 어디에 가입하라는 말이냐며 모른 척했지만 은우는 사실 최가 말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뛰는 무리’는 은우가 거절할 수 있는 제안이 아니었다. 은우는 결국 최가 알려준 앱을 깔고 ‘뛰는 무리’에 가입했다.

그 안에 있는 여섯명 모두 은우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15년 근속휴가를 받은 게 지난해였다.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다보니 웬만한 사람들과는 다 안면이 있었다. 여섯명 중에는 함께 일하는 동안 은우와 날을 세웠던 옛 팀장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뛰는 무리 안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다가왔다. 한때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안 맞았던 그와 자신이 이제 와서 달리기 기록을 공유하며 싱거운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낯설었다.

팀장은 모든 사람을 러닝화 유형 몇가지로 분류해냈는데 그에 따르면 최는 나이키의 베이퍼플라이2였다. “다른 거 신다가 그렇게 카본 들어간 걸 신으면 기록이 20초 이상 단축된단 말이지. 그래서 한때 기술 도핑 논란이 있을 정도였잖아? 어느 대회에서는 금지시킬 정도로. 그런데 한때는 너무 튀었던 그게 지금은 기본이 됐단 얘기야. 이제 러닝화 장사하면서 카본을 안 쓸 수가 없지. 최 봐봐. 처음엔 뭐 저런 친구가 다 있나 싶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 보면 다 십년 전 최스러워.”

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뭐냐며 팀장에게 꼰대주의보를 날렸다. 최와 팀장 사이는 꽤 편해 보였다. 저들이 원래 저렇게 친했나? 꼭 그랬던 건 아닌데. 이 무리 안에서는 모두 붙임성 좋은 ‘부캐’를 장착한 듯했다.

“은우는 발 사이즈 몇? 245? 우리들 중에서 제일 작은 사이즈 신을 거 아니야. 그런데 근성 봐, 은우가 대장이야. 은우는 언더아머의 스톰 시리즈라든가 아디다스의 울트라부스트22 고어텍스, 이런 타입이라고 봐. 나이키의 윈플로9쉴드. 이런 것도 있지.”

찾아보니 그건 모두 악천후용 러닝화들이었다. 쿠션감이 적고 묵직하며 겉에 구름, 비, 눈, 번개가 그려져 있는. 악천후일 때는 적절하지만 그렇지 않은 보통 날에는 부담스러운. 팀장의 말에 뼈가 있는 걸까. 어차피 이제 그의 팀 소속도 아니니 은우도 상관없었다. 그냥 동네 아저씨지 뭐. 그러나 그가 차기 실장 후보라는 소문은 여전히 있었다.

“닳아 없어질 수도 없겠네요.” 은우의 말에 팀장은 빙그레 웃으며 “바로 그거지!” 했다. “그런 신발들은 마모가 잘 안 된단 말이야. 밑창이 아주 두껍거든. 악천후용 러닝화는 반드시 하나 필요해. 궂은 날이라고 안 뛸 순 없잖아?”

팀장은 몇 미터 달릴 때마다 소액이 적립되는 앱의 재미에 뛰기 시작한 게 벌써 오년째라고 했다. 최는 코로나19 이후 커졌던 마스크에 대한 관심을 최근 러닝 장비 쪽으로 옮겼다. 마치 회사가 아닌 다른 우주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뛰는 무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모두의 달리기를 챙겼다. 은우가 조금 무리해서 뛴 후 다리 통증을 호소했을 때 최는 장경인대증후군일 거라며 은우에게 액체형 파스를 건네주며 말했다. “휴식이 답이야. 그래도 통증은 안고 가야 해. 어차피 그 통증은 마라토너의 숙명이니까.”

뛰는 무리 안에서 최의 닉네임이 바로 장경인대증후군이었다. 펀런, 서브3, 생계형러너, MBTI러닝화, 오늘도우중런…… 그들 사이에서 은우의 닉네임은 ‘얼러너’였다. 얼떨결에 러너,라는 뜻이었다.

분기별로 한번은 달리기대회에 참가하는 삶, 적어도 생에 한번은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목표로 두는 삶.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은우도 몇차례 단거리대회에 더 나갔다. 15킬로미터를 뛰었을 때 대상포진을 앓았고 무리하면 안 된다는 걸 톡톡히 배웠으나 어떤 거대한 흐름에 밀려서 두달 후 하프마라톤에 참가했고 얼떨결에 완주했다. 무리 중 하나는 하프마라톤까지 완주하고 나서 굳이 ‘얼떨결에’라는 말을 왜 붙이냐고 했지만, 은우 입장에서는 정말 얼떨결이었다.

이런 식의 줄거리가 은우의 삶엔 흔했다. 휴가를 갔다가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산악스키대회의 출발선에 서게 된다든지, 배드민턴장에 앉아 있다가 모르는 사람의 대타로 내기 경기에 나가게 된다든지. 산악스키대회에서는 뒤에서 2등을 했고, 배드민턴장에서는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결과가 늘 백발백중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은우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었고 그걸 알아보는 이들에게 은우는 핀셋으로 골라낸 듯 눈에 띄었다. 실내 암벽등반장에 있으면 모르는 사람이 코치인 줄 알고 다가와 은우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은우는 뛰는 무리 안에서도 자연스레 러닝기록 누적 1위를 했다. 매일 뛰는 양이 가장 많은 사람, 무엇보다도 궂은 날씨에도 뛰는 사람, 그게 은우였다.

 

경주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의 이름은 하쉬마라톤대회였다. 4월 첫 주, 이 날짜에 열리는 마라톤대회가 꽤 많았기에 뛰는 무리는 세 팀으로 흩어졌다. 하쉬마라톤대회에 신청한 사람은 은우를 포함해서 두명이었는데 다른 한명은 급작스러운 일로 오지 못했다. 팀장이었다. 팀장은 “내 몫까지 얼떨결에 완주해요!”라며 은우를 응원했다. 모두가 완주를 말했지만 사실 은우는 절반 이상만 뛰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심리적 피니시라인은 30킬로미터, 그 이후는 덤이었다.

덤은 예상보다 힘이 셌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자 조금 더 뛸 수 있었다. 그러나 31킬로미터를 넘어갔을 때 갑자기 허벅지 한쪽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오더니 이번에는 반대쪽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이 뒤틀렸다. 1킬로미터에 5분대였던 기록이 8분 후반대를 넘어섰다. 포기가 아니라 완료라고 생각하고 그만 뛰고 싶었지만, 급수대의 사람들이 보내주던 응원과 환호가 은우를 조금 더 앞으로 앞으로 밀었다. 멈추는 법을 몰라 어찌할 수 없는 사람처럼 은우는 꾸역꾸역 전진했다. 그렇게 35킬로미터를 통과하자 이제 온몸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몸 안에 숨겨두었던 탬버린이 일제히 은색 금속판을 흔들어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오른쪽 러닝화로 시선을 떨구게 되었는데, 발등을 덮는 설포가 어쩐지 평소보다 더 길어진 듯했다. 은우는 결국 멈춰 서서 수상한 설포를 손으로 잡았다. 그것이 정말 누군가의 혀처럼, 끊임없이 낼름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은우는 발볼을 최대한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40킬로미터 급수대가 목전에 있었다.

하쉬마라톤대회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역사도 길지 않았지만 지난해에 벌어진 어이없는 사고로 인해 갑자기 유명해졌다. 40킬로미터 지점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진행요원들이 일제히 자리를 뜨는 바람에 코스 안내에 예기치 않은 공백이 생겼고, 갈림길에서 오른쪽을 선택해야 할 러너 중 한명이 직진해버렸다. 뒤따라오던 러너 여섯명이 모두 그를 따라 직진했고, 그렇게 줄줄이 코스를 이탈하는 사례가 생겨났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행사 주최 측에서 부랴부랴 뚫린 지점을 막았으나 이미 코스 밖으로 빠져나간 여섯명은 모두 실격처리되었다. 맨 처음 한명은 자신의 궤도 이탈을 인지하고 다시 돌아와 뛰었기 때문에 실격처리는 피했지만 이미 우승 후보군에서 한참 멀어진 뒤였다.

진행요원들이 한꺼번에 자리를 비운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 빈자리를 채우려 했다. 그렇게 동원된 상상력 중 하나가 진행요원 매수설이었을 정도로 하쉬마라톤대회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쉬마라톤의 코스와 집값의 묘한 상관관계, 그러니까 지역의 부동산 이슈를 엮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은 약간 미신적인 데까지 흘러가서 사람들이 숫자를 주렁주렁 달고 뛸 때 그 에너지가 일종의 ‘집값 다지기’ 효과를 낸다는 말까지 돌았다. 게다가 미흡한 운영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주최 측에서 덧붙인 말, “그 어떤 마라톤에서도 코스 이탈자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대여섯명은 나옵니다. 인생도 그렇지 않습니까!” 때문에 이번 대회 역시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해냅니다!”가 이번 대회의 슬로건이었는데, 그 아래로 “반드시 대여섯명은 이탈합니다”가 따라붙은 채 돌아다녔다.

확실한 건 이번 대회 곳곳에서 코스 안내를 위해 노력한 흔적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모범택시, 경찰, 서포터즈, 안내판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갈림길에서 혼동이 없도록 배치했다. 러너들에게도 사전에 코스를 제대로 숙지해달라고 당부했는데, 그럼에도 8천명의 참가자 중 세명이 코스를 이탈했다. 그중 하나가 은우였다. 41킬로미터 지점에서 40킬로미터 지점에 이르는 은우의 궤적이 모르는 사람들의 휴대폰에 담겼다.

 

41킬로미터에서 40킬로미터 지점으로, 6047번 배번표를 단 러너가 뛰고 있다. 사람들의 휴대폰에 담기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6047번 러너는 40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할 때부터 뛰려는 것인지 멈추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아주 조금씩 앞으로 흘러가는 듯 보인다. 머뭇대다가 조금씩 속도를 늦추고 그러다 잠시 완전히 멈춰 서더니 돌연 방향을 바꾼다. 옆으로 가려다가 마치 발을 잘못 옮겨놓은 것처럼 얼떨결에 뒤를 본다. 그리고 뛰기 시작한다. 조금씩 속도를 높여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바로 뒤에서 달려오던 러너 한명이 앞 사람의 방향 전환을 보고 당황하는 듯하지만 그는 다행히 제 방향대로 흘러간다. 42.195킬로미터 지점까지 다다른 그의 기록은 5:47:04. 1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한 여자의 기록이 2:32:14였으니 그보다 대략 세시간 정도 뒤처진 셈이다. 여섯시간 안에 완주하지 않으면 기록은 무효처리가 된다.

41킬로미터 지점에서 역주행을 하기 시작한 러너를 안타까워하며 사람들이 외친다. 뒤로! 뒤로! 역주행이에요. 반대쪽으로! 그렇지만 뒤로 달리는 러너는 듣지 못한다. 41킬로미터에서 40킬로미터 지점으로, 역주행을 하면서 오히려 그의 달리기에 다시 속도가 붙는다.

 

철자는 조금 다르지만 하쉬마라톤은 가혹하다는 의미의 ‘harsh’로도 통했다. 그만큼 코스가 어지럽기로 유명한 대회였다. 역사도시 경주의 매력을 최대로 담아내면서 동시에 다양한 풍광과 경사도를 통해 참가자들의 체력적·심리적인 율동감까지 고양시킨다’는 게 대회 홍보물의 문구였는데, ‘경사도를 통해 참가자들의 체력적·심리적인 율동감까지 고갈시킨다’로 읽힐 만큼 업힐(up-hill) 구간이 잦았고 노면도 고르지 않았다. 경주 시내의 부동산 계급을 반영하는 지형도나 마찬가지라서 가혹한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교통통제가 가능한 구간들을 따져보면 사실 다른 도시에도 적용할 수 있는 주장이었다.

가혹에 대한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미정의 마음을 특히 끌어당긴 것은 하쌤을 통해 들은 말이었는데 완전히 수학 애호가의 관점이었다. 하쌤은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하쉬마라톤 코스는 범상치 않았다면서 해마다 이렇게 수학적으로 고민한 코스를 선보이니까 자연스럽게 수학 애호가들이 몰리는 거라고 했다.

“어머님, 이것 보세요. 진짜 이번 코스 익살맞아요.”

미정이 어떤 의미에서 익살을 느낀 거냐고 묻자 하쌤은 “오일러 아시죠? 천재 수학가. 우리 이름이 오일러수학이잖아요” 하고는 학부모 상담을 위해 펼쳐놓았던 아이패드 위에 무언가를 쓱쓱 그렸다. 오래전 미정이 교과서에서 얼핏 스쳐보았을 쾨니히스베르크 다리의 이미지였다. 당시 그 마을에 떠돌던 의문(모든 다리를 딱 한번씩만 건너면서 이동할 수 있는가?)을 오일러가 수학적으로 해결했던 사례가 있다. 한붓그리기 하듯 이동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설명한 것인데, 지금 이 마라톤 코스가 딱 그 쾨니히스베르크 다리를 닮았다는 거였다. 그래서 이번 코스가 ‘오일러런’으로 통한다고 하쌤은 말했다.

아이패드에 그려진 쾨니히스베르크 마을의 다리는 하쌤 뒤로 보이는 공부방의 로고와도 닮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오일러수학’은 집요한 케어로 소문이 난 곳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다. 상위권 아이들의 유명한 학원은 따로 있었는데, 그곳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거치는 중간 톨게이트 같은 곳 중 하나였다. 요금이 비싸지만 확실한 톨게이트, 그게 하쌤의 공부방 ‘오일러수학’이었다.

미정과 하쌤이 마라톤 얘기를 하려고 만난 건 아니었다. 미정은 오일러수학에 아이를 넣기 위해 줄을 섰지만 몇달째 실패하고 있었다. 티오가 나기만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이미 많았던 것이다. 그러다 최근에 분명히 자신보다 늦게 줄을 선 누군가가 오일러수학의 대기순번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목적지도 아니고 톨게이트인데 왜 이렇게 힘든가 싶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순돌과 친한 두명이 모두 오일러수학에 입성했으니까. 그래서 한번 더 하쌤을 찾아가 어떻게 자리가 없겠냐고 얘기하던 상황이었다. 그때 하쌤에게 도착한 문자메시지 한통으로 인해 대화에 조금 다른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하쌤은 이 아름다운 마라톤대회에 번호판 달고 출전하지 못한 게 아쉬워서 뒤늦게 서포터즈 신청을 했는데 방금 그조차 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투덜거렸다. 원하던 40킬로미터 지점 급수대로 배정을 받고도 결국 다른 일이 생겼다면서 이렇게 되면 기념 굿즈도 다 반납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학원이랑 아무 상관 없는 거 알면서도, 오일러런이라고 하니까 꼭 운명 같은 거예요. 가서 인증샷이라도 많이 찍어 오려고 했는데. 못 가요.” 그렇게 말하면서 하쌤은 아쉬워했다. 그 얘기를 한참 듣던 미정이 불쑥 이렇게 말해버렸다. “그거 신분증 확인해요? 아니면 제가 대신 갈까요?”

미정은 하쌤이 부담을 느낄까봐 주말에 경주에 갈 일이 있다고 둘러댔고 친정이 감포 쪽이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마라톤에 관심이 있었는데 직접 접할 기회가 없었다면서 친정 가는 길에 들러 서포터즈를 경험하고 인증샷도 찍어 오겠다고 했다. “세상에, 어머님. 아침 6시 반까지 집결인데요” 하던 하쌤은 “마라톤 직관의 꽃이라고 불리는 40킬로미터 지점 급수대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순돌이를 대기명단에 올려둘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고는 주섬주섬 서류를 꺼내 “어머님이 언제까지 일하신다고 하셨나요? 직장이요” 물었다.

“아, 저 아직 일 시작도 안 했는데요? 시작도 전에 그만둬야 할까요?”

“어머! 제가 지금 다 뒤섞였어요. 죄송합니다. 직장맘이 아니시니까 더 좋아요. 우리는 쌍방향으로 케어를 해야 하니까. 어머님께서 이렇게까지 애쓰시는데 얼마나 아이를 잘 챙겨주시겠어요. 제가 어떻게든 자리를 앞당겨보겠습니다.”

“네, 김순돌입니다!”

미정은 하쌤이 착오를 일으킬까봐 누차 아이의 이름을 댔다. 수업을 듣기 위해 한반 정원인 네명씩 팀을 꾸려 대기하는 이들만도 열몇 팀이라는 얘기를 들은 게 바로 20분 전이었는데, 갑자기 단축키가 신대륙처럼 솟아났다. 그 단축키를 떠받치는 아틀라스처럼, 미정은 지금 여기 40킬로미터 지점 급수대에 와 있는 것이다. 황리단길 끝자락에 놓인 파란 테이블 세개.

여기서 2킬로미터 정도를 더 달리면 황성공원과 시민운동장이 나온다. 긴 마라톤의 도착점. 안내책자 위에 그려진 마라톤 코스는 하쌤 말대로 이상한 수수께끼가 떠돌던 그 옛 마을을 닮았다. 미정은 지도를 들여다본다. 단순한 마라톤 코스라기보다는 와당의 문양처럼 보이는 복잡한 구조의 코스를.

테이블 위에 물컵을 펼쳐놓고 거기에 생수를 따라두는 일, 포카리스웨트나 파워에이드 같은 이온음료를 준비해두는 일, 마라토너들의 열을 식혀줄 물먹은 스펀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챙겨두는 일이 모두 서포터즈의 몫이다. 여섯시간 가까이 서 있는 동안 다섯명의 서포터즈들은 모두 그 일이 완벽히 손에 익어 달인이 되었다. 2리터 페트병 하나를 따면 종이컵 열두개 분량이 나온다. 종이컵을 쫙 깔고 거기에 슉슉슉슉 물을 따른다.

급수대야 5킬로미터 간격으로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일들이 펼쳐지는 장소가 바로 여기, 마라톤 코스의 마지막 급수대라고들 했다. 급수대 앞에서 보이는 병목현상도 여기 40킬로미터 급수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 앞을 통과하는 러너의 수는 첫 급수대에 비하면 확실히 적다.

하쌤에 따르면 여기 서서 마라톤을 직관할 때 느끼는 감동은 차곡차곡 차오르는 형태가 아니라 갑자기 부피가 확장되는 느낌에 가깝다. 하룻밤 사이에 만개하는 꽃처럼, 튀어 오르는 팝콘처럼, 때를 만난 원터치 텐트처럼 마음껏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라는데 어째서 하쌤이 그렇게 말했는지 미정은 알 것도 같다. 뛰는 사람들을 보면서 표정이 어찌 저리 밝을 수 있는지 미정은 내내 감탄한다. 몸을 끌고 오는 지경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까지도 표정만큼은 하나같이 똑같다. 환희로 가득하다.

42.195킬로미터를 세시간대로 주파하는 사람들은 가볍게 이 지점을 통과한다. 외관상으로는 여전히 몇 킬로미터를 더 뛸 수 있을 것처럼 가뿐해 보이는 이들도 있다. 빠른 사람들이 깃털처럼 가볍게, 바람처럼 시원하게 지나가고 나면 전혀 다른 계절이 온다. 걷는 이도 있고 급수대 앞에 주저앉거나 파스 없냐고 외치는 이도 있다. 의료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도 있다. “마지막 좀비인가 싶으면 저기 구름떼 같은 좀비들이 옵니다” 하고 다른 서포터즈가 속삭인다. 뛴다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휘청거리는 이들이 겨우 급수대 앞을 지나간다. 그러나 그들 역시 표정만큼은 천국에 있다. 경기 시작 다섯시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기다리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저만치서 한 사람이 뛰어올 때 그가 몰고 오는 공기가 미정의 세계에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모든 사람이 미정과 충돌할 것처럼 온다.

 

지금 미정의 시야에 들어오는 간판은 모두 열한개, 그 열한개 중에 중복되는 업종을 지우면 모두 여섯개다. 고개를 들고 조금 더 멀리 바라봐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이 거리에는 비슷한 리듬의 곡조가 흐른다. 십원빵, 인생네컷, 시골풍의 옷가게, 이렇게 세개의 음표와 변주된 한개의 쉼표가 합쳐져 하나의 마디를 이루고, 그 마디가 이 길 내내 반복된다. 십원빵, 인생네컷, 시골풍 옷가게, 카페, 다시 십원빵, 인생네컷, 시골풍 옷가게, 흑백사진관……

그걸 보고 있자니 미정의 머릿속에 순돌의 학교 숙제가 떠오른다. ‘우리 상가 꾸미기’ 그림 숙제였는데 그 ‘우리’의 범위가 약간의 논란을 빚었다. 아이는 2층 상가 가득 간판을 그려넣었는데, 친구 하나가 아이의 그림을 보고 거짓말이라고 했던 것이다. ‘무무버거’는 거기 없잖아, 그건 3단지에 있잖아. 그걸 왜 너가 그려, 너는 2단지에 살잖아. 아이는 무무버거를 좋아했기에 우리 상가에 넣어준 것인데, 3단지에 사는 아이 입장에서는 그게 침해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미정은 아이의 담임교사 반응이 궁금했다. 순돌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아파트 대단지가 몇개 들어서면서 함께 역사를 시작한 곳이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비슷비슷한 평면도 안에서 살았다. “이건 풍경화니? 아니면 상상화일까?” 선생님은 그렇게 물었다고 한다. 순돌이 잘 모르겠다고 하자 선생님은 이 그림은 현실적인 디테일이 살아 있어서 정말 2단지 상가의 안내도처럼 보일 정도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풍경화에 가까운 것이며 그렇다면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고 했다.

선생님이 2단지에 있는 걸 그리라고 했다기에 미정은 화가 치솟았다. “동네마다 뭐라도 있을 것 아니에요. 자기 동네 상권을 그려오면 되는 거예요”라는 담임의 답변이 무책임하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가만 보니 순돌의 담임교사는 아파트단지별로 묶어서 팀을 만들어주었는데 그 방식도 미정 입장에서는 여간 이상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그 학교에 1단지와 2단지와 3단지 아이들만 다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담임의 방식대로라면 지금 미정이 서 있는 이 일대에 사는 아이들은 십원빵 옆에 인생네컷, 그 옆에 시골풍 옷가게, 그리고 하나의 변주가 무한반복되는 풍경만을 그려야 하나? 이게 말이 되나? 그림에 무슨 가게든 그려넣는 게 뭐가 문제라고?

순돌의 담임교사와는 몇차례 긴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학교에서 “아침 안 먹은 사람?” 하고 물어봤을 때 순돌이 손을 들어버리는 바람에, 그리고 두번이나 그러는 바람에 전화통화를 하게 된 게 시작이었다. 아침에 갈빗살까지 구워줬건만 순돌이 왜 아침을 안 먹었다고 대답했는지가 한달 내내 미정 부부의 미스터리였다. 순돌은 자신이 이미 먹었으므로 안 먹은 가능성을 따라가면 세상이 어떻게 되나 보고 싶었다고 했다. 순돌의 일기장에 ‘친구네 집에 갔더니 친구가 소설을 쓰고 있었다.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가 등장하던 시점이었다. 순돌은 정작 소설을 쓰지는 않으면서 소설가의 시선을 먼저 장착해서 미정으로 하여금 여기저기 불필요한 수고를 하게 했다.

순돌의 일기장 곳곳에 선생님께 건네는 질문들이 무수히 있었다.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위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순돌이 ‘난 자괴인가 봐,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라고 적어두었을 때 그걸 본 미정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미정은 그 옆에 화살표를 그리고서 ‘자본주의 아니고 엄마가 낳았다♥’ 하고 적어두었는데, 이미 숙제 검사를 마친 일기인 줄 알았기에 해둔 표시였다. 그런데 일주일 후 자신의 메모에 담임교사가 보탠 말을 보게 됐다.

‘둘 다 맞는 말!’

이게 뭐지? 아니 누가 판단해달라고 했나? 미정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순돌뿐 아니라 자신까지도 첨삭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제 겨우 아홉살 아이가 자 괴 타령을 하면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게 어른의 몫 아닌가? 미정은 영 찜찜한 마음에 한동안 고민했지만 어떤 행동도 하지는 않았다. 담임교사와 통화할 생각만 해도 마음의 부담이 커졌던 것이다. 순돌의 담임교사는 은퇴를 앞둔 분이었고 미정보다도 나이가 열몇살이나 더 많았는데 미정이 초조하면 입술을 뜯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걸 굳이 미정에게 드러냈기 때문에 미정은 담임교사가 ‘주입식 공감’이란 말을 했을 때 입술에 손을 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두배로 힘들었다.

“주입식 공감이요?”

“아이들이 단단히 외웠더라고요. 슬픔은 반이 되고……”

미정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빨개진 것도 담임교사는 보았으리라.

미정은 몇달 전 순돌의 또래 아이들이 집에 놀러 왔던 날을 떠올렸다. 아이들이 말끝마다 ‘자괴’라는 표현을 달고 사는 걸 모르는 척 흘려듣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어느 참사에 대해 투덜거리는 걸 보고는 더 화를 참기가 힘들어졌다.

“너희들, 이리로 와봐.”

아홉살 아이들 네명이 미정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줌마가 알려줬지? 슬픔은 나누면 어떻게 된다고?”

아이들은 어리둥절해서 서로의 얼굴만을 끔뻑끔뻑 바라보았다. 두명은 계속 장난을 치기도 했다. 미정이 자신의 아이에게 물었다.

“순돌, 대답해봐. 엄마가 뭐랬지? 슬픔은 나누면 어떻게 되지?”

순돌이 다소 확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반이 돼.”

“기쁨은?”

“배가 돼.”

“너희들 다 들었지?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은 나누면 배로 늘어나는 거야. 그러니까 슬픈 사람들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줘야 하는 거야.”

그러자 한 아이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뭐라고 중얼중얼 설명했다. 긴 얘기였는데 요약하자면 실제 세상은 그렇지가 않더라는 거였다.

“이해가 안 될 땐 주입식만 한 게 없단다. 무조건 외워. 그럼 절반은 가.”

맨 마지막 말은 안 한 줄 알았는데 어느 틈엔가 그 말까지 한 모양이었다. 애들이 학교에 가서 미정의 말을 고스란히 전했고, “야, 슬픔은!”으로 시작해서 “절반은 가”로 끝내는 게 한동안 아이들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미정은 말했다. 자신이 틀린 말을 한 게 아니지 않느냐고,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준 게 뭐가 잘못된 거냐고. 그러자 담임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풍경화요. 상상화 말고요.”

 

미정은 어제저녁 감포 친정집에 들렀다가 새벽부터 경주시민운동장 앞 집결지로 왔다. 피곤이 몰려들었다. 정신없이 물을 따르고 응원을 하고 그러던 중에 휴대폰 알람을 놓치고 있었는데 중간에 잠시 열어보니 동네 엄마들 단톡방에 자신의 경주행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와 있었다. ‘언니 진짜 하쌤 대신 간 거예요? 순돌이 땜에?’ 미정은 깜짝 놀랐다. 어디에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경로는 하나뿐이었다. 순돌의 일기장을 통해 순돌의 담임에게로 흘러 들어갔고 순돌의 담임이 다른 엄마들에게 그 사실을 얘기했을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경로가 조금 복잡하긴 해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얼마 전 미정이 순돌에게 “순돌아. 엄마 아빠 이혼하면 아빠는 혼자 못 산다는데. 새엄마 오면 너 어떻게 할 거야, 어디로 갈 거니?” 하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순돌의 선택은 이랬다.

“나는 그럼 감포 할머니네 갈래.”

할머니와 아주 가까운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말은 좀 의외였고, 엄마를 고려한 답변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는데, 아이가 며칠 후 자신의 답변을 정정했다.

“엄마, 나 그냥 서울에 있을래.”

미정은 그게 미정의 경주행을 두고 하는 얘기인 줄 알고 “그래, 주말에는 엄마만 달랑 다녀올 거야. 할머니도 뵙고”라고 했는데 아이가 다시 말했다. “아니, 엄마가 저번에 물어본 거 있잖아. 나 그때 감포 할머니네 간다고 했잖아. 근데 생각을 해봤는데, 거기는 교육환경이 안 좋을 것 같아.”

꽤 진지한 아이의 표정 앞에서 미정은 웃음을 꾹 참고 정색하며 말했다.

“순돌아, 대한민국에 학원 없는 동네가 어딨어. 다 있어.”

“서울만은 못할 거래. 우리 선생님이 그랬어.”

“아니야, 순돌아. 또 모른다, 너. 농어촌특별전형 같은 것도 있잖아. 그리고 거기 천문대도 있잖아. 너 천문학자가 꿈이라며.”

“엄마. 나는 수도권을 못 떠나. 우주가 궁금하긴 한데 수도권을 떠날 순 없어.”

순돌은 그렇게 수도권을 선택했고 미정이 경주에 가는 건 자신의 미래와 관련된 일정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불안해했다. 미정은 자신이 마라톤 서포터즈로 그곳에 가는 것임을 거듭 설명했지만 아이는 왜 서울 사는 엄마가 굳이 경주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간다는 것인지 얼른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렇게 원정 마라톤을 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했지만, 미정이 그런 사람이 아닌 건 어린 순돌도 알았다.

“하쌤을 도와드리려고 하는 거야. 너 수학과외 해야지.” 그렇게 한마디 한 것이 일기장에도 고스란히 들어갔던 것이다. 게다가 순돌은 담백한 사실도 더 부풀려 기록하는 경향이 있었다. 미정은 순돌의 학원 입성을 위해 경주까지 가서 마라톤을 뛰는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정확히는 서포터즈인데 떠도는 얘기 속에서 미정은 이미 마라토너였다.

순돌의 일기 못지않게 하쌤의 인스타그램도 수다스럽다는 사실을 미정은 방금 알았다. 일부러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오일러런의 풍경만을 열심히 찍어서 보냈는데, 그중에 최대한 미정이 보이는 사진이 선택되었다. ‘오일러수학을 아껴주시는 학부모님’이라는 내용과 함께. 그리고 그 사진의 일부만을 보고도 미정임을 알아챌 만큼 가까운 엄마들이 있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미정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몇명의 러너가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앞을 지나갔고, 이제 점점 간격이 성글어졌다. 다섯시간 삼십칠분, 이미 앞 코스에 있던 급수대들은 모두 철거된 후 서포터즈의 임무도 종료되었다. 통제되었던 도로도 모두 순차적으로 해제되고, 이제 남은 건 마라톤 코스의 가장 마지막 5킬로미터 정도다. 23분 후면 행사가 종료된다. 그러니까 궤도라는 것이 아직 23분 정도 더 유효한 이 시점에서 미정의 눈에 들어오는 이상한 풍경이 있다. 시선이 닿은 곳은 황리단길에서 이어지는 네거리의 횡단보도 한복판이다.

초록불이 되어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이 하나가 거기 가만히 서 있는 것이다. 조금 전에 급수대로 다가와 음료수 하나만 먹으면 안 되냐고 물었던 아이다. 그 아이가 코스 바로 옆 횡단보도를 건너다 말고 한가운데 서서 파워에이드 뚜껑을 따고 한모금씩 마시고 있다. 곧 빨간불이 켜질 도로 한복판에서 말이다. 미정은 그쪽으로 달려가 아이를 데리고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두 사람이 건너가자마자 신호등은 빨간불로 바뀐다. 미정은 아이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 끝까지 와서야 묻는다.

“얘, 왜 거기서 물을 마셨어?”

“그냥요.”

“초록불이면 얼른 건너가야지.”

“한번도 저기서는 안 마셔봤는데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요.”

순간 미정의 마음이 철렁한다.

“어떻게 되나 궁금하다고? 금방 빨간불이 되지. 그럼 차가 막 다니잖아. 위험하잖아. 이해가 안 돼? 외워, 그럼 외워. 초록불은 바르게 통과, 빨간불은 스탑!”

아이를 울리려던 건 아니었는데 아이가 울먹울먹 눈물을 보이기에 서둘러 말을 마무리한다. 순돌보다 조금 더 어리려나? 아이를 보내고,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대기한다. 거의 여섯시간을 지켰던 그 자리를 도로 건너편에서 바라보니 모든 것이 인형극처럼 느껴진다. 미정은 여전히 자신을 파란 테이블 앞에 세워두고 거기서 조금 비껴난 이 자리에서 바라보는 중이다. 정말 순돌 때문일까. 그게 경주까지 온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보다는 ‘하은진’이라는 하쌤의 본명이 담긴 문자를 들고 저기 ‘하은진’으로 서 있는 장면을 더 많이 상상했으니까.

왜 하필 하쌤일까. 하쌤의 배역이 마음에 들었나? 미정은 자신의 역할에 지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는 상상을 하곤 했지만 사실 하쌤은 그럴 범위에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날, 하쌤이 내뱉은 말들은 미정에게 오래 매혹적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명확하게 풀어냈을 때 그 수식을 보는 아름다움! 놀라움!” 하쌤의 말이 미정의 마음속에서 원을 그리며 맴돌았다. 아름다움이라니, 이상한 파동을 가진 말이 아닌가. 처음 보는 말도 아닌데 마치 처음 보는 말처럼 하쌤은 그렇게 ‘아름다움’을 말했고, 그저 습관적 낙서였는지는 몰라도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적은 포스트잇을 몇장이나 만들어냈다. 그중 한장은 미정에게 있다. 바람결에 미정의 에코백 안으로 들어왔던 꽃잎 한장처럼.

이제 미정은 언제 그 말의 울림이 멈출 것인지 기다려주는 마음으로 내버려둔다. 어떻게 되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횡단보도 한복판에 멈춰 서서 물을 마시는 아이나 네거리의 횡단보도 앞에 서서 어떤 불에도 건너지 않는 자신이나 크게 다를 건 없구나, 생각하면서 미정은 그저 건너편을 바라본다. 이러한 멈춤, 이러한 거리두기, 미정의 삶에 좀처럼 없었던 것들을 가만히 내버려둔다. 네번의 초록불을 그냥 흘려보내고, 다섯번째 초록불이 켜질 때 미정은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그때 저기서 누군가 거꾸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머리띠로도 다 고정되지 않을 만큼 풍성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뛰는 한 여자. 그 모습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처럼 보인다. 휘청이지만 쓰러지지 않는, 그러나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다가오는 야자수. 그 야자수가 휘청휘청하더니 하필 미정의 발치에 와서 쿵 쓰러진다.

 

왼쪽 손목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은우의 잠을 깨운다. 시야에 들어오는 낯선 모서리. 왼팔이 저릿하지만 은우는 몸을 일으키지 않는다. 누운 상태 그대로 손목 안쪽 감각에 집중한다. 하나 둘 셋 넷…… 맥박은 성실하게 뛴다. 누가 듣든 아니든, 보든 말든 꾸준히 유지되는 세계가 자신의 몸에도 있다는 사실이 은우에게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엄청난 대서사 안에 자신의 맥박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소함과 안도, 그로 인한 일말의 허무까지 은우는 가만히 헤아린다. 울림과 뜀이 지금껏 한번도 멈춘 적이 없다는 데서 오는 이상한 징그러움과 새삼스레 치솟는 불안까지도. 이렇게 오래가는 작동장치를 본 적이 있나?

은우를 뛰게 만든 것이 회식비 대신 나온 상품권 한장이었다고는 해도 두번째 세번째 계기가 없었다면 계속 뛰지 못했을 것이다. 그 두번째부터의 모든 동력이 바로 이 손목 안에 있었구나, 하고 은우는 생각한다. 이 낯선 진동 속에서 너울성 파도처럼 일렁이는 것—빨라지든 느려지든 자기 삶의 박자를 어떻게든 흔들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은우를 뛰게 한 것이다.

은우는 의무실에서 눈을 뜬다. 모로 누워 손목을 베고 잠이 들었던 탓에 손목이 저릿저릿하다. 서포터즈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은우에게 괜찮으냐고 묻는다. 은우는 몸을 일으킨다. 은우가 더듬더듬 가방을 찾자 서포터즈가 얼른 은우의 등 뒤에 있던 가방을 앞으로 빼준다. 휴대폰에는 뛰는 무리 사람들이 보낸 메시지가 있다. 다른 대회에서 완주 메달을 딴 이가 올려둔 사진 아래로 폭죽을 터뜨리는 이모티콘들이 가득하다. 이제 은우 차례다. 이건 은우의 말이 아니고 옛 팀장이 적어둔 말이다.

‘저는 악천후용 러닝화답게 의무실까지 침투했습니다. 나중에 소상히 보고드리지요.’

나중에,라고 했는데도 금세 전화가 걸려온다. 최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최에게 은우는 본인도 납득하기 어려운 말을 한다. 뛰면서 스쳐간 누군가의 얼굴 때문에 역주행을 하고 말았다고.

“뛰면 뒤통수만 보이는데 뭘 봤다는 거야?”

“어…… 급수대에서 얼핏 지나쳐갔는데 뛰다가 깨닫게 된 거야. 그 사람의 얼굴을. 설명하기 힘든데, 왜 순간적으로 오는 그런 거 있잖아.”

“뭐야, 사랑이야? 아님, 가해자?”

“아니, 나를 본 것 같아. 내가 거기 서 있었다니까.”

은우는 홀린 듯한 기분으로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하려고 했으나 어떤 말도 얼른 찾아낼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은우의 삶 속으로 조금 전 누군가가 쿵쿵거리며 지나갔다는 것이다. 설사 그 누군가가 이미 은우의 삶을 살짝 통과해나간 후라 하더라도 은우는 괜찮을 수 없다. 은우는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있다. 화면을 통해 시상식 장면이 중계된다. 그걸 보자 41킬로미터까지 왔다가 마지막 1, 2킬로미터를 뒤로 뛰었다는 것이 더 미친 짓처럼 다가온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거기 서 있었다는 걸 떠올리자 은우의 몸이 덜덜 떨린다. 은우와 다른 옷을 입었을 뿐, 생김새가, 표정이 완전히 똑같았는데. 아니 분석에는 의미가 없고 그냥 보자마자 ‘나구나!’ 했는데.

그러나 이미 40킬로미터를 뛰고 난 후였다. 은우는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볼 정도의 정신이 자신에게 있었을까 짚어본다. 잘못 봤을 수도 있다. 최근에 시력이 많이 떨어져서 조도가 낮으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자신이야말로 다른 러너들에게 그런 존재로 보였을 거란 생각을 하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아마 사람들은 시력과 관계없이 은우가 향하는 방향을 보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서포터즈 티셔츠를 입은 여자가 은우 옆에 다가와 앉으며 말한다. “제가 급수대에 있었어요. 거기 40킬로미터.”

“아, 그래요?”

“제 앞에서 넘어지시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말해놓고 보니 너무 많은 말을 생략한 것 같아 은우는 설명하려 한다. 제 말은 그러니까 저를 여기로 데려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뜻…… 서포터즈는 다 안다는 듯이 은우에게 손사래를 치고는 말한다.

“가끔 그렇게 보인대요. 도플갱어, 그거잖아요. 저분도 보셨다는데?”

“예?”

은우의 뒤에 누워 있던 남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거 흔해요” 한다.

“뭐예요, 트렌드예요?”

나중에 얘기하겠다고 했는데도 전화한 사람이 또 있다. 옛 팀장, 현 동네 아저씨, 혹은 미래의 실장. 그가 전화를 걸어와 대뜸 수고했다고 말해서 은우는 조금 긴장한다. 그건 그저 그의 화법일 뿐 다음에 어떤 말이 올지는 모른다. 그는 몇해 전 부산마라톤에 참여했을 때 솔직히 지하철로 몇 구간을 이동했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가다가 다시 코스에 합류하려고 했는데 남포역에서 너무 놀라 그 길로 부산역으로 가KTX를 탔다고 했다. 플랫폼에 자기랑 똑같은 사람이 옷만 바꿔 입고 서 있는데 이쪽에서 아무리 그 사람을 쳐다봐도 그는 절대 이쪽을 쳐다보지 않으려는 듯이 서 있더니 다음 역에 내려버렸다는 것이다. 절대,라는 건 그의 해석이 들어간 말이겠지만, 그때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서 있던 경험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그래서 네가 역주행을 했는데 다시 가보니까 거기 서 있던 내가 없더라? 당연한 거야, 두번 만날 수는 없어. 그게 도플갱어의 법칙이에요. 왜냐하면 닮은 얼굴이라는 게 평생 가는 게 아니거든. 한순간이야. 그냥 몇날 몇시 몇분 몇초에, 허공을 떠돌다가 아주 잠깐 부딪치는 접점에서, 거기서 마주치는 거거든. 그러니까 그 순간이 지나면 또 흘러가버려. 그냥 빛이 나뭇잎에 닿을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처럼 그런 거야. 아주 짧은 순간, 모든 것들이 만날 가능성, 그거거든. 야! 그래도 나는 역주행과 도플갱어, 둘을 동시에는 안 했다.”

통화를 마치고 은우가 “이분도 보셨다네요. 전 웃기려고 한 건 아닌데 어쩐지 웃겨진 기분이에요”라고 하자 듣고 있던 서포터즈가 말한다.

“40킬로미터 급수대에 저까지 다섯명 있었거든요? 여자는 저 하나였고요. 성별 상관없다고 해도, 선생님 닮은 분은 못 본 것 같은데. 혹시 저는 아니겠죠?”

그 말을 하는 여자는 진지해 보였는데 누가 봐도 너무 다르게 생긴 두 사람이라 동시에 한바탕 웃어버린다. 서포터즈가 자기 이름이 미정이라고 말해준다. “하은진 아니고 유미정이에요” 하고. 통성명을 하는 분위기인가? 은우는 그냥 “저는 6047이에요” 한다.

“서포터즈님이 진짜 제 도플갱어라면 저는 죽는 거 아닌가요? 도플갱어를 보면 죽는다고도 하잖아요.”

은우의 말에 미정이 자신 있게 말한다. “음,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내가 성형을 해가지고요.”

두 사람은 또 한번 와르르 웃는다. 미정이 말한다.

“참, 역주행 1킬로미터 좀 넘었지요? 그거 합치면 42.195 되겠는데요?”

그러나 은우의 기록용 칩은 고장이 났는지 애초에 불량이었는지 41킬로미터까지의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제대로 뛴 것, 거꾸로 뛴 것 다 계산해도 은우의 기록은 없다. 기록용 칩은 마치 모든 시간과 기억이 휘발되었다는 듯이, 지금은 그저 멍청한 플라스틱 막대에 불과하다는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은우는 침대 아래에 놓인 러닝화를 집어 든다. “다른 건 몰라도 여기 텅 말이야, 설포, 이 혓바닥이 구겨진 러닝화는 용납이 안 돼.” 언젠가 옛 팀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자꾸 길어지는 혓바닥은요? 은우는 그렇게 묻고 싶어진다. 설포를 마구 잡아당겼던 장면이 떠오른다. 마치 끊임없이 말을 걸던 혀처럼, 러닝화의 설포가 요란하게 춤을 추던 기억. 그러나 지금 러닝화는 그저 신발에 불과하다. 완주를 하지 못했지만 수상한 궤적을 갖게 된 신발. 은우는 허탈함과 동시에 이상한 개운함을 느낀다.

 

두 사람은 의무실을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미정은 단톡방에 올라오는 얘기들을 보다가 은우에게 곧 있을 마라톤대회를 아무거나 알려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방금 들은 것 중 가장 먼 지역의 것 하나를 단톡방에 언급하면서 ‘같이 갈 사람? 지금 신청받아요’라고 한다. 자신이 누구 대타가 아니라 마라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초심자임을 강조하면서.

“이거 아직 마감 안 된 거죠? 다음엔 진짜 뛸까봐요. 딱 1킬로미터만. 오늘 보니까 걷는 사람도 많던데. 보니까 용기가 나더라구요.”

“참가비 내고서 1킬로미터만 뛰면 아깝지 않아요?”

“그런 생각은 못했는데. 같은 값이면 더 뛰어라, 그거죠?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추천 코스 없어요? 초심자용.”

“서울만 해도 달리기대회 거의 매달 있어요.”

“아니 아니, 먼 곳으로. 나는 원정경기를 가는 사람이니까. 농어촌 좋아요.”

“속초 어때요?”

미정이 반색한다. 갯배를 타고 옹심이를 먹고 중앙시장에서 회를 사 먹었다는 얘기를 신나서 한다. 미정이 언급한 모든 장소들이 은우가 예전에 뛰었던 하프마라톤 코스에 포함된다. 은우는 중앙시장에서부터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이 있는 곳까지 쭉 대로가 뻗어 있는데 그곳이 상당히 인상적인 코스였다는 걸 말해준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법원 건물과 변호사 사무실과 공사 중인 고층아파트들이 가득한데, 그 맞은편은 건물의 높이가 일단 상대적으로 낮고, 한집 건너 한집이 점집이었다는 사실을. 한쪽은 콘크리트로 지어진 법의 세계, 다른 한쪽은 선녀, 보살, 점, 도사, 무당이 가득한 세계. 법과 점이라니, 상반된 세계 같으면서도 인생의 굴곡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어쩐지 닮은 두 업종이 대로를 가운데 두고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것참 재미있네, 미정의 머릿속에 ‘우리 상가 꾸미기’가 떠오른다. 순돌의 담임교사가 최근에 아이들에게 내준 숙제는 ‘상상화: 내가 꿈꾸는 꼬마빌딩 그리기’였다. 어떤 업종을 들여놓을 것인지 그리고 월세를 어떻게 받을 것인지도 생각해오라고 했다. 아홉살 아이들이 망하지 않을 업종을 고르느라 고심하는 것이 미정에게는 끔찍하게 느껴지지만 튀고 싶지 않아 가만히 순돌의 그림을 지켜보기로 한다. 거기에 뭐가 등장할까. 오일러수학이 등장할까. 아이들의 그림은 다 똑같을까?

“속초 가서 점을 보세요. 저는 뛰다가 점도 봤어요.” 은우가 말한다.

“마라톤을 하다가요?”

“네.”

“마라톤 중에 그렇게 막 다녀도 돼요?”

은우는 웃는다. “점 본 다음에 옹심이도 사 먹었는데요.”

“뭐가 그렇게 궁금했어요? 뛰던 중에 들어가서 물어볼 정도로.”

질문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은우의 대답을 미정은 농담처럼 받지만 은우 입장에서는 정말 그랬다. 어느 할머니가 공짜로 봐준다고 했기 때문에 그 집 평상에 걸터앉아 뭔가를 물었던 기억은 나는데 그게 뭐였는지는 너무도 사소해서 잊어버렸다. 은우는 어차피 점괘를 신뢰하지 않았으므로 중요한 것을 묻지도 않았다.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그 할머니가 은우의 손바닥 위에 적어준 대답뿐이다.

‘ㅇㅊㅎ’

“초성 점괘예요?”

“무슨 뜻인지는 아직도 몰라요.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아치형이었어요. 발 아치 무너지지 말라고 신발 깔창 사서 뛰고 그러던 때였거든요.”

“용천혈! 이것도 되네요?”

“임차해, 오 축하, 유치해…… 이것저것 다 넣어봤어요.”

“임차해,는 뭐지?”

“거기 워낙 빌딩 임대, 임차, 이런 말이 많이 붙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연상됐어요. 오 축하,도 맥락에 안 맞긴 마찬가지고. 그냥 사람 이름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뭐, 그 할머니 이름이 임청하였을 수도 있잖아요.”

“음. 이체해, 아닐까요? 돈을 이체하면 모음을 추가해준다, 그런 뜻?”

모음이 옵션이라니, 은우가 중얼거리면서 웃는다. 어쨌든 질문이 기억나야 답을 추론해내기도 좋을 텐데 질문조차 명확하지 않으니 의미없는 낙서가 되고 만 것이다. 미정은 아치형, 아치형, 중얼거리면서 허공에 아치형의 궤적을 그려보기도 한다.

“답이 아치형이라면 질문이 뭐였을까.”

“그냥, 다음엔 어디로 갈까요? 이런 거 물어봤을 수도 있어요. 아니면 완주할 수 있을까요? 이런 말이거나. 아무래도 이체해,가 맞는 것 같아요. 이체해, 신선한 발상이에요.”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역으로 가시나요?”

“배고파서 일단 뭘 좀 먹어야겠죠?”

그때 미정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잠시 통화를 하고 돌아와서 미정이 툭 내뱉은 말, “아, 그놈의 꼬마빌딩. 나도 꼬마빌딩 사고 싶다!”

그다음 이어진 은우의 말, “꼬막비빔밥이요? 그거 먹으러 갈까요?”

미정이 웃다 사레에 걸려 한참 기침을 한다. 은우가 진심으로 꼬막비빔밥이라 믿는 표정이어서 미정은 “네!” 한다. 꼬마빌딩과 꼬막비빔밥 사이에서 방금 태어난 그 오해가 어쩐지 미정을 신나게 한다. 개운하게 한다. 예상 밖의 점프가 마음에 든다. 미정이 주차장 벽에 붙은, 아직 붙어 있는 하쉬마라톤 코스 안내도를 손으로 더듬어보면서 말한다.

“아치형이 끌렸던 이유가 있었구만.”

미정은 펜을 꺼내 안내도 오른쪽 끝의 두 지점을 크게 연결한다. 아치형 굴곡으로 크게. 너무 크게 그리는 바람에 동해안까지 선이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이렇게 하면 한붓그리기가 가능해진대요. 일곱개의 모든 다리를 한번씩만 건너고 이동하기. 홀수점이 네개 이상이면 안 되거든요. 아까는 네개였는데, 보세요. 여기에 이렇게 선을 추가하면 두 점이 짝수점이 되니까 홀수점이 두개로 줄죠. 그러니까 잘하면 가능해져요!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죠? 미안해요. 지금 나 엄청난 발견을 하고 있는 거라서 흥분했어요.”

“오일러 얘기잖아요. 그 다리. 실제로 한참 후에 거기 여덟번째 다리가 생겨서 이제는 한붓그리기 가능해졌다는 얘기 들었어요.”

그 말을 차근히 듣던 미정이 휴대폰을 꺼내 들고 한참 뭔가를 보다가 환호를 지른다. “찾았어요! 찾았어!”

은우가 묻는다. “꼬막비빔밥 파는 곳이요? 아니면 오일러공식?”

“둘 다요!”

미정이 은우에게 내민 휴대폰 안에는 바다를 향해 뻗은 ㅇㅊㅎ이 있다. 미정은 그곳이 읍천항이며 자신이 잘 아는 동네라고 말해준다. 잘 아는 동네인데도 그곳 초성이 그렇게 되는 줄은 지금에서야 깨달았다고.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이 초성 모양의 조형물 같은 건 자신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동글동글한 돌 조형물을 보는 은우의 맥박이 빠르게 뛴다. 포털사이트에서 읍천항을 검색하자 방금 본 그 돌 조형물 이미지 말고도 다양한 ㅇㅊㅎ이 떠오른다. 나무로 만든 것도 있고, 쿠션으로 만든 것도 있다.

불량 기록칩을 기념품처럼 만지작거리던 은우가 말한다.

“코스를 만들까요? 첫 지점은 ㅇㅊㅎ. 그리고 그다음엔 다른 초성을 찾아 나서는 거예요.”

“재밌겠다! 저 근데 오늘 오후에 올라가야 돼요.”

“조금씩 이어 붙이면 되죠. 다른 날, 꼭 우리가 같이 오지 않아도, 각자라도.”

“읍천항 다음에는요?”

“그건 첫 목적지 가서 정해요.”

“모음 추가 안 되나요?”

“안 되는 게 묘미죠.”

미정은 조수석에 앉은 은우의 옆얼굴을 슬쩍 본다. 시동을 걸면서 미정은 조심스러운 예감을 한다. 찰나에 불과할지 몰라도, 분명히 반짝이는 무언가가 지금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어디선가 주워온 포스트잇 한장을 드디어 붙일 순간이 자신에게도 오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