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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경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 궁리 2022

시민교육은 민주주의의 토대, 시민의 자존감

 

 

하승창 河勝彰

노무현시민센터장 ourch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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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교육, 혹은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오랜 독재정권을 겪은 시민사회의 자연스러운 요구였다. 민주시민교육법 제정이라는 구체적 목표 아래 1990년대와 2000년대 내내 제도화·입법화를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관련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민교육은 때로는 평생교육, 때로는 인권교육이라는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평생교육처럼 개별 분야의 법제로 이루어지기도 했고, 관련 기관이 만들어지며 시민교육의 공간과 기회가 확장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시민단체를 매개로 한 시민운동의 현장에서는 법이나 제도의 정비와 관계없이 시민교육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고 발전하고 있었다. 나는 촛불시위 현장에서 이루어지던 길거리 시민교육,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헌법강좌 등을 보며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사회의 의지와 바람, 그 공명을 확인했으며, 생생한 시민교육의 현장이 우리에게 있었음을 기억한다.

돌아보면 나에게는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참여한 여러 토론회, 공청회, 워크숍, 시위 그 모든 것이 사회적 의제를 둘러싼 시민교육의 현장이었다. 그뿐 아니라 선거 시기 일상의 문제를 정책 공약으로 만들어 정당들에 전하는 데 참여한 시민들과의 논의, 선거 과정을 돕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선거캠프를 찾아오는 시민들과의 대화 자체가 시민교육의 현장이기도 했다.

이런 ‘현장’은 시민교육과 관련한 수많은 일상의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경험의 폭과 넓이가 그동안 어떻게 변화하고 만들어져왔는지는 미처 돌아보지 못했는데,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 주은경의 시민교육기획 노트』에는 현장 기획자가 펼쳐 보이는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히 책의 4부 중 「‘근황토크’와 ‘내돈내산’, 독서서클」 편에 나오는 독서모임 ‘와인’이나 시민의 일상에 민주주의를 초대한다는 생각으로 기획된 시민행동력 프로젝트 ‘와하학교’ 같은 경우 어느 것 하나 그 시작이 무겁지는 않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 모두 저자가 ‘시민력’으로 표현하는, 참여자의 인식 확장에 기여한다. 어쩌면 가벼워 보이고, 단순해 보이기까지 하는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정성이 담겨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는 무엇보다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거나 지식을 더해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 시민교육에 대해 더 깊은 관점을 전해준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가 기획하고 경험한 시민교육 프로그램은 결국 또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가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왜 시민교육을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저자는 시민교육 과정이 그 자체로 시민들의 ‘자존감’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자존감이야말로 시민교육을 통해 얻게 될 민주주의의 토대라 말한다. “시민의 자존감은 민주주의를 위한 중요한 힘이다.”(131면)

저자는 책 전반을 통해 교육에 참여하는 시민의 ‘성장과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왔음을 보여준다. 이는 저자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을 돌아보는 가운데 여러차례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예컨대 「시민소모임의 생로병사를 대하는 자세」에는 소모임 하나가 태어나 성장하고 마감하기까지 세세히 살피고 마음을 다해 지원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프로그램을 일일이 기획하고 교육 과정에 참여하면서 기획자이자 수강생으로서 프로그램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저자의 태도는 장인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또한 저자는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가 통합되는 자유로운 시민, 사회와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 사회적 차원뿐 아니라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현해내는 시민, 이러한 시민들의 성장과 변화에 교육이 역할해야 하지 않을까?”(14면)라고 마음을 다진다.

이런 고민과 고뇌가 담긴 프로그램들에 참여한 시민들이 변화를 경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백퍼센트 살아 있어요.”(122면) “자아를 인식하게 하는 교육, 타인의 마음 그 아래의 숨겨진 정서와 감정을 보게 되었죠.”(123면) 이처럼 시민교육은 “자기성찰과 자기표현을 통한 소통의 능력을 키우며, 자기 내부에서 삶의 기쁨과 힘을 찾아내 주체의 삶을 살아가는 시민을 목표로”(149면) 한다. 시민교육을 통해 성찰적 시야를 갖춘 시민들이 더욱 폭넓게 형성될 때 시민의 자존감은 민주주의의 진정한 토대가 된다.

내가 일하는 노무현시민센터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와도 같은 말을 센터의 정체성으로 한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대통령의 말은 그가 오랜 시간 ‘정치’라는 공간에서 활동하고 대통령까지 지내며 새삼 확신하게 된 사실이었다. 시민교육 활동을 통해 같은 결론에 도달한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잘못된 세력에 저항하는 힘을 키우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너무도 중요하다. 그러나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나는 누구인지 스스로 물어보고 돌아보아야 한다”(173면)는 말을 절대로 가벼이 여기지 않아야 함을 새삼 깨닫는다.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를 통해 시민교육의 본령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지만 좀더 이야기를 들었으면 하는 것도 있고, 한두가지는 아쉬운 점도 있다. 하나는 저자의 호기심과 아이디어에 기반한 프로그램들에 대한 소개가 많다보니 교육에 참여하려 하거나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요구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덜 보인다는 점이다. 회원단체나 모임은 대개 참여자들의 활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하는 고민들이 있다. 예컨대 어떤 시기에 어떤 주제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만드는 것이 좋은지, 어떤 프로그램들에 회원들이 흥미를 많이 느끼는지 등이다. 특히 저자가 경험한 프로그램의 양이 풍성하고 많아서 각각을 기획할 때 더 주의하고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해 듣고 싶은 독자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다른 한편으로 시민교육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현재의 상태,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지까지 이야기가 확장되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시민교육을 지원하는 제도나 정책의 현재와 미래까지 살펴보았다면, 민주시민교육법을 둘러싼 시민사회의 오랜 요구가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지 좋은 의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을 이 책의 결점이라 할 수는 없다. 나 역시 내가 몸담은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고, 앞으로 있게 될 수많은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들여다보고 기획하게 될 때마다 그 본래의 의미를 되새기며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고마움이 더 크다.

하승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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